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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46화 (903/2,000)
  • 1146화. 제뢰술

    *

    검은 실이 파멸법목을 빠져나와 영물의 제3의 요목을 공격해 하얀 빛을 없애버렸다. 석령은 한립의 웃음소리가 귓속을 파고든 순간 머리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을 떨며 추락했다.

    그 틈을 노려 한립이 두 손을 교차해 펼쳤다.

    콰르릉 콰쾅!

    뇌전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금빛 뇌전들이 튕겨나가 거대 뇌전그물로 변해 석령을 덮쳤다.

    석령이 충격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이미 뇌전 그물에 돌돌 말려 꼼짝할 수가 없었다. 영물은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누런 요화를 온몸에서 방출했다.

    치지지지직!

    뜻밖에도 벽사신뢰가 변한 금빛 뇌전이 누런 화염에 녹아내리는 듯했다. 탈출하려는 석령의 발악에 한립이 냉소하며 순식간에 지척으로 다가갔다.

    바로 그때, 귓가에 흑우상인의 다급한 전음이 들려왔다.

    “한 수사,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저 영물은 노부가 영충으로 제압하겠습니다!”

    한립은 움찔하며 하려던 행동을 멈추었다. 허공에 떠서 꼼짝 않던 노인이 돌연 눈을 깜빡이며 입에서 길게 휘파람을 뿜어냈다.

    그러자 날개 달린 남색 전갈이 그 소리를 듣고 십여 개의 허상을 만들어내 푸른빛으로 소실되었다. 그리고 석령 위에서 공간 파동과 함께 나타나 꼬리를 들어 올려 남색빛을 분출했다.

    금색 뇌전에 꽁꽁 묶여 있던 석령의 몸속으로 남색빛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석령의 얼굴에 푸른 기운이 떠오르자 전신에서 방출되던 누런 화염이 상극을 만난 것처럼 어둑해지더니 그대로 사그라졌다.

    이에 격노한 황량석령이 이를 악물고 몸속에 바람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력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한립은 영물의 괴이한 행동에 무언가를 떠올리고 곧바로 신형을 움직여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주변 영기를 흡수한 석령의 몸이 빵빵하게 부풀어 자신을 가둔 금색 뇌전 속에서 빛구슬로 변했다. 언제라도 터져버릴 수 있을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자폭할 생각을 하다니. 노부가 그것도 짐작하지 못했을 줄 아느냐!”

    막 환술에서 벗어난 흑우상인이 허공을 향해 손짓했다. 아주 가느다란 은빛 실그물이 산 정상에 떠올라 황량석령을 둘러쌌다.

    콰릉!

    은색 실그물은 석령의 방대한 몸을 감아 수축했고 무수히 많은 은색 주술문자들이 석령이 변한 은색 빛구슬로 흡수되었다.

    불가사의하게도 팽팽하던 석령의 몸이 줄어들더니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석령은 분노가 극에 달했지만 더 이상 자폭도 시도할 수 없었다.

    “하하하, 노부의 은소뇌망 속에 걸려들었으면 더는 달아날 생각 말거라. 얌전히 노부와 성도로 가자! 네 목숨을 취하려는 것이 아니니 걱정 말고.”

    흑우상인은 황량석령을 생포하자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지면으로 내려섰다.

    “허허! 축하드립니다, 우 형! 이번 임무는 순조롭게 마무리된 듯싶습니다. 빈승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한 형이 옆에서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석령을 놓칠 뻔했어요.”

    옆에서 천선이 나타나 미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석령을 생포하는 순간 환술이 저절로 깨져 그제야 빠져나온 것이다.

    “대사, 너무 겸손하십니다. 대사와 노부가 함께 나서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영물이 환술 신통을 쓰게 유도할 수 없었을 테고, 한 수사도 쉽게 제압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한 수사께 큰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맞는 말씀입니다.”

    흑우상인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닙니다.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한립은 은색 그물에 싸여있는 석령을 향해 손짓했다. 수많은 금색 뇌전들이 은색 그물을 빠져나와 그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벽사신뢰가 아닙니까. 저계 마족들에게는 강력한 살상 무기가 되겠습니다.”

    한립을 지켜보던 흑우상인이 한마디 하더니 은색 실그물에 둘러싸인 석령을 향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천둥소리가 울리고 석령을 더욱 옥죄어 주먹만 하게 줄이고는 소매 속으로 집어넣었다.

    “벽사신뢰가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마물에 치명적인 공법들이 많지요. 그러나 수련하기가 어렵거나 이미 실전되어 인족 수사들 중 그런 공법을 펼칠 수 없어 아쉽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족들을 상대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요.”

    천선도 서서히 지면으로 내려와 탄식했다.

    “세상만사가 간절하게 구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 수사께서 벽사신뢰를 얻은 것도 다 그만한 인연이 닿아서겠지요. 듣자니 진정한 제뢰술을 이용하면 합체급 마존도 위협할 만한 위력을 낸다던데, 성도에는 오직 하반부 구절만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 형께서는 만황세계로 가서 제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이종족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겁니다.”

    흑우상인이 웃으며 제안했다.

    “제뢰술의 하반부 구절이요?”

    심연의 사대요왕에게 제뢰술을 얼마간 배우기는 했지만 위력이 큰 대신 발동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 실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사용한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제뢰술의 상반부는 신뢰의 위력을 통제해야 하는지 알려준다면 하반부는 진정으로 신뢰를 조종하고 부리는 법을 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둘 중 어느 것도 부족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랬군요. 상인의 말씀대로 기회가 되면 만황세계로 나가 찾아봐야겠습니다.”

    한립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쩐지 제뢰술이 너무 실용적이지 않다 했더니 사대요왕들이 절반 밖에 전수해 주지 않은 것이다.

    “성황성의 전황도 그리 좋지 않아 빈승은 바로 돌아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산꼭대기에서 한담을 이어가던 중 천선이 먼저 인사를 했다.

    “허허, 노부도 하루빨리 석령을 성도로 데리고 가야합니다. 급히 써야할 곳이 있으니까요. 한 수사, 천선대사, 마겁이 지나고 다시 만나 뵐 날이 있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아, 한 수사께서는 이곳에 며칠 더 머무르시겠군요?”

    “예, 황천지화를 이용할 일이 있어 며칠 머물다 떠날 생각입니다. 두 분 모두 몸조심하시고 안전하게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흑우상인이 미소를 머금고 포권을 하자 한립도 마주보며 인사를 했다.

    이렇게 검은 빛과 하얀 빛이 시간차를 두고 떠올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몇 번 번득이다 시야에서 사라진 후로는 그들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산 정상에서 그들을 바라보던 한립의 얼굴에 점차 미소가 사라졌다.

    “제뢰술 하반부가 있단 말이지! 아무래도 성도에 한 번 다녀오기는 해야겠구나. 물론 지금은 혼돈이기를 얻는 것이 먼저겠지만.”

    그가 신형을 날려 구덩이 위로 날아갔다. 석령과의 전투가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아 황천지화는 그대로였다.

    누런 안개가 뒤덮은 구덩이는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립이 주변을 둘러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즉시 여러 진법 깃발들을 불러내 사방으로 쏘아 보냈다. 반짝이는 빛과 함께 진법 법기들이 허공에 스며들어 하얀 안개가 산 정상을 자욱하게 덮었다.

    곧 거대한 구덩이와 한립 모두 안개에 가려져 바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립의 소매 속에서 13개의 보랏빛이 쏘아져 나가 웽! 하는 소리와 함께 안개 속으로 숨어들었고, 그의 몸에서는 녹색 그림자가 빠져나와 지하로 스며들었다.

    그는 신중한 얼굴로 구덩이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뒤통수를 내리쳤다. 그러자 금빛 원영이 머리 위로 떠올랐다.

    한립을 쏙 빼닮은 원영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작은 손을 뻗었다.

    콰릉!

    금빛 실에 싸여진 둥근 구슬이 한립의 몸속에서 빠져나왔다. 원영의 하얗고 부드러운 손이 구슬을 가리켰고, 구슬 표면의 금실들이 갈가리 찢겨나가 봉인되어 있던 목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영이 중얼중얼 주문을 외자 주위에 십여 개의 오색 구슬이 나타나 괴이하게도 눈알로 변했다.

    * * *

    끝없이 펼쳐진 초원 상공에 한립의 의식 한 줄기가 응결되었다. 그는 주위를 살피다 차기공이 보이지 않자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훽 하고 고개를 돌려 하늘 높이 뜬 하얀 태양을 바라보았다.

    한식경이 지났을 때쯤 낯선 사내의 웃음소리가 고공에서 울려 퍼졌다.

    “하하, 겨우 의식 화신이 본 좌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수사도 평범한 부류는 아니구만! 차 노괴가 자네에게 큰 기대를 걸만 해.”

    하얀 태양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검은 빛줄기로 쇄도했다. 그는 검은 갑옷을 걸친 구레나룻을 기른 거한이었다. 거한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한립을 훑으며 흥미롭다는 눈빛을 보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차 선배님은 어디 계시지요?”

    한립은 갑작스런 상황에 흠칫 놀랐지만 차분히 물었다.

    “차 노괴는 급한 일이 있어 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야. 그동안 본 좌와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대화라……. 저는 수사가 누구신지 모를뿐더러 차 선배님께서도 언급하신 적이 없습니다.”

    “차 노괴야 당연히 내 존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겠지!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차 노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똑같이 할 수 있단 말일세. 물론 내가 원하는 거래의 대가는 더욱 낮을 테고 말이야.”

    “오, 그렇다면 이야기를 들어 볼 수는 있겠습니다.”

    “간단하네. 차 노괴가 혼돈의 기운을 추출하고 연화하는 법을 알려주는 조건으로 수사와 거래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런데 나 역시 그것들을 알고 있고 자네가 추출하게 될 혼돈의 기운을 소량만 넘겨준다면 거래를 하지.”

    “괜찮은 조건입니다만, 저는 차 선배님께 심마를 걸고 맹세를 했습니다. 쉽게 약속을 저버릴 수 없는 처지이지요.”

    거한의 말에 한립은 고개를 저었다.

    “허허, 아직 차 노괴에게 혼돈의 기운을 사용하는 법을 배운 것도 아닌데 약속을 저버렸다고 할 수야 없지 않겠나!”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수사의 말을 믿고 차 선배님과의 거래를 그르치는 것은 너무 경솔한 행동일 듯싶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진마쇄에서 혼돈의 기운을 추출하는 방법은 당장 알려줄 수 있다네. 게다가 거래를 마치고 나서 수사에게 막대한 이득이 될 만한 것을 내주지.”

    “이득이 될 만한 것이요?”

    한립이 머뭇거리고 있는데 주변 공간이 흔들리고 푸른 초원이 일그러져 먼지 가득한 노란 사막으로 변했다. 거기다 하늘 위의 먹구름 속에는 은색 뇌전 뱀들이 득실거렸다.

    “이렇게 빨리 탈출했을 리가!”

    “풍사, 네가 감히 노부에게 손을 쓰다니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먹구름 속에서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가 콰르릉 울렸다. 차기공의 목소리였다. 이어 새까만 거대 손이 응결되어 거한을 내리쳤고 엄청난 압력이 먼저 닥쳐왔다.

    사방의 공기가 단단하게 굳은 것처럼 한립의 의식 화신은 꼼짝할 수 없었고, 그 옆으로 쿵! 하고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다.

    거한이 갑옷에서 검은빛을 방출하자 알 수 없는 힘이 피어올라 압력 대부분을 이끌어 비켜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압력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냈다.

    “뭘 믿고 이런 짓을 벌였나 했더니 견기대법(牽機大法)을 수련했구나! 어디 그럼 노부와 제대로 실력의 고하를 겨루어 보자!”

    차기공이 아연한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지르고 검은 먹구름에서 삼두육비의 거대한 마물 허상을 응결해냈다.

    “자, 잠시만요! 수사께서는 혼돈의 기운을 못 얻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놈을 처리하고 당연히 혼돈의 기운도 얻을 것이다.”

    차기공의 말에 마물 법상이 흉흉하게 눈을 번득였다. 여섯 개의 손에 검은 기운이 떠올라 순식간에 커다란 빛구슬로 변했다. 언제든지 거한을 향해 검은 빛구슬들을 투척할 기세였다.

    “정말 알고 있는 방법대로 하면 진마쇄에서 혼돈의 기운을 추출할 수 있다고 믿고 계시나 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진마쇄에서 혼돈의 기운을 추출하는 방법은 아주 오래전 여럿이 모여 공동으로 연구해 낸 것이 아닌가. 괜한 말로 시간을 끌 생각 말거라!”

    “제가 왜 시간을 끌겠습니까? 견기대법을 대성한 제가 차 형을 두려워할 까닭이 어디 있다고요! 그저 여기서 싸우다 둘 다 피를 보는 상황이 싫어서 이러는 것입니다. 게다가 제 말이 믿겨지지 않는다면 차 형의 성격에 싸우다 말고 이런 대화나 나누겠습니까.”

    거한의 말대로 거대 마물 법상은 고공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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