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7화. 청룡 압도
*
“벽사신뢰! 본 좌가 마공을 익힌 것도 아니고 사술을 쓰는 것도 아닌데 소용이 있겠습니까!”
청룡상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들고 있던 옥 서책에 법력을 불어넣었다.
웅!
서책이 오색 보호막으로 변해 그를 둘러쌌고, 그의 양손에는 금색과 거대 붓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말은 가볍게 했지만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한립은 무표정하게 두 소매를 털어 72자루의 푸른 비검들을 불러냈다. 맑은 소리를 내고 하나로 융합된 비검들이 커다란 푸른 거검으로 변해 반짝였다.
그의 손짓에 따라 두 마리 뇌전 구렁이들이 콰릉! 하고 거검으로 달려들어 검 표면을 둘러쌌다. 이제 거검은 거의 산만해져 있었다.
한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입에서 은색 불덩이를 뿜었다. 불덩이가 맑게 지저귀는 은색 불새로 변해 화살처럼 거검으로 날아들었다.
그러자 거검 표면에 은색 화염이 활활 타올랐다.
“베어라.”
한립이 매섭게 눈썹을 끌어올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커다란 거검이 청룡상인을 사납게 갈랐다.
거검이 지나는 동안 허공이 진동했고 엄청난 기운이 쇄도했다. 청룡상인은 안색이 급변해 들고 있던 금은색 붓을 교차해 빛을 내뿜었다. 수많은 고대 문자들이 용솟음쳐 금은색 기운으로 합쳐졌다.
콰콰쾅!
거검과 금은색 기운이 충돌해 굉음이 터지고, 금색 뇌전과 은색 화염의 빛이 무대를 뒤덮었다. 강렬한 빛에 지켜보던 이들도 눈을 제대로 뜨기가 어려웠다.
무대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고 은색 보호막에 파문이 생겨 언제라도 깨져나갈 듯했다.
강력한 공격에 바깥에 있던 수사들은 깜짝 놀랐다. 한립이 처음부터 이렇게 강한 수를 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고 노인은 열손가락을 튕겨 무대 주변 돌기둥에 법결을 던져 넣었다. 법결을 흡수한 돌기둥들이 더욱 굵은 빛기둥을 뿜어내 은색 보호막을 더욱 견고하게 유지시켰다.
보호막과 무대가 안정을 찾는 동안 강렬한 빛이 걷히고 한립과 청룡상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립은 무표정하게 제자리에 서 있었고, 청룡상인은 오색빛의 장막이 사라진 채로 갈라진 옥 서책을 들고 서 있었다. 청룡상인의 금색과 은색 빛도 영성을 크게 잃어 암담해져 있었다.
청룡상인 역시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약간 창백해져 있었다. 한립은 첫 번째 공격에서 벌써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금월선사과 고 노인은 서로 놀란 눈빛을 교환했다. 소문을 익히 들어 한립의 실력이 청룡상인보다 위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눈에 띄게 밀릴 것이라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한립은 상대가 멀쩡 하자 냉소하며 손짓을 했다. 그러자 허공에 떠있던 푸른 비검들이 파공음을 내며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첫 번째 공격으로 상대의 방어를 무너뜨리는데 성공했음에도 수결을 맺어 커다란 금털 원숭이로 변했다. 그의 몸에 금빛이 흐르고 금색털이 자라나 거대해진 것이다.
거원은 길게 포효하며 두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리쳤다. 그 순간 거원의 거대한 몸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언덕만 하게 커진 거원이 청룡상인을 싸늘한 눈초리로 내려다보았다.
이에 청룡상인이 안색이 달라지며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수사만 변신술을 할 줄 아십니까? 제가 청룡 진신의 무서움을 보여드리지요.”
청룡상인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쳤다. 푸른 빛기둥이 머리 위로 솟아올라 발톱이 다섯 개 달린 청룡 허상을 만들어냈다.
청룡상인의 소매 속에서 일곱 개의 검은 비검들이 날아올라 몸 곳곳으로 박혀 들어갔고, 그가 뿜어낸 피는 일곱 줄기로 갈라져 비검들에 흡수되었다.
휘릭!
비검을 물들인 피가 씻은 듯 사라지고 청룡상인의 몸에서는 핏빛 실들이 튀어나와 청룡 허상을 휘감아 끌었다.
청룡상인은 청룡 허상과 하나가 되어 낮게 포효했다. 그의 얼굴과 팔다리가 푸른 비늘로 뒤덮이고 머리에는 비취색 뿔 한 쌍이 자라났다. 순식간에 반룡반인(半龍半人)의 괴물로 변신한 것이다.
“청룡 수사가 반요의 몸을 지녔다는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한 수사가 변신한 거대 원숭이도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어떤 변신술을 익힌 것일까요?”
금월선사가 낮게 중얼거렸다.
“평범한 변신술은 아닌 듯합니다. 한 수사의 체내에 어떤 진령의 피라도 흐르는 것이 아닐까요?”
턱을 긁적인 고 노인이 추측했다.
“그럴 리가요! 한 수사는 하계에서 비승한 수사입니다. 하계에 진령급 존재가 멸종된 지가 언제인데 혈맥이 남아 있단 말입니까?”
은광선자가 고개를 저었다.
“영계로 와 진령의 피를 얻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다음 공격은 처음의 것을 월등히 넘어서겠군요. 고 수사, 금제가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건 마음 푹 놓으셔도 됩니다. 제가 직접 금제를 지탱하고 있는데 당연히 견딜 수 있지요.”
금월선사의 물음에 고 노인은 자신감에 차 답했다.
“그럼 다행입니다.”
솔직히 금월선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한립이 변한 거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털이 북슬북슬한 두 손이 허공을 쥐어 푸른색과 검은색 동산을 불러냈다. 두 동산 모두 보통 보물이 아닌지 낯선 기운이 요동쳤다.
거원은 벼락같은 괴성을 지르고 뜻밖에도 힘껏 두 동산을 투척했다.
휭! 휭!
공간을 왜곡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가던 두 동산이 번득하고 사라져 청룡상인 지척에서 나타났다.
청룡상인은 순간 주변 공기가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날카로운 압력에 꼼짝할 수 없었다. 놀란 그가 기합을 넣고 반요화된 몸에서 푸른빛을 방출했다.
다행히 온몸의 비늘이 수직으로 일어나 강대한 힘을 내뿜어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흥, 맛 좀 봐라!’
청룡상인은 산봉우리들을 향해 두 손을 번개처럼 휘둘렀다. 청룡은 진룡들 중에서도 몸이 단단하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반요의 몸으로 변했으니 일반 수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전신이 보물처럼 단단하고 진룡의 피를 깨우면 청룡의 힘을 일부 사용해 산을 무너트리고 바다를 가를 수 있는 괴력을 냈다.
“이런!”
그러나 청룡상인은 두 발톱이 두 산봉우리와 충돌하는 순간 후회하고 말았다. 발톱이 그의 생각대로 두 동산을 부수기는커녕 타는 듯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콰득!
산봉우리의 막대한 힘에 발톱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청룡상인은 서둘러 두 팔을 회수하고 기겁해 푸른빛을 뿜어내 산봉우리 하나를 공격했다.
쾅! 콰쾅!
굉음이 울리고 청룡상인은 힘없이 튕겨나가다 간신히 멈추었다.
푸확!
그가 당황한 얼굴로 입을 벌린 순간 검은 피가 한 움큼 뿜어져 나왔다.
한립의 수행이 늘어남에 따라 산악거원의 변신술도 훨씬 강해져 있었다. 그래서 이제 거원의 괴력은 진령 산악거원의 3, 4할의 힘과 맞먹었고 거기에 두 극산의 무게가 더해졌으니 청룡상인이 맞설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다.
그가 눈치 빠르게 두 손을 회수하고 귀한 보물을 뿜어내지 않았다면 열손가락의 손톱이 갈라지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체내의 원기가 뒤틀리고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청룡상인은 충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법력을 끌어올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눈빛이 흉흉해진 거원이 땅을 박차고 작아져 부지불식간에 청룡상인 몇 장 앞에 나타났다.
“셋!”
힘차게 주먹을 뻗은 거원의 입에서 냉랭한 한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룡상인이 대경실색해 곧바로 수결을 맺었다. 약속이고 뭐고 비술을 펼쳐 달아날 심산이었다.
바로 그때 서늘한 코웃음 소리가 그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작은 소리가 그의 귀에만 벼락이 친 것처럼 크게 울리고 머리에 송곳이 꽂힌 듯 고통이 느껴졌다.
그는 낮게 신음하며 결국 법력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살기등등한 금색 주먹 허상이 바람을 가르고 청룡상인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밀려오는 압력에 청룡상인은 숨이 막혀 왔다. 이런 괴력에 맞으면 반요화한 몸이라도 머리통이 깨질 게 분명했다.
청룡상인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합체기 수사인 그가 이런 때를 대비한 방법이 없을 리 없었다. 그의 몸에서 불현듯 하얀 방패가 튀어나와 앞을 막았고 푸른 비늘들이 푸른 갑옷으로 변했다.
두 개의 방어구라면 합체기 수사의 공격을 막기에 충분해야 했다. 하지만 금색 주먹 허상 앞에서는 모든 것이 소용없었고 종잇장처럼 뚫리고 말았다.
방패가 먼저 쾅! 하고 터져나갔고 금색 주먹이 그대로 푸른 갑옷에 꽂혔다.
웅!
갑옷에서 불쑥 청룡 허상이 튀어나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고 주먹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때, 금색 주먹이 소실되고 대신 팔뚝 크기의 금색 소용돌이가 나타나 불가사의한 힘을 방출했다. 청룡 허상은 금색 소용돌이에 의해 분쇄되었다!
허상이 사라진 순간 갑옷도 애처롭게 진동하다 흩어져 사라졌다.
금색 소용돌이가 다시 커다란 주먹으로 변해 청룡상인의 머리로 날아갔다. 그 안에 담긴 살의를 청룡상인은 물론 무대 밖의 다른 수사들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청룡상인의 반요화된 얼굴은 공포에 질려 일그러져 있었다.
“한 수사, 안 됩니다!”
“한 형, 멈추세요!”
무대 밖 수사들도 화들짝 놀라 멈추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음 순간, 금색 주먹 허상이 청룡상인의 귓가를 지나 쿵! 하고 허공을 공격했다.
아무도 몰랐지만 금색 주먹 허상이 스쳐 지나는 사이 머리카락같이 미세한 무언가가 청룡상인의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무대가 진동하고 금제로 뒤덮인 바닥에 깊은 구덩이가 파였다.
청룡상인은 핏기 없는 얼굴로 천천히 주먹을 회수하는 거원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것을 본 무대 밖 수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금빛이 반짝이고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간 한립은 살기를 숨기지 않고 경고했다.
“당신이 어떻게 천연성의 장로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는 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리고 3일 내로 천연성을 떠나지 않는다면 죽을 각오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한립은 말을 마치고 푸른 빛줄기로 변해 무대로 내려와 빙봉 옆에 섰다. 그는 금월선사들이 입을 떼기도 전에 포권을 했다.
“저는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일을 마치고 다시 뵙지요.”
한립은 인사를 마치고 푸른 기운으로 빙봉과 자신을 감싸고 전송진 위로 이동했다. 전송진이 울리자 두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립은 금월선사와 고 노인 등이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한 수사께서 저희가 설득할 기회도 주지 않고 떠나 버렸습니다. 그저 농으로 한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멍하니 있던 고 노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에 한 시주의 행동은 조금 과했습니다. 아무리 그대로 청룡상인께서 이미 본 성의 장로가 되었는데 어찌 그의 말 한 마디에 천연성을 떠날 수 있단 말입니까. 청룡 수사, 걱정 마세요. 제가 다른 수사들과 한 수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금월선사가 아직도 무대 위에 우두커니 서있는 청룡상인을 위로했다.
“됐습니다. 한 수사에게 처참하게 패하고 무슨 낯으로 성에 남겠습니까. 내일 천연성을 떠날 테니 저는 이제 장로회 일원이 아닙니다. 어차피 제가 장로가 된 것을 아는 자들도 극소수라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고요.”
청룡상인은 핏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도 푸른 빛줄기로 변해 바로 전송진에 올랐고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금월선사와 고 노인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청룡 수사의 충격이 컸나 봅니다. 아무래도 체면이 말이 아니겠지요.”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한 수사와 사이가 틀어졌는데 그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최대한 멀리하고 싶을 거예요.”
고 노인의 말에 금월선사가 안타깝게 답했다.
“정말 그냥 이렇게 합체 중기 수사가 천연성을 떠나게 두어도 되는 것입니까? 이는 장로회의 큰 손실입니다. 한 수사의 실력이 대단해도 장로회에 들어올 마음은 없는 분 아닙니까?”
“돌아가 다른 수사들과 상의를 해봐야겠습니다. 무슨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마족대군이 성을 포위한 시점에 한 수사가 본 성을 지키는 데 더욱 필요한 존재인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청룡상인이 이미 한 수사를 두려워해 떠나는 것을 말리기 어려울 것도 같고요.”
“어찌 됐든 최선은 다해 봐야겠지요. 다른 수사들에게 연락을 보내 모이자고 청하겠습니다.”
고 노인이 소매를 펄럭여 전음부 뭉치를 꺼내 들었다. 금월선사도 말리지 않고 생각이 많은 얼굴로 침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