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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32화 (889/2,000)

1132화. 의천성 전투 (5)

*

한립은 72자루의 푸른 비검을 움직여 푸른 연꽃으로 사자 머리 두 개가 달린 거대 짐승을 조각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어쩐 일인지 근심이 어려 있었다.

괴수들이 끊임없이 나타나 그를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일검에 죽일 수 있을만한 수준이었지만 계속해서 다른 괴수들이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이런 수미보물에 갇힌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72개의 비검으로 괴수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주변에 빠져나갈 만한 공간접점이 없는지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공간이 진마쇄와 마찬가지로 끝없이 넓다는 것을 알아냈다.

‘보아하니 술법으로 공간접점을 찾아야만 강제로 이곳을 뚫고 나갈 수 있겠구나.’

그가 침음하며 결론을 내리는데 주위에서 괴수 무리들이 또 나타났다. 비검들이 푸른 연꽃 허상으로 변해 괴수들을 산산조각 냈다. 하지만 한립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이번 괴수들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서 똑같이 일격에 죽일 수 있어도 법력이 조금 더 소모되었다. 미세한 차이였지만 이런 식으로 점점 괴수들의 힘이 강해지면 결국에는 일이 성가시게 될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한립이 주저 없이 손끝으로 자신의 미간을 가리켰다.

파앗!

미간에 검은 실금이 가고 칠흑같이 새까만 제3요목이 나타났다. 파멸법목이었다. 현묘한 신통들을 지닌 파멸법목으로 이 공간의 취약한 부분을 찾을 생각이었다.

한립이 수결을 맺으며 주문을 외자 요목이 천천히 눈을 뜨고 사방을 훑었다. 신기하게도 주술문자들이 떠오른 검은 눈동자에서 검은 실이 분출되어 어딘가로 뻗어나갔다.

그는 두 눈은 감고 제3의 눈만을 뜨고는 푸른 빛줄기로 날아올랐다. 바로 검은 실이 사라진 방향이었다.

전방에서 일곱 빛깔의 기운이 요동치며 새로운 괴수들을 응결해 냈지만 한립은 눈도 뜨지 않고 손짓해 괴수들을 가루로 만들었다. 그는 아낌없이 법력을 써서 날아가 순식간에 그곳에서 사라졌다.

그 뒤를 괴수들이 괴성을 지르며 따라갔다.

“…….”

* * *

두 시진 후, 회백색 7층 거탑 앞에 선 한립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범한 암석을 깎아 만든 것 같은 거탑 꼭대기에 거대한 수정 구슬 눈알이 박혀 있었고, 1층에는 반달 모양의 커다란 석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한립의 뒤로는 수많은 은색 자 허상들이 대규모 괴수들을 공격해 가루로 만드는 중이었다.

‘영리하게도 이곳에 공간접점을 숨겨 놓다니. 어쩔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겠구나.’

한립의 손짓에 멀리 자 그림자들이 소실되고 은색 자가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거탑 정상의 구슬을 쳐다보다가 은색 자를 휘둘렀다. 그러자 공간파동이 일고 커다란 은색 자 그림자가 거탑을 갈랐다.

츠츳!

은색 자 그림자가 수정에 닿으려는 찰나 1층에서 일곱 빛깔 주술문자들이 떠올랐다. 은빛 그림자는 주술문자에 닿자마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과연 탑을 바깥에서 깨기란 불가능해.”

한립은 둔광을 일으켜 거탑 아래의 석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한립이 푸른 거대 손을 만들어 석문을 밀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석문이 활짝 열렸고 하얀빛을 발산하는 통로가 드러났다.

한립은 잠시 고민하다 차분히 안으로 들어갔다. 청석으로 만들어진 통로는 또 다른 석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명청령안으로 멀리 석문 안을 살피려 해도 금빛이 번득이며 영목 신통을 튕겨냈는데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기이한 흡인력을 느끼고 기겁했다.

대연결이 무의식중에 발현돼 운영되어 청량한 기운이 눈으로 퍼지지 않았다면 시선을 뗄 수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푸른빛의 육체가 그 앞을 막아서 금빛을 철저히 차단하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한립의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렇게 강력한 금제는 이제껏 얼마 보지 못했었다. 돌연 그의 앞을 막아준 푸른 육체는 지선의 몸을 이용한 영체 화신이었다.

한립은 골똘히 궁리하다 72자루의 비검들을 주위를 맴돌게 하고 소매 속에서 자문 서금충 십여 마리를 불러냈다. 그리고 두 손에는 은색 자 대신 푸른색과 검은색 산을 불러냈다.

파앗.

한립이 금빛을 반짝이며 산악거원의 변신술을 사용해 거대한 원숭이로 변했다.

휙! 휙!

거원(巨猿)은 곧바로 두 극산을 석문을 향해 내던졌다. 두 번의 경천동지할 폭음이 울렸다. 석문 위로 금빛이 나타났으나 눈부신 두 빛덩이가 터지는 통에 금제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안색이 조금 창백해진 거원은 땅을 박차고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석문 뒤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휙 하고 나타난 거대한 은색 손이 날아들었다.

아직 충돌하기 전인데도 무형의 괴력이 거원을 덮쳐왔다. 한립이 변한 거원은 두려움 없이 털이 복슬복슬한 손을 날렸다. 그러자 금빛 주먹이 은색 거대 손과 부딪혔다.

쨍-!

은색 거대 손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거원의 주먹에 힘없이 부서졌다. 바로 그때, 거원의 머리 위로 조용히 은색 짐승의 발이 날아들었고 이에 거원은 재빨리 금색 손바닥으로 그것을 쳐올렸다.

은색 짐승의 발이 펑 하고 터져 나갔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명청령안을 이용해 열댓 장 밖 허공으로 입에서 푸른 빛기둥을 쏘아 보냈다.

콰쾅!

은색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는데 두 손이 부서진 은색 꼭두각시였다. 거원은 꼭두각시를 향해 푸른 검기를 뿌려댔다.

휘휘휙.

그런데 놀랍게도 파공음이 들리고 은색 괴뢰들이 일곱 마리나 더 등장했다.

‘이런.’

한립이 흠칫 놀랐을 때 꼭두각시들은 8개의 은빛으로 변해 달려들었다.

* * *

반 시진 후, 금빛 거원이 길게 포효하며 두 개의 커다란 산봉우리를 투척했다.

콰르릉! 콰릉!

은색 꼭두각시 두 마리가 폭발하고 두 개의 극산은 괴이하게 거원의 손으로 돌아왔다. 나머지 꼭두각시들은 보라색 딱정벌레에 둘러싸여 제대로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분분히 추락했다.

그것을 본 거원이 두 극산을 회수하고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청석 바닥에 떨어진 은색 괴뢰 잔해는 족히 스무 마리는 되어 보였다. 한립이 눈살을 찌푸리며 머지않은 곳을 신중하게 살폈다.

한 개체의 실력은 화신 초기밖에 되지 않았지만 수량이 꽤 많았다. 거탑 1층을 비행해 이미 100여 마리 이상을 죽인 후였다.

산악거원으로 변해 은색 꼭두각시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았고 자문 서금충을 이용해 상대했기에 그나마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이제 겨우 1층이라니!’

한립은 회색 기운으로 가려진 전방의 계단을 주시했다. 처음에는 벽을 뚫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면 숨겨진 공간접점에 영향을 미칠까봐 포기했다.

거탑과 공간접점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는데 그런 짓을 하면 득보다 실이 클 것이다. 한립이 다시 둔광을 일으켜 계단으로 날아가고 13마리 자문 서금충들이 그 뒤를 쫓았다.

파앗-

잠시 후, 그가 사라진 1층에 금빛이 반짝이고 호리호리한 신형이 나타났다. 분홍색 궁장 치마를 입은 그녀는 음양이살 중 한 명이었다.

“진령 변신술을 익히고 강력한 영충까지 부릴 줄이야! 내가 따라들어 왔으니 망정이지 이곳에 오래 가둬두지 못 할 뻔했구나.”

미부인이 한 손을 펼치자 허공에 은색 진법이 떠올라 빛을 발산하더니 신형이 모호해지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 * *

거탑 2층.

푸른 검빛이 번득이며 1층의 꼭두각시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진 괴뢰들을 사정없이 갈랐다. 실력이 인족 화신 중기에 맞먹는 꼭두각시들이었다.

한립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영충들을 데리고 꼭두각시 잔해가 쌓인 그곳을 떠났다.

거탑 3층으로 올라가자 열댓 마리 화신 후기 꼭두각시들이 한립을 에워싸고 달려들었다. 또 거탑 4층에서는 연허 초기의 황금색 꼭두각시들이 나타났고, 거탑 5층과 6층에서는 연허 중후기의 금색 꼭두각시들이 등장했다.

6층의 금색 꼭두각시들은 꽤 성가셔서 한립도 몇 가지 강력한 신통을 펼치고서야 다음 층에 이를 수 있었다. 규칙에 따르면 이번 층에는 합체기 실력을 지닌 꼭두각시가 나타나야 했다.

그런데 7층에 들어서자 아주 고요했다. 아무것도 그를 막지 않았지만 한립은 더욱 경계심을 키우며 주의했다. 파멸법목으로 공간접점이 7층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그나마 안심이었다.

웽!

그때 갑자기 13마리 영충들이 그를 감싸고 날카롭게 울었다. 깜짝 놀란 한립이 움직임을 멈추고 남색 빛이 깃든 눈으로 전방을 노려보았다.

반투명한 꼭두각시 두 마리가 일곱 빛깔의 기운을 발산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꼭두각시들은 사람과 꼭 닮아 있는데다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흥미롭기는 하지만 겨우 영성도 없는 합체 초기 꼭두각시로 나를 막을 수 있을까?”

한립은 빠르게 꼭두각시들을 훑고 냉소했다. 그는 곧바로 두 개의 극산과 13마리 자문 서금충을 날려 보냈다.

이어서 은색 자를 꺼내 손을 흔들자 커다란 은색 천이 펼쳐져 사납게 뿜어져 나갔다. 한립이 한 번에 맹공을 펼친 것은 두 마리 꼭두각시들에게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의 공격에 꼭두각시들의 눈에 일곱 빛깔의 광채가 흘렀고 네 개의 팔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팟!

칠색 광채가 네 개의 손바닥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나 괴이하게 일곱 빛깔의 구슬을 만들어냈다. 머리통만 하던 빛구슬은 일곱 빛깔의 보호막으로 변해 두 꼭두각시들을 둘러싸고 진동했다.

보호막 위에 크고 작은 주술문자들이 나타나 아름다운 빛을 반짝였다.

펑!

은색 천이 놀라운 속도로 보호막을 베었다. 그러나 주위의 공간이 모호하게 변하더니 은색 천의 접근을 막았다.

우웅!

잠시 후 은색 천이 애달피 울며 원형으로 돌아가 튕겨 나왔다.

한립은 가슴이 철렁해 법결을 발동해 두 산봉우리를 키웠다.

쾅! 쾅!

보호막 주변이 왜곡되며 두 산봉우리도 튕겨나갔다. 이제 13마리 자문 서금충들이 변한 보랏빛 덩어리들 차례였다. 보호막 주변이 부들부들 떨리고 영충들도 똑같이 튕겨 나갈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13마리 딱정벌레가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몸집을 키워 은빛이 머금은 발을 바늘처럼 허공에 찔러 넣었다.

보호막 주변 허공이 아무리 왜곡되고 진동해도 자문 서금충들은 다리를 박고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입에서 금실을 뿜어내기도 했다.

이에 두꺼운 일곱 빛깔의 보호막에서 열세 가닥의 금실을 따라 빛이 빨려나갔다. 순식간에 보호막이 어둑어둑해졌다.

두 유리 꼭두각시가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다 네 손을 뻗어 일곱 빛깔의 보호막에 영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빛을 머금은 보호막이 다시 밝은 기운을 방출하며 진동했다.

13마리 서금충들이 보호막에서 빛을 빨아들이는 속도가 엄청났기에 두 꼭두각시의 수행으로도 쉽게 따라잡지 못했고 대치 상태가 계속 이어졌다.

이에 한립은 얼굴이 밝아져 한 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72자루의 푸른 비검들이 튀어나가 백여 개의 검빛을 만든 다음 거대한 푸른 거검으로 뭉쳐졌다.

“베어라.”

한립의 나지막한 명령에 거검이 푸른빛으로 변해 보호막을 갈랐다. 청죽봉운검이 변화무쌍한 신통 면에서는 은색 자만 못해도 훨씬 날카롭고 오랜 세월 한립의 본명법보로 배양되었기에 약간의 영성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 보호막은 자문 서금충들을 상대하느라 대부분의 능력을 쏟고 있었다. 이에 한립의 성공률이 7, 8할쯤으로 높아지고 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파아앗!

멀리서 푸른 거검이 떨어져 내리는 동시에 그의 머리 위로 검은 빛이 나타나 ‘압(壓)’ 자 다섯 개로 변한 것이다. 공기가 무거워졌다고 느낀 순간 그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에 눌린 것 같은 압력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발밑으로 보라색 작은 솥이 소리 없이 떠올랐다. 솥에서 검은 고대 문자 ‘정(定)’자가 번득이고 한립은 무형의 강철 감옥에 갇힌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한쪽에서는 얼음처럼 투명한 남색 꼭두각시가 나타나 거검을 찔러왔고 다른 쪽에서는 음양이살 미부인이 녹색 불덩이와 새빨간 비검을 날렸다.

녹색 불덩이는 허공에서 빙글돌아 섬뜩한 얼굴의 악귀 머리로 변하고는 한립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핏빛 비검은 기괴한 소리와 피비린내를 풍겼다.

미부인이 금제의 힘을 빌려 한립의 의식과 명청령안을 속이고 두 극산과 영충들이 그를 떠나는 순간 합체급 괴뢰와 힘을 합체 근거리에서 습격을 한 것이다. 이렇게 대놓고 나섰다는 것은 그를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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