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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88화 (945/2,000)

1188화. 마원해(魔源海)

*

일다경 후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산봉우리 위에 도착한 보화 옆으로 가 공손히 자리를 잡았다.

“자네를 성계로 데려온 것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가?”

새까만 산과 나무를 둘러보던 궁장 여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아닙니다. 주인님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흑갑 거한이 내심 뜨끔해 헐레벌떡 답했다.

“나도 위험을 무릅쓰고 온 것이니 자네가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천읍과 학안이 줄곧 나를 노리고 있는데 발각되면 추격당할 것이고 말이야. 그들이 시조는 아니나 수행이 이전의 나 못지않고 마침 나와 상극의 신통을 펼치니, 둘 중 한 명만 마주친다면 목숨은 부지할 것이나 둘을 동시에 마주치면 위험하겠지.”

“그렇다면 어째서 성계로 오신 것입니까? 지난번 점괘와 연관이 있는지요?”

“그렇다네, 점괘를 완성하지 못해 그중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무엇을 알아냈는지 아는가?”

궁장 여인이 흑악을 바라보고 묘한 얼굴로 물었다.

“저는 점술에 대해 잘 몰라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대인께서 분명히 말씀을 해주셔야…….”

“맞춰볼 생각도 없는 것이겠지. 이것만 알아두면 되네. 저들이 목적지에 이르기 전까지 방해해서도 들켜서도 안 돼. 심지어 저들이 순조롭게 그곳에 이를 수 있게 우리는 몰래 돕기까지 해야 하네.”

흑악이 어색하게 웃으며 우물거리는데 보화가 깜짝 놀랄만한 말을 했다.

“주인님의 명이라면 실수 없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네가 나를 따라나서서 그간 고생이 많았지. 앞으로도 이렇게 최선을 다해준다면 내 법력을 회복한 후 자네가 대승기에 이르기 위해 겪게 될 크고 작은 문제들을 도와 해결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주인님! 앞으로 분골쇄신(粉骨碎身)하여 주인님이 뜻을 이루도록 돕겠습니다.”

진지한 여인의 말에 흑악이 충성을 맹세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든 말은 적게 하고 행동으로 보이면 되네. 지체한 시간이 짧지 않으니 바로 출발하지.”

“예, 주인님!”

분홍 꽃나무 허상을 불러낸 보화는 흑악을 데리고 분홍 기운으로 변해 쏘아져 나갔다.

* * *

그 시각, 한립과 농 가 노조 등 합체기 수사들은 묵묵히 비행을 하고 있었다. 비록 인족의 접점에서는 작은 착오가 있었지만 마계는 농 가 노조가 장담한 대로였다.

그들은 평범한 중, 저계 마족들이 지키고 있는 혈석산맥에 도착했고 불필요한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학살은 하지 않고 포위만 뚫고 달아났다.

농 가 노조가 무엇을 숨기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던 이들도 약간은 마음을 놓았다.

보름 넘게 비행한 일행은 중간에 이름 모를 마조(魔鳥) 떼를 마주쳐 처리한 것을 제외하면 아무 일 없이 새까만 산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들 앞에 광활한 초원이 등장했고 곳곳에 꽃이 만발했지만 저공에 흐릿하게 어두운 잿빛 기운이 뭉쳐 있었다. 혈석산맥보다 마기가 농후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때 농 가 노조가 모두를 불러 세워 구체적인 여정을 논의했다.

“고인이 되신 영왕 대인의 유언에 따르면 세령지(洗靈池)와 정령련(淨靈蓮)은 마계 가장 동쪽 마원해(魔源海)의 섬에 있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있는 실마리는 그곳에 가서야 쓸 수 있고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루라도 빨리 마원해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천추성녀가 진지하게 말문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오랜 정탐 결과, 이곳에서 마원해로 가는 경로는 세 가지입니다. 각 경로가 장단점이 있어 노부 혼자 결정하기는 어렵고 모두의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농 가 노조가 말했다.

“어떤 경로인지 듣고 싶습니다.”

임 가 사내가 즉시 물었고 이에 다른 수사들도 집중했다.

“첫 번째 경로는 눈앞의 초원을 따라 줄곧 가다가 충월대평원(冲月大平原)으로 진입해 마족 성 몇 곳을 지나야 합니다. 그 중 한 곳의 전송진을 이용해 마원해로 넘어가는 것이지요.

일이 잘 풀리면 1, 2년 내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지만 이런 전송진이 있는 거대성에는 분명 마족 존자 혹은 성조 화신이 머물고 있을 것이고, 강력한 금제가 펼쳐져 있을 것입니다. 위마주를 사용해도 번잡한 마족의 성안에서 그들의 눈을 속일 확률은 2할밖에 되지 않고요.”

“2할은 너무 낮습니다. 다른 경로는 어떻습니까?”

“엽 수사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시간이 적게 걸려도 그렇게 위험하다면 저도 찬성할 수 없습니다.”

농 가 노조의 말에 엽 수사가 반대했고 천추 성녀도 고개를 저었다. 한립과 다른 영족 수사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농 가 노조는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두 번째 경로는 일단 초원 중심까지만 가서 마계의 유명한 강인 제5마하(魔河)를 따라 바닷가로 가는 것입니다. 그 후 여러 해역을 지나 마원해에 이를 수 있습니다. 드넓은 마계에서 우연히 고계 마족을 만나 신분을 들킬 일은 없겠지만 바다에는 각종 마수들이 득실거립니다.

만 마리 이상의 해양 마수들에게 둘러싸이면 달아나는 것밖에 수가 없겠지요. 또한 마계의 심해에는 대량의 마존급 화형기 해수(海獸)들이 있고 소문으로는 성조급 해수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길을 택하면 십여 년은 걸려야 목적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도 너무 위험한데요. 마계의 바다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영계만 해도 심해에 사는 해수들은 극히 위험해서 강력한 종족의 수사들도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마계의 해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위험한 해역에 진입하다니요. 농 형 세 번째 경로에 대해 설명해 주시지요.”

천추성녀가 이번에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 듯 미간을 좁히고 물었다.

“마지막 경로는 초원을 따라 쭉 서쪽으로 가다 마족들도 거의 가지 않는 황무지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영계의 만황세계와 비슷한데 심해의 해수들보다는 육지 마수들이 상대하기가 낫고 우리의 전력에 웬만해서는 불상사가 생길 일도 없는 경로지요.

다만 여정이 너무 오래 걸리고 중간에 악명이 자자한 환소사막(幻嘯沙漠)을 지나야 합니다. 마계에서도 열손가락 안에 드는 금지로 누구든 사막에 진입하면 9할의 법력을 제한당하고 둔술과 어떤 보물도 사용할 수 없어 걸어서 이동해야 합니다.”

“환소사막에 강력한 마수나 독충이 서식합니까?”

흥미가 생겼는지 한립이 먼저 물었다.

“아닙니다. 중저계 마수들이 살지만 우리가 9할의 법력을 못 써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유일하게 위협적인 것이 환소마풍(幻嘯魔風)인데 법력이 부족한 것이지 의식은 온전할 테니 피해가면 그만이지요.”

“그렇다면 시일이 더 걸릴 뿐 세 번째 경로가 가장 합당할 텐데 어째서 논의하자고 하신 것입니까?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요.”

“한 형 말씀대로입니다. 관건은 환소사막이 너무 광활해서 비행을 할 수 없으면 걸어서 그곳을 통과하는데 5, 60년은 걸린다는 점이에요.”

농 가 노조가 쓴웃음을 지었다.

“5, 60년!”

그 말에 한립과 엽 수사의 표정이 달라졌다. 허나 영족 수사들은 환소사막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안 됩니다. 그건 너무 길어요. 마원해에 이르면 영계의 마겁이 끝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오랜 시간 마계를 돌아다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고요.”

이번에는 산발 사내가 단호히 거부했다.

“그렇다면 첫 번째 경로와 두 번째 경로 중 어느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첫 번째는 너무 위험하고, 두 번째 경로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운이 좋아 강력한 해수를 마주치지 않고 마원해에 다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잠시 고민하던 산발 사내가 두 번째 경로를 택했다.

“오, 해역으로 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천추 수사와 한 수사, 두 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농 가 노조는 그 의견에 대해 반박하지 않고 한립과 천추 성녀의 의견을 물었다. 빛 속에서 말이 없는 성령을 제외하고 그 둘이 합체 후기 수사였으니 그들의 의견을 중시하는 게 당연했다.

“두 번째 경로가 첫 번째와 세 번째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세 번째 경로가 시일이 조금만 덜 걸렸어도 좋았을 텐데요.”

한립이 한숨을 내쉬며 먼저 답을 주었다.

“어떨 수 없다면 저도 바닷길로 가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하지만 사막을 통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있답니다. 물론 30년이라 해도 우리에겐 너무 긴 시간이지만요.”

천추 성녀가 미소를 지었다.

“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노부도 모르고 있던 일입니다.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저도 경청하겠습니다.”

농 가 노조와 한립이 관심을 보였다.

“환소사막에만 사는 진귀한 도마뱀 마수 ‘팔족마석(八足魔蜥)’이 있습니다. 비록 날지는 못해도 사막을 바람처럼 달린다지요. 팔족마석 몇 마리를 잡아타고 이동한다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겁니다.”

천추 성녀가 천천히 설명했다.

“그런 마수가 있다면 마지막 노선도 고려해 볼 만하겠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뿐이지 나머지 경로보다는 훨씬 안전하니까요.”

생각에 잠겨 있던 엽 수사가 입을 열었다.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팔족마석의 마핵과 가죽, 살과 뼈가 모두 가치가 있어 오랜 세월 포획당해 지금은 거의 멸종되었다더군요. 사막 깊은 곳에 사는 마수와 마족의 몇몇 거대 세력이 은밀히 키우는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사막에 진입하기 전에 한두 마리라도 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무턱대고 사막으로 들어가 찾을 수는 없을 거예요.”

“팔족마석이 안 되면 다른 영수나 마수로 대체하는 것은 어떨까요? 제게도 육지에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영수들이 있습니다.”

“환소사막은 짐승들도 제약을 받아 평소보다 우둔해지고 느려져서 소용이 없습니다. 원래 그곳에 살던 마수만이 적응해서 영향을 덜 받는 것이고요. 팔족마석이 그 중에서 가장 빨라 다른 마수로는 대체가 되지 않을 겁니다.”

천추 성녀의 답에 엽 수사가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립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여인이 마계에 대해 이리 상세하게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영족에서도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온 것이 분명했다.

“까짓것 마족 세력에 쳐들어가 팔족마석을 강탈하면 될 일 아닙니까?”

농 가 노조 옆의 휘 장로가 냉소했다.

“우리의 실력에 마족 성조를 만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마족 강자들의 이목을 끌게 될 테고, 상대가 전송진을 이용해 환소사막 반대편에 매복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농 가 노조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분란을 만들 것이 아니라 암암리에 팔족마석을 거래하는 것은 어떨지요? 우리가 지닌 보물들이면 충분할 겁니다.”

늙은 유생 장형이 또 다른 제안을 했다.

“저도 환소사막을 지나는 것이 합당하다고 봅니다.”

영족 금고 장로가 짧게 거들었다.

“저는 임 형의 의견과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환소사막을 지나게 되면 너무 오래 걸리고 팔족마석을 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니, 바닷길을 통해 가야 한다고 봅니다.”

엽 수사는 산발 수사의 의견에 동조했다. 다른 수사들은 아직도 고민 중인지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한 수사, 지금은 어느 노선으로 마음이 기우십니까?”

“대답을 드리기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환소사막까지는 몇 년이나 걸립니까?”

“몇 년까지도 걸리지 않습니다. 1년 정도면 도착할 겁니다. 어찌 그러십니까?”

“가장 안전한 것은 환소사막을 지나는 것이지만 팔족마석을 구하지 못하면 너무 오래 걸려 득보다 실이 클 것입니다. 해로를 통해 가면 십여 년이면 되겠으나 상대적으로 위험하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일단 두 가지를 아울러 고려해보고자 합니다.”

한립은 또박또박 생각을 밝혔다.

“어떻게 그 두 가지를 아울러 고려하죠?”

그의 이야기에 천추 성녀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먼저 환소사막을 지나는 경로를 따라 이동해서 사막 근처의 마족 세력에게 팔족마석을 구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안 되면 다시 돌아와 해로로 향하는 것이지요. 오고가는데 2년 밖에는 걸리지 않을 겁니다.”

“와, 괜찮은 생각인데요? 저도 한 형의 의견대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엽 수사가 표정이 밝아지며 얼른 동의했다.

“그게 더 나을 것 같군요.”

임 씨 사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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