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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56화 (913/2,000)

1156화. 연화술

*

어느 협곡 안,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은색 뇌진이 허공에 떠서 진동했다. 두 개의 크고 작은 뇌진의 중심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하나는 푸른 장삼을 걸친 한립이었고, 뇌전 뱀이 온몸을 휘감고 있는 거한은 뇌운자였다.

“한 수사, 준비되셨습니까? 미리 말해두지만 쌍중뇌진은 완벽하게 연구를 마친 것이 아니라 이번에 처음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전송 과정에 착오가 생긴다면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뇌운자가 진법 원반을 쥐고 웃음을 터트렸다. 꽤나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하겠습니다! 어차피 뇌 형도 저와 함께 전송되는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시간이 촉박하기는 했지만 제가 보기에도 쌍중뇌진에는 문제가 없어보였습니다.”

옆에서 한립도 빙긋 미소 지었다.

“저를 퍽 믿는 것처럼 말하지만 한 수사의 신중한 성격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적들이 쫓아오기 전에 어서 출발합시다!”

뇌운자가 눈을 흘기며 원반을 뇌진 중앙으로 날려 수결을 맺었다.

콰르릉!

두 개의 뇌진이 동시에 발동해 은색 뇌전을 발산했다. 중첩된 뇌진 중앙에서 굵은 뇌전들이 뿜어져 나와 뇌운자와 한립을 감쌌다.

* * *

일각이 흘러 협곡 안에 공간 파동이 일었다. 거대한 꽃이 나타나 천천히 꽃봉오리를 틔우자 그 안에서 보화와 흑악이 모습을 드러냈다.

뇌진은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보화는 뇌진이 있던 자리를 훑고는 안색이 달라졌다.

“어째서 이전과 다른 파동이 느껴지는 거지? 게다가 나조차 전송 지점을 예측할 수 없다니.”

여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예? 그럴 리가요. 대인께서는 뇌진의 법칙의 힘을 대부분 깨우치지 않으셨습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표식도 감응이 되지 않는군. 그 자가 죽었거나 천만 리 밖으로 달아났다는 소리겠지.”

고개를 젓는 여인을 보고 흑악이 놀라 할 말을 잃었다.

“공간파동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후자일 가능성이 크네. 내가 그 녀석들을 얕보았군. 이제 되었네. 천담화가 쓸모 있다고 해도 원기를 상해가면서 점을 칠 수는 없지. 인족의 영역으로 가세. 부상을 회복할 영약은 그곳에 있을 것이야.”

보화가 눈을 반짝이며 차분히 말했다. 여인의 담담한 모습이 의외였지만 흑악은 토를 달지 않고 그녀의 말에 따랐다.

떠나기 전 보화는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 미간을 좁혔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거대 꽃을 밟아 인족 방향으로 사라졌다.

* * *

콰르릉 콰쾅!

천만 리 밖, 거대 호수 위에 벼락이 내리치고 은색 뇌전이 뇌진을 만들어냈다.

쿵!

뇌진 중앙에서 한립과 뇌운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쌍중뇌진으로 천만 리 넘게 이동한 것이 확실합니다. 줄곧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던 느낌이 사라졌어요. 만일을 대비해 여기서 헤어지도록 합시다.”

“제 뜻도 같습니다. 그런데 쌍중뇌진은 반드시 뇌진을 부리는 이들 둘이 펼쳐야 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고 안타깝다는 듯 덧붙였다.

“하하, 세상사가 다 그런 것이지요. 이번에 강적들의 손에 살아남는 것만 해도 운이 좋은 겁니다. 이번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앞으로는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요.”

“좋은 일이 생기길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천담화를 지니고 계신데요.”

“왜요, 한 형도 천담화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뇌운자가 묘한 눈길로 그를 보았다.

“아닙니다. 천담화가 아무리 좋아도 제 공법과는 맞지 않아서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볼 날이 있기를 바라지요!”

“가시는 길이 순조롭기를 바라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뇌운자가 한시름 놓고는 마주보며 포권을 했다. 한립이 바로 푸른 둔광을 일으켜 날아가자. 뇌운자 역시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 *

한립은 쉬지 않고 삼일 밤낮을 날아 인족에서 멀리 떨어진 황량한 돌산에 도착했다.

파앗.

그는 돌산으로 내려가 노란 기운으로 몸을 감싸고 암석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돌산 깊숙이 들어가 열댓 개의 진법 깃발을 날려 하얀 보호막을 펼쳤다.

‘이쯤이면 되었겠지.’

한립은 한숨을 쉬며 동굴 안 청석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여러 개의 옥병을 불러내 단숨에 열댓 개의 단약을 삼키고는 운공을 시작했다.

고갈된 법력을 회복하고 동시에 여러 영약들을 생으로 삼켜 생긴 혼란스런 약성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법력을 회복하면서 기운을 정화시키려면 적어도 두세 달은 걸릴 것이다.

* * *

두 달 후, 한립은 후환이 될 만한 혼잡한 약성을 전부 제거하고 법력도 최고봉으로 회복했다. 그제야 그는 안심이 되었다.

원살 등 마족 성조 화신들이 다시 찾아와도 싸울 자신이 있었다. 그는 바로 금빛에 둘러싸인 하얀 목함과 남색 옥병을 불러냈다.

“혼돈이기! 이걸 손에 넣는 날이 올 줄이야. 제대로 연화시킬 수만 있다면 합체 후기에 이르는 것은 문제없겠어.”

그는 손끝으로 옥병을 튕겼다.

펑!

옥병 뚜껑이 저절로 날아오르고 그 안에서 푸른빛이 빠져나와 달아나려 했다. 이에 한립이 손을 뻗자 무형의 압력이 지하 동굴 전체를 짓눌렀다.

쉭!

푸른빛이 바르르 몸을 떨며 어쩔 수 없이 그의 손으로 끌려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푸른빛 속에 콩알만 한 검은색 빛덩이와 흰색 빛덩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남색빛을 일렁이며 두 눈에 영력을 잔뜩 불어넣었다. 그러자 흐릿하게 보이던 두 빛덩이가 더욱 선명해졌다.

‘아!’

그 순간 한립은 몸을 떨며 아연한 얼굴로 꼼짝하지 않았다. 한식경이 지나 겨우 이를 악물고 선혈을 토해내고서야 빛덩이에서 눈을 떼고 몸을 젖힐 수 있었다.

“혼돈이기가 대단하기는 하구나! 윤회(輪回) 환영이 너무 강력해서 마지막에 깨어나지 못했으면 혼돈이기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자아를 잃을 뻔했어.”

명청령안으로 혼돈이기를 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본원의 힘에 이끌려 수없이 많은 환영 세계에 떨어지고 말았다.

미리 위험에 대비해 체내의 기운 일부가 터지도록 해놓지 않았다면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죽는 날까지 앉아 있었을 것이다.

한립은 푸른빛 속 빛덩이가 혼돈이기가 분명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전설 속의 혼돈이기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이 영물을 연화하는 비술만 얻으면 합체 후기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물론 그전에 진마쇄 안의 두 노마와 만나야겠지만.’

그는 손끝에서 가느다란 금빛 뇌전을 뿜었다. 금빛은 신속하게 푸른빛을 파고들었다가 돌아왔다. 푸른빛 안의 검은색과 하얀색 빛덩이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남색 옥병을 가리켰다. 병 안에서 하얀 기운이 새어나와 푸른빛을 휘감아 돌아가자 뚜껑이 저절로 닫혔다. 한립은 옥병을 잘 챙겨 넣고 시선을 허공에 뜬 목함으로 돌렸다.

잠시 후 신비한 공간 안에 공간파동이 일고 한립의 의식 화신이 나타났다.

“…….”

한립이 공간을 살피고 미간을 좁혔다. 사방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 얼음 천지가 따로 없었다. 그때 인근에 파동이 일고 두 명이 더 나타났다. 검은 갑옷을 입은 풍사와 검은 장포의 차기공이었다.

그들은 한립의 등장에 한껏 들뜬 얼굴을 하고는 다가왔다.

“한 수사, 어째서 이제야 온 것인가! 나와 차 형은 자네의 본체가 화를 당한 줄 알았네.”

“빨리 두 분을 뵈러오려 했으나 지난 1년간 몇몇 적들에게 쫓기다 이제야 곤경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한 수사가 무사하다니 노부도 안심이네. 그보다 혼돈이기는 손에 넣었는가?”

차 노괴가 인사치레로 한 마디하고 바로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진마쇄에 계시는 두 분께서 저보다 더 잘 아실 게 아닙니까.”

한립이 눈썹을 끌어올리고 담담히 말했고, 차 노괴와 풍사의 표정도 밝아졌다.

“허허, 자네가 돌아가고 얼마 되지 않아 진마쇄 내부에 변화가 생긴 것을 감지하기는 했다네. 하지만 이곳에 갇혀 있어 제대로 감응할 수가 없었지. 한 수사의 어투로 보아 혼돈이기를 얻은 것이겠지?”

풍사의 어투가 어느 때보다 부드러워졌다.

“황천지화를 나서며 약간의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혼돈이기를 약간 추출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이제 두 분께서 연화술을 알려주실 차례입니다.”

“그 일은 급하지 않네. 우리가 자네의 말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혼돈이기를 얻었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차기공은 기뻐하는 기색을 감추고 신중히 물었다. 풍사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를 원하신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한립은 두 손을 교차했다.

콰릉!

금색 뇌전이 손바닥에 떠올라 아주 미세한 뇌전 두 줄기로 갈라져 풍사와 차 노괴 쪽으로 날아갔다. 마두들은 그것을 피하지 않고 뇌전 줄기를 잡아채거나 입으로 빨아들였다.

치직!

풍사의 손아귀와 차기공의 입안에서 뇌전이 사그라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마두는 눈을 감고 의식으로 뇌전 줄기를 감싸 치밀하게 살폈다.

이에 한립은 팔짱을 끼고 조용히 기다렸다. 풍사와 차기공은 거의 동시에 눈을 뜨고 흡족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주 미약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혼돈이기가 맞습니다. 한 수사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군요. 앞으로 어찌 해야 할지 잘 상의해보지요.”

풍사가 흥분한 기색으로 떠들었다.

“그건 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닙니까? 두 분이 연화술을 알려주면 제가 혼돈이기 절반을 양도하는 것으로요. 그 사이 마음이 바뀌신 것입니까?”

풍사의 말에 한립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허허, 한 수사가 오해를 했군. 협의한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되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상의해보자는 것일세. 수사가 먼저 혼돈이기를 우리에게 내줄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먼저 연화술을 알려줄 것인지도 정해야 하지 않겠나.”

차기공이 웃으며 끼어들어 설명했다.

“그런 말씀이었습니까? 하긴 서로 맹세의 구속을 받는다지만 혼돈이기가 걸린 일이니 아무렇게나 거래를 진행할 수는 없지요.”

“나와 풍 수사가 공평한 방법 한 가지를 찾았는데 들어보겠는가?”

“들어보겠습니다.”

차기공의 말에 한립이 관심을 보였다.

“거래를 여러 차례로 나눠서 진행하는 것일세! 우선 우리가 구결 일부를 전수해 주면 수사가 진위를 판단해 보고 약속한 혼돈이기 일부를 우리에게 넘겨주는 것이지.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수사는 마지막 남은 혼돈이기 때문에 심마를 건 맹세를 어기지 않을 것이고, 우리도 남은 구결 때문에 약속을 어길 일도 없겠지.”

풍사가 진지한 얼굴로 방법을 일러주었다. 두 마두는 마음을 졸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좋은 방법입니다. 두 분이 말씀하신 대로 하지요.”

“허허허! 아주 현명한 결정일세! 그럼 당장 거래를 시작하지. 여기 연화술의 가장 앞 구절이네, 연구해보고 문제가 없다면 3일 후에 혼돈이기 일부를 우리에게 넘겨주면 될 것이야. 시일을 넘기면 우리는 수사가 거래를 포기한 것으로 여기겠네! 그러면 수사는 심마의 반서를 당할 뿐 아니라 이후 혼돈이기를 연화하는 일도 불가능해 지겠지.”

풍사가 웃음을 흘리다 충고를 가장한 협박을 덧붙였다.

한립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차기공이 소매 속에서 하얀 옥간을 쏘아 보냈다.

“그럼 저는 구결을 연구해보고 빠른 시일 내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한립은 그 자리에서 옥간에 의식을 불어넣지 않고 포권을 했다. 그는 푸른빛을 반짝이며 영기의 빛으로 흩어져 공간을 빠져 나갔다.

“차 형, 녀석이 약속을 지킬까요?”

흑갑 거한이 노인을 향해 물었다.

“혼돈이기를 제련하는 비술은 우리와 혈광을 제외하면 아는 이가 손에 꼽힙니다. 혼돈이기를 이용할 욕심이 있다면 절대 약속을 어길 수 없겠지요. 게다가 지금은 성족 성제 기간이 아닙니까? 적들이 지천에 깔렸는데 빠르게 수행을 증진시킬 기회를 놓칠 수는 없을 겁니다.”

차기공은 자신만만했다.

“차 형 말씀대로 일이 잘 풀려야 할 텐데요. 하하, 혼돈이기만 손에 넣으면 이곳을 벗어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때가 되면 우리 둘이 힘을 합쳐 저 녀석을 제압하고 나머지 혼돈이기 절반을 강제로 추출하면 그만이겠지요. 어차피 단시일 내로 혼돈이기를 진정으로 연화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물론입니다. 혼돈이기 같은 귀한 영물을 겨우 인족 수사가 쓰게 둘 수는 없지요. 녀석이 아무리 머리 회전이 빨라도 우리가 진마쇄의 모든 금제를 이미 파훼했다는 것은 모를 것입니다. 딱 반 년 동안만 혼돈이기를 연화해 어느 정도 성공하면 진마쇄를 떠날 수 있을 겁니다. 때가 되면 혈광 그 놈은……!”

차기공이 말을 하다 말고 눈보라가 치는 하늘을 응시했다. 감정을 추스른 후에도 그의 눈에는 아직 난폭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으하하, 그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풍사가 음산한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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