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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77화 (934/2,000)

1177화. 검은 태양

*

희미하던 불상들이 금빛을 머금고 불상 조각으로 변했다.

“법상금신! 아니지, 모조품에 불과하구나.”

혈포 소년이 움찔하다 찬찬히 법상 조각을 살피고 조소했다.

“금신의 모조품에 불과해도 마(魔)를 물리치고 요(妖)를 제거하기에는 충분하다.”

금월선사가 담담하게 말하고는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머리 위로 일곱 빛깔 기운을 불러냈다. 금색 불상 18개가 일곱 빛깔 기운을 받고 번쩍 눈을 떴다.

그것을 본 혈광화신이 자신의 뒤통수를 쳐서 핏빛의 거대 해골을 불러냈다.

키에엑!

날카롭게 울어대는 해골은 회백색 기운에 둘러싸여 있었고 입에서는 핏빛을 내뿜었다. 이에 은발 노인이 즉시 칠염선을 부치고 다른 손으로 동심환을 투척했다.

칠염선은 한립이 인계에서 모조품을 만들었던 영보로 당시 삼염선으로도 많은 적들을 물리쳤는데 진짜 영보인 칠염선의 위력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쿠릉!

깃털 표면에서 새빨간 주술문자들이 빠져나와 불새로 변해 순식간에 몸집을 키웠다. 거대 불새가 날개를 펄럭이자 깃털에서 일곱 빛깔 화염이 빠져나와 주변 온도를 삽시간에 끌어올렸다.

우우웅!

동심환은 노인의 손을 떠난 순간 거대해져 혈광화신을 향해 추락했다.

* * *

쾅!

한립은 두 개의 동산을 놓치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얼굴에 기이한 홍조가 스쳐지나갔다.

마족 거한 역시 떨리는 몸으로 물러났고 들고 있던 어두운 녹색 막대 한 쌍이 튕겨나갔다. 한쪽에서는 삼두육비의 금신이 먹처럼 새까만 괴물과 정신없이 싸우고 있었다.

금신은 주먹과 발을 마구 휘둘렀고 새까만 괴물은 미친 듯이 마기를 쏘아 보냈다. 법상금신이나 그 적수인 인형(人形) 괴물이나 상대의 공격을 맞고도 아무렇지 않아 금강불괴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와 육박전으로 비등하게 싸운 녀석은 네가 처음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마족 거한이 손목을 털며 처음과 달리 싸늘하게 경고했다.

“글쎄요. 과연 이게 전부일까요?”

한립은 무심하게 답하고는 막대한 영력을 운용해 몸의 불편함을 해소했다.

“흐하하, 간만에 좋은 마음으로 충고를 해주었더니. 그렇게 살기가 싫다면 죽여주마!”

마족 거한 뒤로 검은 마기가 응결되더니 머리가 셋 달린 거대한 사자가 나타났다. 사자의 육체가 또렷해지자 강력하던 거한의 기운이 더욱 거세졌고 핏빛 갑옷이 핏빛 보호막을 일으켜 그를 감쌌다.

그 안에서 거한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두 손을 들어 올려 한립을 가리켰다. 그러자 사자의 세 머리가 한립을 노려보았다.

‘이런!’

순간 모골이 송연해진 한립은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검은 괴물과 싸우던 법상금신이 사라지고 커다란 금털 원숭이로 변하더니 삼두육비 금신과 합쳐졌다.

기운이 강해진 거원은 두 팔을 벌려 푸른색과 검은색 산봉우리를 불러냈다. 그때 마족 거한의 두 손에서 핏빛이 뭉쳐져 빛기둥들이 발사되었고, 사자 머리들은 각각 푸른색, 하얀색, 검은색 빛기둥을 뿜었다.

4개의 빛기둥이 중간에서 하나로 뭉쳐져 굵은 빛기둥이 탄생했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무서운 영기의 압력에 한립은 거원으로 변신하고도 가슴이 서늘해져 두 손에 푸른 영력을 잔뜩 일으켜 두 극산에 쏟아 부었다.

우웅! 우웅!

푸른색과 검은색 산봉우리가 거대해져 거원의 앞을 착실히 막아섰다.

콰콰콰쾅!

그러나 사색(四色) 빛기둥은 산봉우리들 앞에서 넓게 퍼져 나가 산봉우리는 물론 거원까지 휘감았다. 이에 극산이 덜덜 떨며 작게 수축해 사라지고 무서운 위력이 거원에게 몰려들었다.

크아아앙!

금털 거원이 포효하자 몸에서 새까만 갑옷이 빛을 발했고, 검은 주술 문자들이 벌떼처럼 날아올라 거대한 보호막을 펼치고 사색 기운 앞을 막아섰다.

사색 기운과 검은 주술문자의 격전에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만한 엄청난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빠득!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주술문자가 만들어낸 보호막도 견디지 못하고 깨져나갔다.

이때 거원은 삼두육비로 변해 여섯 개의 팔을 휘둘렀고, 여섯 개의 금색 빛덩이가 떠올라 합쳐져 거대한 금색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금색 소용돌이에서 엄청난 힘이 튀어나와 사색 기운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르르르!

커다란 폭음이 귀청을 울리고 주변으로 퍼져나간 기운이 공간을 왜곡시켰다. 그 모습에 마족 거한이 두 손을 거두고 금빛 빛기둥을 멈추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것이 적잖은 원기를 쏟아 부은 것이 틀림없었다.

사자 머리들도 어둑해진 눈빛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에 마족 거한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대승기 수사의 일격에 버금가는 공격이었건만 어찌 무사하단 말인가!”

“후한 선물을 받았으니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겠습니다!”

금털 거원은 그 자리에 서서 여섯 개의 손으로 각기 다른 수결을 맺어 금색 소용돌이를 열배 가까이 키워놓고 있었다.

휘리릭!

거대 소용돌이가 쾌속으로 회전해 무형의 힘을 금색 빛구슬로 응축하기 시작했다. 빛구슬이 모양을 갖추자 거원이 허공을 박차고 사라졌다.

마족 거한이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는 이미 거원이 고공에 나타나 금색 빛구슬을 힘차게 던진 후였다.

금색 빛구슬이 한립의 손을 떠나 거대 소용돌이로 돌아가 거한을 덮쳤다. 무형의 힘에 거한 주변의 허공이 왜곡되어 윙윙거렸다.

마족 거한은 얼굴이 붉어졌지만 소용돌이의 강력한 힘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핏빛 화염을 일으켜 무서운 기운을 퍼트렸고 화염이 닿는 곳마다 새까맣게 물들며 소용돌이의 무형의 압력을 밀어냈다.

거한은 다시 꼿꼿하게 몸을 펴고는 손을 들어 올렸다.

펑!

사자가 자폭해 거한의 손으로 몰려들어 새까만 삼지창으로 변했다. 새까만 광채를 내뿜는 삼지창에는 남색 주술문자가 퍼져 있었고 창끝에는 흉악한 사자머리가 새겨져 있었다.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거한이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창을 내던졌다.

쉬익!

검은 빛이 번득이고 새까만 삼지창이 소용돌이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기세가 대단하던 소용돌이는 검은 창이 사라진 순간 산산이 부서져 영기의 빛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쉭!

마족 거한은 다른 손에 또 다른 창을 불러내 주저 없이 던졌다. 이번 목표는 허공에 멍하니 떠있는 삼두육비 거원이었다. 새까만 창은 괴이하게 거원 바로 앞에서 나타났다.

놀란 거원이 각각 손에 여섯 개의 묵직한 병장기를 불러내 검은 창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금빛과 검은빛이 동시에 허물어졌다.

쉭!

거한은 또 다른 창을 만들어 던졌다. 그러나 거원은 코웃음을 치며 손에서 다시 금색 병장기를 불러내 검은 창을 막았다.

‘또!’

이번에는 거한도 놀란 듯했고, 그 틈을 타 거원이 병장기를 만들어 먼저 투척했다. 거원의 세 머리가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파앗!

금빛을 머금은 여섯 병장기들의 수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늘어나 거한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이에 거한은 오히려 피식 웃으며 입에서 보랏빛을 내뿜었다. 보랏빛은 스스로 폭발해 거대한 그물로 변해 금빛 허상들을 가두었다.

퍼퍼퍼펑!

그물 속에서 금빛 병장기들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금빛들이 그물 속에서 요동치든 말든 거한은 주문을 외우며 열손가락으로 허공을 마구 짚었다.

그럴 때마다 거한의 몸에서 핏빛 화염이 약해지고 보라색 그물은 더욱 견고해졌다. 거대한 그물이 몇 배로 불어나 하늘이 보라색 구름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다.

곧 보라색 구름이 금빛을 응축해 빛덩이로 변해 가라앉았다.

“……!”

의기양양하게 고공을 둘러보던 거한은 삼두육비 금털 원숭이가 보이지 않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거한이 눈을 굴리며 주변을 살펴보고 있을 때 등 뒤에서 파동이 일고 금빛 짐승의 발이 날아들었다.

커다란 짐승 발이 거한을 호되게 내리쳤는데 발톱이 금색 칼날처럼 날카롭고 단단했다. 거한이 콧김을 내뿜으며 한쪽 손에 핏빛을 일으켜 금색 짐승발을 쳐내려 했다.

짐승 발과 거한의 손은 크기가 천지차이였지만 충돌하는 순간 거한의 손이 훨씬 커져 엇비슷해졌다.

쾅!

금색 짐승발이 핏빛 손과 충돌해 깨지고 그 안에서 금색 그림자가 튕겨 나왔다. 금색 짐승은 합체 초기의 기운을 내뿜었는데 바로 한립의 영수 표린수였다.

한립이 몰래 내보내 거한 주변에서 기습하도록 했지만 실패로 돌아간 듯했다. 그런데 표린수가 정체를 드러낸 순간, 마족 거한 옆에서 은빛 둔광이 나타나 은빛 천으로 그를 휘감았다.

그때 삼두육비의 거원도 서늘한 눈빛으로 나타나 여섯 개의 병장기로 거한의 내리치며, 입에서 은색 화염을 내뿜었다.

병장기와 은색 화염들이 변한 불새 세 마리가 날아드는 것을 보고도 거한은 허둥대지 않았다.

그는 전신에 핏빛 화염을 일으켜 은색 천을 찢어버리고 한 손에 검은 기운을 응축해 창을 만들어냈다. 거원을 향해 질풍처럼 쏘아져 나가던 창이 9개로 늘어났다.

휘휘휘휙!

그 중 6개가 금색 병장기를 향해 방향을 틀고, 나머지 3개는 세 마리의 불새를 향해 쇄도했다. 여섯 개의 금빛과 은색 화염 세 덩이가 검은 창에 뚫려 힘없이 사라졌다.

이에 삼두육비 거원의 안색이 달라지며 성큼 뒤로 물러나 팔을 휘저어 검은 기운으로 앞을 막았다.

콰쾅!

허공이 왜곡되고 또 다른 새까만 창이 두 팔을 공격했다. 그러나 한립이 변한 거원의 팔뚝에 새겨진 새까만 주술문자가 튀어나가 창을 바로 멸해버렸다.

거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멸하라.”

그때 멀리서 꼼짝 않던 마족 거한이 싸늘하게 말했다. 동시에 검은 창이 사라졌던 곳에서 초소형 창이 다시 나타나 튀어나갔다.

콰르릉!

원래 창에 숨겨져 있어 강대한 한립의 의식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초소형 창은 두 팔과 충돌해 폭발했다.

그러자 거대한 빛덩이가 거원의 몸을 휘감았고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던 거원은 검의 빛에 매몰되었다. 짙은 마기가 휘몰아쳐 주변의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었다.

“흐하하하! 내가 구마자모창(九魔子母槍)을 쓰게 하다니 영광인줄 알아라!”

마족 거한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태양처럼 빛나던 새까만 기운이 차츰차츰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거한은 웃음을 뚝 그치고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 말도 안돼!”

거한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어둠이 가시고 맑아진 하늘에 금털 거원과 오색 무늬 봉황 그리고 은백색의 거대 붕새가 떠있었던 것이다.

금털 거원은 두 손으로 금색 기운을 방출해 주변에 보호막을 방출했고 나머지 오색 봉황과 은색 붕새는 오색 기운과 은색 뇌전을 방출해 금색 보호막 바깥에 빛의 장막을 펼치고 있었다.

금털 거원은 물론이고 채봉(彩鳳)과 붕새 모두 표정이 없었다. 이에 경악한 거한은 주위를 살피고 어딘가를 향해 손짓했다.

파앗-!

법상금신과 싸우던 거무스름한 괴물이 그의 곁에 나타났다.

괴물은 새까만 기운을 흩어버리자 드디어 진면목을 드러냈는데 새까맣게 탄 나무로 만들어진 꼭두각시에 금은색 주술문자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길게 송곳니를 늘어뜨린 꼭두각시는 두 팔과 다리가 아주 길었고, 가슴에 보라색 인간 얼굴이 튀어나와 매우 끔찍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보라색 얼굴은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마족 거한이 꼭두각시를 불러들였을 때 금빛 속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거원, 채봉, 붕새 사이의 허공에 금빛이 모여들어 한립과 똑같이 생긴 금색 원영이 나타난 것이다. 검은 갑옷을 입은 원영 주위로 72개의 푸른 비검들이 날아다녔다.

그 즉시 거원, 채봉 그리고 봉새가 눈을 반짝이며 원영을 향해 뛰어들었다.

쿠릉!

눈부신 금빛 속에서 삼두육비의 거대 인간이 나타났다. 피부에 금빛 비늘이 돋은 금색 인간은 머리에 푸른 뿔이 돋아있었고 미간에는 새까만 요목이 박혀 있었다. 분명 생김새는 한립과 같았는데 무언가 섬뜩하고 요사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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