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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70화 (927/2,000)

1170화. 합체후기 (1)

*

대전을 벗어난 은발 노인의 안색이 대번에 달라졌다.

그가 감응하는 영기의 흐름이 평소와 무척 달랐기 때문이다. 강력한 무형의 힘에 영향을 받은 영기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노인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고 금월선사와 같이 높이 올라갔다.

그곳에는 이미 열댓 명의 병사들이 모여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의사대전 경계를 서는 이들이 저리 경망스러워서야…….’

은발 노인의 헛기침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병사들은 노인과 금월선사를 향해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

“아!”

은발 노인이 막 무어라 훈계를 하려는데 옆에 서있던 금월선사가 탄성을 내뱉었다. 은발의 노인은 얼른 고개를 돌려 병사들이 정신없이 쳐다보던 곳을 보았다.

멀리 하늘 끝에 새빨간 구름이 모여들더니 거대한 불덩이를 만들어냈다. 구름 아래로는 다채로운 색의 기운들이 빠르게 모여들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펼쳐져 있었다.

새빨간 구름과 불덩이가 얼마나 크고 강렬한지 드넓은 천연성을 절반이나 가렸다.

게다가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그곳에서 퍼져 나오는 막대한 영기의 압력이었다. 이렇게 멀리서도 숨이 막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강도가 더 세지고 있었다.

“이런 천기현상은 중기 고비를 넘길 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금 수사, 어서 가봅시다. 누군가 후기에 이르려는 것이면 본 성의 큰 행운이 아닙니까! 우리가 가서 호법을 서며 다른 소란을 줄입시다.”

기쁨에 찬 은발 노인이 승려에게 빠르게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곡 형께서 안 가셔도, 빈승은 구경 갈 생각이었습니다. 후기 도겁을 볼 수 있는 것만도 얼마나 큰 기연인데요. 오늘 잘 봐두면 앞으로 제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금월선사는 흔쾌히 답했다. 그들은 각자 은빛과 금빛으로 변해 천기현상이 벌어지는 곳으로 쏘아져 나갔다.

* * *

다른 천연성 고계 수사들도 사방팔방에서 튀어나와 천기현상이 벌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다만 중, 저계 수사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호기심이 일었지만 그들이 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구경만 했다.

그들은 구경하며 별별 가설을 다 내놓았다. 누군 희귀한 영보가 탄생을 한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강력한 신통을 지닌 영수가 구름을 삼키고 안개를 토해낸다는 희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러나 누군가 도겁하는 중이라는 의견이 중론이었다. 그들 중 견문이 넓은 이들은 합체기 수사는 되어야 이렇게 놀라운 광경을 만들어낼 것이라 말했다.

은발 노인과 금월선사가 그곳에 이르렀을 때는 먼저 도착한 연허, 합체기 수사들이 백여 리 떨어진 곳에서 하늘을 주시하고 있었다.

은광선자도 그 속에 있었다. 그녀는 은발 노인과 금월선사를 발견하고 인사하고는 다시 심각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제 기억대로라면 이곳에 거주하는 합체기 수사는 한립 수사뿐일 텐데요?”

은발 노인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금월선사를 향해 물었다.

“맞습니다. 게다가 천기현상 정중앙에 한 수사의 거처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번 천기현상은 한 수사가 불러일으킨 것이란 소리군요! 이번 폐관의 목적이 합체 후기 고비를 뚫기 위해서였단 말입니까.”

“지금으로 보아서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후기 고비를 넘기기 위한 조짐 치고는 천기현상의 기세가 정말 대단합니다.”

“이상한 일도 아니지요. 본래 이런 조짐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요. 어찌 되었든 기세가 크다는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천기현상이 이리 대단하면 그만큼 고비를 넘기기도 어려울 테니까요.”

침음하던 은발 노인이 걱정을 표했다.

“합체 중기의 수사는 인족과 요족에 꽤 되지만 후기 수사는 손에 꼽힙니다. 한 수사는 중기에 이른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놀라운 수련 속도는 전무후무한 것 아닌지요. 상고시대의 명성이 자자하던 인물들도 한 수사보다는 못했습니다.”

금월선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한 수사의 실력이 뛰어난 만큼 진급을 위한 천겁도 강력할 수밖에요. 이렇게 단시간 만에 수행을 높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허허, 저희 모두 추측에 불과하니 기다려 보시지요. 한 수사가 우리 모두를 또 한 번 크게 놀라게 해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노인의 걱정에 금월선사가 가볍게 웃어 보였다.

“제발 그랬으면 좋습니다. 후기 수사가 한 명 더 늘면 앞으로 마족과의 결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중기의 수행으로 후기 수사를 상대했던 실력이면 후기에는 마족의 성조 화신과도 겨뤄볼 수 있을 겁니다.”

“마족 성조 본체가 아직 강림하지 않았으니 성조 화신이 마족 대군의 가장 큰 전력입니다. 한 수사가 그들을 막아준다면 우리가 포기한 원래 계획을 시행해 마족존자들을 상대할 수도 있겠지요.”

금월선사의 말을 끝으로 그들은 조용히 천기현상을 주시했다.

고공의 새빨간 구름이 불바다가 되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구름 속의 화려한 기운들이 뭉쳐져 오색찬란한 거대 주술문자로 변해 반짝였다.

돌연 주술문자들이 바르르 몸을 떨며 구름 밖으로 돌진했다. 당장이라도 구름을 뚫고 밖으로 나갈 것 같았다.

쿠르릉!

구름이 크게 진동하자 바깥으로 튀어나가려던 주술문자들이 치지직 거리는 소리를 내며 분분히 터져나갔다. 주술문자들은 구름에 갇혀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파앗!

이어서 허공에 푸른빛이 반짝였다. 흐릿한 사람 그림자가 나타나 무표정하게 허공을 가리켰다. 파문이 일고 거대 주술문자가 삽시간에 열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수백만 개의 거대 주술문자들이 파도처럼 구름 위로 솟구쳤다. 구름은 어떤 현묘한 능력을 지녔는지 그 태산과 같은 압력을 꿋꿋이 버텨냈다.

구름이나 거대 주술문자가 영원히 대치 상태를 이루지는 않겠지만 거대 그림자는 기다리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분명 허상에 불과한 그림자의 주먹질에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푸른 사람 그림자가 허물어지고 무형의 괴력이 구름으로 몰려들어 폭발했다.

콰르르르!

잇달아 들리는 폭음에 구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주술문자 일부가 그 틈새로 빠져나가자 구름의 구멍이 바로 메꾸어졌다.

달아난 주술문자들이 한데 모여 놀라운 크기의 주술문자를 만들어냈고 점점 더 또렷해지는 것이 거의 실체를 갖춰가고 있었다.

콰르릉 콰콰쾅! 콰쾅! 콰콰쾅!

이때 구름이 갑자기 천둥소리와 뇌전을 방출하고 새까만 거대 교룡들을 뿜어냈다.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천둥소리가 계속되었다.

“81마리! 어릴 적 어느 선배님께서 후기 천겁을 치르는 것을 보았는데 겨우 36마리의 뇌전 교룡을 불러들였을 뿐이었습니다. 한 수사의 천겁이 이리 강력한 것이 믿기지가 않는군요!”

차분하던 금월선사가 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강렬해서야 한 수사가 어찌 이겨낼지 모르겠습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후기에도 이르지 못하고 원기도 크게 상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아닙니까! 천겁은 다른 사람이 끼어들기 어렵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안 그랬으면 우리가 도움을 주었을 텐데요.”

은발 노인은 탄식했다. 그는 이미 한립이 후기에 이르지 못할 거라 단정 짓고 있었다.

“곡 형, 그리 걱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한 수사가 이런 때에 후기 고비를 넘고자 한 것은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했지만 금월선사도 걱정스런 얼굴이었다.

콰르릉 콰쾅!

승려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꽂혔다! 기이하게도 금색 뇌전 수십 가닥이 아래에서 솟아올라 구름 속의 검은 뇌전 교룡들을 공격했다.

콰르르릉!

금빛 뇌전이 이르는 곳마다 검은 교룡의 방대한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뚫린 자리에서 은빛 뇌전이 번득였지만 금빛에 모조리 흡수당하고 말았다. 금빛 뇌전도 금방 사그라졌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검은 교룡 전체가 빨려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금빛 뇌전 공격이 검은 교룡들을 자극한 것이 분명했다.

쿠오오오오!

검은 뇌전 교룡들의 입에서 잿빛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불구름이 바람에 힘입어 더욱 거세진 상태로 함께 섞여 떨어져 내렸다.

불은 바람의 힘을 빌려 활활 타오르고 바람은 불의 힘을 빌려 매섭게 몰아쳤다. 멀리서 보면 불바다가 내려앉고 있는 것 같았다.

금월선사와 은발노인의 표정이 굳었다. 불바다의 위력이 멀리 떨어져 지켜보는 다른 수사들에게도 강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다른 수사들도 천겁 시작부터 이렇게 강력한 위력을 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이었다면 저 천화(天火)에 타죽었을 것이다.

불바다가 떨어진 곳에 석탑 안에 앉아 있는 한립이 있었다. 석탑을 이런저런 금제로 보호하고 있었지만 불바다가 떨어지면 탑도 무너지고 그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 탑 위로 은색 화염이 치솟아 거대 불새로 변했다. 처음에는 사람만 하던 불새가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점점 커져 나중에는 방대한 체구로 변해 불바다에 뛰어들었다.

쿵!

은색 불새와 불바다의 충돌은 규모에 비해 소리가 크지 않았다. 다음 순간 불바다가 들썩이고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끌려 불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5분의 1이 사라진 불바다는 금방 전부 흡수당할 것 같았다. 그러나 검은 교룡들은 꼬리부터 머리까지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교룡의 입에서 하얀 기운들이 퍼져나갔고 날카로운 거대 얼음송곳으로 변했다.

키에에에엑!

얼음송곳이 떨어지기 전에 석탑 안에서 귀곡성이 터져 나오고 다섯 개의 해골머리들이 날아올라 입에서 오색한염을 폭포처럼 분출했다. 오색한염에 휩싸인 얼음송곳은 점점 녹아 정순한 영기로 돌아가고 말았다.

두 번의 공격이 연달아 막히자 검은 교룡들은 놀랍게도 몸을 비틀어 파편을 만들어냈다. 가장 작은 것은 사람 머리만 하고 큰 것은 산처럼 커 모든 것을 뭉개버릴 듯했다.

그때 석탑 지하에서는 노란 방석을 깔고 누군가가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얼굴에 홍조가 일고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무언가 중요한 기로에 서있는 듯했다.

그 앞에 푸른색과 검은색의 작은 산봉우리가 나란히 떠 있었고 머리 위로는 72자루의 푸른 비검들이 변한 연꽃이 마구 돌아다녔다.

그의 몸에는 검은 주술문자가 가득한 갑옷이 입혀져 있었고, 바깥에는 회색 빛덩이들이 흉흉한 기세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바로 오랫동안 폐관하고 있던 한립이었다. 눈을 꼭 감은 그의 안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주위로 괴이한 빛이 점들이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악귀나 흉수 혹은 남녀노소의 모습을 한 허상을 만들어냈는데 수시로 가만히 앉아 있는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다가 극산들과 푸른 연꽃 등에 막혀 물러났다.

사악한 기운은 밀려날 때마다 더욱 날카롭고 포악하게 울어댔다.

그때 한립은 눈을 감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의식 어딘가의 신비한 공간에서 푸른 장포를 입은 화신으로 변해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그는 한립과 똑같은 검은 장포를 입고 72자루의 새까만 비검을 부리고 있었다. 흑포 한립은 눈에 핏빛이 번득였고 얼굴에는 검은 기운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요사스런 분위기로보아 사악한 마물이 강림한 것 같았다.

한립은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한 손으로는 72자루의 푸른 비검을 조종했다. 다른 손으로 금색 뇌전 교룡을 연달아 분출했지만 흑포 한립도 검은 비검들로 연꽃을 불러내고 더욱 굵직한 검은 뇌전을 쏘아 보내 난감한 상황이었다.

한립은 얼굴을 굳히고 전신에서 백여 줄기의 금빛 뇌전을 쏘아 보내 검은 뇌전을 부셨다.

“흐흐흐, 소용없다! 이 심마는 네 본체를 복제한 것인데 본 좌의 마성으로 조종하니 더욱 강력할 수밖에. 이리 오래 겨루고도 모르겠느냐?”

느닷없이 달콤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 심마가 나를 격파해 내 원신을 삼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내 순간의 불찰로 너 같은 마두가 의식에 침투하게 두지 않았다면 어찌 심마 따위가 생겨 반서를 하겠느냐.”

한립이 은색 자를 불러내 수백 개의 자 그림자로 폭풍처럼 공격을 가했다.

“확실히 네 실력이 내 예상을 넘어서서 겨우 심마 화신으로 어떻게 하기는 힘들겠지. 하지만 지금 네가 후기로 넘어가기 위해 천겁을 겪는 중이란 사실을 잊었더냐?

얼마나 준비를 해두었는지 모르겠지만 원신과 법력 대부분이 이곳에 붙들려 있으니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 모르겠구나. 원신이 멸살 당하고 싶지 않다면 고분고분 마갑을 내놓거라! 마갑만 내주면 바로 네 의식 속에서 나가 네가 합체 후기 고비를 넘는데 집중할 수 있게 해주마.”

여인은 매혹적인 제안을 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운성(雲城)에 있을 때 공간을 뛰어넘어 의식으로 그를 공격하려다 죽임을 당한 ‘천외마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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