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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68화 (925/2,000)

1168화. 화근(禍根)

*

같은 시각, 한립은 빙봉을 데리고 두원각을 떠나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뒷짐을 진 채 조용했고, 빙봉도 복잡한 얼굴로 입을 열지 않았다.

…….

몇 시진 후 푸른빛이 그의 거처의 대청 안으로 날아들었다. 해대소와 기령자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한립과 빙봉을 보고 기쁜 얼굴로 인사를 올렸다.

“스승님과 봉 사고님을 뵙습니다! 가신 일은 잘 해결되셨습니까?”

해대소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봉 사고는 무사하니 너희는 걱정 말고 돌아가 쉬어라. 내 봉 수사와 따로 나눌 말이 있다.”

“예, 스승님!”

기령자와 해대소가 공손히 답하고 예를 올린 후 대청을 빠져나갔다.

“앉으시죠, 봉 수사. 이번 일로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형이 아니었다면 이번에 청룡 그 자의 흉계에 빠져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합체기 수사라는 자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런 짓을 벌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빙봉은 한립 옆에 앉아 쓴웃음을 지었다.

“평소였다면 그도 체면을 생각해 참았겠지만 마족 대군이 밀려든 상황이라 이것저것 따질 수 없었을 겁니다. 수행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했겠죠.”

“하지만 청룡이 정말 천연성을 떠날까요? 그가 원한다고 해도 장로회가 놔주겠습니까. 합체 중기의 수사는 천연성에게도 중요한 전력인 것을요.”

“중요한 전력? 겨우 동급 수사의 공격도 막아내지 못하는 자를 장로회가 중시할 거라 보십니까. 또한 평소였다면 장로회도 체면을 생각해 이 일을 덮으려 했겠지만 지금은 마족 대군과의 일전을 앞둔 상황이라 나와 청룡 중 누구를 취하고 버려야할지 분명히 알고 있을 겁니다. 아마 몇 번 말리다 묵인하고 넘어가겠지요.”

“한 형의 말씀이 옳다고 해도 청룡상인이 이 일로 두고두고 이를 갈 텐데요. 한 형께서는 그 자를 두려워할 필요 없겠지만 문하의 제자들에게는 언질을 해놓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럴 것 없습니다. 청룡은 앞으로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못할 테니까요.”

빙봉의 조언에 한립이 묘한 얼굴로 답했다.

“그게 무슨…….”

영민한 여인이라 한립의 말에 숨은 뜻을 알아채고는 깜짝 놀랐다.

“그런 소인배가 내게 원한까지 품었는데 어찌 세상에 남겨 둘 수 있겠습니까. 본래 도적질은 천 일을 해도 도적을 천 일간 막을 수는 없다 했습니다!”

“한 형의 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장로회가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은밀한 방법을 써도 결국 한 형을 의심할 것입니다.”

“그래서 손을 쓰지도 직접 나서지도 않을 작정입니다. 따로 나서줄 이가 있습니다.”

한립이 빙긋 미소 지었다.

“도와줄 분이 있다고요?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한 형의 일격을 제대로 막지는 못했지만 합체 중기 수사인데 그리 쉽게 당하겠습니까.”

빙봉은 의외라는 얼굴로 신중히 당부했다.

“제가 결심했을 때는 그만한 준비를 해두지 않았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봉 수사.”

한립의 소매 속에서 노란빛이 튀어나와 두세 살 가량의 여자아이로 변했다.

“청룡상인은 중상을 입어 돌아가는 대로 요상을 해도 며칠 내로는 완전히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 따로 손을 써놔서 법력을 쓰려면 3할의 힘밖에 낼 수 없을 테니 네가 충분히 죽일 수 있다.”

“알겠습니다! 제가 곧 좋은 소식을 갖고 돌아오겠습니다.”

여자아이가 온몸에 금빛을 반짝이며 보일 듯 말 듯 허상으로 변해 종적을 감추었다.

“한 형, 저 분은…….”

그것을 지켜본 빙봉이 놀란 얼굴을 했다.

“제 영수로 화형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영수라고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합체기에 이른 것 같던데요.”

“예, 합체 초기의 수행을 지니고 약간이지만 진령 기린의 피를 지닌 덕에 평범한 합체 중기 수사와 겨루어도 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 말에 빙봉이 입술을 달싹이다 한참 만에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한 형께서 장로회를 안중에 두지 않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저런 영수까지 있다면 한 형께서 천연성 제1수사입니다.”

“제1수사라는 호칭은 감당할 수 없겠습니다. 봉 수사께서는 수십만 년 넘게 버텨온 천연성의 저력이 겉으로 보이는 장로회뿐이라 여기지는 않겠지요? 얼마나 많은 실력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한립이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한 형께서 따로 들은 정보가 있으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 모든 것이 제 추측에 불과합니다. 마족들이 총공격을 개시하면 자연히 알게 될 일이고요. 그 전에 봉 수사께서 저를 도와주실 일이 있습니다.”

“제가 도울 일이라면…….”

한립의 말에 빙봉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큼, 맞습니다. 이번 위기가 전화위복이 되어 합체 후기를 도전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사의 천봉원음의 힘을 빌릴 때입니다.”

“한 형께서 구해주시지 않았으면 평생 영수로 사는 것은 물론 연허기 경지에 이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한 형이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럼 언제 폐관에 들어가실 계획이신지요?”

“표린수가 돌아오는 대로 폐관에 들어가려 합니다. 이번에 후기 고비를 넘는데 성공한다면 선자의 공이 클 것입니다.”

그 말에 빙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빙봉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한립은 밀실로 들어가 운기조식을 했다.

* * *

그 시각, 또 다른 소형 석탑의 전당 안에서 청룡이 창백한 얼굴로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는 열댓 명의 남녀 수사들이 그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청룡상인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보라색 바구니를 찬 여인이 앉아 있었다. 의천성의 또 다른 합체기 수사 임란이었다. 중년인의 허약한 기운을 감응한 임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청룡 수사, 정말 천연성을 떠나 성황 쪽으로 가실 작정이십니까? 사대종문의 태상장로 중 이제 남은 것은 저와 수사뿐입니다. 수사마저 떠나시면 저 홀로 어찌 제자들과 함께 천연성에서 자리를 잡겠습니까.”

“제가 떠나고 싶어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의 위협에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겁니다. 그 자의 신통은 수사도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 둘이 힘을 합쳐도 어쩔 수 없는데 남아 무엇 하겠습니까!”

청룡상인이 증오의 눈길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이런 일이 생길 줄 모르고 빙봉 선자를 건드리셨습니까? 안 그래도 줄곧 의아해하던 바입니다. 아무리 그녀의 자태가 빼어나도 수사께서 그럴 분이 아닌데 제가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으셨던 것입니까?”

임란이 미간을 좁히며 원망하는 티를 냈다.

“사정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이제와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 자의 독수(毒手)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오늘 바로 떠나야겠습니다. 제자들을 부탁해야 해서 수사에게만 미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사대종문은 하나입니다! 수사께서 따로 부탁하지 않으셔도 구성종 제자들을 잘 돌볼 것이에요. 그 자의 신분에 제자들에게까지 위해를 가하지는 않겠지만요. 그나저나 청 형께서 성황성으로 가시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천연성이나 성황성에 무슨 일이 터진다면 남은 제자들이 사대종문의 맥을 이어갈 수 있을 테니까요.”

임란은 생각을 정리하며 청룡상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자는 딱 두 명만 데려갈 생각입니다. 너희들은 잘 듣거라! 본 좌는 앞으로 천연성에 머물지 않을 것이니 이후 구성종 제자들은 임 선배님의 말씀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

청룡상인이 서둘러 일어나 문하 제자들을 향해 분부했다.

“장로님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제자들은 크게 놀라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청룡상인은 임란에게 포권하고 대전을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제자들 중 두 명이 말없이 그 뒤를 쫓았다.

그들이 문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던 임란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 * *

몇 시진 후, 청룡상인은 두 제자를 데리고 전송대전에 나타났고, 그곳에서 경계를 서던 병사들은 깜짝 놀라 대전에서 나와 그를 맞이했다.

“청룡 장로님을 뵙습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찾아주셨는지요?”

연허기 수사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그들은 청룡상인이 천연성 장로가 된 것을 알고 있었다.

“즉시 전송진을 발동하라. 중요한 일이 있어 바깥에 나가봐야겠다.”.

“예? 전송진을 이용하신다고요? 죄송하지만 장로회의 명을 입증할 물건이 있으신지요.”

연허기 수사가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장로회 장로인 내가 전송진을 쓰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 당장 전송진이나 발동하거라!”

“제가 청룡 장로님께 불경을 저지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장로회에서 명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전송진을 이용하려면 장로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저희는 명령에 따르는 것뿐이니 사정을 봐주십시오.”

청룡상인이 얼굴을 굳히자 연허기 수사가 난색을 표했다.

“아, 그런 것이었나? 그렇다면 내 장로회로 가서 신물(信物)을 받아오겠네.”

청룡상인의 표정이 어딘가 달라졌다.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서, 선배님 무엇을 하시는 것입니까!”

웃음을 머금고 배웅을 하려던 연허기 수사는 갑자기 주변 공기가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고 움직이지 못했다. 다른 수사들도 겁에 질려 굳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당황할 것 없다. 급한 일이 있어 시간을 지체할 수 없으니 알아서 전송진을 쓰겠다!”

청룡상인이 소매 속에 숨기고 있던 손에서 수결을 풀고 싸늘히 말했다. 하얀 옥패를 꺼내 그가 전송대전 금제를 향해 빛을 비추었고 하얀 빛줄기가 발사되며 길이 열렸다.

청룡상인이 희색을 드러내며 제자들을 데리고 급히 전송진 위에 섰다.

우웅!

진법이 발동하자 하얀빛과 함께 청룡상인과 두 제자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 즉시 연허기 수사들과 다른 병사들을 붙들고 있던 구속도 사라졌다.

“어서 이 일을 장로회에 보고해야 한다. 너희는 당장 대전의 금제를 복구하거라.”

연허기 수사가 자유를 되찾자마자 허겁지겁 외쳤다. 그 말에 병사들도 서둘러 진법 원반과 깃발 등을 꺼내 청룡상인이 해제한 보호 금제를 회복하려 뛰어갔다.

고요하던 전송대전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우웅!

바로 그때 막 전송을 마친 전송진이 낮게 진동하고 또 발동되었다. 아주 작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그 안으로 날아들어 전송이 되었다. 연허기 수사와 병사들은 그림자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했다.

“조금 전 전송된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병사들이 침을 꿀꺽 삼키고 서로의 시선을 살폈지만 대답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때 청룡상인은 두 제자와 어느 산속의 청석으로 만들어진 통로를 따라 동굴 입구를 빠져나가가고 있었다.

그들이 방향을 정해 날아오르고 흐릿한 금빛이 동굴 입구를 나와 그 뒤를 쫓았다.

* * *

반나절 후, 천연성에서 멀리 떨어진 황량한 들판. 푸른빛으로 둘러싸인 세 사람이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둔광 속 청룡상인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펑! 펑!

막 들판을 지나가 끝없는 사막지대로 진입하려는데 뒤쪽에서 작은 폭음이 두 번 울렸다! 흐릿한 금빛 그림자 두 개가 그들의 지척에서 튀어나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변해 청룡상인을 덮쳤다.

발톱 그림자가 허공에 가느다란 금빛 흔적을 남기며 거대한 그물을 만들었다. 청룡상인이 놀라 겁먹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한 가 네 놈이 결국 나를 죽여 없애려는 것이냐!”

그가 악에 받친 괴성을 지르며 소매 속에서 금색과 은색 붓을 꺼내 휘둘렀다. 금은색 주술문자가 마구 쏟아져 나와 단단한 장벽을 이루었고 푸른 비늘이 그의 팔과 다리, 얼굴을 뒤덮었다.

그는 금빛 그물을 향해 반요화된 몸을 날리고 입에서 푸른빛을 방출했다.

펑!

날카로운 발톱 허상들의 그물들은 푸른빛과 충돌해 간단히 흩어졌다. 청룡상인이 기뻐하며 그대로 그물을 돌파해 멀리서 멈추었다. 그가 안심하고 있던 찰나 뒤쪽에서 참혹한 비명이 전해졌다!

“안 돼!”

불길한 예감에 뒤를 돌아보자 그를 따라 천연성을 나온 두 명의 제자들이 핏물로 변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보물과 법력으로 형성된 보호막은 발톱 허상을 막아내지 못했고, 결국 육신은 물론 원영까지 잘려나가고 말았다.

“넌 한 가 놈이 아니구나!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냐?”

금빛 그림자를 보고 무언가를 깨달은 청룡상인이 분노해 소리 질렀다.

“헤헤, 네 목숨을 취하는데 우리 공자님께서 나설 필요가 있느냐.”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금빛덩이 두 개가 하나로 합쳐져 금빛 짐승으로 변했다. 바로 표린수였다.

“헉, 합체기 영수! 한 가 놈의 영수란 말이냐!”

의식으로 금빛 짐승을 훑은 청룡상인이 놀라 숨을 들이켰다.

“알았으면 곱게 죽거라! 공자의 명을 받아 너를 세상에서 지우러 왔다.”

“겨우 합체 초기 녀석이 노부에게 못하는 말이 없구나. 한 가 놈도 너를 보내 나를 죽이려 하다니 너무 터무니없지 않은가!”

“공자께 부상을 입어 법력을 3할밖에 끌어 쓰지 못할 테지! 네 원영을 뽑아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어디 보겠다!”

청룡상인의 말에 표린수의 몸이 흐릿해지며 주변에 금빛 점들이 나타나 모여들어 똑같이 생긴 금빛 그림자 백여 개가 만들어졌다.

“안 그래도 영수 가죽이 필요하던 차인데 네 놈의 것을 벗겨 써야겠다!”

청룡상인이 대노하며 다섯 개의 보물을 동시에 발동했고, 들고 있던 금은색 붓을 휘둘러 더 많은 주술문자들로 보호막을 강화했다.

표린수가 낮게 으르렁거리자 백여 개의 금빛 그림자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이건 뭐야!’

청룡상인이 체내의 법력을 대량으로 끌어올려 보물들을 발동하려다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의 얼굴에는 기묘한 검은 기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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