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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19화 (876/2,000)
  • 1119화. 자모진마(子母眞魔)

    *

    곧바로 두 번째 주먹이 같은 곳을 때렸다. 두 번의 주먹질에 갑옷이 버티지 못하고 깨지며 감춰둔 새까만 비늘이 드러났다. 금색 주먹이 역 존자의 마물로 변한 몸으로 거침없이 돌진했다.

    금빛과 검은빛이 교전하더니 놀랍게도 노마의 맨몸이 미세하게 흔들거리고는 별 볼 일 없는 비늘층으로 주먹을 막아냈다.

    이에 노마가 간사한 웃음을 흘리고는 검은 마기에 휩싸인 여섯 개의 팔을 휘둘러 자신을 가둔 오색 기운을 뚫고 벗어나려 했다.

    마침 산에서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솟구쳐 나와 노마를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합체기 마족 존자들이었다.

    바로 그때 비늘층에 막힌 것 같았던 금색 주먹에서 비파를 튕기는 소리가 울리고 금빛 뇌전들이 튀어 올라 거대 그물을 펼쳤다.

    천둥소리 속에서 노마가 처절하게 비명을 질러댔다. 검붉은 갑옷이 금색 뇌전에 갈라지고 마지막 버팀목이던 검은 비늘도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푹!

    금색 주먹이 다섯 손가락을 펼쳐 노마의 가슴을 꿰뚫었다. 손가락에는 금빛 대신 은색 화염이 일어나 노마의 몸을 활활 불태웠다.

    “크하학, 안 돼!”

    단말마를 지른 노마가 은색 불길에 완전히 휩싸여 재로 흩날렸다. 원영조차 탈출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금빛 기운 속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간 한립이 희미하게 신형을 드러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그는 범성진마공을 극성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멀리서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간발의 차로 인근에 이르렀다.

    둔광이 가시고 나타난 이들은 대머리 마족과 얼굴에 남색 문신이 있는 마족으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립과 은색 화염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한 형께서 마족 존자를 죽인 것입니까?”

    곧 한립의 등 뒤에서 여인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광선자가 청록색 베틀 북 안에서 나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운 좋게 그렇게 되었습니다만 더 큰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한립은 갑자기 나타난 고계 마족 두 명을 향해 눈짓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글이글 타오르던 은색 화염 속에서 맑은 새소리가 들리더니 은색화염이 커다란 은색 불새로 변해 한립 머리 위를 맴돌았다.

    영성이 느껴지는 은색 불새의 모습에 두 마족의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

    “감히 우리 앞에서 역 존자를 살해하다니. 오늘 둘 다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은 말거라!”

    남색 문신 마족이 차갑게 경고했다.

    곁의 대머리 마족 역시 두말할 것 없이 검은 기운을 일으켜 새까만 방패로 자신과 남 존자의 앞을 방어했다.

    이어 푸른 기운을 날려 허공에 푸른 거대 문을 불러냈는데 녹슨 문 양쪽에 험악한 모습의 악귀 머리가 새겨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모습이었다.

    한립이 가슴이 철렁해 자세히 문을 살피는데 남색 문신 마족이 기합을 넣어 남색 가죽 주머니와 13개의 새까만 빛을 방출했다.

    바람을 타고 커다랗게 변한 가죽 주머니에서 백여 마리의 남색 수정 뱀들이 튀어나왔다. 팔뚝 크기의 수정 뱀들은 등에 얼음 날개가 솟은 상태로 혀를 날름거렸다.

    13개의 검은빛은 그의 손을 떠난 다음 연달아 터져 기다란 검은 깃발로 변했다. 깃발에 그려진 반라의 여인이 꽃처럼 아름답고 생생해서 요사스러운 매력을 뿜어냈다.

    “수마천귀문(修魔天鬼門)과 자모진마번(子母眞魔幡)입니다.”

    은광선자가 적이 발동한 보물을 보고는 안색이 급변해 외쳤다.

    “천귀문과 자모진마번이라고요? 그건 영계의 10대 마기(魔器) 중 두 개가 아닙니까.”

    한립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조심해야 합니다. 영계의 10대 마기들은 대부분 마계의 이름난 보물들을 본 따 만든 경우가 많지요. 저들이 부리는 보물은 영계의 것보다 훨씬 강력할 겁니다. 저런 보물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만만한 상대가 아닐 텐데, 그러지 말고 그냥 이곳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요? 저들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우리를 막기 어려울 겁니다.”

    주저하던 은광선자가 전음으로 달아날 것을 제안했다. 이름난 보물을 방출한 두 마족을 보고 승산이 없다 여긴 것이다.

    “늦었습니다. 의천성까지 갈 길이 멀어 먼저 여기서 저 마족들을 따돌리지 못하면 앞으로 더욱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선자께서 한 명의 시선을 돌려주신다면 제가 한 명씩 격파하지요.”

    한립이 차분하고 단호하게 전음으로 답했다. 은광선자도 한립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기에 조금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 형께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셨다면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 잠시 후 보물을 발동해 저들 중 한 명을 가둘 테니 그때 나머지 마두를 처리하시지요.”

    여인이 말을 마치고 열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복잡한 수결을 맺자 얼굴에 쓴 은색 가면에서 강한 빛이 발산되며 금색 주술문자들이 떠올랐다.

    기합소리와 함께 은색 가면이 얼굴에서 떨어져 나와 은광선자 앞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거대 얼굴로 변했다. 은색 피부에 금발을 길게 기른 얼굴은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공격!”

    대머리 마족이 그것을 보고 입에서 시커먼 피를 토해내 푸른 거대 문으로 쏘아 보냈다. 핏물이 핏빛 안개로 변해 귀문(鬼門)을 뒤덮었다.

    방금 독각 노인이 한립의 손에 절명하는 것을 보고 경계심이 일어 처음부터 정혈을 사용해 가장 강력한 보물을 발동한 것이다.

    핏빛 안개가 휩싸인 푸른 거대 문의 악귀 머리가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꿈틀꿈틀 움직였다. 자세히 보면 입을 뻐끔거리면서 핏빛 안개를 흡수하고 있었다.

    낡은 거대 문이 점점 새빨갛게 변해 진한 피비린내를 풍겼다.

    휙! 휙!

    두 악귀 머리가 맹렬히 고개를 쳐들고 스산하게 울부짖더니 거대 문에서 튀어나왔다. 놀랍게도 허리까지 상반신이 생겨나 있었다.

    악귀 머리들이 두꺼운 팔뚝에 힘을 주고 거대 문 양쪽의 검은 문고리를 세차게 잡아당겼다.

    끼이이익.

    거대 문이 아주 천천히 열려 작은 틈이 벌어졌을 뿐인데도 그 안에서 불어나오는 음산한 바람과 귀곡성이 엄청났다.

    남색 문신 마족도 동료가 ‘공격!’이라고 외친 순간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머리 마족과 달리 날개 달린 백여 마리의 수정 뱀들로 하여금 남색 한기(寒氣)를 뿜게 해 신형을 숨기고 의식으로 13개의 깃발을 조종했다.

    검은 기운들이 한 줄기 한 줄기 뿜어져 나와 깃발을 감싼 후 13구의 하얀 해골로 변했다. 눈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음산한 핏빛이 번득이는 해골들은 삐거덕거리며 움직였고 듣기 좋은 여인의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웃음소리에 한립은 의식이 응결되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더욱 괴이한 일은 13구의 해골이 웃음소리를 뚝 그치고 음산한 바람으로 변해 남색 문신 마족을 덮치려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남문(藍紋) 마족은 당황하지 않고 소매 속에서 13개의 붉은 단약을 뿜어냈다. 단약들을 미친 듯이 삼킨 해골들은 다시금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며 환호했다.

    하얀 해골들은 핏빛에 휩싸여 피와 살이 겹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세 명의 반라의 마녀(魔女)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립은 매혹적인 자태에 옅은 웃음기를 머금은 여인들을 보고는 동공을 수축했다.

    “가라!”

    남문 마족이 수결을 맺고 한립을 가리키자 마녀들의 표정이 순간 싹 달라지며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고 백여 마리 남색 뱀들도 주변의 커다란 얼음송곳으로 변해 화살처럼 쇄도했다.

    쉬쉬쉬쉭!

    한립은 소매 속에서 72자루의 금색 비검을 내뿜었다. 팔뚝 길이의 장검들은 몸을 떨며 여러 개의 검빛을 만들어냈다. 수백 개의 검빛이 파공음을 내며 금색 실로 변해 얼음송곳을 맞이했다.

    한립 머리 위를 배회하던 은색 불새 역시 커다란 불덩이로 변해 13명의 해골 마녀들을 덮치고 있었다. 한립과 남문 마족이 본격적으로 맞붙었다.

    한편 귀문이 서서히 열리는 것을 본 은광선자도 재빨리 움직였다.

    아름다운 은색 여인 얼굴이 눈을 번쩍 뜨고 황금색 눈동자를 드러내더니 순간 여인의 입에서 수정 실 한 뭉치가 뿜어져 나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커다란 그물을 이루었다.

    그 모습에 술법을 펼치던 대머리 마족이 가슴이 서늘해져 얼른 검은 방패들을 빼곡하게 불러내 앞을 막았다. 검은빛을 머금은 작은 방패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반원형의 보호막을 형성했다.

    대머리 마족과 귀문을 동시에 방어한 것이다.

    ‘그렇지!’

    마족의 행동에 입꼬리가 올라간 은광선자는 속으로 법결을 촉발했고 거대한 실그물이 검은 보호막을 덮쳤다.

    파앗-!

    커다란 그물이 두꺼운 수정 장막으로 변해 검은 보호막과 그 안의 대머리 거한 그리고 귀문을 전부 가두었다.

    은광선자의 손짓에 은색 미녀 얼굴에 떠오른 금색 주술문자들이 분분히 수정 장막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에 투명하던 수정 장막에 기이하게도 금색 반점이 생겨났다.

    은색 미녀 머리의 주시에 수정 장막의 금색 반점들이 움직여 거대 진법을 펼쳤다. 금색 진법이 수정 보호막 위에 새겨진 것이다.

    은광선자가 길게 숨을 내쉬고는 미소를 지으려는 데 대머리 마족이 그녀를 비웃고 전신의 법력을 귀문으로 불어넣었다.

    쿠릉!

    선홍색 귀문이 드디어 완전히 열렸고 문고리를 잡고 있던 반신(半身)의 악귀들이 즐겁게 소리를 질렀다. 문 안쪽에서 들려오던 귀곡성은 사라졌지만 뼈가 시린 음산한 바람은 더욱 난폭하게 불어왔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다 흐릿한 그림자가 음산한 바람 속에서 소리 없이 나타났다. 은광선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순간 멍해졌다.

    유생 복장을 한 청수한 소년은 어떻게 보아도 천귀(天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대체…….”

    은광선자가 아연해 하고 있는 사이 청수한 소년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 대머리 마족을 찾아냈다.

    “본 왕을 소환해냈으면 제물은 준비가 되었겠지? 제물이 마음에 차지 않으면 그 뒷감당을 책임져야 할 것이야.”

    “수귀왕(修鬼王), 헛소리 말고 어서 천귀를 불러내 저 인간들을 죽여주시지요! 혈제에 바칠 제물은 섭섭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대마리 마족이 핏빛 장도를 꺼내 들어 자신의 다른 팔을 내리쳤다.

    키에에엑!

    그것을 본 청수한 소년이 눈이 밝아져 금관을 쓴 커다란 귀왕으로 변신했다. 새빨간 얼굴에 온몸에 보라색 털이 난 귀왕은 등줄기에 기다란 뼈 가시들이 튀어나왔고 노란 눈과 네 개의 송곳니가 섬뜩한 인상을 주었다.

    귀왕이 회색 기운을 뿜어 잘려나간 마족의 팔뚝을 삼켰다. 뼈와 살을 으적으적 씹어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물을 삼켰으니 어서 천귀령(天鬼令)을 빌려주시지요!”

    안색이 창백해진 대머리 거한이 크게 소리쳤다.

    “흐흐, 저들은 평범한 존재가 아니다. 본 왕의 천귀를 이용해 저들을 상대하려면 이 정도 제물로는 부족하다.”

    새빨간 혀로 입가의 피를 핥은 귀왕이 마지막 남은 살점마저 꿀꺽 삼키고 음산한 눈빛을 보내왔다.

    “뭐라고요? 겨우 인족 수사 둘을 상대하는데 본 존의 팔 한쪽을 받아먹었으면서 부족하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저들은 이전에 네가 상대하던 적과는 차원이 다르다. 괜히 천귀들을 빌려주었다가 얼마나 잃을지는 알 수 없지. 깜빡한 모양인데. 당초 귀문(天鬼門)을 통해 본 좌와 맺은 계약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일러줘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버럭 화를 내던 대머리 마족이 그 말에 난색을 표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핏빛 장도를 휘둘러 자신의 다리 하나를 잘라냈다.

    “이제 됐습니까? 여기서 또 허튼소리 했다가는 양패구상(兩敗俱傷)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과의 계약을 끝내겠습니다.”

    “흐흐흐, 이것까지 하면 그럭저럭 되었다.”

    귀왕이 크게 기뻐하며 냉큼 마족의 다리를 불러와 야무지게 씹어 먹었다. 그러는 동안 대머리 마족이 주술을 외웠고 검은 기운이 절단된 부분을 감싸 팔과 다리를 만들어냈다.

    핏기가 사라진 대머리 마족은 꽤 많은 정혈을 잃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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