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117화 (874/2,000)
  • 1117화. 삼마격전(三魔激戰) (1)

    *

    “역 형, 어서 돌아오지 않고 라삼마기(羅森魔器)로 연락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머리 거한은 상대를 알아보자마자 불쾌한 내색을 했다.

    “맞습니다. 이 법기를 발동하는데 필요한 마환석(魔幻石)이 얼마 없다는 것도 모르십니까. 역 형이 아무렇게나 이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말입니다.”

    역 노인이 무사한 것을 보자 남 존자가 부루퉁하게 따졌다.

    “손자가 조금 전 인족 합체기 수사에게 살해당해 그 흉수를 쫓는 중입니다. 반드시 이 피맺힌 원한을 갚아줄 생각이에요. 두 분이 도움을 준다면 앞으로 성제에서 제가 얻게 되는 수확의 절반을 두 분께 보수로 내어드리지요.”

    독각 노인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뭐라고요? 아니 역 형은 어찌 흉수가 인족의 합체기 수사라 단정하십니까?”

    대머리 거한이 깜짝 놀라 입가의 물개수염을 씰룩거렸다.

    “손자가 죽임을 당한 곳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손자와 그 수하들이 반격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더군요! 이는 연허기 수사가 하지 못할 일입니다. 게다가 흉수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합체기 수사일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헌데 역 형, 인족 수사가 몇 명이나 되는지는 파악한 것입니까?”

    남 존자가 신중히 물었다.

    “주변을 샅샅이 감응해본 결과 두 명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흠, 두 명이라면 우리 셋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마당에 그자들을 쫓다 무슨 일이 생기면 성조 대인에게 큰 벌을 받을 텐데요.”

    독각 노인의 말에도 대머리 마족은 머뭇거렸다.

    “인족 합체기 수사들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것은 분명 우리 성족에게 불리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인족 합체기 수사들을 죽여 그들의 계획을 막는다면 성조대인께서 상을 내려주시지는 못할망정 어찌 벌을 내리시겠습니까.

    게다가 인족의 기운이 둘이었던 것으로 보니 둘 다 합체기 수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리 위험할 것도 없지만 두 분이 저의 복수를 도와주신다면 앞으로 얻게 될 수확의 절반뿐 아니라 오랜 세월 아껴둔 부사지(腐絲芝)도 내어드리지요.”

    “호오, 역 존자가 도움이 필요하시기는 한가 봅니다. 그런 보물을 다 내놓으시고요. 저는 도와드려도 될 것 같은데 남 형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역 수사, 흉수가 정말 단 두 명뿐이 맞습니까?”

    대머리 마족은 부사지의 유혹에 제안을 수락했지만 남 존자는 신중히 적의 수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제 능력을 의심하시는 것입니까? 만일 제가 잘못 파악한 것이라면 도와주시지 않고 그냥 돌아가도 탓하지 않겠습니다.”

    독각 노인이 코웃음을 치며 화가 난 말투로 말했다.

    “좋습니다. 수사의 뜻대로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수사는 절대 두 인족 수사를 놓치지 말고 추적하고 계십시오.”

    남 존자가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제 피를 이어받은 후인을 죽인 자들입니다. 순식간에 억만리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한 세상천지 어디로 숨어도 제 비술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스산하게 웃음지은 독각 노인의 얼굴이 진법 법기 위에서 흩어졌다. 할 말을 마치고 먼저 연락을 끊어버린 것이다.

    “크크큭, 역 노괴가 왜 안 돌아오나 했더니 이런 사정이 있었습니다. 하긴 저 같아도 유일한 혈육이 인족에게 살해를 당했으면 그냥 못 넘어가지요! 몇 해가 걸려도 추격해서 죽이고야 말 겁니다.”

    “우리 정도의 수행에 이르면 더 이상 대를 이를 후손을 갖기도 어렵고, 나날이 혈육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기 마련이지요. 후손들이 많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역 노괴처럼 손자가 딱 한 명뿐인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꼭 복수를 하고 싶은 게 당연하지요.”

    대머리 마족의 냉소에 남 존자도 작게 웃음을 흘렸다.

    “바로 출발할까요? 진짜 인족 합체기 수사를 죽일 수 있다면 따로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역 노괴에게 약속한 것도 있으니 최선을 다해봅시다. 갑시다.”

    대머리 마족의 탐욕스런 눈빛을 받고 남 존자가 두 팔을 휘둘렀다.

    츠츠츳!

    남색 뇌전이 피어오르더니 남 존자의 등에 남색 날개가 나타났다. 남색 뼈 가시가 가득한 남색 날개는 무수히 많은 뇌전이 휘감고 있어 아주 무시무시했다.

    남 존자가 날개를 펄럭이며 남색 뇌전으로 변해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대머리 마족이 피식 웃고는 소매 속에서 새빨간 구름을 불러내 뇌전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멀리 독각 노인은 동료들을 기다리지 않고 비술을 펼쳐 둔광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혈맥비술을 사용해 잠시 흉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응하기 어려워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시각, 한립은 아무것도 모르고 은광선자와 의천성 쪽으로 서둘러 이동하고 있었다. 전력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뒤를 쫓는 세 명의 마족 수사들과 비교하면 무척 느린 속도였다.

    그러니 시간이 흐를수록 거리가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 뒤, 한립은 은광선자와 의천성의 사대종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표정이 급변했다.

    ‘어딜!’

    그의 소매 속에서 은색 자가 튀어나와 거대한 자 그림자로 변해 아래쪽을 베었다.

    파앗.

    그러자 아래쪽에서도 검은 몽둥이 환영이 날아올라 자 그림자와 충돌했다. 하늘과 땅이 뒤흔들 정도로 강한 굉음과 함께 파동이 번졌다.

    이에 은광선자가 놀라 하얀 구름 속에서 튀어나와 의심스런 눈길로 폭발이 일어난 곳을 쏘아보았고, 한립은 동요 없이 은색 자를 거둬들였다.

    잠시 후, 빛이 가신 자리에서 독각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평소보다 네댓 배는 커진 몸으로 새까만 몽둥이를 들고 한립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마계 존자(尊者)!”

    의식으로 상대를 훑은 은광선자가 주저하지 않고 은색 갈고리 두 개를 불러냈다. 날카로운 갈고리 표면에 각각 하얀 초승달과 새빨간 보름달이 새겨져 있었다.

    한립은 상대의 체구를 보고 눈을 빛내더니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펑!

    금빛이 반짝이고 그의 입에서 검은 실 한 줄기가 푸른 기운에 둘러싸여 밖으로 나왔다.

    “과연 일전에 죽인 마족들 중에서 당신과 혈연관계인 수사가 있었군요. 혈맥 비술이라야 이렇게 흔적도 없이 제 몸에 표식을 남길 수 있었을 테니까요. 방금 수사께서 부주의하게 혈맥 표식을 발동하지만 않았어도 발견하지 못할 뻔했습니다.”

    한립이 피식 웃으며 은색 불덩이를 날려 푸른 기운에 휩싸인 검은 실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수사의 수행이면 마족에서도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분이겠군요. 성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의 바른 언사와 달리 은광선자의 두 눈에 살기가 번득였다.

    “흥, 노부는 혈광성조 대인을 모시고 있는 역 존자다. 인간, 네 놈이 내 손자를 죽였으니 갈기갈기 찢어 혼백조차 이 세상에서 지워주겠다.”

    독각 노인은 합체기 수사 둘을 앞에 두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한립을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그런 계획이 있으시군요. 허나 그만한 실력이 되는지는 차차 알게 되겠지요.”

    “혼자서 우리 둘과 싸우겠다는 건가? 한 형, 시간 끌지 말고 속전속결하지요. 저 마두가 홀로 돌아다니는 지금이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은광선자가 서늘하게 말을 맺더니 곧바로 은색 갈고리를 움직여 수많은 갈고리 환영을 만들어냈다. 한립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서둘러 은색 자를 휘둘렀다.

    그 모습에 역 존자가 기합을 넣고 들고 있던 검은 몽둥이를 사정없이 휘둘러 검은 방망이 벽을 만들어냈다. 빈틈없이 그 주변을 둘러싼 것이다.

    은색 자 그림자는 몽둥이 허상을 가를 때마다 기이한 힘에 튕겨나가 허물어졌고 은색 갈고리 환영들은 몽둥이 허상을 베려다 튕겨 나왔다.

    웅! 웅!

    결국 맑은 울음소리를 내며 두 개의 은색 갈고리가 원형으로 돌아왔다. 은광선자가 얼굴을 굳히고 수결을 바꾸자 갈고리들이 은색 빛으로 변해 허공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다음 순간 하늘에 격렬한 파동이 일고 주변의 천지원기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하얀색과 붉은색 주술문자들이 허공에서 나타나 두 덩이의 흐릿한 빛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고요한 하얀 빛덩이는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고 요란한 붉은 빛덩이는 콰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강력한 압력을 발산했다.

    이에 독각 노인은 들고 있던 방망이를 던져 검은 바람기둥으로 변한 방망이를 이용해 직접 두 빛덩이를 깨버리려고 했다.

    그때 한립이 들고 있던 은색 자가 번득이며 사라지더니 어느새 독각 노인의 등 뒤에서 나타나 기다란 은색 천으로 변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은색 천에 둘둘 말린 노인은 노호성을 터트리며 검은 기운으로 사방의 천을 갈랐지만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콰콰쾅!

    바로 그 순간 몽둥이 허상이 변한 검은 돌풍과 허공의 빛덩이들이 충돌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릴 듯 엄청난 소리가 울리고 허공이 아른아른 흔들거렸다.

    검은 돌풍은 두 개의 거대한 기둥처럼 갈라져 두 개의 빛덩이를 찔러 들어갔다.

    검은 기둥 때문에 흩어진 빛덩이 사이에서 하얀 초승달과 붉은 태양이 떠올랐다. 눈부신 빛을 발산한 두 물체는 각각 검은 기둥을 감싸 가두었고 독각 노인이 아무리 힘을 써도 검은 기둥을 회수할 수 없었다. 한립이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허공을 가리켰다.

    우웅!

    독각 노인을 감싸고 있던 은색 천이 진동하며 표면에 은색 주술문자가 떠올라 역 존자를 엄청난 힘으로 옥죄었다. 검은 보호막이 압축되어 절반 크기로 줄어들자 독각 노인은 어쩔 수 없이 들고 있던 방망이를 흩어버리고 두 손으로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우드득! 우득!

    놀랍게도 커다란 노인의 몸이 빠르게 불어났고 양쪽 어깨를 뚫고 독각 노인과 똑같이 생긴 머리 두 개가 나타났다.

    우드득!

    동시에 그의 등에서 네 개의 살덩이가 튀어나와 검은 빛을 반짝이며 검은 팔뚝으로 변했다.

    삼두육비의 마물로 변한 독각 노인의 기운이 삽시간에 두 배로 강해져 본래 합체 초기였던 수행이 합체 중기로 올라갔다. 마물의 여섯 개의 팔에서 검은 검이 나타나 번득였고 무수히 많은 검은 실들이 그물처럼 튀어나가 폭발했다.

    찌지직!

    드디어 노인을 옥죄던 은색 천이 조각조각 찢겨나갔다. 그 모습에 한립은 안색이 달라져 얼른 한 손을 내저어 찢겨나간 은색 천 조각을 영기의 빛으로 흐트려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틈에 역 존자는 구속에서 벗어나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크하하학!

    마물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타나 포효했다. 이어 마물의 육체가 불가사의하게 불어나 동산만 해지더니 거대한 여섯 개의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여섯 개의 거검이 괴이하게 사라지고 바윗덩이 같은 커다란 두 손은 하얀 초승달과 붉은 태양을 향해, 또 다른 두 손은 한립과 은광선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검은 마풍(魔風)을 휘날리며 덮쳐오는 기세가 상당했다.

    나머지 두 손은 열손가락을 튕겨가며 수결을 맺었고 마물의 좌우 머리는 눈을 감고 입에서 검은 주술문자를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었다.

    은색 갈고리가 변한 하얀 초승달과 붉은 태양의 신통은 신묘했지만 수행이 크게 증가한 마물의 손에 맞자 더 이상 검은 기둥들을 묶어 두지 못했다.

    검은 기둥들은 부들부들 몸을 떨며 하나로 합쳐져 원래의 거대한 검은 방망이로 돌아왔다.

    이때 한립은 새까만 거대 손 때문에 주변에 깜깜해졌다. 이상한 비린내마저 풍기자 그는 소매 속에서 금색 거대 손을 날려 보냈다.

    콰르릉 콰쾅!

    두 거대 손이 충돌하기도 전에 금색 거대 손에서 수많은 금색 뇌전이 튕겨나가 검은 손바닥을 내리쳤다. 금색 뇌전들이 번득이자 마물은 천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은광선자는 갑자기 수행이 늘어난 노인의 일격을 막아서지 않고 바람으로 변해 자리를 피했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삼두육비 독각 노인의 눈빛이 더욱 표독했다. 양 어깨의 머리가 주술을 멈추고 수결을 맺고 있던 두 손이 한립과 은광선자를 가리켰다.

    핑! 핑!

    날카로운 파공음 속에 핏빛 실 두 줄기가 허공을 갈랐다. 무표정하던 한립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소매 속의 검은 손을 뻗어 새까만 작은 산을 불러냈다.

    바로 원자극산이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