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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200화 (957/2,000)

1200화. 흡마의(吸魔蟻)

*

마족들은 금제 밖의 마수들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황야의 끝을 겁에 질린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었다.

“성 안의 마족들도 흡마의 충조가 일어난 것을 알고 있는 것인가?”

상황을 파악한 한립은 엄청난 속도로 마수들 위를 지나며 기운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혈아성 성벽을 넘었다. 대대적으로 발동한 금제들은 잠시 요동쳤지만 그를 막지는 못했다.

수많은 마족들이 그것을 보고 놀랐지만 급박한 상황이라 아무도 그를 막거나 정체를 묻지 않았다.

그렇게 단숨에 성 중심으로 날아든 한립은 금공 금제가 풀린 허공이 각종 둔광으로 혼잡한 것을 발견했다. 마족들이 끼리끼리 모여 무어라 수군거리는데 다들 안색이 좋지 못했다.

휙!

이때 허공에 파문이 일고 노란빛이 날아들었다. 한립이 얼른 그것을 낚아채 터트리자 농 가 노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내용을 확인하고 방향을 틀어 서둘러 어느 건물로 향했다. 영족 무리를 제외한 농 가 노조, 엽 수사, 임 가 산발 사내, 휘 장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돌아오셨습니까, 한 수사! 조금만 더 늦었으면 저희 먼저 포위를 뚫고 떠날 뻔했습니다.”

농 가 노조가 한립을 보고 반색했다.

“무슨 일입니까? 설마 흡마의 때문입니까? 우리의 비행 속도면 흡마의 떼에 따라잡히지 않고 충분히 이곳을 떠날 수 있을 텐데요.”

한립은 수사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혈아성 사방에 흡마의 떼가 출현한 것을 아직 모르시나 보군요! 주변 수만리가 충조로 뒤덮여 우리가 힘을 합쳐 돌파해도 고생깨나 해야 할 것입니다.”

농 가 노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혈아성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흡마의들이 발견하면 이곳은 충조의 중심이 될 테니까요.”

“그 점은 노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충들의 포위를 뚫고 달아나기 전에 알아둘 것은 우리가 흩어져 이동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교활한 흡마의들의 특성상 우리가 뭉쳐 이동하면 주요 목표가 되어 더욱 험난한 길이 될 게 뻔합니다.

마충들의 엄청난 수량으로 보아 곧장 만황까지 달아나야 충조를 벗어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다시 모이기 쉽지 않을 테니, 환소사막 인근에 있는 환야성(幻夜城)에서 모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농 가 노조가 빠르게 계획을 설명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누군가 일이 생겨 늦거나 못 오는 일이 생기면 어쩔 생각이십니까? 계속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인데요.”

임 가 산발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오늘부터 딱 2년을 기한으로 몇 명이 모이든 환야성을 출발할 예정입니다. 환야성에서 가장 큰 객잔에서 모이는 것으로 하면 착오가 없을 겁니다.”

농 가 노조가 거침없이 답했다.

“2년이면 웬만한 문제는 해결하고 환야성에 도착할 만한 시간입니다. 모이는 장소도 농 형의 말씀에 따르지요. 그런데 천추 성녀와 영족 수사들은 어찌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말에 농 가 노조와 다른 수사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한 형, 영족 수사들은 이틀 전에 먼저 떠났습니다. 여기 천추 성녀가 남긴 옥간이니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농 형이 방금 이것을 받아 모두 돌려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엽 수사가 차근히 설명하고 하얀 옥간을 꺼내주었다.

“알겠습니다.”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식을 옥간에 불어넣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먼저 떠나고 우리와는 환야성에서 다시 모이기를 원한다는 내용이군요.”

“영족 수사들이 급히 떠난 것을 보면 중요한 일이기는 한가 봅니다. 허나 그들의 실력이 우리 못지않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니 우리도 어서 성을 떠나지요. 마족들 중에도 적잖은 이들이 벌써 혈아성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농 가 노조가 의미심장하게 먼 곳을 쳐다보았다. 그들이 상의하는 동안에도 수천 명의 고계 마족들이 열댓 명씩 무리를 지어 조심스럽게 혈아성을 떠나고 있었다.

이렇게 되니 성 안에서 충조를 버티려던 마족들은 크게 당황했고 수많은 저계 마족들도 겁에 질려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중이었다.

“잘된 일입니다. 다른 마족들 틈에 섞여 떠나면 훨씬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이렇게 큰일이 벌어졌는데 어찌 혈아성 성주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그가 전면에서 병사들을 지휘하기만 했어도 이렇게 상황이 혼란스러워지지는 않았을 텐데요.”

산발 사내가 의문을 제기하고 농 가 노조도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한립은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수만 마족들을 따라 재빨리 혈아성을 빠져나왔다.

마족들은 성을 떠나 열댓 무리로 갈라져 몰려갔다. 다들 흡마의 충조에 홀로 휩쓸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마족들은 수행의 차이로 무리가 갈라졌고 가장 뒤쪽 무리는 결국 따라잡지 못하고 떨어져나갔다. 앞서 날던 고계 마족도 무리를 이루어 질풍처럼 날아갔고 중간의 마족들도 어쩔 수 없이 따로 떨어져 나왔다.

한립 일행은 고계 마족들을 따라가지 않고 두 번째 무리에 몸을 숨기고 나아가고 있었다.

* * *

일다경 후, 보라색 구름들이 나타났다. 흡마의 떼가 이룬 보라색 구름이 검은 뇌화를 뿜으며 고계 마족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백여 명의 고계 마족들이 최선을 다해 마공을 펼쳐 흡마의들을 재로 만들었고 눈에 보이는 보라색 떼를 거의 절반으로 줄였다. 그것을 본 후방의 마족들이 크게 기뻐하며 마기를 발동하고 전투에 합류했다.

이렇게 순식간에 보라색 구름을 소탕한 마족들은 기쁨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흡마의 충조가 소문과 달리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약삭빠른 마족들은 오히려 어두워진 얼굴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서둘러 날아갔다.

그때 맑은 하늘 저편이 어둑해지고 거대한 보라색 천이 날아들었다. 수천 만 마리가 넘는 대규모 흡마의 떼가 하늘을 보라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소량의 흡마의들이 적들을 붙들어 놓은 사이 고공에 숨어있던 대량의 마충 떼가 주변을 포위한 것이다.

“매, 매복이다……!”

“어서 도망갑시다!”

마족들은 혼란에 빠져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우리도 기운을 숨길 것 없이 각자 돌파하도록 합시다.”

농 가 노조가 일행들을 향해 말하고 새하얀 통나무배를 불러내 먼저 하늘을 갈랐다. 휘 장로와 임 가 산발사내도 금색과 검은색 빛줄기로 변해 다른 방향으로 쏘아져나갔다.

“한 수사,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엽 수사가 떠나기 전 한립을 향해 빙긋 웃고는 거대한 오색 채봉(彩鳳) 허상을 만들어내 그 안으로 뛰어들어 사라졌다. 한립도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청백색 실로 변해 종적을 감추었다.

흡마의 떼가 바다를 이루기 전에 한립 일행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자리를 떴다. 그러나 뒤쪽으로는 마족들의 고함과 비명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하아…….’

한립은 쉬지 않고 엄청난 거리를 돌파하다 갑자기 둔광을 멈췄다. 보라색 구름들이 뭉게뭉게 나타나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흡마의들의 주의를 끌 줄은 몰랐는데.”

그는 등 뒤의 날개를 펄럭여 주먹 크기의 푸른 뇌전 구슬들을 잔뜩 만들어냈다. 뇌전 구슬들이 폭발해 그의 발밑에 은색 뇌전 진법을 만들어냈다.

콰릉!

천동소리와 함께 은색 뇌전이 반짝이고 한립이 사라졌다.

콰르릉!

천여 리 밖의 흡마의 떼에 똑같은 뇌전 진법이 나타나 은빛 뇌전으로 가까이 있던 마충들을 재로 만들었다. 그러나 마충들의 수가 너무 많아 뇌전 진법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불안하게 반짝거렸다.

뇌전 진법의 크기가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어들고 사라지기 직전, 한립이 청백색 빛을 번득이고 나타났다. 그는 냉랭히 주위를 둘러보고 72자루의 푸른 비검을 불러내 푸른 검빛으로 보호막을 쳤다.

웅!

뇌전이 마지막으로 진동하고 터져버리자 흡마의들이 빼곡하게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립을 둘러싼 푸른 보호막이 맑게 울었다. 그리고 검빛들이 한 송이씩 푸른 연꽃을 피워 수천 마리의 흡마의들을 핏물이 될 때까지 갈랐다.

그런데도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검빛 속의 영력이 일부 사라진 것을 감지해서였다. 흡마의들이 죽기 전에 사정없이 갉아댔기 때문이었다.

미미한 차이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법력소모가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한립은 서둘러 은색 화염을 뿜었고 화염이 커다란 은색 불새로 변해 날아올랐다. 그가 체내에서 오랜 세월 배양한 서령천화였다.

영성을 지닌 불새는 한립이 명을 내리기도 전에 맑게 울고 깃털을 털었다. 그리고 도처로 날아가 곤충 떼를 파고들었다.

쿠콰콰콰쾅!

곳곳에서 은빛이 폭발해 은색 화염으로 활활 타올랐다. 작열하는 열기에 갇힌 흡마의들은 화염이 조금만 묻어도 흔적도 없이 소실되었다.

하늘을 뒤덮은 보라색 마충의 바다에 크고 작은 구멍들이 뻥뻥 뚫리고 있었다.

‘이런.’

은색 화염들이 깃털의 모습으로 되돌아오자 한립의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서령천화의 위력이 공격하기 전보다 줄어 있었던 것이다. 화염으로 흡마의들을 손쉽게 죽이기는 했지만 개미 떼들이 악착같이 갉아대는 통에 피해를 입었다.

한립은 서령천화를 이런 일에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은색 불새를 회수했고 그 찰나의 틈을 노리고 흡마의들은 다시 빽빽하게 몰려들어 그를 덮쳤다.

파앗!

한립이 곧바로 두 팔을 펼쳐 회색 기운과 오색 한염을 분출했다. 회색 기운에 진입한 흡마의들은 가루가 되어 흩날렸고 오색 한염을 맞닥뜨린 흡마의들은 꽁꽁 얼어붙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는 더 이상 흡마의들을 상대하지 않고 청죽봉운검들을 조종해 눈부신 빛줄기로 날아올랐다. 푸른 빛줄기가 지나는 곳마다 수많은 마충들이 떨어져 내렸다.

한립은 일정한 속도를 유지했지만 이전보다 빠르게 법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다행히 동급 수사에 비해 법력이 방대한 편이라 충분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신형이 푸른 검빛과 함께 개미 떼들 속으로 사라져갔다.

* * *

도망친 다른 마족들도 흡마의 떼에 둘러싸였다. 그들은 각종 마기나 마공을 발동해 마충들을 살육했고 수많은 흡마의들이 죽어 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저계 마족 중에 법력이 고갈되어 보호막을 잃은 이들이 속출했고 참혹한 비명이 이어졌다. 반나절이 더 지나서는 흡마의 충조 속에서 버티는 자들은 대부분 원영기 이상의 수사들이었다.

마족과 마수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달아났기에 마충들도 수십 무리로 찢어져 사냥감을 쫓아 날아갔다.

* * *

혈아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

빽빽한 개미 떼 속을 다섯 사내와 한 여인이 묵묵히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 중 젊은 축에 속하는 마족 사내 둘은 불빛과 하얀 기운을 발산해 접근하는 마충들을 재로 만들거나 얼려버렸고, 고상하게 생긴 마족 부인은 새까만 거울을 띄워 천둥소리를 품은 푸른 빛덩이를 날려 마충들을 터트렸다.

그들은 혈아성에서 한립의 길을 막았던 해 씨 가문의 세 인물들이었다.

나머지 세 마족 사내들의 나이와 생김새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혈연관계인 듯했다. 그들은 마기를 발동하지 않고 수결을 맺어 새까만 기운으로 주변의 마충들을 소탕하고 있었다.

연허기 수행을 지닌 여섯 마족은 힘을 합쳐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수백 리를 나아갔다. 흡마의 수가 점점 줄어들어 조금만 더 가면 마충 떼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섯 마족들이 기뻐하고 있을 때 이변이 벌어졌다.

한쪽의 흡마의들이 길을 터주자 그 사이로 웬만한 사람보다 커다란 백여 마리의 거대 흡마의들이 나타난 것이다. 진녹색 몸에 수정 날개까지 달린 거대 흡마의들은 송곳니가 길게 튀어나와 그 모습이 험악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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