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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76화 (933/2,000)

1176화. 칠염선(七焰煽)과 동심환(同心環)

*

천연성 전장 어딘가의 고공.

거대한 빛이 진법이 나타나 수사들과 한립을 토해냈다. 36명의 수사들은 언뜻 보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현묘한 진형을 이루어 한립과 네 명의 수사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한립은 전송되는 순간 새까만 갑옷을 불러내고 72자루의 푸른 비검들을 방출해 푸른 연꽃들로 온몸을 보호했다. 그제야 신중히 주변을 둘러보고 다른 네 명의 수사들을 확인했다.

그 중 두 명은 은발 노인과 금월선사였다. 그들은 여러 보물로 방어하고 있었지만 안색이 창백했고 옷에는 핏물이 얼룩덜룩 묻어 있어 크게 당한 듯했다. 특히 은발 노인은 장포 가슴팍이 너덜너덜했고, 한쪽 팔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들 맞은편에 혈포 소년과 구릿빛 피부의 거한이 떠있었다. 거한은 쇠못들이 박히고 화염이 타오르는 낭아봉을 들고 있었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팔 한쪽을 들고 있었다. 은발 노인의 팔을 뜯어낸 것이다!

한립과 36명의 사내들의 등장에 은발 노인과 금월선사의 표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혈포소년과 구릿빛 거한은 오직 한립만을 주시했다.

소년은 한립을 보자마자 눈빛이 표독스러워졌고 거한은 사나운 기세를 일으켰다.

“합체 후기! 아니, 일반 후기 수사보다 더욱 법력이 농후하지 않은가. 혈광 수사, 저 자가 제가 상대해야할 목표란 말입니까? 수행이 말씀하신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거한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저 놈이 맞기는 합니다만 분명 이전까지는 중기 경지에 불과했습니다. 아, 이제야 알겠군요! 얼마 전 천기현상을 일으킨 자가 저놈이었나 봅니다. 흉 형, 안심하세요. 이제 막 진급하였으니 아직 경지를 안정시키지 못했을 겁니다.”

혈포 소년이 한립을 훑고 움찔하다 놀란 기색을 숨기고 말했다.

“저 놈이 얼마 전 후기에 이른 자가 분명합니까? 착오가 생겨 또 다른 후기 수사가 나타나면 골치 아플 텐데요.”

흉 씨 거한이 한립을 향해 흉흉한 미소를 지었다.

“저놈 말고 다른 후기 수사가 있다 해도 흉 형께서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본 좌가 아무렴 그것도 해결하지 못하겠습니까. 그저 저놈만 잡아 죽여주시면 됩니다.”

“허허, 혈광 수사의 말대로 따르겠습니다. 허나 눈앞의 저것들을 처리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겠습니다.”

거한이 가리킨 것은 36명의 수사들이었다.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삼각 옥패를 쥐고 푸른빛의 장막을 불러내고 있었다. 은색 주술문자들이 떠다니는 빛의 장막은 36명의 사내들을 숨겨주었을 뿐 아니라 인근을 뒤덮었다.

“겨우 화신기 수사들이 펼친 임시 진법으로 저를 어쩐단 말입니까.”

“이 진법은 수사를 상대하기 위해 저들이 준비한 필살기로 보입니다. 그리 간단하게 보시면 안 됩니다.”

혈광 화신의 말에 거한이 고개를 저었다.

“흉 형께서 진법에도 꽤 능통하시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무슨 특별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시간이 촉박해 자세히는 모르겠고 공간금제와 연관된 진법으로 판단됩니다.”

“공간금제라니 귀찮게 되었군요. 조언 감사합니다. 이후 상응하는 보답을 하겠습니다.”

혈광 화신과 거한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립도 은발 노인을 향해 말했다.

“곡 형,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두 분은 어쩌다 그리 당한 것이고, 진법에 갇힌 또 한 명의 후기 마존은 누구입니까?”

한립은 마족 거한을 마주친 순간 솜털이 바짝 서고 긴장감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한 형, 큰일입니다! 저 후기 존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저희도 전혀 모르겠어요. 안 그래도 성조화신과 떼어놓으려 저희 둘이 나선 후, 한 형을 소환한 것인데 그 사이 저 자에게 금월선사가 중상을 입고 노부는 팔을 뜯겼습니다. 노부도 견문이 좁지 않은데 합체기 수사 중에 저런 괴물이 있을 줄은…….”

은발 노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두려움을 드러냈다.

“대승기를 앞둔 수행입니다! 어쩌면 마족 성조 화신보다 위험할지 모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한 형. 현재 천연성은 꺼내 쓸 수 있는 패를 전부 쓴 상태입니다. 성 안에서 오랜 세월 폐관 수련만 하던 장로들과 성도에서 파견 나온 사자들까지 나선 터라 저 두 마두는 오롯이 우리 셋이서 상대해야 합니다.”

금월선사가 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근심 가득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또 다른 장로들과 성도의 사자들이요?”

한립이 고개를 돌리니 여러 전장에서 낯선 합체기 수사의 기운이 대여섯 개 느껴졌다. 그들은 삼두육비의 새까만 마물들과 난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고마(古魔)!”

마물을 본 한립도 안색이 달라졌다.

“정순한 마족의 혈통을 지닌 마족들입니다. 마계에서도 진정한 원시 고마 일족으로 불리는 부류고요. 합체기 고마의 실력은 동급의 다른 마존들을 뛰어 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 수사를 소환한 것입니다.”

은발 노인이 나지막하게 설명했다.

“두 분의 말씀은 저더러 후기 마존을 상대하라는 것 같은데 그럼 성조 화신은…….”

“저희 둘이 아직 남겨둔 방법이 있습니다. 아직은 공간진법의 힘을 빌려 혈광성조 화신을 가둬둘 수 있고요. 한 형은 전력을 다해 후기 마존을 해결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금월선자와 눈을 마주친 은발 노인이 이를 악물고 부탁했다.

한립은 명청령안을 발동해 거한을 훑었다. 마침 거한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기에 눈이 딱 마주쳤다.

마족 거한은 점점 흥분하는 기색을 띠더니 갑자기 빛의 장막으로 이동해 들고 있던 은발 노인의 팔뚝을 낭아봉으로 내리쳤다.

퍽!

잘려나간 팔이 핏물이 되어 거한에게 떨어져 내렸다. 진법 안에 짙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괴이하게도 핏물이 닿는 순간 거한의 구릿빛 피부에 선홍색 문양들이 퍼져나갔다. 멀리서 보면 핏빛 주술문자가 쓰인 갑옷처럼 보였다.

은발 노인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거한은 그는 신경 쓰지 않고 한립을 향해 손을 까딱거렸다. 피할 수 없는 전투라는 것을 알았기에 한립은 결정을 내렸다.

“말씀하신대로 저 자는 제가 맡겠습니다. 하지만 저 마두를 처리하기 전에 혈광 화신이 끼어들지 못하게 확실히 막아주셔야 합니다.”

그는 은발 노인과 금월선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푸른 연꽃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순간 거한과 얼마 떨어진 곳에 푸른빛이 번득이고 그가 나타났다.

마족 거한은 두말할 것 없이 쇠못이 박힌 몽둥이인 낭아봉을 휘둘렀다.

화륵!

낭아봉에서 청록색 불길이 일어 한립을 덮쳤다. 그러나 한립은 앞에 있던 연꽃들로 벽을 만들어 불길을 막고 한쪽 소매에서는 금빛 주먹이 튀어나왔다.

금빛 찬란한 주먹 표면에 희미하게 금색 주술문자가 떠다녔다. 범성진마공이 대성을 앞두고 있다는 조짐이었다.

츠츠츠츳!

푸른 검빛과 청록색 불길이 만나자 폭음이 새어나왔다. 연기가 풀풀 날리는 것이 장관이었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금색 주먹 그림자가 녹색 바람과 맞부딪쳤다. 충돌로 인해 하늘 높이 돌풍이 치솟고 엄청난 소음이 퍼졌고, 광풍이 닿은 허공은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한립과 마족 거한은 동시에 몸을 떨며 뒷걸음질 쳐야했다. 그러나 마족 거한은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들뜬 기색으로 낭아봉을 힘껏 던지고 주술을 외웠다.

펑!

낭아봉 표면의 마염이 점점 불어나더니 불 교룡으로 변했다. 뿔이 달리고 입에서 청록색 화염을 내뿜는 교룡들은 마치 실체인 듯했다.

한립이 눈을 번득이자 푸른 거검 허상들이 하나로 뭉쳐져 빛을 사방천지로 발산하며 허공을 갈랐다.

콰릉!

천둥소리와 함께 뇌전들이 튀어나왔다. 기세등등하던 교룡들은 거검에 갈라지고 잔해는 금빛 뇌전에 맞아 흩어졌다.

그리고 푸른 거검은 그대로 사라져 거한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거검이 떨어지기 전부터 무형의 압력이 그를 짓눌렀다. 이에 거한은 얼굴을 굳히며 팔뚝을 높이 쳐들었다.

쾅!

핏빛 태양이 떠올라 푸른 거검의 빛을 없애버렸다. 거한의 팔뚝에서 일으킨 핏빛에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양손에서 푸른빛을 방출해 또 한 번 허공에 푸른 거검을 만들어냈다. 푸른빛을 발산한 거검이 72개의 검빛으로 흩어져 거한을 갈랐다.

파앗.

거한이 냉소하며 팔뚝의 핏빛을 거두고 새빨간 갑옷을 불러내 팔뚝을 감쌌다. 갑옷의 화려한 문양이 피부에 생겨났던 문양과 똑같았다. 갑옷은 한립이 불러낸 검빛들을 모조리 격파했다.

거한은 허공에 뜬 낭아봉을 가리켜 다시 청록색 불길 속에서 머리가 여덟 개 달린 거대 교룡을 만들어냈다. 태양을 가릴 만큼 거대한 크기였다.

여덟 머리가 이를 드러내고 흉흉한 기세로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교룡의 맹렬한 공격에도 그는 무표정하게 서있었다.

곧 그의 등 뒤로 금빛 빛기둥이 솟아오르고 삼두육비의 허상이 떠올라 여섯 개의 주먹을 날렸다.

퍼퍼퍼퍼퍼퍽!

거대한 교룡이 금색 주먹 허상에 의해 찢겨나가다 펑! 하고 연기로 흩어졌다. 금빛이 가라앉자 실체를 지닌 삼두육비 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엇, 금신법상? 성족의 공법과 비슷하지 않은가!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이번에 마음껏 놀아볼 수 있겠어!”

거한의 몸에서 검은 마기들이 떠오르자 피부의 핏빛 문양들이 더욱 강한 빛을 발했다. 마기들이 흩어지고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갑옷이 거한의 몸 전체를 보호했다.

거한이 두 주먹을 마주치자 새까만 법상이 그의 등 뒤로 떠올랐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거한과 새까만 법상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립은 등 뒤로 수정 날개 한 쌍을 불러내 펄럭였다. 그가 은색 뇌전으로 사라지자 삼두육비 금신도 종적을 감추었다.

다음 순간, 허공에서 두 개의 인영이 맞붙었다.

한립과 거한 사이에 주먹과 발길질이 오갔고 다양한 보물들까지 방출해 서로를 공격했다. 은발 노인과 금월선사가 멀리서 그것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립의 실력이 대단한 것은 알았지만 그들 둘을 궁지로 내몰던 마족 거한과 이렇게까지 잘 싸워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혈광성조 화신은 난색을 표하며 살기어린 눈빛으로 무언가를 발동하려 했다. 그때 혈광화신의 발밑에 흐릿하게 하얀빛의 진법이 나타나 공간파동을 일으켰다.

“안 돼!”

대승기 본체의 견문을 지니고 있는 혈광화신은 그것을 보자마자 달아나려 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주변이 흐릿해지며 그는 곧 이상한 하얀 공간 속에 떠 있었다.

그 공간 속에 은발 노인과 금월선사도 나타나 숙연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 꼴을 하고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네 놈들을 요절낸 다음 한 가 놈을 찾으러 가야겠다!”

소년의 청수한 얼굴에 잔혹한 표정이 떠올랐다.

“대사, 이번에는 우리 두 늙은이가 정말 목숨을 걸고 싸워야겠습니다. 아직까지 숨겨둔 비술이나 보물이 있다면 마음껏 써봅시다. 저 자를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을 것입니다!”

은발 노인이 차분하게 노승을 향해 말했다.

“물론이지요. 이 늙은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저 마두가 이곳을 곱게 떠나게 두지 않을 작정입니다!”

“허허, 금 수사 시작해 봅시다!”

은발 노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양손에 보물을 하나씩 꺼내들었다. 일곱 빛깔의 깃털 부채와 은색 고리 다섯 개가 연결된 보물이었다.

“칠염선(七焰煽)과 동심환(同心環)! 곡 형, 그런 영보를 두 개나 지니고 계시고도 평소에 일언반구도 없으셨습니다.”

금월선사가 보물들을 알아보고 희색을 드러냈다. 이어서 노승은 걸치고 있는 가사를 펄럭여 범문(梵文)을 냈다. 범문들이 모여 금색의 희미한 불상들을 만들어냈는데 그 수가 18개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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