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화. 의천성 전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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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은 의식으로 중년 남녀를 훑고 미간을 좁혔다.
‘합체 중기의 마족 존자 두 명이 더 있었다니!’
홍갑 거인이 도움을 청할 때 예상은 했지만 골치가 아픈 건 마찬가지였다.
“연 존자를 이렇게 쉽게 죽이고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역 존자 등도 십중팔구 수사의 손에 당했겠군요. 인족에서 명성이 자자할 듯싶은데 이름을 밝혀보시지요!”
중년 사내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역 존자라니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잘못 찾아오신 것 아닙니까? 제 이름은 두 분이 저승길에 오를 때나 알려드리지요.”
한립은 내심 가슴이 철렁했지만 놀라는 기색 없이 담담히 말했다.
“하하, 감히 우리 앞에서 그 따위로 말하는 자는 얼마 보지 못했다. 역 존자를 죽였든 아니든 네 놈을 붙잡아 ‘오유련혼대법(五幽鍊魂大法)’으로 모든 것을 낱낱이 고하게 만들어 주마! 사형, 성조께서 하사한 보물을 발동하시죠!”
미부인이 표정을 구기며 날카롭게 쏘아붙이고는 입에서 보라색 솥을 뿜었다. 손가락만 하던 솥이 허리까지 커지자 촘촘하게 적힌 검은 주술문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중년 사내도 일곱 빛깔로 둘러싸인 작은 수정 보탑(寶塔)을 꺼내 던졌다.
우웅!
7층짜리 탑으로 커진 보물의 각 층에는 벌레, 물고기, 날짐승, 들짐승 등이 새겨져 괴이하게 흘러 다녔다. 한립은 그들이 역 존자 등의 일을 자세히 파고들자 켕기기는 했지만 두려운 마음은 없었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먼저 푸른색과 검은색 극산을 투척했고, 거산으로 변한 산봉우리들이 회색 기운과 무형의 검기들을 방출하며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이것으로 상대를 처리할 수 없다고 여겼는지 한립은 은색 자를 쥐고 그 뒤를 따랐다.
슬쩍 손목을 털자 은색 자에서 두 개의 자 그림자가 튀어나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상대편 남녀의 등 뒤에서 나타나 그들의 뒤통수를 노렸다. 한립은 날개를 펄럭여 은색 뇌전으로 변해 사라졌다.
“이런 허접한 공격에 우리가 당할 성 싶더냐!”
미부인이 뒤통수로 날아드는 은색 자 그림자를 감지하고 몸 앞의 거대 솥을 가리켰다.
웅!
표면의 검은 주술문자가 응결되어 솥 위로 ‘흡(吸)’ 자가 떠올랐다. 솥에서 강력한 흡인력이 발생해 남녀를 베려던 자 그림자들을 빨아들였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두 개의 산봉우리를 보곤 미부인이 다시 한 번 보라색 거대 솥을 가리켰다.
웅!
솥의 검은 주술문자들이 이번에는 ‘탁(托)’ 자를 응결하고 거대 솥의 힘의 방향을 틀어 위로 치솟았다. 검은 연꽃을 이룬 솥이 두 거대 산을 무사히 받쳐 들었을 때, 은빛 뇌전의 한립은 검은 산 정상에 나타나 힘껏 발을 굴렀다.
쿠르릉!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검은 산의 무게가 몇 배로 늘어나 아래쪽의 무수히 많은 검은 연꽃을 찍어 내렸다. 그러자 솥의 기운이 흔들거렸다.
한립은 두 손을 교차해 금색 뇌전 열댓 개를 튕겨냈다. 금빛 뇌전 속에 수십 개의 푸른 비검들이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었다.
미부인이 놀란 표정을 감추고 보라색 거대 솥을 향해 정순한 마기를 뿜었다. 검은 마기를 흡수한 거대 솥 안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고대 문자 몇 개가 떠올랐다.
쾅!
‘순(盾)’, ‘탄(彈)’, ‘반(反)’ 등 고대 문자가 나타나자 연꽃이 검은 보호막으로 변해 놀랍게도 원자극산을 튕겨냈다.
금색 뇌전과 푸른 검기도 검은 보호막에 닿자마자 똑같은 수량의 새까만 뇌전과 날카로운 검기가 나타나 동귀어진하고 말았다. 놀랍게도 검은 보호막은 상대의 공격을 복제하고 튕겨내 반격까지 했다.
‘이런 역천의 신통을 지닌 보물이 있다니!’
한립은 믿기지 않아 수결을 맺고 다시 검은 산봉우리를 힘껏 밟았다. 푸른 기운이 발끝에서 흘러나와 원자극산으로 흡수되었다.
산봉우리에서 바람과 천둥소리가 울리고 거대한 은색 문자들이 표면에 떠올랐다. 대량의 회색 기운이 가느다란 실로 변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다른 푸른 산봉우리도 한립의 조종에 또 한 번 힘차게 떨어졌다. 그러나 미부인은 냉소를 거두지 않고 정순한 마기를 뿜어 보라색 거대 솥에 흡수시켰다.
잠시 후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쿵!
두 산봉우리가 튕겨나간 것은 물론 회색 실들이 검은 보호막에서 치솟은 검은 실에 공격당해 흩어졌다. 거대 솥으로 만든 보호막은 정말 공격 복제와 반사의 기능을 지닌 듯했다.
그때 은사 장포 사내가 공격에 들어갔다. 칠색 보탑이 굵직한 빛기둥으로 변해 종적을 감춘 것이다. 산봉우리에 서있던 한립이 무언가를 느끼고 고개를 들자 일곱 빛깔 기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깜짝 놀란 그가 두 손을 뻗어 거산을 회수하고 둔광을 일으켰다. 한 눈에 보기에도 괴이한 일곱 빛깔 기운을 몸소 체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달아나려 해도 소용없다.”
서늘한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보라색 거대 솥 위로 검은 주술문자가 ‘흡(吸)’자를 만들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아래로 한립을 끌어당겼다. 그는 억지로 멈춰 서서 기합을 넣고 등 뒤로 삼두육비의 금빛 허상을 띠웠다. 허상의 여섯 개의 팔이 마구 허공을 때려 금제를 깨자 겨우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쿠구궁!
그때 일곱 빛깔 기운에서 굉음이 들리고 거대 탑이 나타났다. 이에 한립도 엄청난 속도로 달아나려다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눈앞이 번쩍하는 것을 느꼈다.
빛이 사라지자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하늘도 없고 땅도 없는 허공은 아름다운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한립은 눈을 깜빡거리다 쓴웃음을 지었다.
“수미의 보물을 또 만났구나.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데…….”
한립은 눈꼬리를 치켜 올리고 고개를 돌렸다. 일곱 빛깔의 기운이 뭉쳐져 거대한 검은 짐승들을 만들고 있었다. 기척도 없이 다가오는 짐승들이 벌써 만 마리도 넘었다.
한립은 소매에서 72개의 푸른 비검을 방출해 수백 개의 검기를 만들어 짐승들을 베어나갔다. 거탑 밖, 중년 사내가 한립이 탑에 갇힌 것을 확인하고 기뻐했다. 그의 손짓에 거탑은 보통의 누각으로 돌아가 있었다.
“녀석을 가두었어도 금제의 힘만으로 구속하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예요. 제가 안에 들어가 기습하고 사형이 밖에서 금제를 조종하면 빨리 끝낼 수 있겠죠!”
“그래, 자언정(紫言鼎)으로 몸을 보호하면 안전하겠지! 이곳은 내게 맡기고 다녀 오거라.”
미부인의 말에 중년인이 보라색 거대 솥을 보았다.
팟!
여인이 거대 솥을 몸속으로 불러들이자 사내가 소매 속에서 칠색 기운을 퍼트려 그녀를 감쌌다. 미부인이 사라지고 수많은 진법 깃발과 원반을 꺼낸 사내는 하얀 진법을 펼쳐 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다른 마존들의 상황이 어떤지 신경 쓰지 않고 가부좌를 튼 채 보물의 금제를 조종하는 데만 집중했다.
“합체 중기 존자들의 협공에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구나!”
청륭상인이 변한 청룡이 흑갑 거한을 상대하며 중얼거렸다. 흑갑 거한이 말한 대로 지금 그가 용으로 변해 위력을 떨치는 것은 비술을 이용해서였다. 이런 방법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그와 임란이 마존 중 가장 강력한 이들은 지목해 싸운 것은 한립과 은광 선자가 나머지 둘을 빠르게 처리하고 도와주기를 바라서였다.
한립이 합체 후기 수사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웠다는 소문을 들어와서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가장 약한 홍갑 거인을 죽이자마자 새로운 마존 둘이 나타나 보물로 한립을 가둔 것은 예상 밖이었다.
청룡 상인은 틈틈이 다른 수사들은 힐끔 거렸다.
얼마 전까지 잘 싸우던 임란의 화봉들도 백포 소년이 불러낸 13자루의 새하얀 비도에 밀리고 있었고, 은광 선자는 분홍 기운이 만들어낸 팔이 4개 달린 원숭이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초조해진 청룡상인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청룡은 남은 힘을 죄다 끌어올려 흑갑 거한을 향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흑갑 거한이 뒤로 물러나자 청룡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당장 괴물을 방출한다.”
성벽에 있던 인족 수사들이 공손히 명을 받들었다. 고계 수사들이 금색과 은색 영패를 꺼내 영력을 불어 넣었고, 거기서 금, 은빛 기둥이 뻗어나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콰아앙!
이에 호응하듯 아홉개의 금, 은빛 기둥이 의천성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빛기둥은 무수히 많은 주술문자를 품고 있었다.
9개의 빛기둥이 요동치고 그 안에서 백색 장포의 수사들이 한 명씩 나타났다. 9명은 빛기둥과 같은 색깔의 깃발을 들고 엄숙하게 주술을 외웠다.
그러자 빛기둥들이 더욱 굵어져 하나로 모여들어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백색 장포 수사들은 주문을 멈추고 들고 있던 깃발을 빛기둥 속으로 던지고는 황급히 아래쪽으로 달아났다.
깃발들이 빛기둥 안에서 연달아 폭발해 폭음이 끊이지 않았다. 희미하던 주술문자들이 응결해 방대한 빛기둥 표면에 81개의 주술 문자 진법을 만들어냈다.
콰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자꾸 부풀어 가던 빛기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무려 천 장에 달하는 거대 짐승이 빛기둥 속에서 나타나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양의 머리, 곰의 몸, 박쥐의 날개를 지닌 전신에 짙은 녹색 털이 수북하게 자란 괴수였다.
“하, 합식수(合息獸)! 사대 흉수 중에 하나라는 합식수다.”
사정을 모르는 의천성 인족 수사들은 혼란스러워했고 멀리서 쌍망치를 이용해 반격을 가하려던 흑갑 거한도 깜짝 놀랐다.
거대 짐승이 달아나는 백색 장포 수사들을 매섭게 노려보고 입을 벌렸다. 그러자 노란 기운이 튀어나가 그들을 전부 핏덩이로 만들고는 노란 기운은 다시 입안으로 되돌아갔다.
인근의 수사들이 혼비백산해 사방팔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거대 짐승이 갈색 손바닥으로 아래를 후려쳐 노란 바람으로 백여 명의 수사들을 조각냈다.
청룡상인이 표정이 일그러지며 소리쳤다.
“임 선자! 아직도 술법을 펼치지 않고 언제까지 기다릴 작정입니까!”
모종의 신통을 이용해 법력을 실은 목소리라 천지를 울리는 굉음에 저계 마수들은 머리가 어지러워 바닥에 쓰러지기도 했다. 백색 장포 소년과 격전을 벌이고 있던 임란 선자가 가라앉은 얼굴로 교성을 질렀다.
펑! 펑! 펑!
호리병박 세 개가 연달아 폭발하고 안에서 사람보다 큰 거대 벌 세 마리가 각기 다른 색의 화염을 분출하며 나타났다. 화봉왕(火蜂王)이었다.
평범한 화봉들에 비해 더욱 무서운 위력을 지닌 화봉왕들의 화염에 백색 장포 소년도 더 이상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
화륵.
그 순간 임란 선자가 불 날개를 펄럭여 사라졌다. 그녀는 백색 장포 소년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빠르게 수결을 맺어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희미한 핏빛 부적이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크르릉!
임란 선자의 손끝에서 하얀빛이 흘러들어가고 인족 수사들을 학살하려던 의천성 안의 거대 짐승이 고통스럽게 으르렁 거렸다. 거대한 머리 위에 임란 선자와 같은 핏빛 부적이 나타나 있었다.
“정신 차렸으면 어서 성에서 나오거라!”
엄청난 고통에 짐승이 땅을 구르려는데 임란 선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의식에 울려 퍼졌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극통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거대 짐승은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켜 놀란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꽤 지능이 높은 모양새였다.
“당장!”
거대 짐승은 머릿속에서 들려온 임란 선자의 재촉에 날개를 펴 인족과 마족이 교전하는 전장으로 천천히 날아갔다. 이에 흑갑 거인은 청룡에 반격을 하면서도 서서히 가까워지는 무서운 기운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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