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4화. 마족 경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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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수정 구슬을 쥐고 한립이 의식을 분출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안색이 확 달라진 그가 들고 있던 수정 구슬을 던져버렸다.
콰르릉!
날아가던 수정 구슬에서 강력한 기운과 회백색 빛기둥이 뻗어 나갔다. 사발 굵기의 빛기둥은 밀실 천장 가장 바깥의 금제와 충돌했다.
푸푸푹!
몇 겹의 금제를 종잇장처럼 뚫고 나가던 빛기둥은 마지막 금제에서 몸을 떨고 멈춰 섰다. 그 순간 한립이 몸을 날려 손을 펼쳤고 금색 거대 손이 나타나 빛기둥을 막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강렬한 금빛을 내뿜은 거대 손이 회백색 빛기둥에 미세하게 밀려났기 때문이다. 놀란 한립은 팔에서 내뿜는 금빛을 배로 늘렸다.
부북!
소매가 뜯어지고 금빛 비늘로 뒤덮인 근육질의 팔뚝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금색 거대 손이 손가락을 오므려 회백색 빛기둥을 압축해 빛구슬로 만들었다.
한립은 주문을 외고 열손가락으로 법결을 날렸다. 금색 거대 손이 모호하게 주술문자로 변해 회백색 빛구슬을 감쌌다. 언제라도 터질 것처럼 불안정해 보이던 빛구슬이 고요하게 안정을 되찾았다.
한립은 표정을 풀고 지면으로 내려와 손을 들어 올렸고 빛구슬이 서서히 하강해 그의 손에 들어왔다. 빛구슬이 함유한 위력이 강해서 범성진마공을 발동하지 않고는 막지 못 할 뻔했다.
한립은 빛구슬을 말없이 주시했다.
그가 마족에게서 강제로 이마금을 거래한 이유는 그 안에 숨겨진 무언가에 묘한 느낌을 받아서였다. 합체기 수행에 이른 그의 촉은 아주 예리했고 자주는 아니었지만 유용한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의식으로 살펴보려는 것이었는데 빛구슬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민하던 한립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대연결과 연신술을 동시에 운용해 의식의 힘을 증폭시켰다.
두 눈이 남색으로 일렁이고 투명한 수정실이 미간에서 뻗어나가 회백색 빛구슬로 쏘아져 들어갔다. 의식을 실체화해 백여 개의 가느다란 실로 바꾼 것이다.
한립의 의식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경지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었다.
웅웅.
수정실이 들어간 순간 빛구슬이 불안정하게 바르르 몸을 떨었다. 그 모습에 한립은 법결을 발동해 빛구슬을 감싸고 금색 주술문자로 금색 그물을 만들었다. 요동치려던 빛구슬이 강한 빛을 발산하는 금빛 그물에 감싸여 다시 조용해졌다.
그제야 한립은 마음을 놓고 빛구슬 내부를 상세히 관찰했다.
잠시 후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는 탄성을 내뱉고 기뻐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점점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 손으로 수결을 맺은 그가 수정실을 불러들이고 눈을 떴다.
“세상에 마기와 영기를 완전히 융합할 수 있는 물건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범성진마공에 딱 맞는 물건이 아닌가! 그렇다면 따로 연화할 것도 없이 법력으로 전환할 수 있을 테고. 하지만 경전에서 관련 기록을 본 적이 없단 말이지…….”
한립은 중얼거리며 잠시 주저했지만 그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단 시도라도 해볼까?”
그는 수결을 맺고 빛구슬을 향해 주문을 외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금색 문자에 휩싸인 빛구슬 표면이 올록볼록하게 변하다 일부가 떨어져 나왔다.
그는 주문을 멈추고 신속하게 손을 뻗어 그것을 쥐고 범성진마공을 운용했다. 금색 허상이 등 뒤로 나타나 또렷하게 변했고 동시에 회백색 빛구슬은 눈에 보이는 속도로 줄어들어 나중에는 사라지고 말았다.
“과연 예상대로 진원이 늘어났군. 이걸 전부 흡수하면 상당한 양을 늘릴 수 있겠어.”
한립은 기뻐하며 얼굴이 밝아졌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뭘까? 불순물이 전혀 없었는데 흡수하고 나니까 이런 게 생기다니…….”
그는 혼잣말을 하다 검지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손끝에서 보일 듯 말 듯 녹색 기운 한 줄기가 피어올랐다. 손가락 몇 마디 정도 되는 크기의 아주 미세한 기운이었다.
한립은 가만히 그것을 살펴보다 손끝에서 은색 화염을 불러내 녹색 기운을 둘러쌌다. 은색 화염의 맹렬한 기세에도 녹색 기운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눈썹을 끌어올린 그가 은색 화염을 거두고 손끝을 튕겼다. 녹색 기운이 녹색빛이 되어 튕겨나가 밀실 벽의 빛의 장막을 뚫었다. 제아무리 견고한 물건이라도 다 부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립은 움찔했다. 그는 그저 녹색 기운을 몸 밖으로 떼어내려 약간의 법력을 이용한 것인데 이런 위력을 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쉭!
돌연 파동이 일고 녹색 빛이 나타나 그를 향해 쇄도했다. 한립은 흠칫 놀랐지만 재빨리 손바닥에 금빛을 일으켜 녹색 빛을 잡아채려 했다.
‘이런…….’
잠시 후 그의 손은 텅 비어 있었다. 녹색 빛은 그의 몸을 투과해 거침없이 손바닥 안으로 스며들었다. 얼른 의식으로 체내를 살핀 그는 녹색 기운이 얌전히 단전에 머무는 것을 확인했다.
한립은 방대한 진원으로 녹색 기운을 감싸 또다시 몸 밖으로 밀어내 보았다. 이번에는 녹색 기운이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만 나아갔다 되돌아왔다. 그것을 감싼 진원의 힘도 녹색 기운을 전혀 막지 못했다!
그는 가슴이 서늘해져 전신에서 금빛을 방출해 단단한 금색 보호막을 응결하고 명청령안을 발동해 녹색 빛을 관찰했다.
그러나 녹색 빛은 금색 보호막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번뜩 날아들어 그의 단전 속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도 여러 가지 방법과 신통을 사용해 보았지만 녹색 기운을 떨어트려 놓을 수가 없었다. 없애거나 연화시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녹색 기운은 그의 몸을 거처로 정한 것처럼 아무리 몸 밖으로 밀어내 다양한 방법으로 봉인해도 순식간에 허공을 뚫고 사라졌다가 몸 안으로 돌아왔다. 마치 거머리 같았다.
자언정을 사용해도 녹색 기운을 가둘 수 없자 한립은 정말 곤혹스러워졌다. 녹색 기운이 몸에 위해를 끼치지는 않아도 이렇게 이상한 것을 몸에 품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피하고 이동해도 매번 정확히 돌아오는 것을 보면 혼백의 위치를 인식하는 것일지도. 그렇다면 이 방법을 써봐야겠어!’
한립은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줄줄 주문을 읊었다. 등 뒤에 떠있던 삼두육비법상이 금빛을 발하고 실체화되어 허공에 떠올랐다.
그가 한 손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치자 검은빛이 튀어나와 실체화된 금신 속으로 들어갔다. 검은빛 속 새까만 원영은 한립의 제2마영이었다.
이때 한립은 체내의 진원을 움직여 녹색빛을 금신 속으로 쏘아 보냈다. 녹색빛은 제2마영의 단전으로 들어가 움직임이 없었다. 이번에는 녹색 기운이 한립의 몸 안으로 되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본 한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금신을 향해 법결을 날렸다. 금신 속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마영의 몸에서 마기가 흘러나와 검은 부적으로 변한 다음 녹색 기운을 감싸 검은 구슬로 봉인시켰다.
그 후 금신이 흩어지고 제2마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표정한 얼굴로 합장한 마영의 두 손 사이에 검은 구슬이 떠있었다.
마영을 몸속으로 회수한 한립은 별 이상이 없는 것을 보고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녹색 기운을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어도 제2마영이 관리하게 하면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저 녹색 기운을 제거하거나 연화할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제2마영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한립의 시선이 금색 문자에 감싸여 있는 빛덩이로 향했다.
일부를 흡수했을 뿐인데 진원이 7, 8년 고된 수련을 한 것처럼 증가했으니 빛덩이 전부를 흡수하면 백여 년 수련한 것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소매 속에서 목이 길고 금빛으로 빛나는 병을 불러냈다. 병 안에서 오색 기운이 흘러나와 회백색 빛덩이를 감싸고 돌아 들어갔다.
병을 소매 속에 넣어두고 한립은 다짐했다. 앞으로 마계를 돌아다니며 될 수 있는 대로 오늘 구한 수정 구슬을 더 모아볼 작정이었다.
충분한 수량을 모으고 녹색 기운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면 더 빨리 합체 후기를 대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한 번 기연을 얻게 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 한립은 반으로 쪼개진 수정돌을 저물탁 안에 넣어두었다. 회백색 빛덩이의 출처를 알아낼 유일한 단서였다.
회백색 빛덩이는 진원의 힘으로 환원할 수 있는 기이한 효과가 있었지만 한립처럼 범성진마공과 같은 특수 공법을 익힌 수사 외에는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었다.
영기와 마기라는 두 가지 천지의 힘을 동시에 활용하는 공법이 극소수였고, 거기다 영목신통을 지녀 수정구슬 안의 이물질을 감지할 자는 더더욱 드물었다.
한립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눈을 감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내일부터 며칠간 혈아성의 모든 점포를 샅샅이 돌아볼 예정이었다. 다른 쓸 만한 재료를 찾을 수도 있었고 다른 이마금 중에 오늘 구한 수정구슬처럼 특수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이튿날 아침, 한립은 거리로 나가 천천히 점포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혈아성은 인족의 거대성과 비교할 수도 없이 작은 규모였지만 그래도 점포의 수가 수천에 달했다.
그는 장장 이틀에 걸쳐 절반 정도를 둘러보고 적잖은 수확을 얻기는 했지만 그가 찾던 이마금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진원의 힘을 증가해 주는 물건을 찾는 것은 원래 큰 운이 따라줘야 했다. 만일 혈아성에서 그런 물건을 계속해서 찾아냈다면 오히려 마음이 불안했을 것이다.
점포를 돌아다니는 동안 혈아성에서 열리는 경매회에 대해서도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혈아성에서 반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경매회에는 성에 거주하거나 이곳을 지나는 고계 마족들이 꽤 많이 모여들어 진귀한 물품이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특히 초원에서 사냥하던 이들은 자신에게 불필요한 마수 재료를 마기(魔器)나 단약으로 교환할 기회였다.
거기다 이번에는 마조의 영향으로 성 안으로 몰려든 고계 마족의 수가 전년에 비해 대폭 늘어 경매회 물품의 수량이 부쩍 늘 거라는 전망이었다.
한립도 경매회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지니고 있는 여러 마기들을 내놓아 마석으로 교환할 요량이었다.
마석은 수련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도 마계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려면 꼭 필요한 거래 방법이었다. 그가 성 안의 점포들을 대부분 돌아보았을 때 경매회가 개최되었고, 장소는 혈아성 구석의 거대 전당이었다.
한립은 용모를 가려주는 삿갓을 쓰고 기운을 변화시킨 다음 전당 입구 병사들에게 마석 몇 개를 쥐어 주고 경매회장으로 들어갔다.
삿갓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계단식 원형 경매회장은 꽤 컸고, 원형 경매회장 중간에는 이름 모를 괴수가 새겨진 사각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넓은 원형 공간을 고계 마족들 3, 4천 명이 차지하고 앉아 있었는데 적잖은 이들이 한립처럼 삿갓이나 마기를 이용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있었다.
일각이 지나 빈자리가 거의 다 채워질 무렵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전당 아래쪽의 작은 문이 열리고 누군가 무대로 걸어 올라가자 웅성거리던 장내가 고요해졌다.
새까만 얼굴에 이마에 주름이 가득한 노년의 마인(魔人)이었다.
무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 노인이 내뿜는 강대한 기운에 수행이 미천한 마족들은 순간 안색이 달라졌다.
노인은 연허 후기를 대성한 수사로 합체기 수사가 되기까지 한 걸음만을 남겨두고 있는 실력자였다.
“저는 혈아성 장로인 월련천입니다! 제가 이번 경매를 진행하게 되었으니 제 체면을 보아서라도 규칙을 준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경매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고 소란을 피우는 분에게는 합당한 제재가 가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여덟 수사들은 경매회의 질서를 유지해줄 집법 병사들입니다.”
노인이 가볍게 손뼉을 두 번 치자 경매회장 가장 앞줄에 앉은 여덟 명의 연허 초중기의 마인들이 곳곳에서 무표정하게 일어났다.
“혈수경운(血手惊雲)!”
“철파혼(鐵破魂)!”
여덟 마족의 얼굴을 본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혈아성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진 인물들 같았다.
그러나 한립은 신경 쓰지 않고 시선을 돌려 농 가 노조 등 일행들이 경매회에 참석하지는 않았는지 살폈다.
마존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의식을 사용하지 않고 의심스런 복색을 한 이들을 주로 살폈다. 허나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듯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일행들과 흩어져서는 성 안에서 그 누구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마치 각자 다른 목적이 있어 어딘가에 숨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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