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1화. 접미수(蝶尾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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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이 주저하고 있을 때 포위를 당한 마족 거한이 동료를 향해 소리쳤다.
“오 수사, 구수향(驅獸香)의 효과가 끝나갑니다! 당장 떠나지 않으면 끝이에요. 원기를 상하더라도 강력한 신통으로 이것들을 막고 있을 테니 수사는 어서 술법을 펼치세요.”
마족 거한이 기합을 넣고는 기운을 끌어올려 몽둥이의 크기를 배로 불렸다. 그러자 노인에게 달려들던 은색 마수들도 그가 막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알겠습니다! 조심하시지요, 철 수사.”
마족 노인은 얼른 답하고 검은 수정돌을 불러내 주문을 외웠다. 기이하게도 빙글빙글 도는 수정돌에서 검은빛의 실들이 분출되어 허공에 새까만 진법을 만들어냈다.
검은 진법은 웅! 울고 발동했다.
“됐습니다! 어서 갑시다!”
마족 노인이 급히 외치며 몸을 날렸고 마족 거한도 몽둥이를 휘둘러 근처의 은색 마수들을 몰아내고 검은 진법으로 날아들었다. 그들은 진법을 이용해 마수들의 포위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이 그들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진법 위에 파동이 일고 또 다른 은색 마수가 나타나 입에서 은색 빛기둥을 뿜은 것이다.
쾅!
빛기둥이 진법 중앙을 관통했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검은 진법은 폭발해 그 여파가 사방으로 밀려들었다.
“저런!”
그것을 본 두 마족은 심장이 철렁해 허공에서 얼어붙었다.
은색 마수들은 주저 없이 두 마족을 다시 포위했고 동시에 주변을 맴돌던 푸른 연기가 변한 거대 고리도 쨍! 하고 흩어져 사라졌다.
대량의 마수들에게 둘러싸인 두 마족은 필사의 각오로 싸웠다. 죽기 일보 직전이니 법력이고 원기고 아낄 때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한립은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전신에 금빛을 일으켰다. 그의 피부에 새까만 비늘이 빼곡하게 나타났고 강대한 마기가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다.
그 모습에 그의 앞을 막고 있던 청록색 마수가 본능적으로 낑낑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를 흉흉하게 노려보던 눈빛도 많이 순해져 있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저희는 혈아성(血鴉城) 호법들입니다! 살려만 주시면 반드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선배님!”
“저는 유아족(幽鴉族) 장로 독자라 합니다. 저희를 도와주시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위마주를 격발해 마기를 드러낸 한립에게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소리쳤다. 한립이 피식 미소를 짓고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신형이 흐릿해진 그는 앞을 막고 있던 청록색 마수 위에 나타났다. 흠칫 물러났던 청록색 마수는 길게 울부짖으며 등의 털을 뻣뻣하게 세워 녹색 빛들을 날려 보냈다.
“가소롭구나.”
한립이 가볍게 두 주먹을 쥐자 등 뒤로 검은 기운이 무수히 많은 주먹 허상으로 뭉쳐 떨어져 내렸다.
녹색 빛이 아무리 많아도 어찌 범성진마공의 신통이 담긴 일격을 막을 수 있겠는가. 주먹 허상의 무서운 위력에 녹색 빛들은 전부 터져버렸고 주변의 백여 마리 마수들이 검은 주먹 허상에 피범벅이 되었다.
한립은 마족 거한과 노인 위로 이동하고는 팔짱을 끼고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여러 보물들을 이용해 겨우 주변 마수들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보통 마수들은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청록색 마수들과 은색 마수들의 공격에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뻔했다.
“구해주면 너희도 나를 도와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살려만 주시면 저희의 목숨은 선배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족 거한과 노인이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 그 사이 은색 마수가 마공의 방어를 파고들어 거한의 어깨에 기다란 발톱 자국을 남겨 놓았다. 어찌나 깊이 파였는지 하얗게 뼈가 드러나 있었다.
그들의 대답에 한립은 미소를 짓고는 등 뒤로 콰릉! 하고 청백색 수정 날개를 드러냈다. 날개가 펄럭이고 청백색 뇌전 구슬들이 빼곡하게 허공에 떠올랐다.
한립이 수결을 맺은 채 뇌전 구슬들과 같이 종적을 감추자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콰르릉 콰쾅!
무수히 많은 뇌전들이 거대한 그물을 만들어 떨어져 내렸고, 뇌전 그물은 뇌전으로 마수들을 터트리고 다른 곳으로 쏘아져 나갔다.
별안간 그 일대가 뇌전 바다가 된 듯했다.
믿기지 않게도 마족 노인과 거한은 그 한 가운데에서 멀쩡했다. 어떤 뇌전도 둘을 상하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뇌전 보호막을 이루어 보호했다.
강력한 뇌전 공격에 대부분의 마수들은 재가 되었고 고계 마수들도 1, 2할밖에는 남지 않았다.
이에 남은 마수들은 더 이상 용기를 내지 못하고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선배님, 저 은경수(銀頸獸)들을 죽여야 합니다! 고계 마수들을 깡그리 없애야 마조(魔潮)가 와해될 것이고 백여 년 동안은 요왕이 탄생할 수 없을 테니까요.”
기뻐하던 마족 거한이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 공경스런 눈빛으로 소리쳤다.
‘은경수?’
그 말에 한립은 의식으로 은색 마수들을 찾아냈다. 마족 거한이 말한 것은 수행이 가장 높은 고계 마수였다.
은색 마수들은 연허 초기의 수행을 지니고 있어 전부 죽이려면 그가 다시 나서야 했다. 한립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한 손을 들어 올렸다.
파앗!
그러자 그의 등 뒤로 삼두육비의 금색 법상이 나타났다. 법상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몇 배로 커져 여섯 개의 눈을 부릅떴다.
쉬쉬쉬쉭!
열댓 개의 금빛이 법상의 눈에서 뻗어나가 정확히 은색 마수들을 맞췄다. 은색 마수들은 비명을 지르며 금빛에 휩싸여 눈 녹듯이 사라져갔다. 마족 거한과 노인이 그것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은색 마수들과 직접 겨루며 그들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근의 마수들은 은색 마수들이 사라지자 청록색 마수들을 따라 흩어졌다.
이에 수많은 마수들이 초원 깊은 곳을 향해 썰물처럼 퇴각해 주변이 텅 비었다. 그러나 한립은 마수들을 추격하지 않고 의식을 멀리까지 퍼트려 다른 방향의 마수들도 달아나고 있는지 확인했다.
마계의 요수의 난은 이렇게 끝이 났다.
“감사합니다! 선배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저희는 호랑수(皓狼獸)들에게 무참히 뜯어 먹혔을 겁니다.”
마족 거한은 술법을 펼쳐 어깨의 상처를 처치하고는 노인과 함께 한립에게 다가갔다. 삼두육비의 흉악하게 생긴 법상을 본 그들은 경외심을 드러냈다.
“별 것 아니다. 너희가 내 요구에 응했기에 나선 것뿐이고.”
한립은 그들을 훑고는 담담히 답하며 법상을 회수했다.
“그래도 선배님께서 저희 목숨을 살려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저희가 어떻게 도움을 드리면 될까요?”
삼각형의 눈을 가진 노인이 공손히 물었다.
“너희의 신분과 어째서 이곳에 있었는지에 대해 말해 보거라.”
“저희는 혈아성의 호법 수사들로 성주님의 명을 받아 호랑수왕을 죽여 마조를 흩어버리기 위해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해 죽을 뻔했지요.”
한립의 물음에 마족 거한이 두 손을 모으고 얌전히 답했다. 그들은 한립의 수행을 알 수 없었지만 그들보다 강한 실력으로 보아 마존 급이라 생각하고 예를 다했다.
“너희 실력으로 마수 떼에 뛰어들다니 호랑수왕의 신통이 너희 이상이었을 것인데 어찌 죽인 것이냐. 또한 혈아성이란 곳은 처음 듣는데 어디에 있는 성이더냐?”
농 가 노조가 출발하기 전 마계에 관한 자료를 주었지만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료에서 언급되지 않은 성이라면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선배님께서는 이 지역 분이 아니시군요. 마수 떼에 잠입해 호랑수왕을 죽인 것은 특수 제작한 여러 보물과 영약의 힘을 빌린 덕입니다. 그런 준비 없이 저희의 수행으로 마조에 뛰어든다면 목숨을 버리는 것과 다름없지요. 혈아성은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성으로 규모는 작아도 인근에서는 꽤 유명하고 마존 대인께서 성주로 계시답니다!”
숨길 일도 아니었기에 마족 노인이 빠르게 대답했다.
“마존이 머무는 곳이라면 꽤 번창한 도시일 텐데 무슨 특별한 것이라도 있느냐?”
“혈아성은 혈광정(血光晶) 광맥 위에 건설된 성입니다! 혈광정은 혈계(血系) 마공을 수행하는 수사들에게는 꼭 필요한 광물이고 마침 저희 성주 대인께서도 성계에서 이름난 혈하대법(血河大法)을 수련하셔서 그곳에 상주하시는 것이지요. 그게 아니었다면 그분의 신분에 이런 시골의 작은 성에 머물 리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혈아성이 좀 좁기는 해도 주변에 다른 성이 없어 마수들을 사냥하기 위해 인근에서 초원으로 진입하는 수사들은 한동안 머물다 가곤 합니다. 선배님께서도 괜찮으시면 혈아성으로 가서 며칠 휴식을 취하시지요. 저희 성에서 곧 작은 경매회도 열릴 예정이라 혹시 선배님이 원하시는 물건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족 노인이 눈치를 살피다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경매회? 흥미롭기는 하다만 갈 길이 바빠 그런 것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
한립이 거절하자 마족 노인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배님께서는 만황(蠻荒)의 땅으로 가시는 길이십니까?”
“어째서 내가 만황으로 갈 것이라 생각했지?”
마족 거한의 말에 한립은 얼굴을 굳혔고 몸에서 영기의 압력이 흘러나왔다.
“오, 오해십니다! 이 주변을 지나는 수사들은 대부분이 마수들을 사냥하기 위해서가 아니면 황무지로 가는 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냥 드린 말씀입니다.”
“선배님께서 혹시나 만황으로 가시려 한다면 저희 성에서 보름 정도 머무르셔야 할 것 같아 이야기 드린 것입니다.”
이때 마족 노인이 끼어들었다.
“어째서 그렇지? 혈아성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는 규율이라도 있단 말인가?”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다만 이곳에서 만황으로 가는 길에 또 다른 마조가 터져서 그렇습니다. 이곳 호랑수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무서운 것들이라 선배님 같은 마존급 수사들도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쪽 마조는 이미 보름 넘게 진행되어서 앞으로 열흘 남짓만 기다리면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혈아성에서 휴식을 취하시다 출발하시는 것이 안전할 것입니다.”
미간을 좁힌 한립을 향해 마족 거한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어떤 마수기에 그렇지? 설마 철아수(鐵牙獸)의 마조인가?”
한립이 본 마계 자료에는 철아수가 마계 초원의 가장 무서운 마수라고 적혀 있었다. 수행도 낮지 않고 그 수가 몇 천만에 이르러 초원 주변의 마족들은 이름만 들어도 안색이 변한다고 했다.
“철아수의 마조였으면 저도 선배님께 굳이 기다렸다 가시라 말씀드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선배님의 신통에 마수를 제압할 만한 보물들을 지니고 계시면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번의 마조는 성계에서도 아주 보기 드문 접미수(蝶尾獸)의 마조입니다.”
마족 거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접미수라면 독을 지닌 마수가 아닌가? 깊은 산속이나 밀림에나 서식하는 접미수가 어쩌다 초원까지 왔단 말인가?”
드디어 한립도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저희 혈아성에서도 어째서 그런 마수가 인근에 나타났는지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보름 전부터 대량의 접미수들이 초원 깊은 곳에서 몰려나와 초원 동쪽을 배회하고 있다는 것만 알뿐이지요. 그래서 주변의 수많은 수사들도 위험을 피해 성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허나 이 마수의 습성을 살펴보면 한곳에 한 달 이상 머물지 않고, 먼저 건들지 않으면 습격할리 없습니다. 게다가 접미수들이 난동을 부린다 해도 성의 금제가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마족 거한이 단숨에 사정을 설명했다.
‘이거 좀 골치 아파지겠는걸.’
접미수는 철아수에 비해 수행이 약간 높은 마수로 하루 동안 지속되는 강력한 독무를 방출해 수사의 보호막과 여러 보물들을 천천히 침식했다. 그도 홀로 끝없이 펼쳐진 독무 속에 둘러싸이는 것을 상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시 기다리거라. 중요한 일이니 일행들과 상의를 해봐야겠다.”
노란 부적을 꺼낸 한립이 몇 마디를 속삭이고 그것을 쏘아 보냈다. 노란빛이 허공을 꿰뚫고 사라졌다.
마족 거한과 노인은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한립 앞에서 감히 묻지 못하고 조용히 ‘마존 대인의’ 일행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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