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0화. 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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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십니까. 한 수사는 이미 합체 중기 수사입니다.”
백발노인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벌써 중기에 이렀다고요? 그것 참 놀라운 속도입니다. 그렇다면 10만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다는 말로도 설명하기 어렵군요.”
노부인은 경악했고 이 소식을 모르던 다른 합체기 노괴들도 놀라 웅성거렸다.
“마겁이 도래하지 않았다면 한립 수사도 벌써 우리 성도의 일원이 되었을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허나 한 수사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시지요. 영 형, 한 수사를 찾아가 사실인지 확인은 하셨습니까?”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그 후로 한 수사의 종적이 묘연해졌습니다. 실종된 때가 흑우, 천선 수사와 만난 날과 거의 겹치더군요.”
깃털 사내가 씁쓸하게 웃었다.
“실종이요? 어찌 그런 일이!”
백발노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천연성에서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의천성에 지원을 나간 한 수사는 마계에서 강림한 마족 성조 화신을 우연히 마주친 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천선 수사와 천연성의 이야기를 엄밀히 검토해본 결과 한 수사는 마족의 추격에서 탈출한 후 천선과 흑우 수사를 만났더군요. 셋이 힘을 합쳐 석령을 잡았고 헤어져 돌아가는 길에 흑우 수사와 한립 수사 모두 일을 당한 듯싶습니다.”
깃털 사내가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모두에게 말했다.
“한 수사의 천부적인 자질이었으면 대승기에 이를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목숨을 잃다니 안타깝습니다. 허나 수도자란 원래 역천(逆天)의 존재이니 언제 무슨 일을 당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게다가 마겁 기간이 아닙니까.”
노부인이 탄식했다.
“한 수사는 흑우 수사와 달리 천연성에도 본명패를 남겨두지 않아 생사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흑우 수사가 어쩌다 목숨을 잃었든지 문제는 황량석령도 같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석령이 없으면 고생해서 준비해온 계획을 완수할 수 없을 테고요. 이는 인요족의 존망이 걸린 일이니 어서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깃털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다른 수사들을 둘러보았다.
“하아,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다른 황량석령을 구해보면 어떻겠습니까?”
“황량석령 외에 대체할 것이 없습니까? 아무런 대비를 해두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요?”
대전의 수사들이 분분히 입을 열었다.
“황량석령 같은 천지영물을 단시일 내로 또 어디 가서 찾겠습니까. 잃어버린 석령도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해서 흑우상인이 직접 성도를 떠나 구해오던 것이었는데요. 다만 대체할 것은 몇 종류 준비를 해두었으나 그렇게 되면 효과가 3할은 떨어질 겁니다.”
깃털 사내의 답변에 수사들은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대전 안이 일순 고요해졌다.
“황량석령에 관한 것은 별 것 아니니 노부가 해결하면 되고, 지금은 자네들이 해줘야할 중요한 일이 있네.”
담담한 사내의 목소리가 조용한 대전에 울려 퍼졌다.
“오소 선배님, 오셨습니까!”
낯선 사내의 목소리에 깃털 사내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대전의 문을 밀고 두 사람이 조용히 들어오고 있었다.
은색 장포를 입고 새까만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사내와 새하얀 피부와 은빛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이었다.
“오소 선배님을 뵙습니다!”
백발노인을 비롯한 몇몇 수사들도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튀어 오르듯 일어나 예를 취했다.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던 합체기 수사들이 그제야 기쁜 얼굴로 인사를 올렸다.
장발 사내는 요족의 유일한 대승기 수사인 ‘오소 노조’였다.
“일어들 나게. 얼굴이 익은 수사들도 있고 처음 보는 이들도 있군.”
“하하, 선배님 이리로 앉으시지요.”
백발노인이 살갑게 웃으며 중간 자리를 양보했다.
“알겠네.”
오소 노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자 나머지 수사들도 장발 사내의 등장에 궁금해 하며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은발 여인은 냉랭한 얼굴로 걸어와 오소 노조의 뒤에 가서 섰다.
“선배님, 저 수사 분은…….”
백발노인이 의식으로 은발 여인이 연허 후기를 대성한 요족 수사라는 것을 파악하고 입을 열었다.
“노부의 손녀인 영롱일세. 모두 본 적은 없겠지만 들어본 적은 있겠지?”
오소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 영롱 선자셨군요! 몰라 뵙고 실례하였습니다.”
백발노인은 이상하다는 기색이 스치기는 했지만 정중히 인사를 했다. 여인은 바로 한립과 인계에서 헤어진 은월이었다. 물론 그녀는 당시의 은월과는 달리 분열된 혼백이 융합되어 완전한 원신을 지니고 있었다.
대전 안 수사들도 은발 여인의 신분을 알고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인요족에서 특수한 지위를 누리는 성도는 요족을 통솔하는 칠대 요왕들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천규랑왕의 비(妃)인 영롱 선자가 인계에 오랜 세월 봉인되어 있다 영계로 돌아왔는데, 그 후로 천규랑왕과 불화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이다.
은월은 수사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그저 오소 노조의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소 선배님께서 어찌 직접 성도까지 찾아주셨는지요. 도겁 중 원기를 상하셨다고 들었는데 회복하신 것입니까?”
깃털 사내가 오소 노인을 향해 물었다.
“오래 쉬어 이제 괜찮다네. 노부가 성도에 온 이유는 막 수사의 초대를 받아서이고.”
“막 선배님을 만나보셨습니까! 정말 잘 되었습니다. 성도를 떠나 오랫동안 소식이 없으셔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오소 노조의 대답을 듣고 하얀 피부 사내의 얼굴이 밝아졌다.
“허허, 막 수사는 나보다 어리지 않은가! 아직 한창때인데 자네가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세. 내가 이번에 성도에 온 것은 첫째로 막 수사의 부탁을 받아 전할 말이 있어서이고, 둘째는 한동안 이곳에 머물기 위해서라네.”
오소 노조가 미소를 짓다 정색하고 말했다.
“선배님, 무슨 일이든 저희에게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막 수사도 최근 알게 되었는데 마족에서 성도의 위치를 알아낸 것 같네. 마족이 지금의 병력으로 바로 성도를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 양족의 희망인 성도에 문제가 생기면 사기가 꺾여 자멸할 수도 있네.”
“성도의 위치가 외부에 알려졌단 말씀이십니까? 그럴 리가요. 얼마 전 성도를 이동시켜서 단시간 내로 다시 이동할 수도 없습니다.”
수사들의 안색이 급변했다.
“노부가 있는데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 마족이 이렇게 빨리 성도의 위치를 알아냈다는 것은 성도 안에 마족의 첩자가 있다는 뜻일 것일세. 하지만 색출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 최근 성도를 나섰던 수사들을 상대로 자세히 조사해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야.”
오소 노조의 목소리도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예, 바로 전담 인원을 꾸려 최근 성도를 나섰던 사자들을 조사하겠습니다!”
백발노인이 흠칫 놀라 머리를 조아리고 명을 받들었다. 다른 수사들도 가슴이 철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막 수사가 전해달라고 한 것이 또 있네. 이전에 마족들을 겨냥해 준비하던 방법 중 몇 가지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일세.”
“어째서 그러십니까? 준비한 방법들은 막 선배님과 저희가 백년 넘게 고심해 생각해 낸 것인데요.”
노부인이 중얼거리듯 물었다.
“아마 막 수사가 영족(靈族) 등 몇몇 종족의 동급 수사를 만난 후 생각이 바뀐 듯싶네. 이종족 대승기 수사들과 교류하며 준비한 방법들의 부족한 점을 찾아낸 것이겠지! 하지만 완전히 다 바뀌는 것은 아니니 안심들 하게. 조정해야 할 사항은 내 시간이 나는 대로 자네들에게 전달하겠네.
또 황량석령을 필요로 하던 방법도 운 좋게 막 수사가 벌써 다른 천지영물로 대체하기로 결정을 내렸다네. 이게 있으면 원래 계획보다 더 효과가 클지도 모를 게야. 노부가 직접 갖고 왔으니 확인해 보게.”
오소 노조가 손바닥을 뒤집어 옥함을 불러내 백발노인에게 던져주었다.
“이것은…….”
백발노인은 옥함을 열어보고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자네가 알고 있으면 될 일이니 잘 보관해 두게. 이 일에 대해 아는 이는 적을수록 좋을 것이야.”
백발노인이 무어라 말하기 전에 오소 노인이 손을 저어 말을 잘랐다. 다른 성도 장로들은 옥함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선배님께서도 마족 3대 시조가 강림할 거라는 소식을 알고 계시는지요?”
노부인이 머뭇거리다 참다못해 물었다.
“대충 들어 알고 있네. 막 수사가 직접 찾아와 이야기를 해주었지.”
오소 노조의 무덤덤한 태도에 수사들은 안심이 되었다.
“두 분께선 이미 대책이 있으십니까?”
노부인이 희색을 드러내며 물었다.
“허허, 평범한 마족 성조도 본체로 강림하려면 고생 깨나 해야 하는데 마족 시조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나. 아직 그 일은 거론하기 이르니 눈앞의 마족대군을 물리치고 생각해도 늦지 않네.”
오소 노조는 구체적인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대승기 수사의 말에 합체기 수사들은 그저 눈만 껌벅였다.
“선배님께서 생각해 둔 것이 있으시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백발노인이 헛기침을 하고 깃털 사내에게 슬쩍 눈짓을 하며 말했다.
“맞습니다, 3대 시조의 일이야 이후 논의해도 늦지 않지요. 제가 성도가 준비 중인 일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 중 선배님의 의견을 구하고 싶은 것들도 몇 가지 있고요.”
깃털 사내가 백발노인의 눈짓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렇군. 노부도 자네들의 계획을 알아두는 것도 좋겠지.”
“일단 저계 마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성도에서 특별히 영수대군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준비는 거의 끝난 상태인데 수명이 짧은 영충의 경우…….”
깃털 사내는 성도가 진행하고 있는 일들을 대략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또한 현천법기들을 제련하기 위해 인족의 연기종사들을 전부 성도로 불러들였습니다. 반년 후면 제련을 시작해 보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유일한 문제는 아직 몇몇 재료들이 조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족이 점령한 지역들을 지나와야 해서 저희 쪽에서 수사를 파견해 돕는 것으로…….”
깃털 사내의 말에 오소 노조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듣기만 했고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가끔 눈빛이 달라졌다. 깃털 사내가 말을 마치자 수사들이 한 명씩 일어나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을 보고했다.
몇 시진이 지나서야 수사들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잘하고들 있군! 자네들이 진행하던 일들은 지금처럼 알아서 하면 되네. 그럼 노부는 고단해 이만 쉬어야겠네.”
오소 노조의 말에 백발노인 등 합체기 수사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러시다면 제가 거처로 모시겠습니다!”
깃털 사내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공손히 말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안내했다. 이에 오소 노조가 고개를 끄덕이고 영롱과 함께 그 뒤를 따랐다. 그제야 대전 안 수사들이 분분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렇지, 자네 두 명은 따로 분부할 것이 있으니 이따가 내 거처에 다녀가게.”
막 문을 빠져나가려던 오소 노조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돌려 두 명을 가리켰다. 백발노인과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마른 사내였다.
그들은 순간 멍해져 서둘러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오소 노조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대전을 나섰다.
“서 수사, 설마 선배님과 친분이 있는 것입니까?”
마른 사내 옆에 있던 중년 여인이 오소 노조가 떠나자마자 물었다.
“저희 집안 어른 중 한 분이 오소 선배님과 친분이 있으시기는 합니다. 그 덕에 저도 두 번 정도 멀리서 선배님을 뵌 적이 있었고요.”
서 씨 사내는 모호하게 대답했다.
“오, 그럼 선배님께서 어째서 부르시는지 아시겠습니까?”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뿐 아니라 낙 형까지 부르신 것을 보면 저희에게 따로 분부하실 일이 있어서겠지요.”
그 말에 중년 여인이 미소를 머금고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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