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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61화 (918/2,000)

1161화. 은월과 칠성월체(七星月體)

*

대전 안 수사들은 오소 노조가 가고난 뒤에서 한참동안 곳곳에서 모여 웅성거리다 잠시 후 뿔뿔이 흩어졌다.

이때 깃털 사내는 오소 노조와 은월을 섬의 한적한 곳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영기가 굉장히 짙고 다른 건물들과 멀리 떨어진 독립된 누각이 여덟 채나 있었다.

각각의 누각은 고풍스럽게 치장되어 있었고, 연단실과 연기실은 물론 수련을 위한 밀실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장발 사내는 대충 누각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갔고 깃털 사내는 시녀들을 안배하고 분별 있게 물러났다.

누각 1층에 앉은 오소 노조가 무표정하게 손을 들어 시녀들을 물렸다. 이제 2층에는 오소 노조와 은월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오소 노조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생각에 잠겨들었고 은월은 그 옆에 서서 똑같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현재 네 수행에 내가 준비한 단약이면 충분히 합체기에 이르렀어야 한다. 하지만 백년 간 연달아 세 번이나 고비를 넘는데 실패했지.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심마가 원인이라는 뜻이다. 다음번에도 실패하면 앞으로 더더욱 합체기에 이르기 어려워질 것이다.”

오소 노조가 은월을 올려다보고 차분하게 입을 뗐다.

“손녀가 무능하여 조부님을 실망시키고 말았습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집념을 놓기가 그리도 어려운 것이냐? 하계에서 돌아와 천규를 멀리하고 내 곁에 머물고 싶다 했을 때도, 연유를 묻거나 천규와 화해를 권하지도 않았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거라 믿었지. 그런데 이리 오랜 세월 마음을 닫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오소의 어투는 인자했지만 실망스런 기색이 느껴졌다.

“조부님, 당시 저와 천규는…….”

은월이 고개를 들고 변명하려는데 오소가 손을 저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네가 말하지 않았다고 어찌 모르겠느냐. 천규 그 놈이 내가 폐관하는 틈을 타 나와의 약속을 깨고 아직 합체기에 이르지 못한 너의 원음(元陰)을 취하려 한 것을 알고 있다. 일이 실패하자 손을 써 네 원신을 둘로 나눠 천년 동안 원신이 분리되는 고통을 겪게 만들었지. 네 의식이 하계로 내려갔을 때도 역성반에 수작을 부려 영계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더냐!”

오소 노조의 기품 있던 얼굴에 사나운 표정이 스쳤고 울분이 차오른 듯 의자의 팔걸이를 내리쳤다. 그러자 하얀 화염이 번득이고 의자 팔걸이가 흔적도 없이 소실되어 버렸다.

“그 일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흥, 내가 손녀가 수모를 당하는 것도 모르고 있을 줄 알았느냐. 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고 랑족에 랑왕(狼王) 자리를 계승할 자가 없지 않았다면 진즉에 그 자식을 잡아다 온몸의 힘줄을 뜯어 놓았을 것이다.”

오소 노조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은월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의 탓만은 아닙니다. 명의상으로는 제가 그의 왕비였으니 그가 제 원음을 노린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 녀석을 두둔하다니, 넌 그놈의 왕비이기 이전에 은월 일족의 성녀이다! 은월공법(銀月公法)을 대성하지 못한 채 원음을 잃으면 네 수명이 크게 줄어들 것을 알면서도 그런 짓을 벌인 것이다.

요왕의 자리에 오른 후에 우리 은월 일족이야 말로 요랑 왕족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겠지. 자손들 중 쓸 만 한 자가 있어 합체기 존재가 나왔다면 내 어찌 외부인을 데려다 랑왕 자리에 앉혔겠느냐.”

이제 오소 노인의 얼굴에는 진한 살기마저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은월은 입술을 깨물고 입을 다물었다.

“허나 하계에서의 고생이 전화위복이 되어 네 칠성월체(七星月體)가 발현된 것이 다행이었다. 원래 네 자질이면 연허기에 이르고 말았을 텐데 지금은 칠성월체를 지녔으니 이후 대승기에 이를 가능성도 생겼지. 노부 역시 자질이 그리 뛰어지는 않았지만 너처럼 칠성월체를 각성하고 지금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제게 그런 복이 따르겠습니까?”

오소 노조의 눈은 반짝였으나 은월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나도 네가 그간 고생을 많이 한 것을 안다. 하지만 네가 합체기에 이를 잠재력이 있다면 나도 더 이상 참고 있을 이유가 없다. 천랑 그놈은 이번 전쟁에서 마족 존자와 동귀어진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야. 일단 마겁이 지나면 내 절대 그 놈이 랑왕 자리에 앉아 있게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조부님의 말씀은…….”

“칠대요왕의 자리에 여인이 앉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당시 어쩔 수 없이 외부인을 랑왕의 자리에 올렸지만, 이제 너와 천규는 부부의 정도 없지 않느냐. 내 너를 대신에 그 자리를 다시 찾아올 것이다.”

오소 노조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래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안 될게 무엇이냐. 먼저 너를 배신하고 악독한 짓을 일삼은 그에게 옛정이라도 남은 것이더냐?”

“정이라니요, 그런 일을 겪고 그를 원수라 생각하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하지만 제가 칠성월체를 지닌 것과 정말 합체기에 이를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만일 실패하면 저희 랑족은 랑왕으로서 천규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 네 심마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합체기에 이르기는 쉽지 않겠지. 게다가 마족과의 대전을 앞두고 있으니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노부가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다면 네 처지가 어찌 되겠느냐. 하아, 별수 없겠구나! 일단 옥간의 내용을 살펴 보거라.”

오소가 한숨을 내쉬며 푸른 옥간을 꺼내 떠오르게 했다. 은월은 의심없이 그것을 받아 이마에 대고 의식을 주입했다.

“망정결(忘情決)!”

은월은 빠르게 옥간을 훑고 그 안에 담긴 법결의 이름을 내뱉었다.

“오래 전 우연히 얻은 상고 비술로 위력이 크고 심경(心境)의 수련에 불가사의한 효과를 발휘한다. 네가 수련하기로 결심하면 내 비술로 보조해 빠르게 성취를 이루게 도와주마. 그렇게 되면 합체기에 이르는 것도 문제없을 것이야.

다만 망정결을 수련하는 것은 후환이 적지 않은 일이다. 칠정육욕(七情六慾)이 서서히 희미해지다 공법을 대성하면 완전히 사라지게 되지. 거기다 극단적인 비술이라 나중에 대승기에 이를 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야. 망정결을 익힐지 말지는 신중히 고민해봐야 한다.”

오소 노조는 은월의 표정을 살피며 망정결의 장점과 단점을 설명해 주었다. 은월의 표정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수시로 달라지는 안색이 그녀가 큰 고민에 휩싸였음을 말해주었다.

오소 노조는 두 눈을 감고 소녀에게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한식경 후 결심이 섰는지 은발 여인이 입을 열었다.

“조부님, 이걸 익히면 확실히 마족과 결전을 벌이기 전에 합체기에 이를 수 있는지요?”

“확답하기는 어려워도 적어도 7, 8할의 가능성은 생길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이것을 내놓지는 않았을 게야. 하지만 급히 결정을 내리지 말고 조금 더 생각해 보거라.”

“예, 조부님!”

은월은 하려던 말을 삼키고 답했다. 이때 오소 노조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발소리가 들리고 젊은 시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대인께 아룁니다. 성도의 장로 두 분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오, 벌써 왔군. 들라 하라.”

오소 노조가 평온한 얼굴로 분부하자 곧 서 씨 사내와 백발노인이 걸어 들어왔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저희에게 분부하실 일이 있다고 하셔서 찾아뵈었습니다.”

“급할 것 없으니 일단 앉게.”

백발노인의 말에 오소 노조가 빙긋 웃고 옆의 의자를 가리켰다. 그들은 감사의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어찌 보면 자네들은 노부와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네. 한 명은 벗의 후손이고, 다른 한 명은 막 수사의 기명 제자이니까. 이 일은 자네들이 맡아 주어야 내가 안심을 할 수 있네.”

오소가 그들을 바라보며 인자하게 말했다.

“무엇이든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대승기 수사의 말에 서 씨 사내와 백발노인은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답했다.

“막 수사의 말을 들이니 그가 없는 동안 낙 수사가 성도의 일을 주관한다지? 자네가 나를 대신에 이것들을 찾아줘야겠네. 법기도 있고 재료도 있는데 워낙 보기 힘든 것들이고 일부는 행방이 묘연하다네. 중요한 것은 반드시 아무도 모르게 찾아야 하고 시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네.”

“예, 제가 바로 믿을만한 자들을 보내 일을 수행하겠습니다! 절대 외부에는 알리지 않을 것입니다.”

백발노인이 오소 노조가 던진 옥간을 받아 서둘러 소매 속에 집어넣었다. 무엇이 적혀 있든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이었다. 그 모습에 오소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서 수사는 만황세계에 가서 이족의 실력자들을 만나 줘야겠네. 그들을 만나 무엇을 해야 할지 옥간에 적어 놓았으니 직접 확인해 보면 될 것이야. 이 일은 성도의 다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네.”

“예, 조심해서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서 씨 사내도 얼른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두 가지 모두 마족 3대 시조와 관련된 일이고, 막 수사도 이에 대해 알고 있네. 노부가 줄 수 있는 시간은 딱 5년 일세. 그때까지 해내지 못하면 대사를 그르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게.”

오소 노조의 얼굴이 엄숙해졌다.

“저희가 목숨을 걸고 완수할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백발노인과 서 씨 사내는 마족 시조와 관련된 일이라는 말에 시선을 마주치고 맹세했다.

“노부가 자네들을 따로 불러 일을 맡긴 것은 믿을만하다고 여겨서가 아니겠는가. 더 분부할 것은 없으니 즉시 일에 착수하도록 하게!”

오소 노조는 서 씨 사내에게도 옥간을 던져주고 축객령을 내렸다.

이에 그들은 깊이 예를 올리고 바로 누각을 떠났다.

“조부님, 저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성도에는 마족의 첩자가 들어와 있지 않은지요.”

그들이 떠나고 은월이 걱정스레 물었다.

“허허, 저들마저 믿을 수 없다면 다른 이들은 더더욱 믿어선 안 될 것이다. 막간리가 직접 내게 추천한 인물이니까 말이야. 저 둘은 천년 넘게 성도에 거주하며 한 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

게다가 마족의 첩자가 네 할아비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더냐? 적어도 아까 대전에 있던 성도의 장로들 중에는 문제 될 자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 할 수 있지.”

“그럼 저도 안심하고 이만 돌아가 쉬겠습니다.”

“그래, 몇 달간 길을 재촉해 오느라 너도 고단할 것이니 가서 푹 쉬어라.”

“조부님도 일찍 쉬시지요. 원기를 회복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허허허! 네가 나를 정말 노인네 취급하는 구나.”

은월의 당부에 오소 노조가 입이 찢어 져라 웃음을 터트렸다.

“조부님의 얼굴이면 제 큰 오라버니라 해도 대부분 믿을 텐데요.”

은월도 작게 웃고 누각의 위층으로 먼저 올라갔다. 걸음 소리가 가벼운 것이 기분이 밝아진 것 같았다.

“녀석! 망정결을 수련할 필요가 없어야 할 것인데…….”

은발 여인의 뒷모습에 노인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다경 후, 그가 눈을 뜨고 담담히 명을 내렸다.

“왔으면 어서 나오지 않고 무엇 하느냐.”

“속하, 오소 대인을 뵙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허공에 파동이 일고 푸른 그림자가 나타났다. 허상은 점점 또렷하게 변했고 검은 장포를 입은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늑대 머리 모양의 청동 가면을 쓴 여인은 새까만 장갑을 끼고 포권을 했다.

“오랜만이네, 요영. 세월이 흘러도 복장은 그대로구만.”

오소 노인이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대인의 풍채도 여전하십니다! 천겁을 치르시다 부상을 입으셨다는 소식에 걱정했는데 무사하신 것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허허, 겨우 천겁에 노부의 숨이라도 끊겼을까봐 걱정했는가? 다른 이야기는 되었고, 내가 몇 년 전 자네에게 성도에 잠복해 상대의 흉계에 대비하라는 분부를 내렸었네. 지금까지 지켜본 성도의 상황을 자세히 말해보게. 한동안 성도에 머물 예정이니 반드시 상세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야.”

“예! 성도의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로는 마족 쪽에서…….”

청동 가면을 쓴 여인이 주저하는 기색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소 노인은 무척 집중해 이야기를 들었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수시로 질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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