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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45화 (902/2,000)

1145화. 포위

*

활활 타오르는 누런 화염은 신기하게도 음산하면서도 싸늘한 기운을 품고 있었고 불빛이 어른거릴 때마다 악귀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펑!

은색 뇌전과 누런 화염이 동시에 흩어졌다.

‘황천지화? 아니지, 적은 양의 황천지화가 저렇게 위력적일 수는 없을 텐데…….’

한립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귓가에 천선의 전음이 울렸다.

“황천지화 속에서 수만 년 동안 수련한 영물답습니다! 이미 지화(地火)와 자신의 요기를 결합해 강력한 신통으로 탈바꿈했군요. 한 시주께서도 석령과 상대하게 되면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충고 감사드립니다. 신중히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고공에서 더욱 자주 벼락이 내리쳤고 구덩이 아래쪽에서 솟구치는 누런 요화(妖火)도 불구슬을 이루어 은색 뇌전을 막아냈다.

고공의 검은 소용돌이가 벼락을 멈추고 머리통만한 뇌전 구슬을 만들어내자 누런 안개 속 석령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꽈악꽈악!

괴이한 울음소리와 함께 구덩이 속에서 무언가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긴장된 눈빛으로 하늘 위의 뇌전 구슬을 주시하는 영물은 입이 아주 크고 네 다리가 두꺼비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저 중간에 새빨간 세 번째 눈이 박혀 있었고, 금빛으로 빛나는 피부와 날카로운 발톱을 지녔다는 점이 보통의 두꺼비와는 아주 달랐다.

‘저게 황량석령이로구나!’

석령 본체의 등장에 고공의 뇌전 구슬이 자극을 받은 듯 즉시 떨어졌다. 순식간에 산 정상은 뇌전 구슬로 덮였고 우박이 떨어져 내리는 듯했다.

이에 황량석령이 입에서 노란 꽃을 분출했다. 표면에 오색 주술 문자들이 새겨진 노란 꽃이 커다랗게 변해 석령을 에워쌌다. 괴이한 거대 꽃은 한눈에도 범상치 않았다.

뇌전 구슬은 정확히 석령을 향해 떨어져 노란 거대 꽃에 부딪혔다. 그러나 거대 꽃은 빙글 돌며 표면의 오색 문자에 빛을 발했고 뇌전 구슬들은 소리 없이 녹아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뇌전 구슬을 흡수할수록 거대 꽃의 꽃잎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노란 거대 꽃은 처음보다 두 배로 불어났고 하늘을 뒤덮은 뇌전 구슬은 전부 흡수당했다.

거대 꽃 아래에 숨어 있는 황량석령은 노란 거대 꽃이 커질수록 즐겁게 소리를 질렀다. 힘껏 배를 부풀린 석령은 머리 위의 거대 꽃을 입안으로 빨아들였다.

콰릉!

천둥소리가 울리고 석령의 몸에서 열댓 개의 굵은 은색 뇌전이 뿜어져 나와 은색 뇌전 그물을 만들었다. 이제 팔뚝만 하던 석령은 송아지만큼 부풀어 올랐고, 세 개의 눈을 번쩍 뜨고 왕성한 기운을 드러냈다.

“계획을 바꿔야겠습니다. 황량석령이 천뢰를 흡수하는 신통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아무래도 겁을 치르고 나면 기력이 쇠하기는커녕 수행이 더 늘어나겠습니다. 더 지켜볼 것 없이 당장 움직입시다.”

흑우상인의 전음이 한립과 천선의 귓가에 울렸다. 이에 한립과 천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고공의 먹구름 속에서 열댓 마리의 뇌전 교룡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금입니다.”

그것을 본 흑우상인이 더는 숨지 않고 수결을 맺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휘릭!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진 노인은 석령 위에 나타나 매서운 얼굴로 팔을 뻗었다. 은색 거대 종이 뻗어나가 거대 두꺼비 영물을 덮쳤고, 동시에 지척에서 무수히 많은 검은 실들이 떠올라 영물을 향해 쇄도했다.

파앗.

그리고 황량석령 뒤에서는 하얀 연꽃이 소리 없이 피어났다. 그 위에 괴이하게 나타난 것은 바로 천선대사였다.

승려는 자비로운 표정을 거두고 염주(念珠)를 꺼내 들었다. 빛을 머금은 염주는 수십 개의 오색 빛구슬로 변해 쏘아져 나갔다.

석령에게 닿기 전에 구슬들은 사람 머리만큼 커져 있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황량석령이 흠칫 놀라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석령은 노란 거대 꽃을 다시 분출해 떨어져 내리는 은색 종을 막았고, 회전하며 무수히 많은 금빛을 사방팔방으로 뿜어냈다.

금빛과 검은 실이 충돌해 날카로운 폭음이 들려왔고 산 정상은 금빛과 검은빛으로 번쩍거렸다. 검은 실은 물론 오색 빛구슬도 금빛 때문에 석령에게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

한편 거대 꽃과 부딪친 은색 종은 부르르 몸을 떨고 세 번의 종소리를 울렸다.

댕- 댕- 댕-!

종소리는 사람의 혼백을 파고드는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종이 울리자 은색 종을 막고 있던 거대 꽃이 산산조각이 나 영기의 빛으로 흩어졌다. 이어 흐릿하게 변한 은색 종은 작은 산만하게 부풀어 황량석령을 가두었다.

그것을 본 노인과 승려가 희색을 드러내며 법결을 멈추었다.

콰르릉, 콰쾅!

그제야 은색 뇌전 교룡 몇 마리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고 먹구름 속에서 떨어져 내렸다.

교룡들이 산 정상에 접근했을 때 은색 그물이 떠올랐고 교룡들은 은색 그물로 뛰어들 때마다 터져 버렸다.

흑우상인이 미리 펼쳐둔 ‘은소뇌망’은 놀랍게도 천뢰를 차단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만령방에 이름을 올린 영보라 할만했다.

주문을 외우던 흑우상인은 열손가락을 튕겨 은색 종에 법결을 흡수시켰다. 이에 은색 종은 당장이라도 노인에게 되돌아갈 것처럼 움직였다.

쿠콰쾅!

그 찰나의 순간 은색 종 안에서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져 나오더니 기이한 한기의 파동과 함께 거대 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틈으로 새어나온 화염 속에서 금빛이 튀어나와 구덩이로 떨어져 내렸다.

황량석령이 강적들의 등장에 황천지화 속으로 달아나려 하고 있었다.

흑우상인과 천선이 영물이 달아나게 놔둘 리 없었다.

노인은 재빨리 보물을 발동해 거대 종에서 음파를 퍼트렸고 승려는 새하얀 옥 원반을 꺼내 법결을 때려 넣었다. 구덩이 주변에서 금제의 파동이 겹겹이 일어나 영물의 퇴로를 막았다.

그뿐 아니라 금제 위로 봉황 울음소리가 들리고 세 마리 불새가 입에서 불기둥을 분출했다. 불기둥들이 불바다를 이루어 석령에게 몰아쳤다. 게다가 석령 옆에서 짙은 남색의 날개 달린 전갈이 괴이하게 나타나 독침을 쏘아댔다.

달아나려던 황량석령은 또다시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이에 석령도 격분했는지 눈을 부릅뜬 채 이마에 있는 제3의 눈에서 하얀빛을 방출했다. 너무 강력한 빛이라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석령을 공격하던 흑우상인과 천선이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뜨고는 안색이 급변했다.

흑우상인은 자신이 누런 불바다로 뒤덮인 곳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를 내뿜어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황천지화! 아니지, 이건 환술이다.”

환술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흑우상인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황량석령의 환술이 뛰어나도 이렇게 아무 조짐도 없이 합체기 수사인 그를 가둘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앞에 펼쳐진 환영은 가장 성가신 황천지화였다. 지화 속에서 수만 년간 살아온 영물은 이곳을 실체에 가장 가깝게 형상화할 수 있었기에 빨리 탈출하려면 강제로 깨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빠르게 검은 방패 여러 개를 방출해 몸을 보호했다.

한편, 천선대사가 눈을 떴을 때는 회색 기운으로 가득 찬 또 다른 공간 속이었다. 흑우상인이나 석령 대신 방대한 무언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빛 찬란한 몸에 역시 두꺼비를 닮은 요수는 일곱 개의 황금색 눈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었다. 산만한 거대 요수가 발산하는 기운에 숨이 막힐 듯했다.

“칠목금섬(七目金蟾)!”

천선은 요수의 이름을 중얼거리다 불호를 외치고 결연히 금색 교룡 머리 지팡이와 은색 발우를 방출했다.

흑우상인과 천선이 허공에 떠서 꼼짝 않는 동안 세 마리 불새도 당황한 기색으로 제자리에서 날갯짓만 하고 있었다. 수사들은 물론 영수도 환술에 빠진 것이다.

유일하게 전갈만이 석령의 제3의 눈이 하얀 빛을 발산한 후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독침을 쏘아댔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보조 없이 전갈이 황량석령을 홀로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황량석령은 남색 독침을 가볍게 무력화시키고 전갈을 노려보고는 금빛으로 변해 아래쪽으로 뛰어들었다. 석령은 지금은 시간을 끌 때가 아니라 최대한 빨리 달아나야할 시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석령이 금제에 닿기 전 입을 벌려 누런 빛구슬을 연달아 날렸다.

퍼퍼퍼퍼펑!

연달아 폭음이 울리고 날카로운 노란 빛이 터져 나왔다. 금빛 금제가 위태롭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석령이 기쁜 마음에 다시 열댓 개의 빛구슬을 뿜어 금제를 완전히 깨려는데 돌연 금제 위쪽에 푸른빛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푸른빛의 정체는 이제껏 은신해 있던 푸른 장포를 입은 한립이었다.

한립은 고개를 들어 황량석령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의 소매 속에서 은색 자가 날아올라 수많은 은색 자 그림자로 변해 날아드는 빛구슬들을 전부 갈랐다.

황량석령은 흑우상인과 천선을 목표로 환술을 펼쳤기에 조금 떨어져 있던 한립은 강력한 의식의 힘으로 쉽게 환술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석령은 금제를 깨고 황천지화로 달아나기 직전 또 다른 적에 가로막히자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푸확!

영물이 대량의 누런 화염을 뿜었다. 지하에서 수만 년간 수련해 응결한 음한(陰寒)의 기운을 품은 요화였다.

그것을 본 한립은 피식 웃으며 검은 산을 불러냈다. 검은 산이 그의 법결을 맞아 하단에서 회색 기운을 뿜어냈다. 회색 기운이 회전하며 소용돌이를 만들어 누런 요화를 빨아들였다.

콰릉!

소용돌이와 닿은 누런 요화가 천둥소리를 내며 그 안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그때 황량석령이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쾅!

회색 소용돌이 속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노란 화염이 뚫고 나와 누런 두꺼비로 변해 뛰어올랐다. 달려드는 두꺼비에게서 엄청난 한기가 느껴졌다.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요화가 상대하기 까다롭기는 해도 그가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었다.

파앗.

그가 손을 뻗자 두꺼비 위로 오색 한염에 둘러싸인 거대 손이 나타났다. 거대 손은 번개처럼 두꺼비를 낚아채려 달려들었다. 그런데 두꺼비는 피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피할 생각이 없던 것인지 그대로 오색 거대 손에 붙들렸다.

화르륵!

두꺼비를 휘감으려던 오색 한염이 순간적으로 튕겨나가고 누런 요화가 거꾸로 거대 손을 타고 올라갔다.

그러나 오색한염도 극한의 성질을 지니고 있어 쉽게 요화에게 당하지 않았다. 거대 손에서 오색 한염이 높게 치솟아 누런 요화를 가로막았다.

그러는 동안 한립이 손끝으로 검은 산봉우리를 짚자 산봉우리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황량석령 머리 위로 공간파동이 일고 검은 산봉우리가 괴이하게 나타나 회색 기운을 방출했다.

무형의 압력에 짓눌린 석령의 움직임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느려졌다.

푸확!

놀라 발버둥 치던 석령은 아무 소용이 없자 허공을 향해 누런 구슬을 뱉어냈다. 누런 구슬은 영물이 탄생한 순간부터 품고 있던 요단(妖丹)이었다.

요단이 석령의 머리 위에서 빙글 돌아 무형의 압력을 밀어내는 동시에 노란 불뱀들을 뿜어냈다. 불뱀들이 바람을 타고 몸집을 키워 위쪽으로 날아올랐다.

노란 불뱀과 회색 기운의 교전에 검은 산봉우리가 더 이상 떨어져 내리지 못했다. 그때 아래쪽에 있던 한립이 서늘하게 눈을 빛내고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등 뒤로 천둥소리가 울리고 수정 날개 한 쌍이 나타나 펄럭였다.

콰릉!

한립은 한 줄기 은색 뇌전으로 변해 종적을 감추었다.

허공에서 남색 전갈의 독침 공격을 피하며 반격을 꾀하던 석령 뒤로 뇌전을 몸에 두른 한립이 번득이며 나타났다.

황량석령은 화들짝 놀라 재빨리 제3의 요목에서 하얀빛을 발산하려 했다. 그러나 한립은 미간에 검은빛을 번득여 파멸법목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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