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화. 구양강일절진(九陽罡日絶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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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은 의식으로 한립의 수행을 살피고 깜짝 놀라 인사를 건넸다.
“지난번에 만나 뵈었을 때는 이제 막 합체 초기에 이르러 있었는데 못 본 사이에 중기 수사가 되셨습니다. 경하 드립니다.”
“기연을 얻어 운 좋게 그리 되었습니다. 선자께서는 은광 선자가 줄곧 언급하던 임란 수사시겠습니다.”
한립은 변명을 하며 화제를 궁장 여인에게로 돌렸다.
“명성이 자자하신 한립 수사를 뵙습니다. 은광 수사와 함께 저희를 도와주러 오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동급 수사들의 지원이 없었으면 의천성은 아마 두 달도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천황종 태상장로인 임란 선자의 목소리가 놀랍도록 듣기 좋았다.
“그게 정말인가요? 한 형과 멀리서 이번 전투를 지켜보았는데 만상마기들이 성가시기는 해도 의천성의 방어력도 상당하던데요?”
“두 분은 모르시겠지만 오늘 나타난 것은 마족 대군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만 리 밖의 중검산맥(中劍山脈)에 주둔중인 마족들이 전부 몰려오지 않는 이유는 적당한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기다리는 거죠?”
“이곳에서 나누기에 적당한 화젯거리는 아니니 성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계속하시지요. 교활하기 그지없는 마족들이 언제 다른 마존들을 데리고 돌아올지 모릅니다.”
청룡상인이 여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모두를 일깨웠다.
“마존들이 네 명이라고요? 알겠습니다, 어서 성으로 출발 하시지요.”
깜짝 놀란 은광 선자가 동의하자 한립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의천성 성벽에 도착했다. 아직도 인족 수사들과 청동괴뢰들이 철수를 하고 있었다.
한립은 그들을 꼼꼼히 봐두었다. 고계 수사들은 하나같이 피로한 기색에 몇몇은 핏기가 없었고 청동괴뢰도 표면이 울퉁불퉁 파이고 잘려나가 사지가 멀쩡하지 않은 것이 많았다.
겉으로는 무표정했지만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의천성에서의 나날이 쉽지만은 않겠어.’
어두워진 은광 선자와 한립의 얼굴에 임란과 청룡상인은 멋쩍은 얼굴을 했다. 그때 오색 장포를 입은 수사들이 나타나 법기를 날려가며 성벽을 메우고 부서진 진법들을 복구했다.
온전한 갑옷에 새로운 무기를 갖춘 인족 역사들도 대거 성벽으로 올라 전투를 치룬 저계 수사들과 교대했다. 그것을 본 한립은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한립과 은광 선자는 유생과 여인의 안내를 받아 성 안의 삼엄한 방어를 지나 의천성 안 어느 전당에 도착했다.
그들이 들어오자 이미 대기하고 있던 연허기 수사들이 다가와 열정적으로 인사를 올렸다.
“실질적으로 본 성의 방어를 담당하고 있는 수사들입니다. 이들이 두 분께 자세한 상황을 설명해 줄 것입니다.”
의아한 얼굴의 한립과 은광 선자를 보고 청룡상인이 설명했다. 그들은 곧 전당 안에 자리를 잡았고 연허기 수사들은 그 곁으로 가서 섰다.
“현재 의천성 상황을 상세히 알고 싶습니다. 일단 어쩌다 합체기 수사 두 분이 목숨을 잃었는지도 의문이고요.”
은광 선자가 다소곳이 앉아 입을 열었다.
“그들의 죽음은 더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천연성으로 보낸 서한에 적었듯이 마족들의 교활한 계략에 당한 것이지요. 처음에 만상마기 일부와 마족 존자 둘만 나타나 두 수사가 방심한 채 성을 나섰다가 네 명의 마족 존자의 매복에 당해 원영도 달아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죽은 합체기 수사들의 이야기에 청룡상인의 얼굴이 퍽 어두워졌고 임란 선자는 미간을 좁히고 유감스럽다는 듯 설명했다.
“마족들이 간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은광 선자가 탄식했다.
“저희도 조심해야겠군요. 괜찮으시면 그 네 명의 마족 존자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앞으로 성의 안위는 한 형과 은광 선자에게 달렸으니 수사들에게 네 마두의 자료를 전달하라 이르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청룡상인이 바로 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까 언급하신 마족들이 적당한 시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언제를 말하는 것입니까?”
“두 달 후 오양화월(五陽化月)의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날이 되면 의천성을 지키는 진법이 힘을 쓰지 못하니까요.”
이번에는 임란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다섯 개의 태양이 달이 되는 날이라……. 날짜를 계산해 보니 두 달 후가 백 년에 한번 있는 오양화일의 날이 맞습니다. 이게 의천성 방어진법과 연관이 있습니까?”
“오양화일의 날은 천지의 양(陽)의 기운이 쇠하는 날인데, 의천성 진법이 천지양기와 관련이 깊나 봅니다.”
은광 선자와 한립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 진법에 정통한 한립은 무언가 짐작 가는 바가 있는 듯했다.
“한 수사의 말씀대로 저희 네 종문은 의천성에 구양강일절진(九陽罡日絶陣)이란 진법을 펼쳐 놓았습니다. 천지 양기를 흡수할수록 더욱 강력한 위력을 내는 진법이라 가장 강성할 때는 마족 존자도 죽일 수 있답니다. 이 진법 때문에 마족대군이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쳐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양강일진법은 지화(地火)가 있는 험준한 곳에 엄청난 재료를 들여야만 펼칠 수 있고 대량의 천지양기를 흡수해야한다는 결점이 있지요. 평소라면 별 문제 없지만 오양화월의 날이 도래하면 천지양기가 쇠해 진법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임란 선자가 미간을 좁히고 설명했다.
“그렇게 위력이 강하다면 들어보았을 법 한데 저는 금시초문입니다.”
“은광 수사가 모르실 만도 하지요. 이 진법은 저희 네 종문의 진법종사 열댓 명이 천년 넘게 연구해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위력으로만 따지면 상고절진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미소를 머금은 임란 선자의 말에서 자부심이 드러났다. 그 말을 듣고 한립은 놀라고 말았다.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진법을 개발하는데 거대 세력도 천여 년이 걸린 것이다.
네 종문의 세력이 상당하고 마겁을 진작부터 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립은 생각을 정리하고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구양강일진법의 위력이 강해도 그것만으로 마족 존자들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진법의 위력이 강해도 그걸로 마족 존자 네 명을 상대할 수는 없을 텐데요. 마족 중에 합체 후기의 실력을 지닌 자도 있던데요.”
은광 선자도 의아한 얼굴이었다.
“구양강일절진 외에 준비해둔 다른 강력한 방법들로 그들을 위협해 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몇 번밖에 쓸 수 없는 것들이라 이제 사용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족 존자들이 며칠 마다 한번 씩 병력의 일부를 보내 공격을 이어나가는 것도 의천성의 방어력을 소모하려는 의도가 아니겠습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 후 실무를 맡은 수사들이 해드릴 것입니다.”
그 말에 청룡상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맞습니다. 마족 존자들이 대량의 병력을 동원해 성을 칠 때는 저희가 직접 나서야할 만큼 위험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저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공격할 때 미리 준비한 방책을 하나씩 써버리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임란 선자가 그간의 전투를 떠올리며 적들에 대한 증오를 드러냈다.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군요. 이제 책임자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예, 저희도 어떻게 방어하고 있는지 알고 싶군요.”
한립이 평온하게 말했고 옆에서 듣고 있던 은광 선자도 동의했다.
“석 수사, 자네들이 의천성의 대략적인 방어 체제를 설명해 드리게.”
“예, 대장로님!”
청룡상인의 분부에 회색 장포 노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선배님들께 아룁니다. 의천성이 건립해 둔 만개가 넘는 보루는 지난 몇 달 사이 전부 무너졌습니다. 성벽을 지키는 13층의 금제 진법도 지난 전투에서 5층이 허물어져 제대로 보수를 하려면 한 달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쟁 시작 전 10만이었던 청동괴뢰 대군의 수가 급감해 이제 7만 마리밖에 남지 않았고 나머지 꼭두각시들도 부상이 심해 시급히 제련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거대 진법의 눈에 이용되던 보물들을 얼마 전 가륜전마들이 난입해 부순 것인데 그로 인해 방어력이 3할은 약해졌습니다. 의천문과 천황종이 기른 영수들은…….”
회포 노인의 보고가 이어질수록 은광 선자가 난색을 표했다.
“듣자니 안 좋은 소식뿐이군. 좋은 소식은 없는 것인가?”
한립이 미간을 좁히고 한참 듣고 있다가 노인의 말을 끊었다.
“한 선배님께 아룁니다. 아직까지는 사상자가 적은 편입니다. 저계 수사와 보통 역사들도 9할 넘게 생존해 있습니다. 오랜 전투로 피로가 쌓이고 두 분 선배님의 변고로 사기가 떨어졌을 뿐입니다. 또한 영석과 각종 물자도 아직 여유가 있어 몇 년 동안 성 안에서 방어전을 치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
회포 노인이 눈치 빠르게 사기를 끌어올릴 만한 사실들을 나열했다.
“휴, 아직 인력과 물자는 충분하다니 다행입니다.”
은광 선자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와 임란 선자의 생각도 같습니다. 두 분의 도움이 있으면 앞으로는 마존 네 명이 공격을 해와도 두려울 것이 없지요. 만상마기와 가륜전마가 상대하기 까다롭기는 해도 아직 버틸만 합니다. 저희가 마족의 기세를 꺾어 놓으면 성 안의 병사들도 기운을 차릴 것이고요.”
“맞습니다. 지난번에 마족들이 공격해왔을 때 합체기 수사가 넷만 되었어도 그들을 붙들어 놓고 구양강일절진의 위력으로 한두 명은 중상을 입힐 수 있었을 겁니다.”
청룡상인과 임란 선자도 어두운 기색을 지우고 말했다.
“앞으로도 그건 어려울 겁니다. 우리가 의천성에 들어오는 것을 마족 존자들이 보았으니 그들도 대책을 세우겠지요. 구양강일절진을 파훼할 다른 방법을 찾거나 오양화일의 날까지 기다려 전군을 이끌고 침공할 겁니다.”
한립이 신중하게 고개를 저었다.
“허허, 적들이 오양화일까지 기다린다면 저희도 대비할 수 있습니다. 부서진 금제들을 정상화 시키고 청동괴뢰대군을 수리한 다음 다른 강력한 대비책을 마련하겠습니다. 구양강일절진의 효력이 약화된다고 의천성이 함락되라는 법은 없지요. 때가 되면 두 분께서 도움을 주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상대편에서 마존들이 출전한다면 저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임란 수사도 걱정 마세요! 저와 함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청룡상인의 부탁에 한립과 은광 선자가 답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임란 선자와 청룡상인은 그들의 말에 만족해하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한립과 은광 선자는 의천성에 대한 여러 정보를 들은 후 시녀의 안내를 받아 거처로 돌아갔다. 오랜 시간 날아왔으니 전투를 대비해 기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한립과 은광 선자가 나가고 연허기 수사들까지 물러났을 때 청룡상인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임란 선자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어찌 걱정거리가 없겠습니까! 선자도 황 수사와 열 수사가 당하던 날 보지 않았습니까? 마족 존자들의 실력이 예상을 넘어섰습니다. 솔직히 한 수사와 은광 선자의 합류로 얼마나 승산이 늘어났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거짓말로 저들을 속인 것도 아니지요. 그것만 잘 이용하면 아직 승산은 있습니다.”
“정말 그것을 방출할 생각이십니까? 당시 우리 넷이 힘을 합쳐 상대가 가장 약할 때 구양강일대진에 겨우 봉인해두었습니다. 진법이 파훼되면 당연히 비장의 한수가 되기는 하겠지만 우리를 먼저 공격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건 너무 걱정 마세요. 혈혼부(血魂符) 배양이 거의 끝나갑니다. 이 일을 맡은 금제종사들과 상의해보았는데 그 괴물을 조종할 수는 없어도 우리를 공격하지 않게 하는 것쯤은 가능할거라 하더군요.
지금 관건은 두 달 동안 견디는 것입니다. 괴물이 봉인되어 있는 구양강일대진이 작동하는 한 우리도 강제로 괴물을 방출할 수 없으니까요. 또한 알다시피 적들이 대량의 희생을 감수하고 총공세를 펼치면 구양강일대진이 멀쩡해도 성을 지킬 수는 없을 겁니다.”
임란 선자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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