소설리스트

학사신공-1211화 (968/2,000)
  • 1211화. 마수(魔獸)

    *

    일다경 후, 백운형을 비롯한 여섯 제자들이 진법 설치를 마치고 검은 기운이 용암호수 사방에서 피어올랐다. 살기를 머금은 기운은 안에 무수히 많은 종류의 칼날들이 품고 있는 듯 날카로운 기운을 번득였다.

    백 가의 제자들은 검은 기운 속에 모습을 감추고 진법을 조종했다.

    “진법이 준비되었으니 난룡 수사께서 용암 속 마수를 자극해 끌어내 주십시오.”

    황발 거한이 난룡천군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이에 난룡천군은 기합을 넣으며 남색 발우를 가리켰다.

    웅!

    발우가 몸집을 불리며 남색 보름달로 변해 굵은 남색 빛기둥을 방출했다. 거대한 방망이처럼 빛기둥이 용암 속으로 파고들었다.

    새빨간 용암들이 거대한 파도를 이루어 출렁이고 그 안에서 분노에 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갈라진 용암 사이로 녹색 기운이 솟아올라 남색 빛기둥을 밀어내고 있었다.

    이에 난룡천군이 기운을 끌어올려 남색 발우를 향해 검은 법결들을 날려 보냈다.

    우웅!

    남색 보름달 표면에 무수히 많은 하얀 주술문자들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분출되던 남색 빛기둥도 배로 굵어져 엄청난 기세로 녹색 빛을 멸했고, 그대로 용암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콰쾅!

    용암 호수 전체가 진동을 했다. 의외의 일격에 호수 아래 몸을 숨기고 있던 마수가 크게 당한 것 같았다.

    “맛이 어떠냐!”

    난룡천군이 광소를 터트리며 남색 발우를 이용해 다시 공격하려는데 동굴 전체가 극심하게 흔들렸다.

    용암 호수의 화염들이 새빨간 파도처럼 일어나 난룡천군을 향해 달려들었는데 곁에 있던 한립과 한기자도 공격 범위에 포함되었다.

    이에 한립은 한기를 머금은 오색 연꽃으로 화염을 막아냈다. 한기자도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주위를 맴돌던 열두 덩이의 서늘한 빛으로 보호막을 만들었다.

    “악!”

    그러나 난룡천군만이 화염 파도 속에서 무형의 힘에 뒤로 튕겨 나갔다.

    쾅!

    그가 용암 호수 옆쪽의 암벽에 강하게 박히는 바람에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난룡천군이 있던 자리에는 녹색 화염에 둘러싸인 마수의 거대발톱이 떠있었다. 그것이 난룡천군을 쳐낸 것이다.

    석벽에 박힌 난룡천군은 의복이 찢어지고 그 안에 입고 있던 새까만 갑옷이 드러났지만 갑옷 덕에 큰 부상은 면한 듯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부끄러움과 분노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난룡천군은 두 손으로 맹렬히 석벽을 때려 부수고는 세 갈래로 갈라진 괴상한 장도를 불러냈다. 주변에 검은 기운이 휘몰아치자 그는 두 손으로 노란 괴도(怪刀)를 들고 녹색 화염 속 거대 발톱을 갈랐다.

    노란 괴도가 공간을 뛰어넘어 거대 마수 발톱을 공격했다. 그러나 거대 발톱은 굉장히 민첩해 번득하고 사라져 괴도는 허공만 갈라야 했다.

    음무우우!

    뿐만 아니라 용암 호수 속에서 녹색 화염으로 둘러싸인 방대한 물체가 튀어나와 소 울음과 비슷한 소리를 내며 포효했다.

    한립과 한기자가 거의 동시에 뒤쪽으로 물러나며 한 명은 회색빛의 실들을 쏘아 보내고, 다른 한 명은 12개의 투명 깃발들 중 2개로 괴물의 머리 부분을 공격했다.

    치지직!

    그런데 놀랍게도 마수가 머리를 흔들자 녹색 화염이 불의 장막으로 변해 한립의 회색빛의 실들을 녹여버렸다. 그것을 본 한립은 흠칫 놀랐다.

    그의 원자신광은 오행의 힘과 상극이었다. 녹색 화염이 회색 실들을 간단히 녹여버린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기자가 방출한 투명 깃발들은 특수한 힘을 지녔는지 얼음 고리로 변해 녹색 화염을 이겨내고 마수의 본체를 향해 날아들었다.

    퍼펑!

    이에 마수가 입에서 검은 기운 두 줄기를 뿜어 그것들을 맞추었고 투명한 깃발들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떨어졌다.

    놀란 한기자가 바로 손을 뻗자 떨어지던 깃발들이 바르르 떨고 하얀 빛으로 변해 그의 소매 속으로 돌아갔다.

    음무우우!

    화염 속 마수가 괴성을 지르자 동굴 안의 온도가 치솟았다. 마수 주위로 새빨간 구슬들이 빼곡하게 떠올라 일행들을 향해 날아들기 직전이었다. 바로 그때 황발 거한과 자발 여인이 고공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주문을 읊던 거한은 동굴을 뒤덮은 거울 잔영을 가리켰고, 거울 잔영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검은 뇌전들이 떨어져 내려 검은 뇌전 그물을 이루었다.

    그리고 자발 여인은 새까만 미늘창으로 허공을 찔렀다. 창날에서 어른거리던 거대한 호랑이 허상이 경천동지할 포효를 터트리고 검은빛으로 변해 쏘아져 나갔다.

    검은빛이 지나는 곳은 공간이 왜곡되었고 마수 주변에 빼곡하게 뜬 불구슬들도 그 앞을 막지는 못했다.

    그것을 본 마수가 몸을 떨어 녹색 화염을 더욱 크게 일으켰다. 화염 속에서 팔을 지닌 녹색 불 구렁이 형상이 나타나 새까만 호랑이 허상과 교전하기 시작했다.

    둘 다 마기가 응결돼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한데도 난폭하게 싸우는 모습이 진짜 맹수들 못지않았다.

    다만 거한의 검은 뇌전 그물은 마수가 허공에 띄워둔 새빨간 불구슬들이 미친 듯이 공격해서 일정 높이에서 더 이상 내려오지 못하고 있었다.

    마존 후기의 마수답게 여러 마존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고 있었다. 그 틈에 난룡천군이 신형을 날려 흐릿하게 마수 위에 나타났다.

    그는 흉흉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돌연 자신의 불룩 튀어나온 배를 때려 뱃속에서 보물을 뿜었다. 작은 북처럼 생긴 새빨간 보물에는 무수히 많은 문양들이 눈꽃처럼 새겨져 있었다.

    난룡천군이 한 손으로 가볍게 북을 두드리자 고공에 차가운 바람이 일고 새빨간 눈꽃들이 응결되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눈꽃들이 닿을 때마다 새빨간 불구슬들이 치지직 거리는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서늘한 기운이 용암 호수 위에 퍼져 뜨거운 화기를 몰아내고 있었다.

    쉬쉬쉬쉬쉭!

    동시에 한립도 열손가락을 튕겨 10개의 푸른 검기로 마수를 갈랐다.

    파앗!

    한기자는 전신에서 밝은 빛을 내뿜고 새하얀 손바닥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이에 반짝이는 빙산이 허공에 떠올라 커다랗게 변하더니 그의 손짓에 따라 마수를 으깨려 들었다.

    난룡천군과 한립, 그리고 한기자가 동시에 마수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마수는 불길한 예감에 녹색 화염을 쏘아올리고 본체는 용암 호수 속으로 숨으려 했다.

    그때 주변 마기에 몸을 숨기고 있던 백운형 등 여섯 수사들이 수결을 맺고 거대 진법을 발동했다.

    채채채챙!

    검은 기운 속에서 수많은 병장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하얀 검기들이 사방팔방에서 날아들어 용암호수 위로 칼날 그물을 치고 마수의 퇴로를 막았다.

    마수는 육신의 강대함에 자신이 있었지만 음산한 예기를 번득이는 칼날 그물을 보고는 그 안으로 함부로 뛰어들지 못했다.

    허공에 멈춘 마수 위로 눈꽃, 빙산 그리고 검기가 합쳐져 녹색 화염을 뚫고 다가오고 있었다. 마수는 위기의 상황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입을 크게 벌려 주변의 녹색 화염을 빨아들여 드디어 진면목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마수의 정체는 사슴의 머리와 소의 몸 그리고 사자의 발톱을 지닌 괴물이었다.

    음무우우!

    녹색 화염을 흡수한 괴물은 울부짖으며 머리 위에서 녹색 벽돌을 불러냈다. 녹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벽돌은 거대해져 하나의 벽이 되어 동굴 대부분을 가렸다.

    눈꽃, 빙산 그리고 검기들이 벽을 공격했다.

    콰르르릉!

    눈부신 빛과 굉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지만 벽의 녹색 화염이 약간 어둑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

    이에 마존들의 안색이 달라졌고, 한립의 얼굴에도 이상하다는 기색이 스쳤다.

    조금 전 방출한 검기들은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여도 본체인 청죽봉운검에 버금가는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평범한 법보나 법기는 단번에 두 동강을 내는 검기들이 벽에 흠집도 내지 못한 것은 의외였다.

    이때 얼굴에 검은 기운이 어린 자발 여인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미늘창을 투척했다.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미늘창이 긴 꼬리를 남기고 빛줄기로 변해 벽을 찔러 들어갔다.

    쿠쾅!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음이 들려왔다.

    검은 빛줄기가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벽에 새까만 구멍을 뚫어 심하게 금이 간 벽은 언제라도 깨질 것 같았다.

    자발 여인이 희색을 드러낸 순간 사슴 머리 괴물이 입에서 녹색 화염을 분출해 벽에 흡수시켰다. 그러자 화염이 거세게 타오르며 석벽의 균열을 말끔하게 봉합시켰다.

    이에 여인은 미늘창을 불러내 이번에는 폭풍우처럼 수많은 창 그림자들을 쏘아 보냈다.

    이를 지켜보던 황발 거한도 수결을 바꾸어 백여 개의 검은 뇌전을 더 분출했고, 뇌전들은 검은 뇌전검으로 뭉쳐 사정없이 벽을 갈랐다.

    한기자는 빙산을 가리켰다. 빙산이 종적을 감추었다가 마수 뒤쪽에서 나타나 달려들었다. 빙산이 닿기 전에 무형의 압력과 한기가 먼저 쇄도했다.

    그런데 그때 마수가 고개를 들어 발톱으로 허공을 쳤다. 괴이하게도 마수의 등 뒤에서 녹색 화염으로 된 거대 발톱이 튀어나가 빙산과 충돌했다.

    쿵!

    빙산이 튕겨 나가고 녹색 거대 발톱은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어두운 눈빛으로 한기자가 손을 뻗었다. 우뚝 멈춰선 빙산은 다시 마수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들었다.

    동시에 난룡천군이 조종하는 핏빛 북도 북소리를 내 핏빛 눈꽃들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얼음송곳으로 변신시켰다.

    핏빛 얼음송곳은 벽을 때릴 때마다 펑펑 터져나가며 피비린내를 풍겼다. 얼음송곳이 지나간 자리에는 벽이 울퉁불퉁하게 파여 극독을 지닌 공격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벽이 아무리 신통해도 여러 공격 속에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연달아 녹색 기운을 뿜어내던 마수는 울부짖었고, 피부에는 화염 모양의 무늬가 떠올랐다.

    이에 거대 벽을 둘러싼 녹색 화염에서도 똑같은 무늬가 떠올랐고 벽은 마수 쪽으로 내려와 거대한 돌구슬로 뭉쳐졌다. 이때 뇌전, 미늘창, 얼음송곳 등의 공격들이 돌구슬로 쏟아졌다.

    한립이 내뿜은 푸른 검기들도 수백 개로 불어나 돌구슬에 수많은 흔적을 남겼다. 거대한 돌구슬도 맹렬한 공격에 점점 녹색 화염을 잃어가며 돌조각들을 흩날렸다.

    거한과 자발 여인은 전황이 유리하게 바뀌어가자 더욱 열렬히 공격했고 칼날 그물로 퇴로를 막고 있던 백 가 제자들도 그 위로 수많은 칼날들을 불러내 공격에 가세했다.

    돌구슬이 깨지면 승기를 잡을 수 있을 듯했는데 한립의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 이렇게 쉽게 마수를 처치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음무우우!

    그가 고민하는 동안 돌구슬 안에서 마수가 괴성을 질렀다. 그러자 잔잔하게 변했던 용암 호수에 붉은 빛이 번지고 새빨간 용암이 솟아올라 불구슬을 형성하고 돌구슬을 휘감았다.

    녹색 무늬가 퍼진 불구슬은 울룩불룩하게 모양이 변하다 언덕 크기의 용암 거인으로 변했다.

    콰릉!

    전신이 용암으로 끓어오르는 거인은 녹색 눈을 번득이며 두 팔을 뻗었고, 불길의 파도는 도처로 퍼져나갔다.

    거인 체내의 화염은 무궁무진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동굴 전체가 새빨간 불바다로 변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거인은 새빨간 불바다 속에서 열댓 마리의 녹색 불 구렁이들을 풀어놓았다.

    ‘이런!’

    불바다 속의 한립은 깜짝 놀랐다. 뜨거운 기운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쳐 그의 몸을 구속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유자재로 조종하던 푸른 검기들도 불바다의 위력에 속도가 느려졌고 다른 마존들의 공격도 기세가 꺾여 더는 마수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한립은 서둘러 열댓 개의 검기를 날려 화염 속에서 스스로 폭발하게 했다. 푸른빛이 터져나가고 인근의 화염을 일부 밀어냈지만 더 많은 화염이 밀려들어 자리를 채웠다.

    화르륵!

    수결을 바꾼 그의 몸에서 오색 한염이 폭발적으로 몰아쳐 주변의 화염을 강제로 밀어냈다. 그가 막 화염에서 벗어났을 때 별안간 용암 호수 주위에서 참혹한 비명이 울리다 금방 멎었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