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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69화 (926/2,000)

1169화. 여파

*

닷새 후, 밀실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한립이 천천히 눈을 떴다. 밀실 문에서 영기의 빛이 반짝이고 금빛이 날아들어 팔뚝 크기의 금색 짐승으로 변했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일은 잘 마친 것이더냐?”

“주인님, 대체 청룡상인에게 어떤 수를 써두신 것입니까? 싸우려고 하자마자 중독이 된 것처럼 꼼짝을 못했습니다.”

표린수가 웃음을 머금고 있는 한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하, 서령진화의 영선사광 한 줄기를 체내에 주입했을 뿐이다! 대량의 법력을 끌어올리는 순간 독이 발작해 웬만한 합체기 수사도 싸움을 계속하기 어렵지. 오랫동안 좌선하며 독을 연화시키든가 법력을 이용해 강제로 억눌러 놓지 않으면 발작을 막을 수 없는데 두 가지 방법 모두 너와의 전투 중에는 쓸 수 없지 않더냐.”

“주인님은 역시 대단하세요! 동급 수사에게 그렇게 해도 상대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다니요.”

“나도 얼마 전에야 깨우친 수법이다. 마음이 급해진 청룡상인이 자신의 몸을 꼼꼼히 살펴볼 시간이 없었기에 통했던 것이고. 그래서 청룡은 어떻게 되었느냐?”

“예, 주인님! 청룡상인의 원영까지 제가 한입에 집어삼켰습니다. 헌데 그 자가 죽기 전 독성을 억누르는 대신 목숨을 걸고 비술을 썼고, 그 때문에 저도 원기가 조금 상해 어쩔 수 없이 인근에서 이틀간 휴식을 취해야 했습니다. 그 후 복귀하는 천연성 정탐꾼들을 따라 몰래 돌아온 것이고요. 아무도 저를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표린수가 미소 지었다.

“이번 일은 네가 잘 해주었다. 이제 나도 걱정 없이 후기 고비를 노려볼 수 있겠어.”

그 말에 한립도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헤헤, 주인님의 자질에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해두셨으니 반드시 성공하실 겁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나도 그러길 바라고 있다. 기왕 너도 화형을 이루었으니 답답하게 영수환에 있지 말고 밀실에서 수련을 하거라. 필요한 것이 있으면 기령자와 해대소에게 분부하고.”

“감사합니다, 주인님! 저도 영수환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인님께서 폐관하시는 동안에는 제가 호법을 서드릴게요.”

표린수는 밝은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한립은 표린수가 나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전음부를 꺼내 쏘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밀실 밖에서 빙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형, 저를 부르신 것은 이제 폐관에 들어가시기 위해서겠지요.”

“봉 수사의 말대로입니다.”

한립이 아주 차분하게 대답했다.

* * *

며칠 후 천연성 모처의 밀실 안. 8명의 천연성 장로들이 모여 상의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금월선사와 은광선자 등 익숙한 얼굴들도 많았다.

“그 말은 청룡상인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 아닙니까.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시점에 인요족이 큰 전력을 잃다니요.”

백포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청룡상인이 장로회에 들어온 후 본명패를 남겨두지 않았으면 저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병사의 말에 따르면 청룡상인이 본 성을 떠난 지 반나절 후에 본명패가 부서졌다고 하더군요.”

금월선사도 씁쓸한 얼굴이었다.

“스스로 명을 재촉한 것 아니겠습니까! 주변에 마족들이 득실거리는 것을 알면서 천연성을 떠나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화를 입은 것이지요.

은광선자가 차갑게 말했다.

“허허허, 청룡 수사가 정말 마족의 손에 목숨을 잃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전송대전을 지키던 병사 말이 누군가 청룡상인이 이용한 전송진을 발동해 뒤따라 나갔다지 않습니까.”

검은 가죽 장포를 입은 거한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한 수사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은광선자가 얼굴을 찡그렸다.

“함부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제가 언제 한 수사를 언급했습니까. 저는 그냥 청룡이 마족에게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거한이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것을 본 은광선자가 미소를 머금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됐습니다. 어차피 천연성을 떠나는 대로 스스로 장로회 일원이 아니라 선언하고 나간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저희 쪽에서도 굳이 내막을 알아내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족대군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려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니까요.”

은발 노인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청룡상인은 인족의 합체 중기 수사입니다. 그런 인물이 죽었으면 성 안의 수사들에게 무언가 해명해야 할 게 아닙니까. 게다가 이 일로 임란 선자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요.”

두원각 각주 고 노인이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해명이 왜 필요합니까?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청룡상인의 죽음을 누가 압니까. 내막을 밝히든 말든 마겁이 끝난 후에 다시 논의하면 될 일입니다. 눈앞에 마족대군이 몰려와 생사존망의 기로의 섰으니 그 외의 것은 모두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임 선자는 총명한 사람이니 우리에게 이 일로 시비 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은발 노인이 결연하게 답했다. 그 말에 수사들은 일리 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모두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한립 수사의 안건으로 넘어가지요. 금월선사, 한 수사가 이미 폐관에 들어갔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은발 노인은 빠르게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예, 그렇습니다. 청룡 수사의 일로 한 수사를 설득하러 갔는데 한 수사의 제자들이 맞이하더군요.”

“그렇다는 것은 선사께서 설득하러 오신 줄 알고 일부러 만남을 피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노부가 한 수사를 만나러 가기 며칠 전에는 청룡에게 매수당했던 후배들이 다녀갔다는데 다들 핼쑥한 얼굴로 그의 동부를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대량의 영석이나 재료를 바치고 나온 것 같았답니다.”

“허허, 그건 그 아이들의 잘못이 큽니다. 어딜 감히 그런 일에 끼어든단 말입니까! 한 수사도 그들 뒤의 가문과 세력을 고려하지 않았으면 쉽게 용서해주지 않았을 겁니다.”

금월선사의 말에 은발 노인이 냉소했다.

“그건 그렇습니다. 한 수사가 그렇게 일을 마무리 지어 저도 한숨을 돌렸고요. 그 아이들을 어찌하기라도 했으면 천연성 안에 큰 소란이 생겼을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일이 악화되면 우리도 골치가 아팠을 거예요.”

“선사, 듣자니 청룡이 한 수사에게 딱 세 번의 공격으로 패했다던데 사실입니까? 과장된 헛소문인가 해서 말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검은 장포 수사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사실입니다. 빈승이 보기에는 평범한 합체기 수사는 한 수사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 같더군요. 여기에 계시는 은광선자와 고 수사도 그날 함께 계셨으니 믿지 못하겠으면 물어보시지요.”

금월선사의 말에 흑포 수사가 은광선자와 고 노인을 보았다. 은광선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고 노인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흑포 수사뿐 아니라 아직 한립과 만나지 못한 다른 장로들도 크게 놀랐다.

“후기 수사보다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입니까? 동급 수사의 공격을 세 번도 받아내지 못한 청룡상인이 너무 약해 빠진 것이 아니고요? 그를 이겼다고 꼭 다른 수사들을 이긴다는 보장은 없는 것 아닙니까.”

흑포 사내가 반론을 제기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크게 착각하시는 것입니다! 청룡상인은 본래 반요의 몸으로 심지어 반룡으로 변신할 수 있고 현묘한 유가 공법을 익혀 결코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녔었습니다. 어쩌다 상대를 잘못 골라서는…….

한 수사도 법체쌍수의 몸에 변신술을 써서 반룡으로 변한 청룡상인을 압도했기 때문에 단 세 번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빈승이 돌아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였다고 해도 달아나는 것 외에는 한 수사를 상대할 방법이 없겠더군요.”

금월선사가 신중하게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한 수사가 마족 성조 화신에게 추격을 받고도 살아남았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봅니다. 그런 실력이라면 성조 화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요.”

은발 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 수사가 성조 화신의 추격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마족 존자 여럿을 죽이는 것은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은광 선자가 입을 열었다.

“마족 성조!”

듣고 있던 인요족 장로들이 눈을 크게 떴다.

“한 수사의 도움이 있다면 마족들과의 전쟁에서 승산이 더욱 올라가겠군요. 금월선사, 다시 한번 장로직을 제안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장로회에 한 수사가 들어오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빈승이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아마 쉽게 수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은발 노인의 말에 금월선사가 자신 없게 답했다.

“쉽게 허락할 것이었으면 진작 본 성의 장로가 되었겠지요. 그래도 시도해 보아 나쁠 것은 없으니 부탁드립니다. 자, 이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치고 마족지역의 밀정들이 보고해온 동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마족 대군이 빠르면 몇 달, 늦어도 1년 내로는 천연성에 총공격을 가할 낌새입니다.”

은발 노인이 화제를 전환해 모두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 * *

청룡의 죽음에도 천연성은 평화로웠다. 은발노인의 말대로 일반 수사들은 합체 중기 수사가 죽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임란 선자에게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크게 놀란 기색을 보인 후에는 다시는 청룡상인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립에 관한 일은 순조롭지 않았다. 강력한 신통을 연마중이라는 구실로 장로회에 시종일관 얼굴을 비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월선사는 크게 조급해하지 않았다. 얼마 후 마족대군이 총공격을 가할 때에는 아무리 한립이라도 어쩔 수 없이 출관하지 않겠는가!

사실 금월선사와 은광선자 등 소수의 합체기 수사를 제외하고는 마족의 빈번한 공격과 소동에 정신이 팔려 한립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었다.

마족대군이 주력 부대를 총동원해 공격하지는 않아도 며칠에 한 번씩 꼭 소란을 피우고 갔는데 갈수록 기세가 맹렬해졌다. 최근 몇 번의 전투에서는 연허급 수사들이 죽거나 다치기도 했다.

이에 천연성 장로들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마족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적어도 두세 명의 장로들이 돌아가며 전투를 지휘했다.

그리고 천연성 내부에서는 대대적인 전투 대비에 돌입했다. 재료를 아낌없이 써서 법기와 영구들을 생산하고 부적 제련에 능한 수사들이 모여 밤낮없이 대량의 저계 부적을 만들어냈다.

마족대군을 상대할 때는 중, 고계 부적 한 장보다 저계 부적 뭉치가 효과적이었다. 중계 부적 한 장을 생산할 재료와 시간이면 수백 장의 저계 부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천연성에 의탁한 저계 수사들과 평범한 역사들도 몇 명씩 무리를 지어 예비 병력으로 배치되었고 성 안 곳곳의 진법금제들은 몇 차례씩 문제가 없는지 점검되었다.

이처럼 천연성은 물샐틈없이 방비를 하고 있었다.

* * *

어느 날, 천연성 의사대전에서 은발 노인과 금월선사가 마족에 관한 급한 이일을 처리하고 있는데 은색 갑옷을 입은 병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문밖을 지키던 천연위 중 한 명이었다.

“누가 함부로 들어오라 허락했느냐?”

“대인께 아룁니다. 바깥 하늘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입니다! 어느 선배님께서 진급 도겁을 겪으실 것 같습니다.”

은발 노인의 꾸중에도 병사는 고개를 숙이며 보고를 올렸다.

“진급 도겁? 누가 합체 중기에 이르려나 보구나. 이렇게 기쁜 소식에 어찌 그리 경황이 없는 것이더냐.”

“그것이……. 멀리 보이는 천기 현상이 너무 강렬해서 합체 중기로 진급을 하려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소문으로만 듣던 합체 후기에 이르기 위한 도겁처럼 강렬해 보였습니다.”

병사가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레 말했다.

“뭐라? 선사, 우리가 직접 나가 보아야겠습니다.”

“좋습니다. 빈승도 어느 수사께서 이런 시기에 진급 도겁을 겪는지 궁금하던 참입니다.”

은발 노인의 말에 금월선사가 바로 답하고 병사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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