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193화 (950/2,000)
  • 1193화. 이마금(異魔金)

    *

    “농 형, 저도 가보겠습니다.”

    한립이 농 가 노조를 향해 포권을 했다.

    “잘 다녀오시지요.”

    농 가 노조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한립의 모습이 골목을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임 수사께서는 제가 제안한 일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이제 대답을 주시지요.”

    “중요한 사안이라 아무래도 며칠 더 고민을 해봐야 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임 가의 산발 수사가 머뭇거렸다.

    “신중을 기하실만합니다. 괜찮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시지요. 갈 길이 먼데 며칠을 더 못 기다리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농 형.”

    임 가 산발수사도 농 가 노조와 몇 마디 더 나누고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저 자가 하는 꼴을 보면 제안을 거절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지 말고 목표를 바꾸어 엽 가 수사를 떠보는 것이 어떨까요? 원래 계획대로면 사실 엽 수사가 더 적합하지 않습니까.”

    농 가 노조 옆에 있던 흑포 사내가 냉랭히 물었다.

    “엽 가는 안 됩니다! 우리 농 가를 너무 경계해서 절대 수락할 리도 없고 괜히 정보만 새어나갈 것이에요.”

    “하지만 임 수사도 슬슬 눈치만 보지 않습니까.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진심으로 협조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허허, 일단 하겠다고 하면 노부가 불성실하게 둘 것 같습니까? 이곳에서 나눌 말이 아니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시지요.”

    농 가 노조의 얼굴에 수상한 웃음이 스쳤다.

    “다들 재료 상점을 찾을 것이니 그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저희는 다른 방향으로 가시지요.”

    “노부도 같은 생각입니다.”

    농 가 노조는 흑포 사내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 * *

    천추 성녀가 있는 영족 무리는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수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봉인이 조금 풀어진 듯하니 마땅한 곳을 찾아 다시 술법을 펼쳐야 하겠습니다.”

    천추 성녀가 심각한 얼굴로 전음을 보냈다.

    “그럴 리가요? 지난번 금제를 펼친 지 얼마나 지났다고요.”

    하얀 빛 속 백척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마계라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백 장로께서도 지수의 근원이 마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대량의 마기에 자극을 받아 봉인이 허술해진 것 같습니다.”

    “이번 원행의 필살기인데 지수에게 문제가 생기게 둘 수는 없지요. 바로 머물 곳을 찾아 우리가 호법을 서는 동안 봉인을 안정시키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백척의 말에 천추 성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족 무리는 골목에서 길을 틀어 객잔으로 보이는 커다란 건물로 향했다.

    * * *

    적홍색 마족 상점 안에서 엽 수사가 창백한 피부의 마족 장궤에게서 비취색 광석을 건네받고 있었다. 여인은 마족이 무어라 떠들던 신경 쓰지 않고 의식으로 광석을 훑고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 * *

    한립은 양 옆에 노점이 가득한 협소한 골목을 따라 걷는 중이었다.

    노점 마다 다양한 외모의 마족이 앉아 있었는데 그 중 한 곳이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꽤 강한 기운의 마족들이 노점 주인과 누군가의 말다툼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익숙한 광경에 한립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인계 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경험상 노점은 보통 저계 재료와 법기들을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간혹 아주 진귀한 물건이 섞여 있기도 했다.

    특히 마조 때문에 많은 마족들이 부득이하게 성 안으로 유입된 시점에는 소장하고 있던 진귀한 물건을 높은 가격으로 직접 거래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한립은 천천히 길을 걸으며 의식으로 양쪽의 노점에 놓인 물건을 빠르게 살폈다. 재료와 물건은 영계의 것과 비슷했는데 대량의 영기 대신 정순한 마기를 품고 있다는 것만 달랐다.

    영기를 함유한 재료들도 물론 있었지만 수량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한립은 익숙한 재료와 물건은 넘어가고 신기하고 특이한 난생 처음 보는 상품들 위주로 관심을 기울였다. 마계 특유의 재료들이었다.

    거리는 그다지 길지 않아 노점의 수도 2, 3백 개 정도였다.

    한식경이 지나기 전에 그 중 절반을 훑었지만 그의 시선을 끄는 것은 몇 되지 않았다. 그 중 몇 개는 직접 다가가 만지작거리다 그냥 내려놓았다.

    노점을 운영하는 마족들은 겉보기에는 험상궂기 이를 데 없었는데 한립의 연허기 수행을 알아차리고는 만지작거리든 말든 살갑게 미소 지었다.

    ‘이게 전부란 말인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몇몇 영계에 없는 재료들을 찾았지만 지금 그의 수행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거리를 떠나 대형 상점으로 가야하나 고민하는데 앞쪽 점포 어딘가에서 꽤 강력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당장 내놓지 않고 뭘 하는 겁니까! 전에 말했던 마석을 가져왔으니까 어서 물건을 꺼내 놓으세요!”

    “시끄럽게 소란 떨지 마십쇼. 말했다시피 물건의 가격이 뛰었습니다. 거래를 하고 싶으면 최상급 마기 아니면 최상급 마석 열 개를 내놓으세요.”

    “아니 어제 계약금을 주고 오늘 겨우 원하는 수량을 맞춰왔더니 가격이 뛰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금 나를 갖고 노는 게 아니면 뭡니까?”

    “헤헤, 내 물건을 내가 받고 싶은 가격에 팔겠다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자, 어제 주고 간 계약금입니다. 받고 어서 비키세요! 극품마석이나 최상급 마기가 없으면 꿈 깨라 이 말입니다.”

    음산한 목소리의 사내는 굉장히 야박했다.

    “제기랄! 듣고있자니 나를 뭘로 보고! 물건을 내게 팔지 않으면 당신의 뼈를 마디마디 부숴놓고야 말겠습니다!”

    상대편 사내도 성격이 보통이 아닌지 열을 받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뼈마디를 분질러? 허허, 그런 헛소리를 내 앞에서 지껄이는 자는 또 오랜만입니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세요.”

    음산한 목소리가 지지 않고 조소했다. 그때 또 다른 강력한 기운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소동이 일자 주변 마족들 중 담이 큰 자들이 모여들어 사태를 관망했다.

    “호오, 남돈족(藍豚族) 해비와 오제족(烏蹄族) 우력 아닙니까! 어쩌다 저들이 맞붙었는지.”

    “하하하,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아닙니까. 둘 다 수행이 제법 높은데 진짜로 붙으면 누가 이길지 모르겠어요.”

    도처에서 낮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마족은 혈아성에서 꽤 명성이 있는지 알아보는 자들이 많았다.

    한립은 남색빛을 일렁였다. 열댓 명의 마족들이 둥그렇게 서서 구경하고 있었고 그 중간에 머리에 뿔이 난 거구의 마족과 노점 주인이 대치 중이었다.

    노점 주인은 옅은 녹색 피부에 부은 눈꺼풀을 지닌 작고 뚱뚱한 마족이었다.

    각각 화신 초기와 중기의 수행을 지닌 그들은 거구 마족이 수행은 부족하지만 체격 조건으로 보아 연체술이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다.

    ‘저건!’

    한립은 시선을 돌리다 돌연 작고 뚱뚱한 노점 주인이 쥐고 있는 물건을 들고 군중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두 마족은 구경꾼들 사이에서 말다툼만 할 뿐 진짜 대결은 하지 않고 있었다.

    “허허, 두 분 다 괜히 다투지 마십시오. 겨우 이마금(異魔金) 때문에 생사를 걸고 싸울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두 마족과 모두 친분이 있는 구경꾼이 그들을 말렸다.

    “아, 담 형 나오셨습니까. 제가 고의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이마금이 함유한 마기가 특수해서 말입니다! 비슷한 재료와 같은 가격을 받으면 손해가 아니겠습니까. 상점에 이마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 자가 제 것을 거래하겠다고 고집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뚱뚱한 노점 주인이 말을 건 수사를 향해 포권을 하며 말했다.

    “헛소리! 나도 그 이마금이 다른 것들보다 상태가 좋으니까 선금까지 치르면서 거래를 약속해 놓은 것 아닙니까! 내 사정이 급한 것을 알고 약삭빠르게 가격을 올리다니 남돈족 인물답습니다.”

    거구 마족이 화가 치밀어 쏘아붙였다.

    “감히 남돈족을 모욕해? 아무래도 말로는 안 되겠으니 네 놈의 팔 한쪽은 두고 가야겠다!”

    그 말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뚱뚱한 마족이 눈을 부라렸다. 그의 소매 속에서 서늘한 빛이 튀어나갔는데 그 속도가 전광석화 같았다!

    거구 마족도 진작 대비하고 있었는지 백골(白骨) 방패를 불러냈다. 서늘한 빛이 백골 방패를 가르려는 찰나 누군가 모호하게 나타나 금색 손으로 서늘한 빛을 잡아챘다.

    “이곳에서 싸움을 벌여 성의 병사들의 주의를 끌려 그러는가. 나도 관심이 가서 그러는데 이마금을 살펴볼 수 있을지 모르겠군?”

    연허급의 기운을 내뿜는 한립이었다.

    “서, 선배님 그 말씀은…….”

    “나와 이마금을 놓고 경쟁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거구 마족이 놀라 달갑지 않은 목소리로 무어라 말하려는데 한립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쿠쿵!

    엄청난 영기의 압력이 오제족 거구 마족을 내리눌렀다. 그러자 거구 마족은 얼굴이 자홍빛이 된 채 연달아 ‘아닙니다!’를 외치고 몸을 돌려 바람처럼 달려갔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마족들도 한립의 칼날 같은 눈빛을 받고는 소리 없이 흩어졌다.

    “선배님께서 필요하시다면 원래 가격대로 마석 10개만 주십시오.”

    뚱뚱한 마족은 한립의 등장에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억지웃음을 지으며 물건을 바쳤다.

    “흥, 뭐가 두려워 그러느냐. 설마 내가 네가 만족할 만한 값도 치르지 못할까봐?”

    한립은 코웃음을 치며 검은색과 하얀색이 섞인 금속을 끌어와 살폈다.

    “그럴 리가요! 제가 어찌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하겠습니까?”

    뚱뚱한 마족은 내심 제값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았다. 일다경 후, 한립은 광석을 거두고 작은 검은색 검을 꺼내 던져주었다.

    “최상급 마기인 이 비검이면 이마금을 교환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서 얻은 것이지?”

    놀라운 마기를 발산하는 비검은 한립이 영계에서 마존들을 격살하고 얻은 전리품 중 하나였다. 그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었기에 흔쾌히 광석 거래에 내놓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 이마금은 저도 얼마 전 동족에게서 교환한 것인데 여러 수사의 손을 거쳐 어디서 난 것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뚱뚱한 마족은 비검을 훑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렇다면 되었다.”

    한립이 슬쩍 미간을 좁히고 바로 걸음을 돌렸다. 이에 뚱뚱한 마족은 공손히 배웅하는 자세를 취했다. 뜻밖의 수확에 한립은 거리를 떠나려던 생각을 접고 두 시진이나 더 그곳을 돌아다녔다.

    남은 점포에서 그는 영계에 없는 두 종류의 영약을 찾아 합체기 수사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단약을 제련할 수 있었다.

    공법을 수련할 때 이런 단약을 복용하면 깨달음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져 장기적으로 퍽 도움이 되었다.

    단약을 제련하기 위한 약방은 진작 손에 넣었는데 그 중 두 재료가 영계에서 오래 전 멸종된 영약이라 지금까지 제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 대형 상점들로 향했다.

    아쉽게도 상점들은 일정한 고계 마족들을 겨냥해 비슷비슷한 물건들만 취급해서 그의 눈에 들 만한 물건은 없었다.

    하늘이 점점 어둑해지고 상점이 하나둘 문을 닫아 거리의 행인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는 적당히 머물 곳을 찾아 겹겹이 금제를 펼치고는 낮에 구한 이마금을 꺼내 들었다.

    광택이 있는 광속의 표면은 울퉁불퉁했고 신기하게도 진한 마기와 함께 약간의 정순한 영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영기와 마기를 동시에 함유하고 있는 보기 드문 재료였다. 하지만 그가 이것을 구입한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돌연 광석을 던지고 손끝으로 허공을 갈랐다.

    서걱!

    푸른빛이 번득 날아가 흑백이 교차하는 광석을 반으로 쪼갰고 그 안에서 콩알 크기의 물체가 떨어졌다. 무형의 힘이 날아들어 그것을 한립의 손바닥으로 끌어왔다.

    “정말 안에 다른 물건을 숨기고 있었구나! 과연 영목 신통이 틀리지 않았어. 내게 쓸모가 있을지는 자세히 살펴봐야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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