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201화 (958/2,000)
  • 1201화. 마계의 황무지

    *

    거대 흡마의들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기세등등하게 세 마족 중년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남궁 수사분들! 변이 흡마의들은 다른 흡마의들에 비해 더욱 무서운 존재입니다!”

    마족 부인이 화들짝 놀라 경고했고 세 중년인 마족들은 그 말에 바로 힘을 합쳐 마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굵은 마기가 순식간에 배로 두꺼워져 검은 교룡처럼 거대 개미떼를 향해 날아갔다.

    쉬쉬쉬쉬쉭!

    거대 흡마의들도 이에 지지 않고 입을 벌려 보라색 액체를 발사해 검은 교룡을 공격했다.

    쿠르릉!

    마기들이 응결한 검은 교룡의 몸이 보라색 액체에 맞자 노란 연기로 녹아내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체구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거대 흡마의들은 더 많은 보라색 액체를 뿜어내 이번에는 세 중년 마족을 공격했다.

    “……!”

    그들 중 가장 나이 많은 사내가 입에서 작은 방패를 뿜어 전신의 기운을 불어넣자 방패가 순식간에 커져 중년인들의 앞을 막아섰다.

    울퉁불퉁한 거대 방패에서 희미하게 귀곡성이 울려 퍼졌고 방패 표면에서 검은 문양이 흘러나와 새까만 보호막을 이루고 중년인들을 보호했다. 대량의 백골들을 이용해 제련한 백골 방패였던 것이다.

    치지지직!

    보라색 액체가 쏟아져 내려 검은 보호막에 떨어지자 노란 연기로 흩어졌다. 검은 보호막이 부들부들 몸을 떨며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안 되겠다! 너희도 힘을 보태야지. 나 혼자서는 버틸 수 없겠어!”

    중년 사내의 외침에 나머지 사내들이 재빨리 그의 양어깨에 손을 올리고 기운을 불어넣었다. 새까만 마기의 흐름이 그들 손바닥을 빠져나와 나이 많은 중년 사내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불안하게 떨리던 검은 보호막이 안정을 되찾았지만 세 중년인들의 법력은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었다.

    “해 수사, 어서 나서 주셔야겠습니다!”

    나이 많은 사내가 고개를 돌려 마족 부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마족 부인이 망설임 없이 허공의 고대 거울을 가리켰다. 거울 형태의 마기가 빙글빙글 돌아 거대 흡마의들을 비추고 푸른빛을 응결했다. 무언가 강력한 신통을 발휘하려는 징조였다.

    그런데 그 순간 소름끼치는 벌레울음 소리가 들리고 다른 쪽에서 진녹색 거대 흡마의들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거의 오륙백 마리는 되는 듯했다.

    그 모습에 마족 부인은 흠칫 놀라 즉시 다시 거울을 조종해 푸른빛으로 자신을 감싸 파공음을 내며 하늘을 갈랐다. 남궁 가의 세 중년인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수하들조차 거들떠보지 않고 도주한 것이다.

    이에 나머지 해 가 사내들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역시 붉은색과 하얀색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이제 그 자리에는 남궁 가 중년인 셋만 남아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이런 일들이 마조 곳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다.

    변이 고계 흡마의들의 등장에 겨우 버티고 있던 마족들이 죽임을 당했고, 특수한 보물이나 신통을 지닌 자가 아니면 운이 좋아 다른 마족들이 죽는 틈에 달아난 이들만 이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립을 비롯한 인족 일행과 몇 안 되는 마존급 마인과 마수들은 수행을 이용해 꿋꿋이 거대 흡마의들을 뚫고 나아갔다.

    흡마의들은 찰거머리처럼 수사들을 따라붙었고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거나 지쳐서 속도가 느려진 이들을 둘러싸고 야무지게 뜯어먹었다.

    이렇게 흡마의 떼가 형성한 충조는 장장 반년이 넘게 지속되다 흩어졌다. 이에 초원과 인근에 있던 성 8개가 무너지고 마족들이 수억 명이나 죽어나갔다.

    이후 수많은 마족들은 그때를 떠올리며 몸을 떨었고, 흡마의의 악명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 * *

    1년 후, 새까만 거목들이 높이 치솟은 수풀 위를 푸른빛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끼룩 끼룩 끼룩!

    푸른빛 뒤로 비둘기처럼 생긴 새빨간 괴조 떼가 울부짖으며 쫓아왔다. 돌연 푸른빛이 멈추고 수십 개의 검빛으로 후방의 괴조 열댓 마리를 갈랐다.

    푸른빛이 다시 번뜩이며 날아가자 분노한 괴조들이 동료의 시체를 향해 끼룩 거리다 추격을 포기했다. 푸른빛은 한참을 더 날아가다 속도를 늦추었다.

    “여기서 이렇게 거대한 풍염정(風炎晶)을 발견할 줄은 몰랐는데!”

    푸른빛 속 청년이 커다란 새빨간 수정을 쥐고 미소를 지었다. 바로 한립이었다. 그는 1년 전 강력한 신통으로 흡마의 충조를 뚫고 만황으로 진입했고, 다른 수사들과 약속한 대로 홀로 환소사막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황은 평범한 마족들에게는 극히 위험한 지역으로 통했지만 수행이 높은 한립에게는 오히려 영계에서 구하기 어려운 진귀한 재료와 영약을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얼마 전, 깊은 골짜기 속에서 커다란 풍염정을 발견해 그것을 갖고 나오다 인근에 서식하는 마조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이제 마조들을 따돌렸으니 안심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다. 하루 정도 더 날아가자 그는 수풀 너머에서 망망대해와 마주쳤다.

    ‘바다?’

    그는 슬쩍 미간을 좁혔다가 표정을 풀었다.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일 테니 심해의 해수(海獸)들보다는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속도를 높여 단숨에 검은 수풀을 빠져나가 바다 위로 진입했다.

    쉬쉬쉬쉭!

    그때 아래에서 파공음이 들리고 남색 빛들이 솟아올라 고공의 한립을 노렸다. 이에 그는 곧바로 회색 기운을 날려 수많은 잿빛 실을 응결해 남색 빛들을 꿰뚫었다.

    그러자 손가락 크기의 작은 남색 괴어(怪魚)들이 우수수 추락했다. 비늘이 없고 커다란 머리통이 칼날처럼 뾰족한 괴어들이었다. 일격에 수백 마리 괴어들을 죽였지만 바다 속에서 더 많은 남색 빛들이 솟아올랐다.

    이에 그는 소매 속에서 더 많은 회색 기운을 내뿜어 괴어들을 꿰뚫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만 마리의 괴어들이 죽어나갔고 그 모습에 괴어 떼도 기함했는지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해수면이 고요해지자 그는 속도를 높여 쏘아져 나갔다.

    시간이 흘러 마계의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바다 깊은 곳에서 강한 기운들이 서서히 떠올랐다. 한립 역시 고공에서 엄청난 체구를 지닌 초대형 해수들이 떠오른 것을 보았다.

    그는 어두워진 하늘과 초대형 해수들을 번갈아 보다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그의 신통에 두려워할 만한 해수들은 아니었지만 불필요한 말썽은 줄이는 것이 좋았다. 보름 넘게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이동하는 중이었기에 법력을 아끼는 것도 중요했다.

    한립은 의식으로 멀리까지 훑고 방향을 틀어 날아갔다. 일다경 후 바다 위에 검은 점이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가니 높다란 산봉우리가 몇 개 있고 주변에 흐릿한 물안개도 끼어 있는 작은 섬이었다.

    그는 의식으로 섬을 둘러보고는 푸른빛을 거두고 산중턱에 암석 동굴이 있는 산봉우리 하나에 내려섰다. 한립은 그 안을 들여다보다 푸른 비검을 날렸다.

    휘익!

    잠시 후 동굴 안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다 뚝 끊겼다. 그는 곧바로 좁은 통로를 따라 차분히 안으로 걸어 들어가 광활한 공간에 도착했다.

    비취색 마른 풀이 수북하게 쌓인 동굴 안에 갑옷을 입은 이상하게 생긴 마수가 두 동강이나 죽어 있었다. 한립은 불덩이를 날려 마수 시체와 동굴 안의 건초들을 깨끗이 제거하고 주변을 정리했다.

    그제야 그는 동굴 중간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저물탁에서 하얀빛을 불러냈다. 팔뚝 절반 크기의 반짝이는 벽돌 네 개가 일렬로 허공에 떠올랐다.

    1년 전 혈아성 성주 등에게 빼앗은 네 개의 성전이었다.

    그는 처음 꺼내 본 것이 아닌지 익숙하게 손바닥을 펼쳤다. 네 번의 천둥소리와 금빛 뇌전들이 튀어나와 성전 속으로 스며들었다.

    파앗!

    성전들이 동시에 빛을 반짝이고 커져 표면에 흑자색(黑紫色) 문양을 드러냈다. 한립은 두 눈에 남색빛을 일으키고 신중히 문양을 관찰했다.

    마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던 읍령 성조가 수련했던 공법들은 역시 대단했다. 하지만 범성진마공을 극성으로 수련한 그가 주 수련 공법을 바꿀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네 개의 성전에 적힌 비술들 중 두세 개를 익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립은 손을 뻗어 네 개의 벽돌들의 위치를 바꾸었다.

    우웅!

    중첩되어 배열된 네 개의 벽돌들이 화려한 빛을 뿜어 아름다운 빛기둥을 만들었다. 빛기둥은 암석 동굴 벽에 거대 지도를 비추고 있었다. 지형들이 분명하게 그려져 있고 중심에 뿔이 난 흑룡 표식이 있는 지도였다.

    그는 지도를 훑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소매를 저어 네 개의 벽돌을 치웠다. 자연히 벽에 비춰진 지도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

    1년 전 흡차의 떼를 벗어났을 때부터 그는 성전들을 연구해왔다. 이에 그는 며칠 만에 성전의 구체적인 이용 방법을 알아냈고 소위 읍령의 ‘비밀 창고 지도’라는 것을 찾게 되었다.

    혈아성에서 이런저런 지도를 구입했지만 대부분이 마계 전체를 대략적으로 표시한 것들이라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실마리를 찾으려면 앞으로 마족 성에 진입할 때마다 지도를 구해 비교해 봐야겠군.’

    그의 수행에 읍령의 비밀 창고를 반드시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일정을 지체하지 않은 한 의외의 수확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고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금색 비늘이 가득한 삼두육비 진마법상을 불러냈다. 법상은 여섯 개의 눈을 번쩍 뜨고 춤을 추듯 팔을 움직여 기이한 수결을 맺었다.

    이때 한립의 손바닥 위로 다채로운 빛깔의 진법 원반들이 날아올라 동굴 사방으로 종적을 감추었고 그를 중심으로 오색 진법이 펼쳐졌다.

    진법 안에는 주술 문자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고 현묘한 이치를 담고 있었다. 한립이 무표정한 얼굴로 열손가락을 튕기자 극품 영석들이 날아가 진법에 박혔다.

    우웅!

    진법은 강한 빛을 머금고 오색 보호막으로 변하더니 한립을 뒤덮고 주변의 마기를 배척해 정순한 영기만을 남겨 놓았다.

    한립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흡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수결을 맺었다. 그의 이마에 어느 순간 검은 제3의 눈이 괴이하게 나타났다.

    동굴을 울리는 주문 소리에 진마법상의 세 얼굴이 다양한 표정을 짓고 번뜩였다. 그리고 한립의 몸에서 신기하게도 콩알 크기의 은색 주술문자가 새어나와 보호막 안을 날아다녔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술문자의 크기는 주먹만 하게 커졌고 그의 몸은 옥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한립의 피부에 금색 비늘들이 나타나 주술문자로 변해 흡수되었고, 보호막 안의 은색 주술문자들도 가느다란 실뭉치로 변해 그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한립의 피부가 부들부들 떨리며 울퉁불퉁하게 들썩였다. 무언가가 몸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동시에 경맥을 타고 뜨거운 기운이 돌아다녀 몸이 미칠 듯이 가려웠다.

    피가 나도록 박박 몸을 긁고 싶어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그는 강력한 의식을 지녀 참을 수 있었지만 보통의 합체기 수사라면 체내의 진원을 통제하지 못하고 주화입마에 들 수도 있었다.

    무척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서너 시간이 지나자 점점 더 맑고 투명해진 몸 안에 평범한 사람의 골격보다 훨씬 크고 두꺼운 뼈가 드러났다.

    그의 골격은 은은하게 은빛을 머금고 있었고 표면에는 금색 반점이 보였다. 자세히 살피면 금색 반점들이 모여 신기하게도 금색 주술문자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금색 주술문자는 금전문으로 대승기 수사라도 눈독을 들일만한 공법이었다. 진선계에서 흘러든 이 공법은 그가 정식으로 익히기 시작한 백맥련보결(百脈煉寶決)이었다.

    대성하기만 하면 육체의 강도가 진령급 이상이 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수련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한립은 합체 후기가 되어서야 정식으로 수련을 시작했지만 대성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대승기에 이른 후에도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한립의 실제 나이와 상상을 초월하는 수명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