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2화. 화리종(火離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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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친 가면의 여인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오소 노인은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요영 자네가 그간 수고가 많았네. 성도에 오랫동안 자네를 보내 놓은 보람이 있었어. 그런데 지난번에 소식을 전한 일은 알아보았는가?”
오소가 여인의 노고를 치하하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오소 대인의 명인데 제가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인께서 조사하라 명하신 자가 성도에 온 적이 없어 관련 소문만을 수집하였습니다. 구체적인 정보는 알려진 것이 얼마 되지 않고 평소 수련에만 매진하는 자인지 다른 수사들과 교류가 극히 적었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 내로 경지를 높였던 것이겠지요. 송구하지만 대부분이 풍문에 불과하고 확실한 정보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가면의 여인은 곤란한 얼굴이었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어떤 말들이 떠도는 지 살펴봐야겠네. 대체 어떤 자이기에 하계에서 돌아와 천년이 지났는데도 잊지 못하는지 말이야.”
“예, 대인!”
가면의 여인이 푸른빛을 날려 옥간을 날려 보내자 오소가 손을 뻗어 의식으로 그것을 살폈다.
“풍문까지 모았는데 겨우 이것뿐인가. 흠, 합체 초기의 수행으로 후기를 대성한 수사와 비등하게 겨뤘다는 소문은 사실인 것 같군.”
오소 노조는 그녀가 건네 준 옥간을 살펴보고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말했다.
“소문의 진위는 대인께서 스스로 판단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게 직접 성도를 나가서 조사하라 명하지 않으셨기에 성도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만을 모았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제가 직접 나선다고 해도 늦었습니다. 그 자가 얼마 전 마족들의 추적을 받다가 행방불명되었기 때문입니다!”
“행방불명? 그게 정말인가! 사실이라면 운도 좋은 녀석이군. 이름이 ‘한립’이라지? 겨우 하계에서 비승한 수사가 영롱의 마음을 천 년 간 어지럽혀 수행의 진전을 막고 있다니 백만 번 죽여도 그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야!”
오소 노조가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대인께서 그 자를 죽이고자 마음먹으신다면 그 자가 어찌 영계에서 숨 쉬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제가 나서서 해결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 일로 대인을 의심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녀석이 나타나기만 한다면 내가 나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째서 입니까? 영롱 아가씨께서 그 자에 대해 알게 된 것입니까?”
“원래 그 자의 소식을 알지 못하게 막았네만 며칠 전 벗이라는 이가 소식을 보내왔네. 아마 녀석이 영계로 비승했고 합체기 수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한 모양이야. 그 일이 있은 후 나를 따라 거처를 나선 것이네. 이런 상황에 한 가 녀석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영롱이 틀림없이 나를 의심하겠지. 그럼 마음이 더욱 심란해져 일이 더욱 꼬일 것이네.”
오소 노인이 복잡한 얼굴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마족의 손에 목숨을 잃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마족과 전쟁이 시작된 시점에 모든 합체기 수사들은 더없이 귀한 보물이고 전력인데 사적인 일로 제거해야 쓰겠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녀석보다 천규 그 놈을 먼저 이 세상에서 지워버렸을 게야!”
“대인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저는 이 일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인족에서 10만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라는 이야기에 흥미가 생겨 한 번 겨루어 볼까 했습니다.”
“요영, 자네가 내 그림자 호위로 지낸지 얼마나 되었지?”
“대략 오륙 만 년 되었을 것입니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요?”
“내 자네를 시공류(時空流) 속에서 구해주자 자네는 나와 혼계(魂契)를 맺고 10만 년 간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했었네. 노부가 남은 몇 만 년의 혼계를 영롱에게 물려주고자 하는데 자네의 의견은 어떠한가?”
오소 노조가 진지한 눈빛으로 여인을 응시했다.
“오소 대인! 제가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혼계를 맺은 것은 사실이나 대인께서 대승기 수사였기에 진심으로 따를 수 있다고 여겨 그리 한 것입니다.”
가면의 여인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혼계의 승계를 원치 않는 유일한 이유가 영롱의 수행이 부족해서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저도 영롱이 어릴 때부터 자라오는 것을 봐왔기에 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수행이 너무 낮습니다! 최소한 합체기라도 돼야 고려 해볼 텐데요. 대인께서도 저희 요수(獠獸) 일족의 규칙을 잘 아실 겁니다.”
가면의 여인이 한숨을 쉬며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수행이 문제라면 안심해도 되네. 녀석은 백 년 내로 합체기에 이를 테고 심지어 이후 대승기에 이를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테니 말이네.”
오소 노조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자네는 아직 모르겠지만 영롱이 이미 칠성월체를 각성했네! 그런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 났는데 내 말이 틀리겠는가? 허나 의외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이 일은 자네와 나 말고는 다른 자가 알아서는 안 되네.”
“정말이십니까? 그렇다면 혼계를 맺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 다만 제가 직접 대인의 말씀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구만. 자네가 곁에서 지켜 준다면 영롱이 수행을 대성하기 전에 무슨 일을 당할 리는 없을 게야. 시간이 촉박하니 며칠 후에 바로 영롱의 칠성월체를 증명하겠네. 그때 바로 혼계를 승계하도록 하지.”
“대인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서두르시는 것은 앞으로 전쟁을 무사히 치를 자신이 없으셔서 인지요?”
“허허, 내가 자신이 없었으면 직접 나섰겠나! 마족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지만 우리도 다른 종족의 대승기 수사와 연합해 승산이 적지 않네. 그저 예기치 못한 사태를 대비해 준비해두는 것뿐일세. 마겁에서 무탈해도 다음 번 뇌겁을 버틸 수 없을 테니 손녀의 앞날을 염려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가면 여인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오소 노조는 담담하게 웃어 넘겼다.
“할 말을 다 마쳤으면 그만 물러가게. 성도에서 첩자를 색출하기 시작했으니 허점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야. 괜한 오해를 사면 일이 복잡해지니까.”
“예, 대인. 물러가보겠습니다!”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몸을 틀어 허상처럼 변해 미미한 공간 파동을 남기고 사라졌다. 오소 노조는 그것을 지켜보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 * *
천연성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산맥, 주홍색 의복을 입은 인족 수사들이 조심스럽게 은신을 한 채 나아가고 있었다.
무리에는 젊은 사내와 여인이 대부분이었고, 몇몇 백발노인들은 안광이 형형한 것이 수행이 무척 정순해 보였다. 그들의 초췌한 몰골로 보아 객지를 떠돌며 고생한 티가 가득했다.
“이 사제, 이곳이 확실한 겐가. 그 협곡으로만 가면 천연성으로 통하는 전송진이 있다는 게지?”
등에 노란 장검을 메고 하얀 수염을 지닌 노인이 곁에 있던 노인을 향해 물었다.
“믿으셔도 됩니다, 장문 사형! 이 전송진은 천연성이 장로들을 위해 준비한 것으로 아는 이들이 극소수입니다. 이곳을 지키던 금위(金衛)인 친구가 술에 취해 무의식중에 한 말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흉터 노인이 신속히 답했다.
“마족들이 인근을 점령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아무리 은밀하게 숨겨 놓았어도 대부분 전송진이 발각되었을 것일세.”
“하지만 천연성은 이미 마족들이 봉쇄하고 있어 저희가 뚫고 들어갈 수 없지 않습니까. 오직 이 사제가 말한 전송진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또 다른 추한 생김새의 노파가 입을 열었다.
“사매의 말이 맞네. 우리 화리종(火離宗)에겐 다른 길이 남아 있지 않아! 바깥에 계속 숨어 있다가는 마족들에게 들켜 몰살당할 테니 천연성으로 들어가 본 종의 명맥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사형! 수차례 마겁을 겪어온 인족의 역사를 보면 삼대황성도 안전하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천연성이야 말로 저희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요. 제가 바로 제자들을 보내 협곡을 살피라 하겠습니다.”
검을 멘 노인의 말에 흉터 노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제자들을 보낼 것 없네. 마족들이 함정을 파고 있다면 일반 제자들은 알아채지도 못할 것이야. 우리가 직접 다녀오세! 함정이라 해도 평범한 마족 병사들은 우리를 막지 못할 테니까.”
검을 멘 노인이 하얀 수염을 쓸어내리며 신중히 말했다.
“사형의 말씀대로 하지요! 그럼 저와 이 사제가 사형을 모시겠습니다.”
추한 노파가 바로 자원했다.
“그건 안 될 말일세. 본 종에서 나 다음가는 실력자인 사매는 다른 사제들과 이곳에 남아있어야 하네. 만일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바로 제자들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 것이야! 이 사제, 양 사제, 자네들이 나와 같이 다녀오지. 이 사제는 전송진이 있는 곳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양 사제는 금제와 진법에 능하지 않은가.”
검을 멘 노인이 바로 두 명을 지목했다. 흉터 노인과 또 다른 노인이 주저 없이 앞으로 나섰다.
이렇게 검을 멘 노인은 다른 이들에게 몇 마디 당부를 남기고 두 명의 수사들과 함께 먼저 협곡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남은 인족 수사들은 긴장된 얼굴로 둔광이 사라진 곳을 주시했다.
검을 멘 노인과 나머지 인족 수사들은 몰랐지만 그곳에서 수천 리 떨어진 허공에서 희미한 푸른 빛줄기가 쾌속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둔광 속에서 젊은 청년이 검은 산을 만지작거리며 주위를 살피는 중이었고, 그의 어깨에는 기껏해야 서너 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하얗고 포동포동한 여자 아이가 앉아 과실을 깨물어 먹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아이를 본 한립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여자 아이는 오랜 잠에서 깨어난 표린수였다.
그가 인족 영역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잠에서 깨어난 조그만 짐승은 그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깨어나자마자 합체기 도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진린(眞麟)의 피를 이어받은 짐승은 천겁도 어마어마했다.
본래 천겁은 다른 이들이 쉽게 끼어 들 수 없었기에 한립은 지척에 서서 표린수의 천겁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암수왕의 요단을 삼켜 다양한 신통을 깨우친 표린수는 끝까지 천겁을 버텨내고 사람의 형상을 이룰 수 있었다.
당시 표린수는 전신이 상처로 가득해 한립이 아낌없이 영약을 내주지 않았다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형을 한 표린수는 뜻밖에도 곡아보다도 더 어린 여자 아이의 모습을 해 한립을 당황시켰다. 범인의 아이였으면 말도 제대로 못할 나이였다.
그나마 표린수가 변한 여자 아이는 겉으로는 옹알거려도 의식으로 분명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뜻밖에 영수의 도겁으로 한립이 천연성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지체 되었다.
한립은 표린수가 천겁의 부상에서 회복하자 곧바로 천연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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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가 향하는 곳은 천연성이 준비해둔 몇 안 되는 장로 전용 비밀 전송진이었다. 소형 전송진이라 한 번에 한두 사람밖에 전송하지 못했기에 마족에게 들켜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합체기 마존이라도 겹겹이 금제로 둘러싸인 천연성에 홀로 들어오면 인요족 대군과 고계 수사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전송진에 마족들이 매복해서 기다릴 경우를 조심해야겠지만 한립의 수행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성조 화신을 제외하면 합체 후기 수사라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지난 번 성조 화신들에게 오랜 추격을 당한 것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영계로 강림해 대군을 통솔해야할 성조 화신들이 곳곳의 전송진에 흩어져 매복이나 하며 허송세월할 까닭이 없었다.
심지어 지금은 마존 급이 나타날 가능성도 낮았다. 마족대군이 천연성을 포위하고 맹공을 이어가고 있는 시점이라 그들은 이런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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