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171화 (928/2,000)
  • 1171화. 합체후기 (2)

    *

    무슨 수를 쓴 것인지 천외마두 의식이 한립의 의식 속에 침투해 심마까지 키워 놓았다. 동급 수사들보다 강력한 의식을 가진 그였지만 빨리 눈치채지 못했으면 더 치명적인 순간에 곤란에 처했을 것이다.

    “천외마두의 말을 어찌 믿지? 내가 약한 마음을 먹는 순간 심마가 그 틈을 타 원신을 잡아먹을 게 분명한데 말이야. 천외마두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형체도 없이 살인을 자행한다더니 거짓이 아니었군.”

    한립은 흔들림이 없었다.

    “키킥! 약삭빠른 것은 여전하구나. 그렇다면 네가 죽기만을 천천히 기다려 주마. 천겁을 버티지 못해 숨이 끊기면 어차피 마갑은 본 좌의 손에 떨어질 테니까!”

    천외마두의 목소리가 굵고 탁하게 변했다. 이때 소매를 턴 심마가 검은 기운으로 새까만 자를 만들어내 한립의 공격을 똑같이 따라했다.

    그 모습에 한립은 안색이 가라앉았는데 의식 절반이 소식을 전해왔다. 바깥의 천겁이 극해 달해 그가 남겨 놓은 법력과 의식으로는 대응하기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당장 심마를 죽이고 천겁에 집중해야했다. 한립은 기합을 넣고 온몸에 금빛을 일으켰다. 급작스럽게 부풀어 오른 몸에 금색 털이 돋아 금털 원숭이로 변신했다.

    “공법, 보물은 똑같이 따라 해도 변신술은 못하겠지. 내 주먹맛이나 보거라!”

    거원이 윙윙거리는 목소리로 외치며 두 팔을 휘둘렀다. 주먹이 갖고 있는 괴력은 파도처럼 밀려들어 심마를 단번에 으깨놓을 것 같았다.

    이에 한립이 기이한 표정을 지으며 두 팔에 검은 비늘을 일으키고 허공을 할퀴었다.

    쉬쉬쉬쉭!

    검은 손톱이 그물을 이루어 금빛 파도를 밀어냈다. 잠시 버티던 그물은 금빛 파도가 이어지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찢겨나갔다.

    그 찰나의 순간, 심마가 72개의 비검들을 불러들여 흡수하고 괴성을 질렀다. 심마의 몸이 거대해져 검은 기운을 미친 듯이 뿜어냈고, 머리에는 검은 뿔 두 개가 솟아올랐다.

    소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마물로 변신한 심마는 더 이상 거원을 두려워 않고 두 주먹으로 직접 공격을 가했다.

    쿠르릉!

    금털 원숭이는 충격으로 몇 걸음 물러났고 마물은 무릎이 꺾여 바닥으로 떨어져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었다. 이번 일로 한립은 상대도 변신하면 그보다는 못 미쳐도 엇비슷한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결국 이기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한립은 이를 악물고 결단을 내렸다. 법력 소모가 커서 남은 천겁을 이겨내는데 영향을 미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파앗.

    거원이 자세를 잡고 길게 포효하자 등 뒤로 삼두육비 금색 법상이 떠올랐다. 여섯 개의 눈을 번쩍 뜬 금색 법상이 허상으로 변해 거원의 몸으로 뛰어들었다.

    금빛이 흐른 거원의 몸에 털이 북슬북슬한 네 개의 팔과 두 개의 머리가 돋아났다. 금털 거원은 삼두육비의 몸이 되어 땅을 박차 올랐다.

    거원의 손에서 금빛덩이가 떠올라 빙글빙글 회전했다. 빛덩이들은 빠르게 퍼져나가 거대한 빛무리를 만들었다.

    거원의 세 머리가 동시에 주문을 외자 오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색 빛무리 속에서 주술문자들이 떠올라 선회하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고, 여섯 개의 팔이 그것을 받쳐들었다.

    금색 소용돌이 속에서 주술문자들이 반짝일 때마다 강력한 흡인력이 발생해 소머리 마물을 빨아들였다. 마물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한립의 본체를 복제한 것이라 진령의 피가 필요한 경칩결은 유일하게 따라할 수 없는 신통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공격은 대항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마물이 72개의 검은 비검과 두 개의 극산 그리고 자를 미친 듯이 불러내 소용돌이를 공격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보물들은 소용돌이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금빛 주술문자로 이루어진 기운에 휩싸여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서 작은 폭음이 들린 후로는 보물들은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쾅!

    마물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검붉은 갈퀴를 꺼내 바닥 깊숙이 박아 넣고 그제야 끌려가던 몸을 간신히 멈추었다.

    마물이 막 희색을 드러내려는 순간, 거원은 여섯 개의 팔을 뻗어 금색 소용돌이를 던졌다. 그러자 금빛 소용돌이에 말려든 심마가 비명을 내질렀다.

    심마가 자취를 감추고 사내이기도 하고 여인이기도 한 괴상한 목소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심마를 죽이다니 아주 운이 좋은 녀석이구나! 허나 내가 또 다른 심마를 만들어내면 그때도 같은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검은빛이 허공에서 응결하자 희미하게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또?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내게 존재를 들켜 놓고 다시 숨으려 들다니 헛꿈 꾸지 말거라.”

    삼두육비 거원이 소리치고 입에서 푸른빛을 뿜었다. 푸른빛은 한립 체내의 정순한 영기가 뭉친 것으로 그 안에 타다 남은 노란색의 향초가 담겨 희미하게 단향목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두 눈에 남색빛을 일렁인 거원은 향초를 불러들여 두 손을 비볐다.

    화륵!

    은색 불꽃이 나타나 노란 향초에서 잔잔한 연기를 피워냈고 동시에 거원은 뺨을 부풀렸다가 힘껏 바람을 불었다.

    핑!

    노란 연기가 화살처럼 변해 허공을 꿰뚫었다. 한립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허공이 왜곡되고 노란 화살이 정확히 꽂혔다.

    “평범한 보물로는 본 존을 상처 입힐 수는 없다!”

    검은빛 속에 손바닥만 한 소인(小人)이 모습을 드러내고 몸을 관통한 화살을 비웃었다. 얼굴이며 형상이 흐릿하기는 했지만 사악한 기운을 풍겨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내가 언제 평범한 보물이라고 했지? 네 본체가 정말 천외마군이든 아니든 마기를 품은 의식이라면 쫓겨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뭐라고? 아니, 이건…….”

    새까만 빛 속에서 소인이 뭔가를 떠올렸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노란 화살이 펑! 하고 터져 진한 향기와 노란 연기로 일대를 가득 채웠다.

    “말도 안 돼! 영계에서는 멸종된 흑유빙향(黑幽氷香)을 네 놈이 어찌! 허나 너무 좋아하지 말거라. 네가 대승기에 이르려 할 때는 내 친히 강림해 이 수모를 갚아줄 것이다.”

    노란 연기에 갇힌 검은 소인이 날카롭게 저주를 퍼붓고 온몸에 수많은 구멍이 뚫려 허물어졌다. 천외마두의 한 줄기 마념(魔念)을 의식 속에서 완전히 몰아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것을 본 삼두육비 거원은 수결을 맺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한립은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가쁜 숨을 내쉬었다. 법력과 심력 소모가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소인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바로 수결을 맺어 흩어졌다. 심마의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외부와 의식을 단절해 놓았으니 바로 본체로 돌아가야 했다.

    한립이 번쩍 눈을 떴을 때는 주변을 떠돌던 잿빛 점들이 어느새 커다란 다섯 마리의 귀물(鬼物)이 되어 그를 보호하는 보물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다섯 귀물들이 돌아가며 공격하는 통에 보물들이 잘게 진동하고 영기로 만들어낸 보호막도 위축되어 있었다.

    “사기(邪氣)가 뭉쳐 만들어진 살마(煞魔) 따위가 내 일을 방해해? 썩 꺼지거라.”

    한립은 곧바로 금빛 뇌전을 뿜었다.

    콰르릉!

    다섯 귀물들은 금빛에 닿는 순간 연기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한립은 좋아하기는커녕 더욱 신중한 얼굴을 했다.

    천겁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금제와 진법들이 몇 겹의 보호막을 이루어 석탑을 감싸고 있었고 그 위로 81마리의 검은 교룡들이 폭우처럼 다채로운 뇌전 공격을 퍼붓고 있었던 것이다.

    크고 작은 뇌전들이 내리꽂히는 통에 금제가 버티지 못할 것처럼 진동했다. 마침 허공에서 떨어지던 각양각색의 뇌전들이 중간에서 뭉쳐져 굵은 뇌전이 되었다.

    쨍강!

    경쾌한 소리를 내며 보호막이 깨져나가고 오색 뇌전이 탑 꼭대기에서 사라져 공간을 넘어 한립이 있는 밀실 위에서 나타났다. 한립은 소매를 펄럭여 열댓 줄기의 금색 뇌전을 분출했다.

    콰르릉 콰콰쾅!

    천둥소리가 울리고 오색 뇌전과 금색 뇌전이 함께 소실되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더 많은 오색 뇌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푸른빛 72개를 쏘아 보냈다. 푸른빛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용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푸른 검기들이 빼곡하게 밀실 구석구석을 채우고 한립 머리 위로 푸른 빛구슬이 떠올랐다. 빛구슬이 회전하며 눈부신 빛을 뿜은 순간, 구슬을 깨고 짙푸른 반룡(蟠龍)이 날아올랐다.

    한립이 푸른 검기로 밀실 벽을 강화하고 수십 개의 비검으로 청반검진까지 펼친 것이다.

    그의 필살기 중 하나로 밀실 위로 떠오른 반룡은 오색 뇌전에도 끄떡없이 잘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고공의 불구름이 줄어들며 불속성 영기가 뭉쳐져 더욱 강력한 불구슬을 만들었다.

    불구슬이 뚝뚝 떨어졌지만 한립은 두려운 기색 없이 두 극산을 가리켰다. 회색의 원자신광과 무형의 검기들이 두 극산에서 흘러나왔다.

    * * *

    81마리의 검은 교룡들이 스스로 폭발해 검은 기운으로 변했을 쯤 해가 떠올랐다. 주변의 고계 수사들은 천겁에 대응하는 한립의 신통에 이만저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지독한 천겁은 난생처음 보았고, 그것을 홀로 막아내는 한립의 신통에 감탄을 금치 못한 것이다. 흩어지는 검은 교룡들은 그 와중에도 길게 울부짖었다.

    그때 푸른 빛줄기가 탑에서 치솟아 검은 기운을 제거하고 다양한 색의 주술문자를 남겼다. 빛기둥은 거대한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는데 그 모습이 한립과 똑같았다.

    “와, 저건 한 선배님이 아니신가!”

    “알고 보니 한 선배님께서 후기 고비를 넘고 계셨던 것이로구나. 어찌 이런 일이!”

    허공의 허상을 보고서야 천기현상을 일으킨 수사가 한립이라는 것을 안 수사들은 소란스러워졌다. 푸른 허상은 주변의 빼곡한 주술문자들을 보고 담담히 미소 짓더니 입을 벌려 그것을 들이마셨다.

    이에 주술문자들은 수많은 빛의 점으로 부서져 허상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푸른 허상이 커지자 인근 빛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빛의 점까지 부나방처럼 몰려들었다.

    “모두 물러나라! 한 수사께서 후기 천겁을 이겨냈으니 이제 천지원기를 삼켜 원신을 다시 이룩할 것이다. 우리가 있는 곳은 그 범위 안이니 얼른 자리를 피해 한 수사에게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한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멍하니 지켜보던 은발 노인이 그 광경을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주변 고계 수사들이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라 눈치를 보다 물러나기 시작했다. 인족과 요족 연체기 수사 몇몇은 머뭇거리다 은발 노인의 냉랭한 시선을 받고서야 어색하게 날아가기도 했다.

    “이곳에 남아 한 수사의 천지원기를 도둑질하려 하다니 속이 시커먼 놈들이 아닙니까.”

    “그런 욕심이 들 법도 하지요. 한 수사가 후기에 이르러 원신을 다시 주조하느라 불러들인 천지원기는 영계에서 최고로 정순한 힘이 아니겠습니까. 몰래 약간만 취해도 앞으로의 수행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냉랭한 은발 노인의 말에 금월선사가 인자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다고 아무나 다 천지원기를 강탈해가면 한 수사가 원신을 이룩하는데 해가 될 것 아닙니까. 아무리 미세한 차이라도 한 수사가 이 일로 불만을 품게 둘 수는 없습니다.”

    푸른 허상을 지켜보는 은발 노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그도 그렇습니다! 한 수사의 원신 주조에 문제가 생기면 무턱대고 천지원기를 흡수한 자들을 가만 놔두겠습니까? 한 치 앞을 모르고 어찌 그리 욕심들을 부리는지……. 그래도 이번 일은 본 성의 복입니다. 빈승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에요! 한 수사에게 얼마간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강력한 천겁을 이겨내고 순조롭게 도겁할 줄은 몰랐습니다.”

    “합체 초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겨우 몇백 년 밖에 걸지 않다니! 저는 이 나이 먹도록 뭐하고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본 족에 또 한 명의 대승기 수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한 수사의 자질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합체 후기에 이르는 것이 아무리 어려워도 대승기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누구도 함부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은발 노인의 말에 금월선사는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