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화. 마진(魔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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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을 삼킨 귀왕이 스산하게 울부짖으며 소매 속에서 붉은 악귀 머리 영패를 꺼내 던져주고는 음산한 바람으로 변해 귀문 속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대머리 거한은 그제야 굳어있던 얼굴을 풀고 핏빛 영패를 가리켰다.
휘이잉!
핏빛 영패, 천귀령이 빙글빙글 돌아 핏빛 돌풍을 만들어냈는데 그 안에서 네 마리의 강력한 악귀들이 뛰쳐나왔다. 새빨간 거대 악귀들은 털이 전혀 없었지만 생김새는 원숭이를 닮았고 머리에 솟은 새까만 쌍뿔과 갈고리를 닮은 진녹색 꼬리가 눈길을 끌었다.
그것을 본 대머리 마족이 주저 않고 손짓을 하자 핏빛 돌풍이 악귀 머리 영패로 돌아와 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마족은 영패를 향해 법결을 던져 넣고 주문을 줄줄 읊어댔다.
거대 악귀들은 영패의 구속을 받는지 대머리 마족의 조종에 은광선자를 향해 험악한 눈빛을 보냈다.
천귀들 중 한 마리가 먼저 스산한 소리를 내며 포효하자 나머지 천귀들의 등 뒤에서 핏빛이 피어올라 보라색 날개 한 쌍이 솟아올랐다. 그들은 표독스럽게 주변의 수정 장막을 노려보며 날개를 펄럭였다.
대머리 마족의 얼굴에 냉소가 떠올랐다.
몇 차례 천귀문을 사용해본 그는 천귀들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각각은 겨우 연허 후기와 비슷했으나 네 마리가 협공하면 합체 중기 수사와 맞먹었다.
그를 가둔 수정 장막이 기이하기는 해도 천귀들이 힘을 합치면 깨버릴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그래도 대머리 마족은 만일을 대비해 입을 벌려 검은 인장을 방출했다.
인장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며 커다랗게 변해 천귀들의 뒤를 따랐다. 천귀들은 두 팔을 휘두르며 날카로운 손톱 허상들로 수정 장막을 공격했고, 갈고리 꼬리에서 무수히 많은 진녹색 빛이 가시처럼 튀어나갔다.
네 마리 천귀들의 힘을 합친 공격이라 위력이 대단했다. 수정 장막에서 연이어 폭음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암담해졌다.
대머리 마족은 희색을 드러내며 검은 인장을 조종해 수정 장막으로 검은 파동을 퍼트렸다.
쨍!
안 그래도 위태롭게 흔들리던 수정 장막이 깨지며 가느다란 실금이 생겨났다. 이에 은광선자는 서둘러 은색 미녀 얼굴 옆으로 이동해 손바닥을 내리쳤고, 미녀의 눈이 기이한 빛을 머금자 수정 장막에 새겨진 금색 진법이 웅웅 울기 시작했다.
진법에서 흘러나온 금색 주술문자들이 깨진 장막의 틈으로 스며들자 괴이하게도 깨진 수정 장막이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은광선자는 멀리서 웃음을 머금었다. 그 모습에 분노한 대머리 마족은 악귀 영패와 검은 인장을 조종해 다시 공격을 가하려 했다.
키에에엑!
천귀들의 눈에 핏빛이 돌며 더욱 몸집을 키웠고 입에서는 핏빛 빛기둥을 뿜는 동시에 두 손과 꼬리를 휘둘렀다.
콰릉!
검은색 인장은 아래쪽으로 백여 개의 은색 주술문자를 흩날리며 검은색 뇌전을 발산했다. 대머리 마족이 인장을 극성으로 발동한 것이다.
공격이 폭우처럼 쏟아지고 마지막으로 거대 인장이 호되게 들이박자 수정 장막이 경천동지할 굉음과 함께 깨져나갔다.
파앗.
그러나 수정 장막은 간단히 금색 진법의 힘으로 다시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이런!”
그 모습에 대머리 마족은 법결을 마구 쏘아대며 거대 인장과 네 마리의 천귀로 수정장막을 미친 듯이 때려 부셨다. 수정 장막이 아무리 대단해도 계속해서 공격을 가하면 회복할리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대로 공격을 지속하면 곧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역 존자를 죽인 또 다른 인족이었다.
대머리 마족은 수정 장막을 쉼 없이 공격하다가 문뜩 불안한 마음이 들어 동료 마족 수사가 싸우고 있는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뭐, 뭐야!’
대번에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금색 검실이 거대한 그물이 되어 수십 마리 남색 뱀들을 가두고 난도질하고 있었다. 날개 달린 남색 뱀들도 입에서 한기를 뿜어내 저항했지만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그곳에서 한참 떨어지는 곳에는 13마리 해골이 변한 마녀들이 원형으로 돌아가 있었다.
백골들은 몸에 검은 화염을 두르고 입에서는 회색 독 기운을 뿜어 자모진마(子母眞魔)의 무시무시한 신통들을 드러냈는데도 금빛 찬란한 보라색 문양이 있는 괴충 열댓 마리에게 쫓겨 다니는 중이었다.
명성이 자자한 자모진마들도 괴충이 두려워 마염이나 독기를 이용해 원거리 공격만 했다. 게다가 남 존자의 모습은 그를 더 불안하게 했다.
인족 수사가 변한 거대한 금색 원숭이가 두 손에 푸른색과 검은색 산봉우리를 들고 휘두르자 남 존자는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었다. 남문 마족은 당황해 예닐곱 개의 보물을 불러냈으나 그 중 어느 것도 두 산봉우리의 맹공을 감당하지는 못했다.
여러 보물을 돌려가며 공격해서 겨우 버티고 있는 것이지 산봉우리에 3, 4번만 공격당해도 보물들이 부서질 판이었다. 동족 수사가 밀리고 있는 것을 보자 대머리 마족의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남 존자의 자모진마들은 네 마리 천귀에 못지않은 위력을 지녔는데 어찌 겨우 영충들에게 저리 당하고 있단 말인가!’
그제야 대머리 마족은 자신이 상대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정도 실력이면 합체 후기 마존 서너 명은 있어야 처리할 수 있을 듯했다.
그는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입술을 달싹여 동족 수사에게 전음을 보냈다.
한립에게 두 개의 산봉우리로 두들겨 맞으며 밀리던 남 존자는 대머리 마족의 전음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의 전음에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갈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거대 원숭이가 적의 변화를 간파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뜻밖에도 산봉우리를 힘껏 던졌다.
푸른색과 검은색 산이 거원(巨猿)의 손을 떠나 몇 배로 몸을 불리더니 엄청난 속도로 남 존자에게 떨어져 내렸다. 아직 닿기 전인데도 두 개의 돌풍이 밀어닥쳐 공간이 왜곡되고 폭음이 들려왔다.
남 존자가 서둘러 두 개의 보물을 발동하고 나머지 보물들을 챙겨 뒤쪽으로 튀어나갔다. 보물들은 산봉우리와 닿기 직전 처량한 소리를 내며 스스로 폭발했다.
쾅! 쾅!
거대한 빛무리가 생겨나 두 산봉우리의 낙하를 막았다. 찰나였지만 두 산봉우리가 빛의 화염에 주춤거렸다.
그러나 산봉우리들은 더욱 묵직하게 변해 빛무리를 흩어버렸고 거원은 귀신처럼 거대한 두 손으로 산봉우리들을 받쳐 들었다.
거원이 서늘한 시선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보물들을 터트려 달아난 남문 마족이 아래쪽 작은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보라색 영충들에게 쫓기던 13마리 진마들도 검은 화염을 폭발적으로 일으켜 검은 빛구슬로 변해 그 뒤를 따랐다.
웽!
자문 딱정벌레들이 보랏빛으로 변해 급히 자모진마들을 추격했다. 뒤를 돌아보자 남색 뱀들이 검실들에 잘려나가 몇 마리 남아 있지 않았다. 날개 달린 뱀들도 마계에서 나름 진귀한 영수였는데 청죽봉운검이 변한 검실의 매서움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남문 마족은 영수들이 아까워 속이 쓰렸지만 한립을 유인하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딜!’
금털 거원이 포효하며 기다란 다리로 펄쩍 뛰어올라 작은 산 상공으로 이동했다. 거원은 들고 있던 두 개의 산봉우리를 힘차게 던지고 두 주먹을 쥐고 바람처럼 쇄도했다.
엄청난 위력의 공격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데도 남 존자는 오히려 희색을 드러냈다. 그의 소매 속에서 검은 진법 원반이 날아올라 새까만 구름으로 변해 그를 감쌌다.
푹! 푹!
두 개의 산봉우리가 검은 구름을 뚫고 지나갔는데 남 존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쿠르릉.
뿐만 아니라 작은 산을 중심으로 주변 산들이 내뿜은 새까만 빛기둥들이 거대한 진법 깃발로 변했다. 산들을 중심으로 몇 리에 달하는 마진이 펼쳐진 것이다.
새까만 마기가 진법의 눈에서 용솟음쳐 하늘이 시커멓게 물들어갔고, 주위에 검은 주술문자들이 반짝이며 나타난 순간 금털 거원은 공기가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퍼퍼펑!
검은 주술문자들이 폭발해 검은 사슬로 변해 금털 원숭이를 꽁꽁 묶었다. 그와 동시에 아래쪽에서 검은 기운들이 거대한 촉수들로 변해 거원을 덮쳐왔다.
눈동자 깊은 곳에서 남색빛을 반짝인 거원은 두려운 기색 없이 기합을 넣었다. 그러자 털들을 꼿꼿이 세운 거원의 몸이 미친 듯이 불어나 검은 사슬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쨍강!
사슬이 끊어지자 거원은 피식 웃으며 금털들을 날렸다. 셀 수 없이 많은 금빛이 한 겹 한 겹 원을 그리며 날아가 무형의 금제를 제거했다. 이어 은색 거대 자를 불러내 휘두르자 은색 빛기둥이 튀어나가 마기로 이루어진 촉수들을 두 동강냈다.
이때 인근 산 정상에 모습을 드러낸 남문 마족은 거원의 신위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소매 속에서 반들반들 빛나는 검은 호리병박을 불러내 초록빛을 분출했다.
남 노마는 다른 손으로 새까만 깃발을 들고 입에서 정혈을 뱉어 흡수시켰다.
촉수들이 거원에게 접근하기 전에 날카로운 뼈 갈퀴들이 먼저 날아들었고 다음 순간, 두 동강 났던 거대 촉수들이 부르르 몸을 떨고 다시 살아나 공격을 시작했다.
팔뚝 길이의 뼈 갈퀴들은 역한 비린내를 풍기는 녹색 액체가 발라져 있었는데 극독을 품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본 거원이 콧김을 세게 내뿜고 두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겼다.
그러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내려치더니 금색 실들이 거원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금색 뇌전 그물을 엮었다.
콰르릉 콰쾅!
천둥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뼈 갈퀴들은 금색 뇌전 그물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뼈 갈퀴들이 주춤거리는 사이 거원은 금색 뇌전들을 키워 사방으로 분출했다. 이에 특수한 제련을 거친 뼈 갈퀴들이 벽사신뢰에 열댓 번 정도 두들겨 맞더니 푸른 연기로 흩어졌다.
또한 새까만 거대 촉수들도 금빛 뇌전에 안개처럼 사라졌다. 남문 마족이 움찔해 뭔가를 깨닫고 소리쳤다.
“저건 벽사신뢰!”
놀란 남 존자의 목소리에 짙은 패배감이 묻어났다. 뼈 갈퀴는 마족 존자들도 꺼리는 보물이었지만 몇 안 되는 천적이 바로 벽사신뢰였다.
이에 거원이 광소하다 두 주먹을 남 존자 쪽으로 뻗자 공간 파동이 일고 금색 거대 주먹이 산 정상에 나타났다. 남 존자는 낯빛이 변하더니 서둘러 진법 원반을 두들겨 검은 마기 속으로 몸을 숨겼다.
콰르릉!
금색 거대 주먹이 남문 마족이 서 있던 작은 산을 강타해 무너트렸다. 그 순간 다른 산 정상에 검은 기운과 함께 나타난 남 존자는 자신이 서있던 산이 붕괴하자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금털 거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푸른색과 검은색 산봉우리를 불러와 또 다른 산으로 던졌다.
콰르릉! 콰르르릉!
경천동지할 굉음이 들리고 두 개의 산봉우리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에 마진을 지탱하던 마기가 삽시간에 희박해졌다.
“진법을 깰 생각이면 꿈도 꾸지 말거라! 절대 널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남 존자가 동공을 수축하며 결연한 얼굴로 소매 속에서 핏빛 단약을 날려 보냈다. 이에 인근에 있던 13마리의 백골들이 나타나 단약들을 한 알씩 받아먹었다.
마염에 휩싸인 백골들이 자신을 사이에 두고 미친 듯이 나부끼기 시작하자 남 존자는 자신의 머리를 내리쳤다.
핏빛을 머금은 남 존자의 몸에서 살점들이 떨어져 나갔다. 잠시 후 13마리 백골들 중간에 새하얀 뼈만 남은 남 존자가 나타났다.
눈알이 있어야할 자리에 보라색 빛이 떠오른 것을 제외하면 피와 살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 존자는 사지를 휘두르며 소름끼치도록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키에에엑!
갑자기 주위의 해골들이 고개를 쳐들고 울부짖더니 검은 기운으로 변해 남 존자에게 뛰어들었다. 그러자 그의 뼈 마디마디가 변형되면서 미친 듯이 커져 검은 화염에 휩싸인 거구로 변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거대 해골의 갈비뼈에 작은 해골 머리 13개가 박혀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거대 해골이 고개를 쳐들고 포효하자 26개의 팔이 자라난 것이다.
도, 검, 도끼 등의 병장기를 든 거대 해골의 기세가 대단했다. 합체 후의 거대 골격이 바로 13마리 자모진마의 ‘모마(母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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