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1화. 의천성 전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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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흉수 중 가장 마지막에 이름을 올린 합식수는 흉살(凶煞)의 기운에서 탄생한 흉포한 짐승이었다. 진령에는 미치지 못해도 사대흉수들이 제각각 역천의 신통을 지니고 있어 합체급 수사 몇 명이 달라붙어도 이기기 어려웠다.
합체 후기를 대성한 마족 존자인 그도 10대 흉수 중 하나를 일대일로 상대할 수는 없었다.
‘이곳에 사대 흉수가! 인족 수사들이 어찌 합식수를 굴복시켰는지 매우 기이하구나. 이번 임무는 실패란 말인가……. 아니지, 인족에서 이렇게 막강한 전력을 두고 어찌 지금까지 써먹지 않은 것이지?’
흑갑 거한은 머리를 굴리다 의구심이 들었다. 그는 몸집을 부풀려 커다란 손으로 쌍망치를 휘두르면서 의식으로 거대 짐승을 샅샅이 살폈다.
‘역시! 기운이 정순하지 못하고 기운이 강했다 약했다 오락가락하는구나. 원기가 크게 상해 수행이 떨어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써서 이길 수도 있을 것이야.’
흑갑 거한은 과감한 성격이라 거대 짐승이 정상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곧장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용울음 소리 같기도 하고 호랑이의 포효소리 같기도 한 웅장한 휘파람 소리에 인족과 마족 수사들은 아연한 얼굴을 했다.
“크하하, 명이 떨어졌다. 이제 우리가 나설 때다.”
마기의 바다 깊은 곳,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무장을 한 고계 마족이 눈을 반짝였다. 그 뒤로 수천 명의 마족 대군이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은 마수를 탄 만상마기 기병들이었고 일부는 삼두육비의 가륜전마들이었다. 그들은 바깥에서 싸우는 마족과 달리 전부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회백색 기운으로 둘러싸인 마족들은 특수한 공법을 익힌 듯했다. 명령을 들은 마족들은 소리 없이 마수에 오르거나 등 뒤의 병장기를 풀어 들어올렸다.
“즉시 술법을 펼쳐 마화를 시작한다.”
우두머리 마족이 음산하게 명을 내리자 수천 명의 마족들이 저항하지 않고 보라색 단약을 꺼내 삼켰다. 마족들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자 몸에 핏빛 주술문자가 떠올라 터져나갔다.
몸의 기운이 배로 강해진 마족들을 더욱 짙은 회백색 기운이 맴돌고, 거대한 구렁이가 그들을 칭칭 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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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기의 바다 바깥.
흑갑 거한이 여러 비술을 부리고 7개의 보물을 방출해 청룡상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이에 청룡은 곳곳에 상처를 입었고 기력도 쇠해졌지만 거한은 청룡의 공격에도 아직 멀쩡했다.
그때 흑갑 거한의 안색이 달라져 모든 공격을 물리고 멀찍이 물러섰다. 그는 어딘가를 묘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청룡상인은 겨우 숨을 돌리고 푸른 기운을 흩트려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창백한 얼굴에 가슴에는 피가 터져 아주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는 살펴보지 않고 서둘러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성벽 밖에 노란 괴풍이 불어와 인족 병사도, 마족 대군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괴풍의 경로에 있던 수사들은 엄청난 힘에 추락하기도 했다.
노란 바람이 가시고 방대한 짐승이 허공에 나타났다.
양 머리에 곰의 몸 그리고 박쥐 날개를 가진 괴물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인족과 마족 병사들 전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합식! 저 마족들을 죽이면 이번 전투가 끝나는 대로 넌 자유의 몸이다.”
임란 선자가 거대 짐승이 전장에 이른 것을 보고 미간의 핏빛 부적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양머리 거대 짐승이 전장의 합체기 수사들을 쭉 훑었다. 인마(人魔) 대군이 아무리 많아도 그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합체기 수사들뿐이었다.
인족의 두 합체기 수사는 오래 전 그를 봉인했던 익숙한 기운들이었고, 마족의 마족 존자들이 발산하는 기운들은 그에 못지않게 흉흉했다.
기력만 왕성했으면 모두 다 집어삼켰을 텐데 중상을 입고 너무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탓에 법력이 평소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거대 짐승은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임란 선자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리자 머리에 붙은 핏빛 부적이 반짝였다.
방금 전 혼백 깊숙이 파고드는 고통을 경험한 터라 양머리 짐승은 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벌렸다. 그러자 노란 괴풍이 아래에서 의천성을 공격하고 있는 마족 대군을 향해 날아갔다.
휘우우웅!
하늘과 땅이 노란 모래 먼지로 새까맣게 물들었다. 노란 바람에 휩쓸린 마족과 마수들은 그 무서운 힘에 갈가리 찢겨 눈 깜짝할 사이에 마수 천여 마리와 기병 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합식, 감히 인족을 도와 우리 성족과 척을 지겠다는 것이냐? 오늘 너는 이 성과 함께 명을 다할 것이다.”
흑갑 거한이 분노하며 검은 가죽 보따리와 금색 작살을 날렸다.
후웅!
금색 작살은 거대하게 변해 사정없이 노란 돌풍을 갈랐다.
푸른빛이 폭포처럼 쏟아져 노란 돌풍을 가르고 눈부신 빛을 터트렸고 돌풍은 이내 연기처럼 사라졌다.
또 그가 던진 검은 가죽 보따리에서는 굵은 은색 뇌전 두 줄기가 뻗어 나와 커다란 늑대 두 마리로 변했다. 은색 뇌전 날개를 지닌 늑대들이 길게 포효하며 양머리 짐승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을 본 합식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스치더니 멀리서 거대한 손바닥을 휘둘렀다.
퍽!
노란 거대 손이 두 마리 늑대들을 덮쳐 마수들을 터트려 버렸다. 이에 흑갑 거한이 놀라며 작살을 한 번 더 휘두르고 쌍망치를 조종해 겹겹이 그림자를 만들어 날렸다.
합식은 흑갑 거한의 연이은 공격을 도발로 받아들이고 눈빛이 매서워졌다. 합식은 박쥐 날개를 앞으로 쭉 펴 어둑어둑한 노란 구름 속으로 거대한 모습을 감추었다.
검은 작살과 수많은 망치 그림자들이 노란 구름을 때려 쉼 없이 터졌트렸지만 양머리 짐승의 방어막을 전혀 뚫지 못했다.
흑갑 거한이 당황해 금빛 작살을 휘두르고 은빛 뇌화들을 사방으로 내뿜으려는데 돌연 머리 위로 공간파동이 일고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났다.
손바닥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압력에 짓눌려 어깨가 묵직해졌다. 그는 주변 공기가 강철로 변한 것 같은 느낌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흑갑 거한도 합체 후기를 대성했기에 평범한 마족 수사와는 달랐다. 그의 엄청난 기합 소리에 주변의 뇌화들이 분분히 폭발해 금제를 깨트렸다.
등 뒤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떠오르고 굉장한 기운이 치솟았다. 그러자 흑갑 거한의 몸에 검은 기운이 흐르며 똑같이 생긴 백여 개의 흑갑 거한 허상이 사방팔방으로 달아났다.
후웅!
그 모습에 허공에 있던 거대 손이 움찔하며 노란 돌풍과 함께 번개처럼 움직였다. 대부분의 거한 허상은 노란 바람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중 가장 빠른 열댓 개가 거대 손을 벗어나 스스로 흩어지고 진짜 흑갑 거한만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슬쩍 뒤를 돌아본 거한의 얼굴이 어두웠다.
이때 노란 구름이 거대 박쥐 날개로 돌아갔고 합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 양머리 짐승이 흑갑 거한을 향해 직접 뛰어오르자 특별한 신통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무서운 기세가 느껴졌다.
놀란 흑갑 거한이 감히 맞대응하려 하지 않고 두 손으로 뇌화를 일으키며 다시 백여 개의 환영으로 흩어졌다. 크게 밀리고는 있지만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그것을 본 청룡상인이 눈살을 찌푸리고 청룡이 새겨진 푸른 비검 두 자루와 금빛 찬란한 공작이 새겨진 비검을 투척했다.
웅! 우웅!
비검들이 맑게 울며 허공을 선회해 청룡 허상 두 마리와 금빛 공작 환영으로 변했고, 청룡상인의 조종을 받아 화려한 빛을 발산하며 흑갑 거한에게 달려들었다.
의천성 태상장로인 그는 합식수의 힘을 빌려 흑갑 거한을 이 자리에서 죽여야겠다고 판단했다. 수행이 가장 심후한 마존을 격살하면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끌 가능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흑갑 거한은 화가 치밀었지만 거대 짐승을 견제하느라 청룡상인을 어찌할 수 없었다.
청룡상인이 속수무책으로 뒤로 밀려나는 흑갑 거한을 보고 희색을 드러낸 순간 마기의 바다에서 수천 가닥의 흉살(凶煞)의 기운이 치솟았다.
시커먼 마기의 바다가 놀랍게도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마기의 바다 속에서 핏빛에 둘러싸인 마족 부대가 떠올랐다. 온몸에 핏빛 문신이 있는 마족 병사들은 각각이 무서운 기운을 내뿜었는데 신형이 어딘가 모호했다. 마치 황천에서 기어 올라온 악귀 부대 같았다.
“으하하, 화혈명위(化血冥衛)는 어서 진법을 펼쳐 합식수와 저 자를 혈명대진(血冥大陣)에 가두어라! 가륜전마는 성으로 진격한다.”
마족 부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흑갑 거한이 광소하며 큰 소리로 명을 내렸다.
‘화혈명위’라 불린 마족 부대는 마족 장수의 호령 하에 핏빛 구름으로 변해 합식수와 청룡상인 심지어 거대 흑갑 거한까지 뒤덮었다. 핏빛 구름 안은 순식간에 함성과 폭음으로 가득 찼다.
동시에 필사적으로 진군하던 마수 대군도 낌새가 이상해졌다.
이전까지 평범해 보이던 저계 마수 천여 마리가 돌연 삼두육비의 거대 마족으로 변해 튀어나온 것이다. 그들은 전투가 시작될 때부터 저계 마수 틈에 숨어 때를 기다리던 가륜전마들이었다.
비술로 저계 마수로 변신해 있던 가륜전마들이 성벽을 지척에 두고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불덩이 혹은 바람의 칼날 등 다양한 공격을 뿜어냈고 여섯 개의 팔은 도끼, 송곳 등 기이한 병장기를 들고 폭풍처럼 전장을 휩쓸었다.
의천성 은빛 보호막이 아무리 대단해도 마족 대군들의 맹공에 이미 위태했기에 가륜전마의 공격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쩌정!
보호막이 깨지고 그 틈으로 몰려 들어간 가륜전마들이 성벽 위의 인족들을 무참하게 살육했다. 인족의 역사들과 중, 저계 수사들이 어찌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인족 부대를 이끌던 고계 수사들이 막으려 해보았지만 가륜전마 몇 마리의 협공에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처절한 비명소리가 성벽을 잠식하고 다른 쪽에서 방어를 하던 인족 병사들은 공포에 떨었다.
가륜전마 중 수행이 가장 낮은 이들이 화신급이었고 엄선된 마공을 수련했기에 일반 인족 병사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벽 위에 소란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웅장한 징소리가 울리고 수천 개의 둔광이 강렬한 빛을 뿜으며 날아올랐다. 둘 혹은 셋이 짝을 이룬 수사들이 가륜전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평범한 가륜전마들은 인족 고계 수사들의 협공에 어느 정도 막혔지만 우두머리 마물은 무척 사나워 앞을 막는 자들을 거침없이 죽이고 길을 뚫었다.
쿠릉!
바로 그때 성벽 인근 땅이 흔들리더니 지하에서 32마리의 금빛 금속괴뢰가 나타나 형형색색의 병장기로 가륜전마 우두머리들 앞을 막아섰다.
각종 보물이 쇄도하며 폭음과 충돌음이 귀청을 때렸다.
금속괴뢰는 법보만큼 몸이 단단하고 괴력으로 병장기를 휘둘러 가륜전마들과 막상막하로 싸웠다. 마족이 승기를 잡고 있었지만 인족들도 포기하지 않고 의천성의 각종 금제에 기대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최상급 수사들의 승패에 따라 충분히 전세가 바뀔 수도 있었다.
이때 고공은 마족 대군을 둘러싼 핏빛 구름으로 뒤덮여 짐승의 포효소리와 수사들의 고함소리 그리고 술법 공격이 오가는 파공음으로 가득 찼다.
은광 선자와 임란도 그 안에서 여린 여인과 백색 장포 사내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뒤로 밀리는 것이 그녀들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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