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화. 해골과 용암호(熔岩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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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룡천군은 혈야미를 모조리 먹어치우고 한 시진이 지나자 체내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묵묵히 운공을 하며 시간을 보낸 끝에 정상적인 얼굴로 돌아왔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본 한립은 신기함에 눈을 떼지 못했고 더욱 혈야미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혈야미의 효과가 경전에서 본 것보다 더 뛰어나지 않은가!’
황발 거한과 자발 여인은 남몰래 전음으로 백 가 제자들의 실종에 대해 상의했는데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아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일단은 그 일을 잊고 마수를 처리하기 위해 힘을 비축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일행은 꼬박 하루를 쉬고 최적의 상태로 팔족마석을 타고 녹주를 떠나 서쪽으로 달려갔다.
반나절이 지날 때쯤, 앞서 달려가던 황발 거한이 어둑한 하늘과 사방의 잿빛 모래바람을 둘러보다 고개를 돌렸다.
“마수의 신통이 상당해서 이제부터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기운을 숨기기 위해 팔족마석을 회수하지요!”
이에 다른 합체기 수사들도 반대하지 않고 도마뱀 마수에서 내려 팔족마석을 영수환에 담고 저공비행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둔술을 펼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수행에 아주 낮은 저공을 날아가는 것은 그럭저럭 할만 했다. 물론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은 법력을 소모해야 했다.
한 시진 후, 그들은 날아가다 지평선을 따라 늘어선 거대한 모래 언덕을 발견했다. 거산의 산봉우리처럼 우뚝 솟은 모래 언덕 안에서 괴이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황발 거한은 모래 언덕을 발견하고 뒤쪽의 수사들을 향해 조심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가 모래 언덕에 이르기 전 하강하자 나머지 일행들도 조용히 내려갔다.
한립은 그들을 따라가며 눈동자 깊은 곳에서 남색 빛을 반짝였다. 그의 시선은 모래로 뒤덮인 지면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이때 황발 거한의 손이 그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뻗어 나갔다.
쾅!
집채만 한 흙모래 더미가 솟아올라 토룡(土龍)으로 변해 지면을 강타했다. 모래 바닥에 생긴 커다란 구덩이 속에 청동 대문이 숨겨져 있었다.
“이건…….”
난룡천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광산으로 들어가는 정식 입구는 저 모래 언덕 위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마수가 차지하고 있어 저희는 임시 입구로 진입하려 합니다. 이곳을 아는 사람은 백 가 전체에서도 저희 남매뿐이고, 금제조차 펼쳐 놓지 않아 아직 마수도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발 여인이 빙긋 웃으며 설명했다.
“그렇군요.”
난룡천군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멀리 언덕 위의 건물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황발 거한이 청동 대문을 향해 손을 뻗어 무형의 압력을 가했다.
끼이익-!
대문은 천천히 열렸고 그 뒤로 새까만 통로가 나타났다.
“마수가 아직 이 입구는 모르나 봅니다. 가시죠!”
거한은 의식으로 내부를 훑고는 희색을 드러냈다. 그를 따라 일행들은 하나둘 통로로 진입했고 한립은 명청령안을 발동해 어둠 속에서도 대낮과 같은 시야를 확보했다.
푸른 돌로 이루어진 매끄러운 통로의 벽에는 어떤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금제를 펼쳐 놓지 않은 듯했다. 통로를 따라 대략 반 시진을 걸어가자 앞이 밝아지고 새빨간 벽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이번에도 황발 사내가 나서 삼각형의 거울을 꺼내들고 법결을 던져 넣었다.
우웅!
거울에서 오색 빛이 반짝였다. 거한은 거울을 회수하고 새빨간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검은 빛이 날아가 벽으로 스며들었고, 벽은 부르르 떨며 밀려나 뜨거운 열기 가득한 지하 세계가 드러났다. 새빨간 암석과 암홍색 바닥 그리고 석순처럼 삐죽삐죽 솟은 자홍색 돌기둥들 천지였다.
“마수는 광맥에서 가장 화기가 강한 곳에 머물 겁니다. 일반적인 마수는 보통 깊은 잠을 자며 기운을 흡수하는데 마존급 마수는 어떨지 모르겠군요. 저와 누이도 마수의 정체를 몰라 어떤 습성을 지니고 있을지 예상할 수 없으니 모두 조심해서 움직여 주십시오!
이번 원정의 목적은 마수에게 중상을 입히거나 쫓아 보내는 것이지만 만일 죽일 수 있다면 여러분과 마수의 재료를 똑같이 나눌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황발 거한은 뜨거운 기운 속에서도 수사들을 향해 당부했다.
“하하, 백 형께서 언제부터 이리 잔소리가 많아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심하란 말씀을 몇 번이나 하십니까! 마존급 마수를 죽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다면 무리하지 않을 테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난룡천군이 농담처럼 답했고 한립도 미소를 지었다. 자발 여인은 곧바로 입에서 하얀 옥패를 꺼내들었다. 표면에 핏빛 문양이 그려져 있는 옥패였다.
“맞습니다, 오라버니! 너무 심려치 마세요. 제가 지난번에 마수와 싸우다 얻은 정혈로 만든 사혼패(司魂佩)입니다. 이게 있으면 마수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지요.”
그녀가 옥패에 법결을 던져 넣자 핏빛 문양들이 꿈틀거렸다.
“이걸로 마수의 위치를 파악하면 결코 기습당할 일은 없겠구나. 잘했다!”
황발 거한도 처음 듣는 소리인지 무척 기뻐했다. 그는 다섯째 누이에게 맨 앞자리를 양보했고 나머지 일행들도 일렬로 서서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갔다.
울퉁불퉁하게 파여 있는 광산의 벽은 화운석을 채굴한 상태였는데도 여전히 온도가 높았다.
광산이 환소사막 깊숙이 있지만 않았어도 토둔술을 펼쳐 곧바로 마수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겠지만 지금은 그냥 걸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광맥을 따라 이어진 길은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저건!’
열댓 번 골목을 돌아 네다섯 개의 통로가 하나로 모이는 곳에 도달한 한립은 이채를 띠었다. 그들 앞에 펼쳐진 통로에 붉은 빛을 반짝이는 주먹만 한 수정들이 가득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시하는 것은 재료들이 아니라 통로에 쓰러져 있는 머리 없는 해골이었다. 해골의 머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몸은 피부가 쪼그라져 말라붙어 있었다.
자발 여인과 황발 거한도 해골을 보고 의외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쉭!
여인이 해골을 끌어와 허공에 띄웠는데 소맷자락에 은색으로 ‘백(白)’ 자가 새겨져 있었다.
“백 가의 제자 같은데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자발 여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에 황발 거한이 해골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푸른 가죽 주머니가 해골에서 날아올라 펑! 하고 터져 그 안에서 새빨간 벌 떼가 날아올랐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손바닥만 한 벌들이었다.
“혈라봉(血羅蜂)! 백암이란 아이의 마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맞느냐?”
황발 거한은 마충을 알아보고 난색을 표했다.
“노조께 아룁니다. 저건 백암의 혈라봉이 확실합니다. 제가 여러 번 본 일이 있어 장담할 수 있습니다.”
백 가 제자 중 백발노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백암이란 수사와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백암의 시체라는 말인데, 그 아이는 거점을 지키던 제자들 중 수행이 가장 높았습니다. 어쩌다 이곳에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것인지!”
자발 여인이 탄식하며 불덩이를 날려 해골을 재로 만들었다.
“이곳으로 계속 가보시지요. 다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황발 거한을 따라 수사들도 해골이 쓰러져 있던 길로 향했다. 그들은 이전보다 경계심을 가지고 주위를 살폈다.
길을 따라가니 여섯 구의 머리 없는 해골 시체가 더 발견되었다. 지닌 물품이나 복색이 전부 거점을 지키던 백 가 제자들이었다.
황발 거한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누이, 마수와 거리가 얼마나 남았지? 이러다 마수가 우리를 먼저 감지하면 안 되는데.”
“화운석 광맥 안에서는 화기가 강해 넓은 범위를 살필 수 없잖아요. 아직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을 거예요.”
자발 여인이 옥패를 내려다보고 진지하게 답했다.
“그래도 지금부터는 다 같이 은신술을 펼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거한이 궁리하다 다른 이들을 향해 말했다.
“적잖은 법력을 낭비해야 할 텐데 벌써요? 뭐, 알겠습니다. 괴물에게 들키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난룡천군은 턱을 긁적이며 불퉁거리다가 곧바로 검은 영패를 꺼내 들었다. 영패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와 그의 신형을 감싸 가려주었다.
한립도 빙긋 웃으며 검은 기운을 방출해 희미한 그림자로 변했고, 한기자 역시 소매를 펄럭여 수정빛으로 몸을 뒤덮고 얼음 조각처럼 투명해졌다.
백 가의 제자들은 각각 은색 깃발을 꺼내 동시에 날렸다. 허공에 은색 진법이 나타나자 여섯 명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황발 거한과 자발 여인은 수사들이 은신술을 모두 펼친 것을 확인하고 검은 기운을 내뿜고 비단 손수건을 발동해 신형을 감추었다.
일행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한참을 걸어가자 직선이던 통로가 구불구불하게 바뀌었고, 매끄러운 주변의 벽도 거칠고 새까만 암석으로 채워져 있었다.
길 끝에 다다르자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하 균열들이 발견되었고 그 안에서 수시로 작열하는 열기가 뜨거운 바람을 타고 새어 나왔다. 탄내와 유황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바람이었다.
* * *
반 시진 후, 일행은 균열에서 빠져 나와 거대 지하 용암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빨간 용암 속에서 부글부글 기포가 끓어올랐고 주변의 새까만 암석에는 커다란 자홍색 수정들이 박혀 있었다.
한립은 수정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커다란 수정들은 전부 진귀한 극품 화운석들이었다. 대충 둘러보아도 그 수량이 몇 만 개는 되었고 마석이나 영석으로 환산하면 천문학 적인 액수가 될 것이다.
‘이러니 백 가에서 이곳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겠지.’
그런데 거대한 지하 동굴에도 마수는 보이지 않았다. 황발 거한도 샅샅이 동굴을 훑고 입술을 달싹여 자발 여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니겠지? 분명 마수가 이곳에 있는 것이 확실한 것이냐?”
“확실합니다. 정혈을 이용해 추적한 것을요.”
자발 여인이 옥패를 쥐고 자신 있게 답했다.
“마수는 십중팔구 용암 속에 몸을 숨기고 있고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너희는 진법을 펼치고, 한 형과 난룡 수사, 한 수사께서는 죄송하지만 주변을 경계해 주십시오.”
황발 수사가 용암을 내려다보다 백운형을 비롯한 백 가 제자들과 다른 수사들을 향해 말했다.
“존명!”
백 가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진법 법기와 깃발들을 꺼내 대형 진법을 펼쳤고 변룡천군과 한기자도 아래쪽으로 내려가 용암호수 위에서 대기했다.
그들은 은신술을 유지하고도 신중을 기하기 위해 방어용 마기를 방출하고 있었는데 난룡천군이 입에서 꺼낸 남색 발우는 한기를 내뿜었고 한기자의 소매 속에서 튀어나온 12개의 투명한 깃발들은 그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한립은 그저 한 발로 허공을 밟아 오색(五色) 화염 속에서 연꽃을 피워냈다. 기이한 한기를 방출하는 오색 연꽃은 오색 한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립과 난룡천군, 한기자는 용암 위에서 삼각 구도를 이루고 계속해서 의식으로 용암 속을 탐색했다.
그러나 괴이한 파동이 겹겹이 막아서서 깊은 곳까지 의식을 내려 보낼 수가 없었다. 한립의 강대한 의식도 그 정도였으니 난룡천군과 한기자는 3분의 1도 살피지 못했을 것이다.
한립은 용암 깊은 곳에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엎드려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두꺼운 파동 때문에 모습이나 수행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때 황발 거한은 마름모꼴 거울을 불러내 거대한 거울 그림자로 용암 호수를 뒤덮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주문을 외는 거한의 신중한 표정으로 보아 꽤 강력한 술법을 펼치는 듯했다.
자발 여인은 새하얀 갑옷을 불러내 입고 한 손에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미늘창을 들고 있었다. 미늘창의 창날이 번득이자 흐릿하게 새까만 외뿔 호랑이 허상이 나타났는데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것이 언제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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