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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87화 (944/2,000)

1187화. 보황성화(寶煌聖花)

*

다행히 천추 성녀의 섬세한 조종으로 구름은 그들을 확실하게 숨겨 주었고 마족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갔다.

그러나 일행이 마족 요새를 십여 리 앞두었을 때 강력한 진법이 아무 조짐도 없이 발동되어 날카로운 검은 송곳이 날아들었다.

“들켰습니다. 더는 숨지 말고 그대로 돌파해야겠어요.”

천추 성녀가 재빨리 소리치고 일행을 가려주던 구름을 응결해 검은 송곳들을 막았다. 미리 예상하고 있던 농 가 노조와 다른 수사들은 여러 보물을 날려 몰려드는 기운을 공격했다.

쾅!

그들의 힘을 합친 일격에 금제가 종잇장처럼 뚫렸다.

강력한 폭발 소리에 순찰병들과 마족 병사들이 깜짝 놀라 곳곳에서 날아들었다. 게다가 요새 곳곳에서 금제가 발동되어 하늘을 뒤덮고 흉악한 표정의 마족 병사 무리가 다양한 마수를 타고 나타났다.

이때 한립 일행은 검은 보호막 앞에 도착했다. 머리를 산발한 임 가 사내가 주저 없이 허공을 할퀴어 푸른 거대 발톱을 만들어냈다.

쾅!

그런데 거대 발톱과 충돌한 보호막이 번득거리기만 하고 멀쩡했다.

“제가 하지요.”

산발 사내가 멈칫했다가 다시 나서려는데 영족의 늙은 유생이 한마디를 하고 여덟 개의 각기 다른 부적을 뿌렸다.

쿠릉!

단단해 보이던 검은 보호막 표면에 바로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

그것을 본 산발 사내가 내심 놀라 이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늙은 유생을 바라보았다. 천추 성녀의 소개대로 장형이라는 늙은 유생은 금제에 정통한 것이 확실했다.

엽 수사 등 인족 수사들도 의외였지만 머뭇거릴 때가 아니었기에 분분히 빛줄기로 변해 구멍 속으로 날아들었다.

검은 보호막의 구멍이 좁아들어 막힌 순간 기다리고 있던 순찰병들이 기세등등하게 달려들었다.

후우웅!

10명의 합체기 수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둔광을 하나로 응결해 엄청난 길이의 일곱 빛깔 빛줄기로 변해 병사들의 틈을 파고들었다.

마족 병사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빛줄기의 강렬한 빛에 재가 되어 흩날렸다.

벌떼처럼 날아들던 다른 마족들도 기겁해 움직임을 멈추자 일곱 빛깔 빛줄기는 더욱 빠르게 일곱 겹의 금제를 뚫고 요새 상공의 검은 구름 아래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때 검은 구름 속에서 노호성이 터지고 천둥소리가 울렸다.

콰르릉 콰쾅!

커다란 뇌전들이 은색 뱀처럼 꿈틀거리며 내리꽂혔다. 수많은 뇌전들은 검은 구름 뇌전 그물로 변해 그들을 뒤덮었다.

평범한 합체기 수사가 이런 강력한 공격을 마주했으면 피하거나 약간의 부상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일행 중에는 합체 후기 수사만 넷이었고, 누구도 이런 뇌전 그물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감히 노부 앞에서 이런 조잡한 수를 쓰다니.”

농 가 노조가 냉소하며 작은 은색 병을 던졌다.

웅!

병 안에서 하얀 기운이 뿜어져 나와 수많은 은색 빛의 실로 변해 날아올랐다. 신기하게도 은색 실들은 강력한 뇌전 그물을 모조리 끌어다 은색 병 안에 가두었다.

뇌전으로 가득하던 허공이 일순간 텅 비고 말았다.

“정뢰병(淨雷甁)! 네 놈은 인족 농 가의 수사로구나!”

검은 구름 속 마족이 은색 병을 알아보고 분노해 소리쳤다.

“농 가의 보물을 알고 있다니 아무래도 마족의 존자인가 봅니다. 무시하고 바로 진입해도 되겠습니다.”

농 가 노조가 은색 병을 불러들이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른 수사들도 반대하지 않고 둔광을 연결해 긴 빛줄기가 되어 검은 구름 속으로 뛰어들었다.

검은 구름 속에는 다른 금제들도 펼쳐져 있었지만 그들을 막지는 못했다. 그들이 회색빛의 통로로 뛰어들기 전 덩치 큰 마영(魔影)을 선두로 수백 명의 마족 정예병들이 앞을 막아섰다.

‘헉! 어디서 이렇게 많은 수사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검은 기운으로 얼굴을 가린 마영은 인족 합체기 수사들의 등장이 믿기지 않았다.

“겨우 마존 한 명이 우리를 막으려 해봐야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통로로 진입하는 것이 급하니 신경 쓰지 말고 서둘러 갑시다.”

은빛 속 성령이 조소하며 하는 말에 천추성녀가 솔선해 속도를 높여 튀어나갔다. 늙은 유생과 다른 성령들도 두말하지 않고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지금은 저들과 시간을 끌 때가 아닙니다. 마두가 분수를 모르고 공격하지 않는 한 그냥 통과하겠습니다.”

농 가 노조의 말에 수사들은 커다란 파공음을 내며 쏘아져 나갔다. 그들은 마족 병사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다.

상대편 마영이 합체기 수사들의 돌진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가 이를 악물고 손을 저어 병사들을 통로 양측으로 물렸다.

쿠르릉

은빛 속 성령의 광소가 울려 퍼지고 먼저 통로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다른 수사들도 거침없이 통로로 들어가 사라졌다.

한동안 격렬하게 진동하던 통로가 안정을 되찾았다. 마기로 둘러싸인 마영이 어두운 얼굴로 말이 없자 불안해진 수하 중 한 명이 물었다.

“대인, 저렇게 많은 이족 실력자들이 마계로 넘어가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것일까요? 저희가 추격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추격을 해? 본 좌더라 죽으라는 소리더냐!”

“아, 아닙니다.”

덩치 큰 마족이 얼굴을 일그러트렸고 중계 마족은 식겁해 고개를 휘저으며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바로 그때 먹구름 아래로 녹색 바람이 몰려들어 마른 몸의 중년인으로 변했다.

“객 형, 이쪽으로 몰려간 이족 수사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이리저리 둘러보며 날개 달린 사내가 급히 물었다.

“늦으셨습니다, 봉 형. 그 자들은 이미 통로로 들어갔습니다.”

“뭐라고요? 어째서 막지 않으셨습니까. 성조대인께 이 일을 들키면 분명 문책이 따를 것인데요.”

“어찌 막으란 말입니까? 열 명은 되어 보이는 무리가 전부 합체기 수사에 후기에 이른 자도 몇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이 통로로 진입하기에 급급하지 않았으면 저는 진작 죽었을 거라고요. 그 앞을 막았으면 제가 지금 봉 형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겠습니까?”

침묵하던 마영이 냉랭히 답했다.

“그들이 전부 합체기 이상의 수행을 지녔다니 농이 지나치십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곳의 모두가 목격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제가 성조대인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냥 보냈겠습니까.”

펄쩍 뛰는 사내를 보고 마영이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내는 주변 마족 병사들의 안색을 살피고는 동료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이거 큰일입니다. 어찌 되었든 고계 이족들이 마계로 넘어간 것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에요! 반드시 성조대인께 사실대로 보고를 올려야 합니다.”

날개 달린 사내의 말에 마영이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데 갑자기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일에 관해서는 누구도 상부에 보고를 하거나 발설해서는 안 될 것이다.”

“누, 누구냐?”

화들짝 놀란 마영과 날개 사내가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즉시 한데 뭉쳐 각각 은색 장검과 검은 창을 꺼내 들었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면 상대는 보통 실력자가 아닐 것이다.

어디선가 기이한 향기가 퍼지고 고공에 커다란 꽃나무가 나타났다. 수정처럼 반짝이는 꽃나무 가지에 주먹 크기의 분홍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보, 보황성화(寶煌聖花)! 그렇다면 보화 대인!”

날개 사내가 꽃나무를 알아보고 얼굴이 구겨지더니 겁에 질려 미친 듯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때 고공의 꽃나무에 핀 기이한 분홍 꽃들이 활활 타올랐다. 분홍 화염으로 변한 꽃송이들이 나풀나풀 춤을 추며 떨어져 내렸다.

분홍 화염은 아주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괴상하게도 번득 사라져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마족의 몸에 떨어졌다.

화륵!

날개 사내는 화염에 닿자마자 터져 푸른 연기로 흩어지고 말았다. 통로 옆에 홀로 남아 꽃나무를 보고 있던 마영이 깊게 예를 올렸다.

“보화 대인을 뵙습니다. 이번 생에 대인을 다시 만나 뵙게 되다니 너무나 감개무량합니다.”

마영은 뜻밖에도 아주 들떠있었다.

“객운, 이게 얼마만인가?”

꽃나무 위에서 하얀 궁장 차림의 보화 성조와 흑갑 거한 흑악이 나타났다. 평소 감정의 기복이 없는 여인도 마영을 보고는 감회가 새로운 눈빛이었다.

“정말 대인이시군요! 많은 이들이 대인께서 변고를 당하셨다 떠들어댔지만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인의 신통에 아무리 극악한 상황이라도 목숨은 건지셨을 테니까요.”

궁장 여인의 모습에 마영은 일말의 의심조차 털어버리고 흥분해 외쳤다.

“그래, 그들에게 당해 목숨은 부지 했다만 수행이 떨어지고 강제로 공간을 뚫고 영계로 달아나야 했지. 그래도 자네들이 아직까지 무탈한 것이 위안이 되는군. 그래도 만일을 위해 자네의 의식을 확인해 봐야겠네.”

보화가 아름다운 눈으로 마영을 주시했다.

“예, 대인! 그들이 제게 몰래 무슨 수를 써놓았어도 저는 모를 수도 있으니까요.”

“이해한다니 다행일세.”

보화가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져 조용히 내려왔고, 흑갑 거한은 말없이 뒤를 따랐다. 마영은 공손히 손을 모으고 마기를 흩어 자신의 본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객운이란 자는 머리에 새까만 뿔 한 쌍이 자라있는 각진 얼굴의 중년 거한이었다. 보화성조는 곧바로 손끝으로 그의 미간을 가리켰다.

쉭!

수정 실이 손끝에서 빠져나와 거한의 미간으로 파고들었다. 보화는 천천히 눈을 감았고 고통스런 표정을 짓던 거한은 멍하니 눈이 풀렸다.

잠시 후 돌연 궁장 여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수정 실이 금빛으로 변하고 거한의 머리에서 기이한 파동이 퍼져 나왔다.

중년 거한의 코와 귀에서 피가 흘러내리다 곧장 마르고, 그의 코와 귀에서 각각 콩알 크기의 회색 빛덩이가 빠져나왔다.

“어딜 가려느냐!”

보화가 얼굴을 굳히며 손가락을 튕겨 수정 실로 빛덩이를 꿰뚫어 소매 속에 넣어두었다. 그녀는 바로 고통스러워 보이는 거한을 훑고 분홍빛을 쏘아 보냈다.

초점 없던 거한의 눈빛이 차츰 또렷해졌다.

“보화 대인, 저는…….”

“과연 그들이 자네에게 독한 금제를 걸어두었더군. 허나 내가 처리하고 가짜 금제로 대체를 해놓았으니 안심하게. 그들이 직접 나서 살펴보지 않는 한 들킬 일은 없을 것이야.”

“정말 감사합니다, 대인! 그런데 대인께서는 어찌 이곳까지 오신 것입니까? 소문이라도 나면 좋지 않을 텐데요.”

“내가 여기까지 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네. 조금 전 누군가 공간접점으로 들어가지 않았는가?”

보화성조가 회색 통로를 복잡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맞습니다. 이족 무리가 통로로 진입했는데 절반은 이족이고 나머지는 영족이었습니다. 전부 합체기 이상의 수행을 지녀 수하가 막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되었네. 자네에게 임무를 하나 주지. 그들이 이곳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성계에서 알 수 없게 숨겨주게. 영원히 속일 수는 없어도 최대한 말이야.”

“원래는 어려운 일이지만 저를 감시하던 자를 대인께서 처리해주셨으니 가능합니다. 아마 1년 정도는 시간을 끌어볼 수 있을 듯합니다.”

보화성조의 명에 거한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렇게 해주게. 흑악, 우리도 어서 가세.”

궁장 여인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천천히 통로로 다가갔다. 중년 거한과 흑악 모두 대번에 안색이 달라졌다.

이에 거한은 입을 달싹이다 차마 말을 못하고 배웅을 했고, 흑악은 눈을 굴리다 이를 악물로 따라나섰다. 통로가 두 번 격렬히 진동한 후 궁장 여인과 흑갑 거한의 모습이 사라졌다.

오랫동안 멍하니 통로를 바라보던 중년 거한이 씁쓸하게 웃고는 길게 포효했다. 쇠를 뚫고 돌을 부술 것처럼 웅장한 소리였다.

얼마 후 멀리 검은 구름 속에 대기하던 마수들을 탄 마족 병사들이 나타났다. 거한은 검은 기운을 일으켜 그들에게 다가갔다.

* * *

통로 맞은편 마계.

파동이 일고 회색 빛덩이 속에서 나타난 보화성조와 흑악을 놀란 마족들이 겹겹이 둘러쌌다.

“자네에게 맡기지.”

그들 대부분이 중, 저계 마족임을 안 궁장 여인이 담담히 말하고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이에 흑갑 거한은 그들을 포위한 마족 중에 합체기 이상의 존재가 없는 것을 보고 흉악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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