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화. 의천성 전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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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좌는 마족이 될 생각이 추호도 없으니 꿈 깨시지요.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마족에게 투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청룡상인의 격앙된 어조가 수많은 인족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실력이 있는 것 같아 살 길을 열어 주려했더니 그리 완고해서야. 죽으면 전부 허사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흑갑 거한은 열을 받았지만 차갑게 웃고 소매를 펄럭였다.
펑! 펑! 펑!
세 개의 녹색 빛구슬이 높이 날아올라 폭발해 눈부신 녹색 화염으로 번졌다. 그것을 신호로 마기의 바다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전함들이 문을 활짝 열고 저계 마수들을 풀어놓았다.
다양한 마수를 탄 기병들과 병사들이 쏟아져 나와 하늘이 저계 마수와 만상마기로 가득 찼다. 한 눈에 그 수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였다.
게다가 초대형 마수의 수도 3백 마리가 넘었고 일전에 보았던 대형 코뿔소 외에도 더욱 흉포해 보이는 짐승들도 보였다.
사마귀를 부풀려 놓은 거대 짐승, 깃털에 오색 반점이 찍힌 거대 조류부터 사람의 얼굴에 교룡의 몸을 한 섬뜩한 초대형 마수도 있었다. 머리를 풀어 헤친 야인(野人)을 닮은 머리는 방대한 보라색 몸뚱이와 연결되어 흉흉한 분위기를 풍겼다.
초대형 마수들 중 거대 사마귀가 2백 마리로 제일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코뿔소가 7, 80마리 되었다. 화려한 거대 조류는 삼십 여 마리 인면자교(人面紫蛟)는 세 마리였다.
이런 초대형 마수들이 저계 마수들을 이끌고 의천성으로 내달렸다. 전함에서 검은 빛기둥을 발사해 마수 대군을 엄호하고 마족 기병들은 진열을 갖추어 그 뒤를 바짝 쫓았다.
그러나 가장 괴이한 생김새를 지닌 가륜전마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는데 만상마기를 제외한 또 다른 마족 정예병들이 등장했다.
이마에 청록색 눈알이 박힌 거대한 마족들이 만상마기 틈에 맨 손으로 서 있었다. 가륜전마와 비슷한 수의 마족들은 음산한 미소를 띠고 녹색 눈을 번득였다.
마족대군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자 청룡상인 등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들은 마족 존자들을 상대해야 해서 전투에는 참견하기 어려웠다.
그들이 나서기 전에 성 벽에 선 고계 수사들이 엄숙한 얼굴로 다양한 명령을 하달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마족 전함이 쏘아 보낸 검은 빛기둥들이 의천성의 방어금제와 충돌했다.
지난번보다 훨씬 큰 규모의 전함들이 쉬지도 않고 검은 빛기둥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빛기둥 하나하나가 화신기 수사의 일격과 맞먹었다. 의천성 금제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흔들거렸다.
그것을 본 한립이 안색이 변해 입을 열려는 데 의천성 지하에서 극심한 진동이 느껴졌다. 신비한 힘이 백여 곳에서 용솟음쳐 의천성을 은색 주술문자로 뒤덮었다.
주술문자들이 만들어낸 은빛 진법이 빛을 발하고 의천성의 오색 보호막이 은색 보호막으로 대체되었다.
마족 전함이 쏘아 보낸 검은 빛기둥은 미끌미끌한 은색 보호막에 절반 정도가 미끄러져나가 이전보다 훨씬 막기가 수월했다.
그것을 본 인족 고계 수사들이 역사들과 저계 수사 대군에 공격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성벽 밖 땅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고 청동괴뢰 대군이 걸어 나왔다. 이전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
삽시간에 의천성 주변 10리가 잔혹한 살육의 현장으로 변했다. 각양각색의 빛덩이들이 폭발하고 함성 소리와 피비린내가 섞여 들었다.
“청룡! 자신 있으면 본 좌와 붙어보자!”
멀리서 검은 돌풍이 몰려와 성벽으로 다가와 은색 보호막을 강타했다. 흑갑 거한의 거대 쌍망치가 금제를 공격한 것이다.
거대 쌍망치는 검은 산처럼 거대했고, 법결의 조종을 받아 검은 돌풍의 모습으로 성벽 금제를 공격했다.
“기다리던 바다.”
청룡상인의 눈에 한기가 깃들며 몸에서 푸른 빛기둥을 방출해 거대한 푸른 용 허상을 만들어냈다. 푸른 용은 포효하며 청룡상인을 휘감아 흑갑 거한 쪽으로 달려들었다.
이에 광소하고 있던 흑갑 거한은 청룡(靑龍) 허상의 기세에 움찔해 양 손으로 검은 돌풍을 가리켰다.
콰르릉.
원형을 드러낸 쌍망치가 하나로 합쳐져 몸집을 키우고 청룡에게 날아갔다. 청룡상인이 그것을 보고 소매 속에서 7자루의 검은 비도를 꺼냈다. 빛이 번쩍번쩍 나고 사기(邪氣)가 가득한 비검들이었다.
뜻밖에도 청룡상인은 비검을 자신의 가슴팍 7개의 혈 자리에 꽂아 넣었다.
파앗.
청룡상인은 정혈을 뱉고 열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수결을 맺으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가 내뱉은 핏물이 일곱 덩이의 핏빛 안개로 변해 검은 비검으로 흡수되었다.
일곱 개의 비검은 진동하며 요사스런 핏빛을 머금고 스스로 청룡상인의 몸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다. 이에 청룡상인은 포효하며 비검이 박힌 자리에서 핏빛 광채를 뿜으며 청룡 허상과 하나가 되었다.
괴이하게도 희미하던 청룡의 몸에 무수히 많은 핏줄기가 스며들어 실체화되었다. 청룡은 한 발을 들어 거대 망치를 후려쳤다.
쿠콰쾅!
다섯 개의 발톱이 날카롭게 자라난 푸른 발이 가뿐하게 망치를 막아 더는 떨어지지 못하게 막았다.
“주혈소령대법(鑄血塑靈大法)! 이런 상고신통을 다 알고 있고 본 좌가 너를 얕보았구나. 허나 나를 상대하려면 막대한 정혈이 필요할 것이다.”
흑갑 거한이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다 술법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크게 웃어젖혔다. 이어 거한의 손에서 은색 뇌화(雷火)가 흘러나와 하늘을 뒤덮었고 검은 망치는 모호하게 변해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덟 개로 변했다.
총 여덟 개의 검은 망치가 청룡을 둘러싸고 두들기고 있었다.
후웅
청룡이 꼬리를 힘차게 휘둘러 여덟 개의 검은 망치와 뇌화에 무형의 압력을 보내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곧 흑갑 거한 머리 위에서 나타난 청룡이 입에서 푸른 화염을 뿜었다.
놀란 흑갑 거한이 공격을 막지 않고 허공을 박차고 사라졌다. 그 순간 아무 조짐도 없이 공간파동이 일고 새까만 거대 칼날 하나가 청룡을 베려했다. 그 기세가 청룡을 두 동강 낼 정도로 흉흉했다.
하지만 청룡은 검은 칼날이 나타나자마자 다른 발로 후려쳤다. 그러자 다섯 개의 발톱에서 푸른 검기가 튀어나갔다.
채채챙!
마족 존자는 비록 합체 후기를 대성했지만 청룡과 한 몸이 된 청룡상인의 괴이한 신통에는 상대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의외에 모습에 은광 선자를 비롯한 인족 수사들은 물론 마족 존자들도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한립도 그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청룡상인이 합체 후기 마족 존자를 상대해주면 나머지 적을 제압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이에 한립은 나머지 셋을 훑었다. 그러자 백포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서늘한 얼굴의 소년은 다짜고짜 소매에서 투명한 비도를 꺼내 몸을 날렸다. 그것을 보고 한립이 피식 웃으며 돌진하려는데 임란 선자가 팔을 들어 그를 막았다.
“한 형, 저 자는 평범한 중기 수사가 아닙니다. 빙한 속성 신통에 정통한 자라 제가 맡겠습니다. 상대의 신통과 상극인 보물이 있거든요.”
그녀는 한립의 답을 듣지 않고 허리춤에서 보라색, 검은색, 노란색의 호리병박을 꺼냈다.
펑! 펑! 펑!
임란 선자의 머리 위를 선회한 호리병박의 뚜껑이 튕겨나가고 엄지손가락 크기의 불, 벌, 화봉(火蜂)들이 날아올랐다. 세 덩이의 거대한 불 구름을 이룬 화봉들의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수결을 맺은 임란 선자 등 뒤로 새빨간 불길이 일고 붉은 날개가 형성되었다.
콰르르르
불 구름과 수정 비도의 도기(刀氣)가 충돌해 작열하는 열기와 엄청난 한기가 동시에 퍼져나갔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임란의 공법과 보물이 빙한의 힘에 상극인 것을 확인했다. 백포 소년의 놀라운 한기가 화봉들이 만들어낸 불 구름에 조금 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인이 계속 호리병박으로 법력을 들이 붓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원기를 소모해야하는 술법 같았다.
“한 형! 임 수사와 청룡상인이 가장 강한 마두들을 맡는다고 하니 우리는 얼른 나머지를 치지요. 마족 존자를 한 명이라도 죽일 수 있으면 이번 전투의 승산이 높아질 겁니다.”
슬쩍 미간을 좁힌 한립을 향해 은광 선자가 말했다.
그녀는 은색 갈고리 한 쌍과 다른 보물들을 꺼내 먼저 대전 지붕으로 날아올랐다. 은색 보호막을 벗어난 여인은 곧장 왜소한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나머지 홍갑 거인은 한립에게 남겨둔 것이다.
실실 미소 짓고 있던 마족의 우 선자는 두려운 기색 없이 전신에서 기이한 향기를 내뿜었다. 분홍색 기운이 퍼져 구름을 이루었는데 기세가 매우 날카로웠다.
분홍 구름은 은광 선자의 둔광을 감싸고 무수히 많은 기괴한 괴수 환영을 불러내 공격했다.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들이미는 괴수들 사이에서 은광 선자의 갈고리가 초승달과 태양의 모습을 하고 종횡무진 했다.
한립은 그것을 보고 홍갑 거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콰릉!
그가 수결을 맺자 등 뒤로 수정 날개 한 쌍이 나타났다. 날개를 펄럭이자 은빛들이 쏘아져 나가 뇌광진법을 형성하고는 한립을 뒤덮었다. 이에 화염을 반짝이며 그를 주시하던 홍갑 거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파앗.
홍갑 거인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거인의 머리 위로 뇌광진법이 나타나 금빛 인영이 괴이하게 전송되어 푸른색과 검은색 거산을 던졌다. 그러나 산봉우리가 닿기도 전에 회색 기운과 천여 개의 무형의 검기가 먼저 떨어져 내렸다.
‘이건 뭐야!’
동시에 홍갑 거인의 귓가에 코웃음 소리가 울렸다.
홍갑 거인은 날카로운 송곳이 머리를 쑤시는 듯한 극통을 느끼며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질렀다. 그가 비틀거릴 때 두 개의 거산이 엄청난 힘으로 거인의 머리를 내리쳤고, 회색 기운과 무수히 많은 검기들이 빼곡하게 홍갑 거인을 뒤덮었다.
“안 돼! 도, 도와주시오!”
실신자(失神刺)의 충격에서 벗어난 홍갑 거인은 다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가 입고 있던 붉은 갑옷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불 구렁이 세 마리로 변해 그를 보호했다.
한립은 거인의 행동에 흠칫 놀랐지만 손속을 거두지 않고 72개의 청죽봉운검까지 불러냈다. 푸른 검들이 수백 개의 검빛으로 불어나 순식간에 푸른 거검을 만들었다.
회색 기운이 감싸고 무형의 검기가 마구 잘라대자 불 구렁이 세 마리가 흩어지고 거인의 붉은 갑옷에서 작은 폭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갑옷의 보호막은 얼마가지 못할 것 같았다.
“베어라!”
한립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 한쪽 소매에서 은색 그림자가 조용히 사라졌다. 거검이 푸른 천으로 변해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갈랐고 겁에 질린 거인은 불꽃으로 변해 피하려 했다.
파앗.
바로 그때 허공에 파문이 일고 은색 뱀이 튀어나와 거인의 허리를 옭아맸다. 거인이 아무리 화염을 폭발적으로 일으켜도 은색 뱀은 떨어져 나가지 않고 더욱 강하게 거인을 죄여왔다.
이에 거한이 대경실색해 다른 강력한 신통을 쓰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푸른 천이 거인을 뒤덮고 검빛이 그를 난도질했다.
검빛 속에 나타난 푸른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 거인의 참혹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육신은 물론이고 원영까지 가루가 되어 죽음을 맞았다. 그와 동시에 마기의 바다에서 은색과 금색 둔광이 번쩍이며 튀어 나왔다.
한립은 합체기 수사를 격살한 것에 기뻐할 틈도 없이 보물들을 거두고 둔광을 주시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날아든 둔광 속에는 은사 장포를 입은 중년 사내와 궁장 차림의 미부인이 나타나 그를 노려보았다. 그들은 며칠 전 마족 대군에 합류한 음양이살이었다.
그들은 마기의 바다 속에 숨어 있다가 다른 마존들이 한립의 주의를 끄는 틈을 타 기습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한립이 나서자마자 마존들 중 가장 약한 홍갑 거인이 목숨을 잃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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