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5화. 천연대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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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은 금제로 덮여있었음에도 파도처럼 밀려드는 마수들의 포효소리와 폭음이 똑똑히 들려왔다. 천연성을 중심으로 수많은 파동들과 굉음이 번져 누각도 낮게 떨리고 있었다.

마수대군이 공격을 개시했고 성벽의 인요족 병사들도 반격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대규모 전투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36명의 청포 수사들은 눈을 감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강대한 의식을 퍼트려 바깥 상황을 알아보았다.

마수대군이 물밀 듯이 들이닥쳤고 고계 마수들이 다양한 신통을 발휘해 앞장서고 있었다. 수행이 낮은 고계 마수가 연허기 경지를 지녔고 몇몇은 합체 초기의 수행을 지녔다.

초대형 마수들도 저계 마수들의 비호를 받아 교활하게 움직였다. 네다섯 마리가 한데 모여 돌아가면 공격을 퍼붓고 서로를 보호했다.

그러나 천연성의 반격도 이전보다 배는 강력했다. 끝없이 펼쳐진 성벽 위에서 영기의 빛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강렬한 법술을 쏟아냈다.

그저 마수들의 수가 너무 많고 가죽이 두껍고 강한 마수들이 천연성의 공격을 막고 성벽의 금제로 돌진해 물리적인 공격을 가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성벽 주위로 두꺼운 피부를 지닌 마수들의 잔해가 쌓여갔지만 끊임없이 달려드는 탓에 천연성의 보호막도 점점 위태로워졌다. 그러나 혈포 소년이나 성벽 위의 은발 노인은 그것에 큰 감흥이 없었다.

쨍!

성벽 바깥의 보호막이 맑은 소리와 함께 금이 간 순간 은발 노인이 진법 법기에 대고 냉랭히 명을 내렸다.

“진법을 발동하고 영석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 천하사보를 발동하라!”

명령을 전달하는 수사들이 진법 원반에서 울리는 명을 듣고 똑같이 명령을 반복했다. 동시에 각각의 제단 위에 고계 수사들이 나타나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우며 보물을 가리켰다.

호리병박, 병풍, 비검, 발우가 맑게 울고 진법 속에서 오색 빛을 발산했다. 엄청난 영기가 네 개의 보물들을 향해 밀려들어왔다.

영기의 빛을 머금은 네 보물들은 서서히 날아올라 앞 다투어 강력한 위력을 펼쳐보였다. 먼저 남색 발우와 새까만 호리병박이 각각 뒤집어져 남색 모래알들과 새까만 검은 액체를 흩날렸다.

남색 모래알은 순식간에 흩어져 그 수가 몇 만 배 이상 불어나 모래사막으로 변해 수만 마리의 마수들을 덮쳤다. 아무리 튼튼한 마수라 해도 모래에 휩쓸려 만신창이가 되었고 혼백도 달아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새까만 호리병박이 분출한 새까만 액체는 폭포처럼 쏟아져 물방울이 튄 곳마다 천 여 마리 마수를 녹여버렸다. 마수들은 비명도 남기지 못하고 무(無)로 돌아갔다.

새까만 액체는 극독을 지녔기 때문에 평범한 마수들은 버틸 수가 없었다. 한편 은색 비검이 별안간 산만하게 커져 진동소리를 내며 분해되었다.

수천 개의 은색 검 허상들이 마수들을 도륙하기 시작했고, 은색 검 허상이 지나는 곳마다 마수들은 힘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하얀 병풍은 아주 흐릿하지만 거대하게 늘어나 소리 없이 마수 대군으로 떨어져 내렸다. 괴이하게도 병풍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빛이 감싼 순간 마수들이 종적을 감추었다.

하늘에 네 개의 보물로 뒤덮이고 순식간에 수십만 마리의 마수들이 멸살 당했다. 고계 마수들도 네 보물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포효소리가 들리고 검은 구름, 노란 괴풍 그리고 핏빛 둔광 두 줄기가 마수대군 후방에서 나타나 네 보물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한립은 여기까지 확인하고 의식을 거둬들였다. 천하사보가 아무리 강력해도 마족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내보냈을 것이다.

‘양쪽의 진정한 실력자들이 나서야 전쟁의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의천성 전투에도 의천성 금제가 사라진 후에야 고계 수사들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그 전까지는 그저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한립은 혈광성조 화신을 마주치면 절대 상대가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

시간이 흘러도 대전의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전투가 격렬해지면서 금제를 뚫고 경천동지할 굉음이 대청을 울리기도 했지만 한립은 물론이고 청포 수사들마저 고개를 숙이고 움직임이 없었다.

장장 세 시진이 지나 대청의 진동이 멈추었을 때 엄청난 기세가 담긴 파동이 밀려들었다. 보통 수사들이나 저계 마수가 낼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으니 양방의 고계 수사들이 나섰다는 이야기였다.

파동과 폭음의 밀도로 보아 마족 정예병들이 모두 나선 것 같았다. 한립이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금제 밖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와 귀청을 때렸다.

‘큰일이다!’

귀가 얼얼해지자 그는 소매를 펄럭여 회색 기운으로 대청 전체를 둘러쌌다. 36명의 청포 사내들을 둘러보니 역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의 두 귀에서 희미하게 핏자국이 보였다. 한립은 미간을 좁히며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수사들의 고통이 크게 줄어들었는지 다시 정좌를 하고 운기조식을 했다.

한식경이 지나자 불편함이 사라진 수사들의 안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우두머리 수사가 감사를 표했다.

“아니다. 내가 있는 한 너희에게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방금 그 소리는 마족 존자가 나선 모양이구나. 이곳을 떠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서 원기를 회복하거라.”

“예, 최선을 다해 선배님께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우두머리 사내들이 다시 눈을 감고 운공에 들어갔다. 그는 다시 한 번 금제 밖으로 의식을 내보냈다.

성 주변에는 천하사보와 함께 마수대군의 9할이 사라져 있었고 남아 있는 고계 마수들도 대부분 상처투성이였다.

초대형 마수들도 인요족이 무슨 보물을 써서 처리했는지 8마리 정도만 살아 있었고 대부분 기운이 빠져 별 힘을 쓰지 못했다.

천연성의 성벽 아래 마수들 대신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7, 8백 만 명 정도 들어차 있었는데 괴이하게도 원영기 이상의 마족들이 하늘에 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두 발로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는 천연성의 금지 중 한 곳에서 천여 개의 소형 진법들이 발동되어 무형의 금제로 인근에 제약을 가해놓은 것이었다.

초대형 금공금제(禁空禁制)는 평범한 금제와 달리 오직 마족에게만 효과가 있어 인요족 병사들은 수행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족 병사들은 그 수나 실력에서 성을 지키는 일반 병사들을 능가했기에 금제의 제약을 받으면서도 홍수처럼 밀려들어 혼전을 펼쳤다.

천연성의 현묘한 보호막은 언제 공격을 받아 부서졌는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평범한 마족 병사들과 성을 지키는 일반 병사들이 아니라 성 벽 위에서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고계 수사들이었다.

화신급 이상의 수사들이 열댓 명 혹은 수십 명씩 뭉쳐 허공에서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새까만 마운(魔雲)이 꿈틀거리고 현란한 신통들이 맞닥뜨려 하늘에 폭죽을 터트린 것 같았다. 그 중 몇 개가 수사들의 이목을 끌었다.

하나는 마운과 남색 액체가 교전하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그 안에서 남색 뇌전으로 둘러싸인 그림자와 새까만 인영이 싸움을 벌였고, 또 하나는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거대한 그림자가 입에서 바람의 칼날들을 분출하는 중이었다.

그 상대는 노인으로 커다란 깃털 부채를 마구 부쳐 남색과 붉은색 돌풍에서 물과 불의 영기가 가득 담긴 공격을 가했다.

마지막으로 검은 장포 사내가 새빨간 북을 들고 붉은 음파를 발산해 거대 마조(魔鳥)를 공격했다. 마조는 붉은 음파를 맞으면서도 악착같이 버텨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다가가는 인족이나 마족 수사들은 없었다. 괜히 음파의 영향에 휩쓸릴까 경계한 것이다.

조금 전 한립이 있던 누각까지 들린 날카로운 소리는 마조가 내뿜는 음파가 분명했다. 사내와 마조가 서로의 음파를 대부분 막고 있어서 다행이지 둘 중 하나라도 자유롭게 상대 병사들을 공격하면 대량 살상이 가능할 것이다.

한립은 놀랐지만 그의 임무는 혈광성조 화신을 막는 것이었다. 천연성이 밀리지 않는 한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바깥의 전투는 마족 존자들과 인요족 장로들의 등장으로 더욱 치열해졌다.

마족 존자들의 수가 천연성 합체기 수사를 넘어섰기에 몇몇 마존들 앞에는 인족 합체기 수사가 아닌 오색의 알록달록한 복색을 한 수사들이 부대를 이루어 나타나 막아섰다.

연허기 수사들이었다. 마존들은 그들을 보고 하찮다는 듯 흉악한 웃음을 흘렸다.

그때 인족 연허기 부대 중 일부가 품에서 단약을 꺼내 삼켰다. 그러자 그들은 털이 북슬북슬한 거구로 변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기운을 내뿜었다.

나머지 병사들도 새까만 고리를 꺼내 들자 그들 옆에 음산한 바람이 일고 커다란 체구를 지닌 꼭두각시들이 나타났다.

핏기라고는 없는 창백한 얼굴에 청록색 눈을 번득이는 꼭두각시들은 음풍을 휘날리며 마존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에 마존들은 새까만 거대 손을 만들어 꼭두각시들을 내리치고 입에서 검은빛을 뿜어 꼭두각시들의 허리를 잘랐다. 꼭두각시들이 힘도 못쓰고 으깨지거나 잘려나갔다.

마존들이 웃음을 터트리며 나머지 인족 병사들을 처리하려는데 꼭두각시들이 검은 기운에 휩싸여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꼭두각시들은 온전한 몸을 되찾자마자 또 다시 달려들었다.

“불사체! 아니야, 무언가 다른 수를 쓰고 있다!”

마존 하나가 놀라 소리를 높였다.

* * *

같은 시각, 천연성의 어느 석탑 안.

검은 장포를 입은 수백 명의 수사들이 무표정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팔뚝만한 나무 괴뢰를 띄워놓고 있었다.

회백색 주술문자가 새겨진 나무 괴뢰들은 수사들이 법결을 던져 넣을 때마다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괴뢰들에게 마존들이 붙들려 있는 동안 연허기 병사들이 거대 진법 원반을 박차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바로 마존들 인근으로 순간이동을 해 나타난 병사들은 오색찬란한 깃발을 필사적으로 흔들었다.

쿠르릉!

오색구름들이 쏟아져 나와 마존들을 뒤덮었다. 구름 속에 은색 주술문자들이 가득한 것이 심상치 않은 공격 같았다.

쾅!

안에서 폭음과 분노한 고함소리가 들려왔지만 오색구름은 단 한 명의 마존도 놓치지 않았다.

바로 그때, 반요화한 요수들이 우두머리의 울부짖음에 맞춰 부적을 몸에 붙이고 모호한 요풍(妖風)으로 변해 구름 속으로 날아들었다.

구름 속의 굉음이 이전보다 잦아졌고 요수들과 마존들의 기운이 섞여 누가 승기를 잡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수백 명의 수사들과 괴뢰들이 놀랍게도 일고여덟 명의 마존들을 단단히 붙들어 두고 있었다.

후웅!

게다가 천연성에서 백여 개의 거대한 석탑들이 뽑혀 올라와 마족대군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마족에서도 거대 전함과 삼각 탑들이 거침없이 무수히 많은 검은 빛기둥들을 난사했다.

석탑들은 검은 빛기둥을 맞고서도 쓰러지지 않고 마족 진영에 인접해서야 문을 열었다. 그러자 수많은 꼭두각시 병사들과 각양각색의 영수들이 쏟아져나오 부나방처럼 달려들었다.

마족 전함과 삼각 거탑 주변을 지키던 대량의 마족 병사들과 마수들이 무리지어 튀어나왔다. 또 한 번 피바람이 몰아쳤다.

한립은 의식을 거두고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언제 그들이 나서야할 때가 올 지 알 수 없었지만 머지않았을 것이다.

과연 반 시진이 못 되어 그가 앉아 있는 거대 진법이 크게 울리며 하얀빛을 뿜어냈다. 주변에 둘러앉은 수사들이 서둘러 삼각형의 옥패를 꺼내 진법에 힘을 실었다.

다채로운 영기의 빛이 삼각 옥패를 통과해 보라색 주술문자로 변해 진법 주위를 떠다녔다.

한립은 그것을 보고 무언가를 떠올리기도 전에 눈앞이 흐려졌다. 순식간에 진법이 방출하던 하얀빛이 사라지고 한립과 36명의 수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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