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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07화 (964/2,000)

1207화.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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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紫髮) 여인은 한립의 맞은편에 앉아 네 명의 시녀를 향해 손을 저었다. 시녀들이 조용히 뒤로 물러가고 문을 닫았다.

“부족한 점이 많은 아이지만 운형의 말을 들으니 한 형께서는 수련에만 매진해 오셨다고요? 제가 한 수사의 명성을 들어보지 못한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수사의 정확한 수행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을 보니 마존의 경지에 머무르신지 꽤 되셨나 봅니다.”

“살육을 통해 수행을 쌓는 편이라 만황과 마수들이 많은 곳에 주로 있었습니다. 다른 수사들과는 교류가 거의 없는 편이었고요. 다만 수사의 추측과 달리 마존의 경지에 이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특수한 공법을 익힌 탓에 제 수행을 꿰뚫어 보기 어려울 따름입니다.”

한립은 사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 말했다.

동시에 복천거사의 수행을 확인하려다 의식 한 줄기가 바다에 빠진 것처럼 흩어져 그는 내심 흠칫 놀랐다. 여인은 귀한 보물을 지니거나 특수한 공법을 익혀 수행을 감추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상대의 법력이 그를 훨씬 초월할 확률은 희박했다. 동급 존재와 비교해 두 배 이상의 법력을 지닌 그였다.

“살육으로 수행을 쌓는 방법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습니다. 그런 경우 일반적인 수사보다 실전에 훨씬 강하다던데요.”

품고 있던 의문 중 상당 부분이 해소된 자발 여인은 은근히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관련 마공이 위력적인 것은 사실이나 수련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저도 수련과 마수 사냥만으로 수련의 고비를 넘기기 힘들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고요.”

“그런 마공을 익히지 않은 저도 고비에 가로막힌 지 천년이 넘었습니다. 하아, 마존의 경지에 이르러 수행을 높이려면 대부분 엄청난 기연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그의 말이 자발 여인의 아픈 곳을 건드렸는지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래 전부터 환소사막이 성계의 금지 중 한 곳이란 이야기를 들어온 터라 저는 성 안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하다 그곳으로 가볼 예정입니다. 그곳에서 기연을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고 아니라도 경험을 쌓는 셈 칠 수 있겠지요.”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고 환소사막 이야기를 꺼냈다.

“백 가가 거대 가문은 아니지만 인근에서는 손꼽히는 세력입니다. 환소사막에 대해서라면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으니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자제들을 시켜 편의를 봐드리겠습니다.”

자발 여인이 눈을 반짝였다.

“사실, 정말 백 가의 도움을 구할 일이 있기는 합니다.”

“오, 어디 무슨 일인지 들어볼까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제 아무리 신통이 뛰어나도 환소사막에 진입하면 둔술을 사용할 수 없어 사막을 가로지르는데 오륙십 년을 허비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환소사막에서 경험을 쌓으려는 것은 맞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요. 백 가에서 팔족마석 한 마리를 구해 보려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한립은 여인을 직시하고 도움을 청했다.

“하아, 역시 팔족마석 이야기시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운형이에게 듣기는 했습니다.”

“어찌 그러십니까? 복천 수사에게도 어려운 일입니까?”

“어렵다 뿐이겠습니까. 한 형께서 마존급 실력자가 아니었다면 당장 제게 축객령을 들었을 것입니다.”

“팔족마석이 성 안의 가문들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녀 절대 팔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연유가 무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젓는 여인을 향해 한립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물론입니다, 어차피 비밀도 아닌 것을요! 팔족마석 자체의 가치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마핵은 물론이고 뼈와 살점 그리고 피까지 전부 희귀한 단약 제련 재료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저희 가문들이 팔족마석을 귀히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환야성이 이곳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인근의 특산품과 영약들 덕이었고 그것을 외부로 팔아 여러 가문들이 세력을 유지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수만 년이 흘러 인근의 광산과 영약이 고갈되었고, 특산품과 영약을 구하려면 환소사막 깊숙이 존재하는 광산과 영약 밭을 오가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워낙 위험한 곳이라 안전하게 조달하려면 팔족마석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고요. 여러 가문들이 팔족마석을 중시하는 주요 이유는 바로 환소사막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능력 때문입니다. 팔족마석에 가문의 성쇠(盛衰)가 달렸다고 해도 과함이 없을 정도로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팔족마석을 외부인에게 쉽게 넘기겠습니까.”

자발 여인은 차분히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녀의 말을 들은 한립은 일이 어려울 거라 예상했다. 다른 이유라면 협상을 해보겠지만 가문의 성쇠가 걸렸다면 타협점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무의식중에 여인의 표정을 살피고 문득 미소를 머금었다.

“복천 수사께서 단칼에 제 부탁을 거절하지 않은 것은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뜻일 겁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팔족마석을 구할 수 있을지 말씀해 주시지요. 가격이 높아서 뜸을 들이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벌써 눈치 채시다니 한 형은 도무지 속일 수 없는 분이군요!”

평온한 그의 말에 여인이 웃음 지었다. 한립은 이렇다 할 대꾸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이에 자발 여인이 웃음기를 거두고 신중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3년 전이었다면 어떤 조건으로도 백 가에서 팔족마석을 구하실 수는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협상의 여지가 있습니다. 백 가가 곤란한 상황에 처해 한 형처럼 강력한 신통을 지니고 있는 분의 도움이 필요해서요.”

“곤란한 상황이요? 백 가에 마존급 노조가 선자 한 명은 아닐 텐데요. 그런 백 가에서도 해결 못할 일이 있습니까?”

“휴, 그런 일이 있으니 처음 뵙는 수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답답하게 말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하겠습니다! 백 가가 환소사막에 보유한 아주 중요한 광맥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몇 년 전부터 마존급 마수가 그곳을 근거지로 삼고 있어 백 가의 힘으로는 쫓아낼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해둔 상황인데 한 형께서 나서 주시면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질 듯 싶습니다. 이번 일만 성사되면 팔족마석을 답례로 드리지요!”

“이미 다른 마존급 수사들에게 도움을 청하셨군요?”

“예, 두 명에게 도움을 받기로 했고 저와 백 가의 다른 태상장로까지 총 네 명이 나서기로 하였습니다.”

“마존 네 명이면 평범한 마수 정도는 쉽게 잡을 텐데 해결해야 할 마수가 특별한 종류인가 봅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직접 괴물과 겨뤄보았지만 실체를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녹색 화염에 둘러싸여 있어 윤곽만 간신히 볼 수 있었지요. 코뿔소나 소를 닮았는데 공간을 뚫고 허공을 녹이는 강력한 불 속성 신통을 지녔습니다. 저도 방심하다 녹색 마염(魔炎)에 갇혀 죽을 뻔했고요!”

“불 속성 신통이면 확실히 다른 속성에 비해 파괴력이 강하지 않습니까. 수사께서 곤혹을 치를 만합니다.”

“괜히 저를 배려해서 그리 말씀해 주실 것 없습니다. 마염이 아니더라도 마수의 법력이 저보다 심후해서 상대가 되지 못했거든요. 아마 마존 후기를 대성한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백 가에서도 어떻게든 많은 동급 수사들을 모아 마수를 처리하려는 것이고요.”

자발 여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마존 후기의 마수! 수사께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시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럼 복천 선자께서는 이번 일이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강력한 마수를 상대하는 일이라면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저 역시 가볍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어서 말입니다.”

“마수를 죽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중상을 입혀 쫓아내는 일이라면 저희 4명이서도 성공할 확률은 6, 7할은 된다고 봅니다. 한 형께서 합류하시면 9할로 올라가겠지만요.”

“하하, 퍽 자신 있어 보이십니다.”

“백 가에서 청한 나머지 두 수사 분들은 저 이상의 법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 분은 빙한 속성의 공법을 수련했고 다른 분은 극히 음한(陰寒)한 속성을 지닌 보물을 갖고 있지요. 저희도 이만한 전력을 모으지 못했으면 광맥을 포기했을지 모릅니다.”

자발 여인은 한립이 믿지 못할까 얼른 해명했다.

“마수의 마염을 억제할 수 있는 수사들이 동행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기는 하겠습니다. 그런데 선자께서 설명해 주셨으면 하는 것이 또 있습니다.”

“무엇이든 질문하시지요!”

“마존 후기를 대성한 마수면 지능 또한 높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백 가의 광산에 거처를 마련한 것입니까? 게다가 백 가가 막대한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되찾으려는 광산에 어떤 진귀한 광물이 나는지 궁금합니다.”

“그것은 그곳에 초대형 화운석(火雲石) 광맥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주 최상급의 화운석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거든요. 그러니 백 가에 엄청난 수익을 안겨줄수있는 광산을 어찌 쉽게 포기하겠습니까.”

“화운석!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마수는 그곳의 불의 기운을 흡수해 수행을 높이고 있는 것이로군요.”

그 말에 한립이 가졌던 여러 가지 의문이 한꺼번에 해소되었다.

“맞습니다. 특수한 종류의 몇몇 마수들만이 천부적으로 광맥에서 직접 기운을 취할 수 있지요. 우리 같은 평범한 성족들이 따라했다가는 몸이 터져 죽을 테지만요. 그래서 광맥을 하루 빨리 되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수의 수행은 날로 늘고 광맥의 가치는 떨어질 테니까요. 수사께서 도움을 주신다고 약속해 주시면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백 가에서 팔족마석 한 마리와 대량의 마석을 보수로 드리겠습니다.”

자발 여인이 열정적으로 말했다.

“수사의 성의를 보아 진지하게 고려해보겠습니다. 다만 화운석 광산을 오가는 데 얼마나 걸릴지가 궁금합니다. 너무 오래 걸리면 아무래도 저는 도움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건 마음 푹 놓으셔도 됩니다! 광맥이 성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1달 정도면 갈 수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체 되어도 3달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렇다면 수락하겠습니다. 언제 출발할 계획이십니까?”

“아,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도움을 주시기로 한 분들이 한 달 뒤에 성에 도착할 예정이라 그때 출발할 계획입니다.”

자발 여인은 예상대로 크게 기뻐했다. 그녀는 한립에게 백 가로 와서 머물 것을 권했지만 그가 원치 않자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이후 그들은 마공와 연체술 방면의 심득을 교류했다.

‘여인의 몸으로 연체술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구나.’

복천거사는 연체술에 상당한 깨달음을 지니고 있어 그가 범성진마공을 익히며 느꼈던 문제를 일부 해결해 주었다.

영계의 다른 합체기 수사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이런 일이 극히 드물었다. 범성진마공은 그 근원이 마계의 마공으로 되어 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상대는 마공과 연체술을 익힌 진정한 마족 존자가 아니던가! 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복천거사와 반나절이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발 여인 또한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립의 연체술이 그녀를 뛰어넘었고 결코 평범한 마존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에 자발 여인은 더욱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한립을 대하는 태도도 더욱 공손해졌다. 한립은 하늘이 어둑해 지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반나절로는 수련의 심득을 교류하기가 충분치 않아 며칠 후에 다시 만나 담소를 나누기로 약속했다. 여인의 명에 따라 그를 태워온 마차가 다시 한립을 태워 백 가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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