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2화. 섭령천망(攝靈天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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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인족 영역과 인접한 영족의 높은 산봉우리 위.
합체기 성령(聖靈)급 수사 3명이 몹시 준수한 외모의 청년을 둘러싸고 있었다. 금색 장포를 걸친 청년은 뒷짐을 쥐고 허공에 떠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금색 장포 정면에는 거대한 금색 연꽃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게다가 산봉우리 곳곳에는 구덩이가 깊게 파이고, 수많은 시체와 보물들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당신이 누구든 간에 조운산(祖雲山) 동족을 죽이고 그들의 정원을 흡수한 복수를 하고야 말 것이오!”
성령 중에 키 작고 뚱뚱한 노인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그 옆의 두 성령들은 비취색 대나무 지팡이를 들고 머리를 산발한 노인과 아름다운 젊은 부인이었다.
그들은 금포 청년을 분노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영족들은 다른 이족과 달리 영성을 깨우치기 어려워 종족의 수가 적었다. 그러나 일단 지능이 높아지면 적잖은 신통을 부릴 수 있고 결단기, 원영기 까지도 쉽게 이르러 야차족, 인족 등과 함께 영계 구석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곳 조운산은 영족인들의 꽤 유명한 거점 중 하나로 이들은 이곳의 3대 태상장로였다. 세 성령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영족인들은 본체의 정원을 흡입당해 몰살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흉수인 금포 청년이 달아나지도 않고 이곳에 태연하게 남아 있으니 세 성령들이 얼마나 열을 받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만했다.
그러나 금포 청년은 그다지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지 않는데도 세 성령 모두 그의 수행을 파악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성령들은 바로 공격에 들어가지 않고 대치중인 것이다.
“웬 말이 그리 많은 것이냐! 겨우 화형을 한 영노(靈奴)에 불과한 것을 내게 쓸모가 있다면 취하는 것이 당연한 일. 너희들의 수행은 다른 영노들보다 훨씬 높은 것 같으니 나를 주인으로 삼겠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금포 청년이 코웃음을 치고는 드디어 입은 열었다. 강적들을 앞에 두고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영노? 당신은 설마 선계에서 오신 분입니까?”
눈에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던 세 성령이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호오, 뭔가를 아는 것을 보니 너희 중에 위에서 내려온 녀석이 있는 것이냐? 아니지, 너희 수행에 그럴 수는 없을 테고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그렇다면 본 선사가 그게 누구인지 알아야겠다. 이제 내 정체도 알았으니 얌전히 본체를 드러내고 혈계(血契)를 맺자꾸나. 거부하겠다면 내 친히 나서서 너희를 잡아다 영성을 말살해 주지.”
금포 청년이 움찔하다 차갑게 미소 지었다. 성령들은 상대가 정말 선인이라 인정하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시선을 교환했다. 정말 상계에서 강림한 자라면 합체급 존재인 그들 셋은 손가락만 튕겨도 죽일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하구려. 저 자가 정말 선계에서 내려왔다면 족인들을 죽일 때 이렇게 큰 흔적을 남겼을 리 없을 터. 우리를 속이는 것이 분명하오.”
비취색 대나무 지팡이를 쥔 늙은이가 겁먹은 얼굴로 고민하다 소리쳤다.
“황 형의 말씀대로예요. 선계의 사람이 영계로 강림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저 자가 선계 사람이라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고요. 안 그랬으면 당장 우리를 잡아 죽였지 저런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름다운 부인도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그들의 이야기에 금포 청년의 표정이 순간 달라졌다. 미세한 변화였지만 세 성령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공격하시지요. 저 자가 달아나게 두어서야 되겠소!”
뚱뚱한 노인이 먼저 하얀 구리거울을 불러내 청년을 비췄다.
푸확!
하얀 불기둥이 구리거울을 빠져나와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에 산발 노인과 미부인도 주저 없이 공격을 개시했다.
한 명은 비취색 지팡이를 흔들어 대나무 허상을 겹겹이 방출했고 다른 한 명은 열손가락에서 푸른 빛덩이를 쏘아 보냈다. 푸른 빛덩이들은 푸른 거대 새 10마리로 변해 금포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성령들은 상대가 상계 사람이라고는 믿지는 않았지만 신통이 비범하다는 것은 알았기에 처음부터 강력한 일격을 가한 것이다.
“멍청한 것들.”
그것을 본 금포 청년이 괴상한 수결을 맺어 투명한 빛의 고리를 불러냈다.
펑!
빛의 고리가 폭발해 금은색의 주술문자들이 뿜어져 나오자 주술문자들이 커다란 보호막을 이루어 금포 청년을 둘러쌌다.
콰르릉!
허공의 비취색 대나무 환영들이 거목(巨木)들로 변해 보호막을 마구 공격했고, 10마리 푸른 새도 날개를 펄럭여 바람의 칼날들을 쏘아 보냈다.
마지막으로 하얀 불바다가 밀려들어 금은색 보호막을 완전히 뒤덮었다.
“치워라.”
보호막 속 청년은 강력한 공격에도 한심하다는 얼굴로 한 손을 보호막에 얹었다.
쿠르르릉!
금은색 보호막이 몇 배로 불어나 표면을 맴돌던 주술문자들도 엄청나게 커져 거의 반투명한 실체를 갖추었다.
이에 바람의 칼날과 화염은 금은색 주술문자에 닿자마자 튕겨 나가고 말았다. 뚱뚱한 노인은 흠칫 놀라며 곧바로 화염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우웅!
하얀 화염 속에서 놀랍게도 불 기린(麒麟) 몇 마리가 응결되었다. 송아지만한 크기의 불 기린들은 전신에 은색 불길을 두르고 있었다. 화염의 온도가 높아져 은은한 은빛을 띠고 활활 타올랐다.
산발 노인과 미부인도 서둘러 여러 보물들을 동시에 발동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금은색 보호막 속에서 청년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이는 이제 끝이다. 그만 죽어라.”
보호막 속에 희미하게 보이던 인영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주인을 잃은 금은색 보호막이 하얀 화염에 깨져 나갔다.
그러나 뚱뚱한 노인과 다른 성령들은 좋아하기는커녕 서로 등을 마주대고 동그랗게 둘러서서 의식으로 주변을 뒤지기에 바빴다.
“이게 어찌 된 일이오? 그 자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구려.”
산발 노인이 당황해 소리쳤고, 미부인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 그녀도 금포 청년을 찾지 못한 것이다.
뚱뚱한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무어라 말하려는데 허공에 벼락이 내리치고 금빛이 떠오르며 금포 청년이 괴이하게 나타났다.
쿵!
그가 허공을 쥐자 은빛들이 떠올라 거대 그물로 변해 세 성령들은 물론이고 아래쪽의 산봉우리까지 덮쳤다. 은색 거대 그물의 신묘한 신통 때문인지 세 성령들은 몸이 나른해지고 법력 대부분을 쓸 수 없었다.
“이건, 섭령천망……. 상대는 정말 선계의 사람이었소. 어서 피하지요.”
성령 중에서 가장 수행이 높은 노인이 몸의 이상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는 몸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거울 보물과 하나가 되어 빛줄기로 변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른 두 성령도 노인의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각각 푸른 돌풍과 푸른 대나무로 변해 튀어 나갔다.
“이제와 도망갈 생각을 하다니!”
금포 청년이 웃음을 흘리며 손에서 은빛을 일으켰다. 그러자 거대한 은색 그물과 은색 실들이 섬뜩한 기운을 내뿜으며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수많은 은색 주술문자들이 그물에서 용솟음쳐 추락했다.
콰쾅!
일대가 눈을 찌를 듯한 강한 은빛에 잠식되었다. 천지원기가 난폭하게 휘몰아쳐 회색 돌풍을 만들어냈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났다.
은색 거대 그물 안에서 수시로 커다란 폭음이 울려 퍼졌지만 은빛이 너무 강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이지 않았다.
일다경이 지나 폭음이 점점 가라앉고 정적이 맴돌았다. 청년은 의식을 퍼트려 주변을 둘러보고는 그물을 끌어당겼다.
퍼펑!
거대 그물이 찢겨나가고 돌풍과 은빛이 사라지자 모든 것이 환상에 불과했던 것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수풀이 무성하던 거대한 산봉우리는 절반이 깎여 있었고 폐허 속에 세 가지 물건이 희미하게 빛을 내며 떠있었다. 은색 거울과 비취색 대나무 조각 그리고 푸른 빛구슬이었다.
그것을 본 금포 청년이 희색을 드러내고 은빛을 내뿜어 물건들을 불러들였다.
“영성을 지우고 제련하면 쓸 만한 보물이 되겠어.”
그는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손바닥을 뒤집어 조심스럽게 넣었다.
“아직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몇 개만 더 모으면 대충 될 것 같은데 영족에도 대승기 수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지금 이 상태로 마주치게 되면 힘깨나 좀 써야 할 텐데…….”
청년은 잠시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는지 눈부신 금빛으로 변해 날아갔다. 이제 산봉우리는 황폐해 거칠고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웅!
그런데 청년이 떠나고 대략 반 시진이 지나 돌 더미 속에서 붉은 빛덩이가 솟아올랐다. 보라색 눈알 모양의 물건을 품은 빛덩이였다. 보라색 눈알은 금포 청년이 사라진 방향을 조용히 응시했다.
눈알은 주변을 감시하는 법기로 금포 청년에게도 들키지 않고 산봉우리에 숨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운해(雲海) 속 금색 궁전.
붉은 혈색의 노인이 검은 나무 의자에 앉아 둥실 떠있는 하얀 구슬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금포 청년이 성령 셋을 공격해 잡아가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다.
노인은 청년이 영노라는 두 글자를 내뱉자 순간 깜짝 놀랐다. 그리고 금포 청년이 은색 거대 그물을 펼칠 때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섭령천망이라니! 말도 안 돼. 선계에서 누군가 내려왔다고 해도 어찌 저런 보물을 들고 왔을 수 있단 말인가.”
섭령천망이라는 말에 노인의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아니지. 저건 모조품에 불과하다. 진짜 섭령천망이었다면 저리 오랜 시간이 걸렸을 리 없어! 허나 모조품이라고 해도 우리 영족에게는 치명적이니 얕볼 수 없구나. 저 자가 선계에서 강림했든 아니든 저런 물건을 지니고 있다면 살아서 영족 영역을 빠져나가게 둘 수는 없는 일! 만일 정말 선계에서 내려온 자라면 죽이기 쉽지 않을 텐데 ‘그것’을 쓸 수밖에 없겠어.”
노인은 뒷짐을 쥐고 의자 주변을 쉼 없이 돌다 걸음을 멈추고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홱 하고 걸음을 돌려 나무 의자에 앉아 골똘히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 * *
성황성과 천연성 영역의 경계에 있는 어느 산맥에 푸른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감탄이 절로 나올만한 빠른 속도였다. 방향을 틀어 산맥 깊숙이 숨겨진 골짜기로 떨어져 내린 푸른 빛줄기는 바위 옆에서 멈췄다.
둔광이 가시고 나타난 것은 평범한 용모의 청년 한립이었다. 천연성에 있어야 할 그가 어찌 이곳에 나타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
그는 주변을 훑고는 평범해 보이는 커다란 나무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눈썰미도 좋으십니다. 제 실력으로는 한 수사를 속일 수 없을 줄 알았습니다.”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커다란 나무가 왜곡되어 노란 의복을 걸친 거한으로 변했다.
황의(黃衣) 거한 옆에는 오색의 깃털 옷을 입은 아리따운 소녀가 헤실헤실 웃으며 한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엽 선자셨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한립이 푸른빛을 거두고 웃는 얼굴로 포권을 했다. 소녀는 진령세가 엽 가의 노조였다. 한립과는 만령대 회합에서 만난 일이 있었고 농 가 노조에 못지않은 실력자였다.
“일찍 온 김에 막 손에 넣은 황건괴뢰(黃巾傀儡)로 장난을 좀 쳐보았습니다. 한 형에게 단번에 들키다니 이 녀석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깃털 옷 소녀가 여린 손으로 황의 거한을 두드리자 텅 빈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과 진배없어 보이는 거한은 인형괴뢰였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꼭두각시의 변화술이 아무리 대단해도 어찌 수사와 저의 이목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다른 꼭두각시라면 그렇겠지만 이건 목곡 노인이 만든 것입니다. 그가 분명 합체기 수사도 속여 넘길 수 있을 거라 장담했는데, 오늘 처음 사용하자마자 들켰으니 그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오늘 보니 한 수사께서 합체 후기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진짜였습니다.”
“여러 기연을 만나 후기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만 실력으로는 엽 선자와 같은 근본이 탄탄한 수사 분들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 말로 저를 달래려 하십니까? 마족 성조 화신과 또 다른 합체 후기 마존도 전투 중에 수사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오래입니다. 그런 실력을 어찌 저와 비교할까요.”
소녀는 그에게 눈을 흘기고는 뾰로통하게 말했다.
“전부 호사가들이 과장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여러 수사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두 마두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이지 저 혼자 한 일도 아닌 것을요! 이제 막 후기 경지에 이른 제가 어찌 그런 능력이 되겠습니까.”
“제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습니까?”
웃어넘기려는 한립을 향해 소녀가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그리고 더는 따지지 않고 황건괴뢰를 거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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