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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58화 (915/2,000)
  • 1158화. 침투

    *

    휘이이이익!

    반각 후, 마족 요새 주변 숲에서 긴 휘파람 소리가 울렸다. 이어 녹색 빛이 번득이고 백여 마리의 거대 목족인들이 튀어나와 요새로 돌진했다.

    거인을 따라 수천 명의 목족인들이 각종 비행 법기를 타고 날아들었다.

    휘휘휘휙!

    비취색 목창과 화살들이 목족인들의 손을 떠나 분분히 날아올랐다. 창과 화살들은 몇 배로 커져 마족 요새의 보호막과 충돌했다.

    이때 백여 명의 거대 목족인들도 요새 앞에 도달해 두 팔을 망치처럼 휘둘러 보호막을 때렸다.

    우웅!

    보호막이 극심하게 떨리며 순식간에 갈라지기 시작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요새의 마족들도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퍼지고 성벽 위에서 검은 빛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콰쾅!

    성벽 앞에서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거대 목족인들은 보기에는 우둔해 보여도 몸이 강철처럼 단단해 마족의 공격에도 자잘한 상처만 날 뿐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벽 방어에 틈이 생기자 거대 목족인들이 겁도 없이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타고난 괴력을 지닌 거대 목족인은 두 손을 망치처럼 휘둘러 마족 병사들을 곤죽으로 만들고 길을 텄다. 그 모습에 마족 고계 수사들은 곧바로 명령을 내렸고 열댓 마리의 거대 코뿔소 마수들이 몰려나왔다.

    코뿔소 마물은 입에서 하얀 빛기둥을 발사해 거대 목족인들을 공격했다. 이에 거대 목족인들의 몸에 새까맣게 구멍이 뚫렸고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그러나 거대 목족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코뿔소 마수들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거인과 대형 마수가 얽혀 육박전을 치르기 시작했다.

    이때 지면에서 한참 떨어진 고공에서는 목족 노인과 중년 남녀가 네 명의 붉은 갑옷 마족들과 대치중이었다.

    “오늘따라 담이 크다 했더니 저 늙은이를 데려왔구나! 차라리 잘 되었다. 늙은이가 죽으면 주변의 고계 목족인은 사라지는 셈이니!”

    고계 마족이 노인을 훑고는 사납게 소리쳤다. 화신기 마족의 겁 없는 언사에 목족 중년 남녀는 움찔했지만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히 받아쳤다.

    “겨우 너희 같은 것들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구나! 노부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되는지 실력을 봐야겠다.”

    “저들이 그럴 자격이 안 되면 나는 어떤가?”

    쿠르릉!

    공간 파동과 함께 검은 그림자가 네 고계 마족 중간에 나타나 서늘한 시선을 보내왔다. 그는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난 검은 장포 사내였다.

    목족 노인은 재빨리 의식으로 상대의 수행을 살피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새로 등장한 고계 마족은 연허 초기인 그보다 수행이 월등이 높은 연허 후기의 수사였다. 십중팔구 적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목족 중년 남녀도 상대의 기운이 노인보다 강력하자 난색을 표했다.

    “순찰사 대인께서 이곳에 와주셔서 천만다행입니다. 저들은 인근의 목족 반항 세력의 우두머리들이니 괜찮으시다면 대인께서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족 사내가 흑포 사내에게 허리 숙이며 말했다.

    “흐하하하, 저 셋이라면 한 손으로 싸워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절대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거라.”

    쌍각(雙角) 사내가 광소를 터트렸다.

    “일이 틀어졌네! 내가 최선을 다해 저 노마를 막아 볼 테니 그 틈에 최대한 병력을 후퇴시켜야 하네!”

    노인이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중년 남녀에게 전음을 보냈다.

    “죽 어르신께서도 저 마두와 무리해서 싸우셔서는 안 됩니다. 꼭 기회를 보아 철수하셔야 합니다!”

    노인의 전음에 중년 사내가 신신당부를 했다. 이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매 속에서 열댓 개의 푸른 나무 구슬을 발사했다.

    “죽고 싶으냐!”

    흑포 마족이 하잖다는 얼굴로 두 개의 뿔에서 붉은빛을 뿜어 새빨간 실들을 발사했다. 실들은 정확하게 푸른 구슬들을 관통했다.

    이에 마족의 얼굴에 웃음기가 어리기도 전에 갑자기 뭔가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푸른빛은 눈을 찌를 듯한 광선을 내뿜었다.

    순간 흑포 마족을 포함한 다섯 고계 마족들은 무의식중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목족 남녀의 신형이 흐릿해졌고, 각각 푸른 빛줄기로 변해 뒤로 쏘아져 나가며 높낮이가 다른 휘파람을 불었다.

    다섯 마족들은 곧바로 눈을 뜨고 노기를 드러냈다.

    “너를 갈가리 찢어 죽이고 혼백은 영원한 고통 속에 살아가게 해주겠다! 내가 늙은 놈을 맡을 테니, 너희 넷은 달아난 두 놈을 쫓아라!”

    흑포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두 손을 교차했다. 짙은 마기가 그의 몸속에서 뿜어져 나와 희미하게 머리가 둘인 마물 허상을 만들어냈다.

    마물 허상이 괴성을 지르며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목족 노인은 차분한 얼굴로 입에서 노란 대나무 검기들을 뿜어 몸을 보호했다. 상대를 격살하기 보다는 단순히 시간을 끌려는 것 같았다.

    마물 허상은 흉악하게 검기의 장막을 공격했지만 바로 보호막을 뚫고 노인을 죽이지는 못했다. 네 명의 화신급 마족들이 머뭇거리다 시선을 마주치고 목족 남녀가 달아난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그 시각, 아래에서 격렬한 공세를 퍼붓고 있던 목족인들은 긴 휘파람 소리에 주저 없이 방향을 틀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후퇴하자 마족 요새에서 병사들이 몰려나와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여 명의 거대 목족인들은 아직도 거대 코뿔소와 정신없이 싸우는 중이라 몸을 뺄 수가 없었다.

    마족 요새 주변으로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파앗!

    전투가 한창인 위쪽으로 흐릿한 푸른 그림자가 떠올라 ‘접점’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은신 둔술을 펼쳐 만 장 위로 날아오른 한립이었다.

    새까만 마기로 뒤덮인 접점은 백여 명의 마족 병사들이 열댓 개의 전함을 타고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요새를 지키는 병사들보다 더욱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듯했다.

    병사들은 갑작스런 외부인의 출몰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나 놀란 것도 잠시 마족 병사들은 물론 전함까지 그가 날린 수백 개의 푸른 실로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한립은 은색 화염을 뿜어 잔해까지 깨끗하게 처리하고는 수결을 맺어 회색 기운으로 겹겹이 몸을 감쌌다. 그 상태로 마기에 뛰어들자 신기하게도 검은 기운들이 흩어지며 길이 열렸다.

    그는 빠르게 마기를 통과했고 거대한 마족 접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컴컴한 접점 안에서 이따금씩 마기가 꿈틀거리며 새어나오고 있었다.

    한립은 잠시 주저하다 신중한 얼굴로 자신의 몸을 내리쳤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몰려들어 고풍스러운 마갑(魔甲)을 형성했다. 새까만 주술문자들을 내뿜은 갑옷은 그를 완전히 감쌌다.

    이때 한립이 빙글 돌며 아름다운 광채를 뿜었다. 뜻밖에도 오색 깃털을 지닌 거대 천봉(天鳳)으로 변신한 것이다. 천봉이 날개를 펴자 주변에 공간 파동이 일었고 앞에서 불어오던 검은 바람도 그쳤다.

    거대 천봉은 몸을 날려 커다란 검은 구멍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립은 천봉의 공간신통을 이용해 수차례 공간균열에 진입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겨우 마족 접점을 지나는 것에 그리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평범한 마족들도 넘어오는데 그의 신통이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유일하게 걱정되는 것은 접점 반대편에서 우연히 강력한 마족과 마주치는 것인데 이렇게 작은 접점에서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과연 천봉은 마풍(魔風)을 역행해 공간의 힘으로 십여 개의 장막을 뚫고 지나갔다. 눈앞이 밝아지자 한립은 천봉의 날개를 힘껏 펄럭였다. 아름다운 빛으로 뒤덮인 천봉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게 희미해졌다.

    ‘이곳이 마계!’

    접점의 반대편은 끝없이 펼쳐진 회색 사막이었다. 출구가 있는 곳 아래로는 초소로 보이는 검은 건물들이 두 개 보였고, 그 안에는 수십 명의 마족 병사들이 수시로 보초를 섰다.

    접점을 빠져나온 천봉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사라졌다가 백여 장 밖 허공에서 나타났다. 건물에 상주하던 마족 병사들도 누군가 접점을 빠져나온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마겁이 시작되고 몇 년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터라 경계가 풀어진 탓이다. 천봉은 하늘 끝에서 나타나 아름다운 광채를 번득이고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립은 접점이 있던 곳을 돌아보며 묘한 얼굴을 했다. 마계로 진입하는 것이 그의 예상보다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그는 마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하늘이 약간 누렇고 구름이 없는 대신 새빨간 태양이 3개나 걸려 있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영계의 풍경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영계에 비해 영기가 희박하고 희미한 마기가 나풀거리기는 했지만 그다지 농염한 것은 아니었다.

    ‘의외로군.’

    하지만 지금은 마계가 어떤 곳인지 살펴볼 때가 아니었다. 그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고 바로 주술을 외워 새까만 마갑(魔甲)을 불러냈다.

    대량의 마기가 흘러나와 인족의 기운을 감쪽같이 지워주었고 그의 몸에는 금색 비늘이 자라났다. 그를 둘러싼 마기가 점점 더 농염해졌다. 뿐만 아니라 미간에 검은 빛과 함께 제3의 요목이 생겨났다.

    한립은 자신의 모습을 살피곤 미소를 떠올렸다. 대승기 수사를 마주치지 않은 한 그가 인족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한립은 변신을 마치고 마기를 일으켜 마풍으로 변해 쏘아져 나갔다.

    잠시 후 그는 사막 지대를 벗어나 잿빛 관목들이 자라난 언덕 위에 도착했다.

    언덕은 사막에 비해 마기가 짙었는데 지형에 따라 마기의 농도가 달라지는 듯했다. 한립은 다시 멈추지 않고 하루를 꼬박 날아갔다.

    언덕지대를 지나 거대 호수로 그리고 새까만 산맥을 넘어갔다. 마계가 원래 황량한 것인지 아니면 그가 외진 곳을 선택해 날아가서인지 저계 마수를 제외하면 마족은 단 하나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한립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주위를 경계했다. 사흘 째 되는 날, 드디어 작은 산 아래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마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죽으로 몸을 가리고 나무 방망이를 들고 있는 마물들은 사냥감을 두고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콰릉!

    마풍 속의 한립은 반가운 얼굴로 손을 뻗어 금빛 뇌전을 날렸다. 그리고 뇌전을 맞아 기절한 마물들 중 하나를 끌고 와 머리를 쥐고 눈을 감았다. 추혼술을 써서 마물의 의식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마물은 영성을 지닌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가 찾고자 하는 장소가 이곳에서 머지않다는 것을 알아냈다.

    한립은 눈을 뜨고 뇌전을 일으켜 바닥에 기절한 다른 마물과 그들이 서로 차지하려 다투던 짐승도 모두 재로 만들었다.

    그가 방향을 틀어 어딘가로 날아갔다.

    몇 시진 후, 한립은 거대한 계곡 위에 멈추었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계곡은 바닥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거센 바람도 회색 기운을 어쩌지 못하고 길을 열었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온도가 낮아졌지만 한립은 차가운 공기를 뚫고 천 장 넘게 내려가 계곡 아래에 도착했다.

    신기하게도 그곳에는 남색 빙하(氷河)가 흐르고 있었다. 매우 낮은 온도에도 남색 물결이 도도하게 흘러갔다. 빙하 위에 떠올라 투명한 물길을 내려다보던 한립의 눈빛이 반짝였다.

    “상류는 이리 잔잔한데 하류로 갈수록 물줄기가 사납게 흐르다니, 지하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틀림없을 터. 역시 이곳이면 적당하겠어!”

    그가 빙하 위를 살피고 있을 때 갑자기 위쪽에서 바람이 일고 두 줄기의 남색빛이 들이닥쳤다. 남색빛은 날개달린 뱀 두 마리였다. 머리에 작은 뿔이 솟아 있었고 검은 혹이 난 것이 한 눈에도 극독을 지닌듯했다.

    그러나 한립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남색 뱀들을 잡아채 목을 비틀어 버렸다. 이에 뱀들은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그는 사정없이 뱀들을 빙하로 던졌는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뱀들이 순식간에 얼어 아주 깊은 곳으로 떠밀려가 종적을 감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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