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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66화 (923/2,000)
  • 1166화. 혼천량의진(渾天兩儀陣)

    *

    “청룡상인이 벌인 일로 제가 어찌 대사와 다른 선배님들을 탓하겠습니까!”

    빙봉도 승려와 다른 합체기 수사들의 외면에 불만스런 마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공손히 답했다.

    “아닐세! 천연성 장로의 한 사람으로서 상황이 이렇게 악화될 때까지 막지 못한 것에 책임이 없다할 수 없네. 하지만 한 수사, 청룡상인도 이제 본 성의 장로가 되었으니 저희의 입장을 조금만 고려해 주시지요. 그가 분명히 실수했으나 아직 빙봉 수사에게 위해를 가한 것이 아니니 영석으로 선자를 놀라게 한 대가를 치르면 어떻겠습니까. 영석의 수량은 빙봉 수사가 흡족할 만한 수량일 거라 빈승이 보장하겠습니다.”

    금월선사가 빙봉과 한립을 번갈아 가며 진심어린 눈빛을 보냈다.

    “대사께서는 제가 영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수사는 영석이 부족하지 않겠지만 빙봉 수사에게는 작지만 보상이 될 것입니다. 물론 다른 조건이 있다면 말씀하셔도 됩니다!”

    “고 형, 은광 수사. 두 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의미심장한 금월의 말에 침음하던 한립이 다른 두 명의 합체기 수사들에게 물었다.

    “이런 일에 제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족 대군을 막아야 할 시점에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해서는 안 되니 하루빨리 두 분이 합의점을 찾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고 수사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한립은 속으로 여우같은 늙은이라고 생각하고 은광선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도 청룡수사가 과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 안의 합체기 수사는 하나하나가 마족을 상대할 중요한 전력이니 어찌 두 분의 싸움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영석으로 보상하는 것은 조금 부족하니, 빙봉 수사에게 필요한 보물과 재료들을 준비해주시는 것이 어떨지요?”

    은광은 청룡의 잘못을 지적하며 한립을 두둔했다.

    “세 분 다 이 일이 제 잘못이라 이것이군요!”

    청룡상인이 안색이 변하며 불만을 드러냈다.

    “수사의 잘못인지 아닌지 스스로 모르십니까? 우리가 범인들처럼 증거라도 내밀어야 인정을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이곳에 증언해줄 만한 이들이 꽤 있어 보입니다.”

    금월선사도 안색을 굳히고 소홍 등을 훑었다. 연허기 수사들은 자신들이 언급되자 눈치를 보며 입을 더욱 꾹 다물었다.

    “빙봉 수사의 의견은 어떠한가?”

    한립이 고개를 돌려 빙봉에게 물었다.

    “선배님들께서 나서주신 마당에 제가 할 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은 한 형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영석과 보물은 그렇다 치고 개인적으로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이번 일은 잠시 넘어가지요.”

    한립이 눈을 가늘게 뜨고 차분히 말했다.

    “어떤 조건입니까?”

    “청룡수사가 제 공격을 피하지 않고 세 번만 막으면 됩니다!”

    금월선사의 물음에 한립의 얼굴에 언뜻 사나운 기색이 스쳤다.

    “결국 손을 쓰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딱 세 번의 공격을 막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제대로 붙어 보는 것도 저는 좋습니다만.”

    금월선사가 놀라 반문해도 한립은 유유자적이었다.

    “청룡수사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은광선자, 고 수사와 상의를 끝낸 금월선사가 청룡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세 번의 공격을 보물을 사용해 막아도 되는 것입니까?”

    청룡상인이 머뭇거리다 신중하게 물었다.

    “수사들의 신통은 보물에 좌우되는 바가 큽니다. 당연히 보물을 사용해도 되지요. 수사와 제 수행은 큰 차이가 없는데 겨우 세 번의 공격도 막지 못한단 말입니까?”

    한립은 냉랭히 조소했다.

    “흥, 일부러 자극할 것 없습니다. 조건을 수락하지요.”

    한립의 말대로 동급 수사의 공격을 막을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면 앞으로 천연성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좋습니다. 청룡수사도 동의한다고 하니 당장 적당한 곳을 찾아 해결하고 싶군요. 차일피일 미룰 생각은 마십시오!”

    한립이 차갑게 눈을 번득이며 서늘하게 경고했다.

    “언제든 상관없으니 수사께서 장소를 고르시지요.”

    “고 수사, 이곳에 대련을 위한 장소도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곳을 빌려 써야 할 듯싶군요.”

    한립이 몸을 돌려 회색 장포를 입은 노인에게 말했다.

    “당연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두원각에는 공간균열을 이용해 만든 개인 공간이 있어 그 안에서 합체기 수사가 겨루어도 바깥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고 노인이 신속하게 답했고, 금월선사도 한립이 세 번 공격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자 더는 말리지 않았다.

    은광선자의 입을 통해 한립의 신통이 동급 수사를 넘어서고 마족존자를 몇 명이나 죽였을 거라는 것을 들었지만 딱 세 번의 공격이라면 청룡상인도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구성종 장로는 천연성에 막 가담해 아직까지 한 일이 없었다. 이에 장로회도 한립과 사이가 틀어져가며 절대적으로 비호해야할 이유가 없었다.

    금월선사는 재빨리 이해득실을 따져보고 쓴웃음을 머금고 입을 다물었다. 은광선사야 원래 한립에게 약간 기울어져 있었고 고 노인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움직였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그들은 고 노인을 따라 대청 밖으로 나섰다. 물론 나가기 전 한립은 고개를 돌려 소홍 등을 훑고는 서늘하게 말했다.

    “내일 이 시각에 내 거처에 오거라. 오지 않는다면 어찌 될 것인지 스스로 잘 생각해보고.”

    소홍 등 연허기 수사들은 가슴이 철렁해 감히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금월선사 등 다른 합체기 수사들은 그 말을 못들은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청룡상인도 마찬가지였다.

    “소 수사, 우리는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청룡 선배님께서 우리를 위해 나서주실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요!”

    합체기 수사들이 사라지자 얼굴에 새까만 털이 난 요족 수사가 울상을 지었다.

    “맞습니다. 이건 약속과 다르지 않습니까! 선자께서 청룡 선배님을 대신해 우리를 설득할 때는 한 선배님께서 이미 죽었을 거라 장담하셨지요. 게다가 무슨 일이 생겨도 청룡 선배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어찌해야할지 방법을 알려 주세요!”

    다른 인족 수사도 다급히 소리치며, 소홍만을 바라보았다.

    “저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저는 청룡 선배가 했던 말을 그대로 모두에게 전했을 뿐입니다. 똑같이 합체기 수사인데 그가 상대 앞에서 이렇게 기를 펴지 못할 줄 누가 짐작이나 했답니까. 다행히 우리 모두 신분과 내력이 있으니 그 자가 아무리 실력이 대단해도 깡그리 죽여 없애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 찾아오라는 말은 반드시 따라야 할 것입니다.”

    다른 수사들의 질책에 소홍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래서 내일 한 선배님의 동부로 가자는 뜻입니까?”

    “충고하건대 달아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랬다가는 그 자에게 우리를 도륙 낼 명분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아무리 가문 어른들이 나선다고 해도 그때는 보호해 주기 어려울 겁니다.”

    “소 수사의 말씀이 맞습니다. 한 선배님께서 우리 몸에 은밀히 표식이라도 심어 놓았다면 달아나는 그 길이 황천길이 될 테지요! 게다가 진작 마족 대군이 포위한 천연성에서 어디로 달아난단 말입니까? 내일 얌전히 선배님의 동부로 가서 사죄를 드립시다. 저는 이 일에 대해 가문에 보고해야 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꽤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수사가 탄식하고 근심 가득한 얼굴로 대청을 빠져나갔다. 다른 이들도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 별수 없어 분분히 대청을 나섰다.

    이제 대청에는 소홍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반나절 동안 우두커니 서 있다가 이를 악물고 걸음을 뗐다. 그녀는 돌아가 사죄를 위한 충분한 영석을 준비할지 아니면 누군가 도움을 청할지 고민에 빠졌다.

    * * *

    그때 한립 일행은 회색 장포 노인의 안내를 따라 누각에서 맨 위층의 더 넓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립은 대청에 들어서서 가운데 설치된 소형 진법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고 씨 노인은 주저 없이 그 앞으로 가 수결을 맺고 법결을 던져 넣었다.

    우웅!

    진법이 발동되고 고 노인은 다른 수사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송진을 통해 대련을 위한 장소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모두 함께 출발하시지요.”

    “알겠습니다.”

    한립이 먼저 신형을 반짝이더니 괴이하게 전송진 안에 나타났다. 지금 그의 신통에 공간균열 내부의 소형 공간에 갇힐 일은 없었다.

    청룡상인도 얕보이고 싶지 않아 소매를 펄럭이며 푸른 기운으로 변해 전송진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들의 모습에 금월선사가 고개를 저으며 빙봉과 함께 걸어 들어갔고, 고 노인과 은광선자가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노인은 모두 전송진 안에 들어선 순간 법결을 발동했다.

    전송진에서 오색 기운이 솟아올라 그 안의 수사들을 휘감았다. 한립은 눈앞이 흐릿해진다고 느낀 순간 벌써 낯선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곳은 꽤 널찍한 공간으로 일반적인 공간균열과 마찬가지로 곳곳이 잿빛 공간으로 막혀 있었다.

    다른 점은 중간에 높이 솟아오른 무대가 있다는 것이었다. 돌로 만든 무대는 특수한 금제로 강화시켜 놓은 듯했고, 그 주변에 열댓 개의 돌기둥이 우뚝 솟아 있었다.

    돌기둥은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극품영석들이 가득 박혀 있어 굉장히 화려했다.

    “혼천량의진(渾天兩儀陣)! 고 형, 합체기 수사라 해도 저 진법 안에서 싸우면 무대 밖으로 여파가 퍼지지 않겠습니다.”

    은광선자가 무대 주변의 진법을 알아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금월선사도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허허, 수사분들 앞에 드러내놓기가 부족한 진법입니다. 가끔 새로운 신통을 시험해 볼 때 사용하는 곳이지요.”

    고 노인은 겸손히 답했지만 뿌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혼천량의진을 펼치느라 꽤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다 말없이 둔광을 일으켜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청룡상인을 향해 싸늘히 입을 열었다.

    “청룡 수사, 저를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것입니까?”

    “…….”

    청룡상인은 얼굴을 굳히고 푸른 기운을 일으켜 무대로 올랐다. 무대로 내려서지 않고 허공에 뜬 상태였다.

    이를 지켜보던 고 노인은 얼른 은색 진법 원반을 꺼내들어 무대로 던졌다. 옥으로 만들어진 원반이 은색 빛구슬로 변해 금제 속에 떠올랐다.

    쿠르릉.

    무대 주변 돌기둥에 박힌 영석들이 동시에 눈부신 빛을 방출했고, 돌기둥은 빛기둥을 뿜어 은색 구슬 속으로 모여들었다.

    빛기둥을 흡수한 은색 구슬은 폭발해 은빛으로 두꺼운 장막을 만들어냈고, 표면에는 우윳빛 주술문자들이 떠다녔다.

    “금제를 펼쳤습니다. 두 분이 안에서 무엇을 하시든 우리에게까지 영향이 미칠 일은 없을 겁니다.”

    고 노인이 수결을 풀고 금월선사 등을 향해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 시주. 두 수사께서 서로를 해치거나 크게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금월선사가 탄식하듯 우려를 표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청룡 수사께서 아무렴 겨우 세 번의 공격을 막지 못하시겠습니까? 이번에 한 수사나 청룡 수사 모두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테니 우리는 좋은 구경하면서 견문이나 넓히시지요. 노부는 특히 마족 존자들을 여럿 해치웠다는 한 수사의 실력이 궁금합니다.”

    고 노인이 빙긋 미소 지었다.

    “그러기를 바라야겠습니다.”

    금월선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대 위의 한립을 바라보는 빙봉은 걱정스런 얼굴로 지켜보았다.

    “준비되셨으면 시작하겠습니다!”

    한립이 청룡 상인을 응시하며 냉랭히 소리쳤다.

    콰르릉 콰쾅!

    그의 두 주먹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들리고, 금빛이 튀어나와 두 마리의 금빛 뇌전 구렁이로 변해 날아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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