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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16화 (873/2,000)
  • 1116화. 독각(獨角) 마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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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아빠진 천연성 합체기 노괴들도 끝없이 쏟아지는 저계 마수 대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천연성이 미리 비축해둔 영석은 이미 여러 번 최상급 진법을 발동하느라 벌서 10분의 1은 줄어 있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마겁은 백년 간 이어지는데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이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빙긋 웃은 한립이 입을 열었다.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마계의 저계 마수들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들을 굴복시켜 부리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니까요. 게다가 마수 대군을 영계로 데려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두 세계의 계면 압력이 감소했어도 아직은 존재합니다. 그러니 대량의 저계 마수들을 희생하는 것은 분명 마족에게도 큰 부담일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시에 총공격을 했지 이렇게 오래 탐색전을 할 리 없었을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만, 이전의 마겁과 비교해서 너무 수가 많습니다. 천연성의 방어력이 마수대군으로 인해 소모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곡 장로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저는 저계 마수대군이나 고계마족 보다 몇십 년 후부터 넘어올 마족성조 본체들이 걱정입니다. 이번에는 몇이나 영계에 강림할지…….”

    은광선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선자?”

    한립의 표정이 순간 달라졌다.

    “이전에도 마겁이 중기에 이르면 계면 압력이 마족성조 본체의 강림을 막지 못할 만큼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마족성조들이 전부 강림하지는 않았고 실제로 나타난 마족성조들은 손에 꼽혔지요. 다행히 예전에는 인요족과 인근의 다른 종족의 대승기 수사들이 힘을 합쳐 그들을 상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마겁이 이렇게 흉흉한 것을 보니 마족성조의 수가 이전보다 훨씬 많을까 걱정됩니다. 한 번에 열댓 명만 넘어와도 우리 인요족의 힘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은광선자가 차분히 자신이 아는 바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건 저와 금월수사도 예측한 바입니다. 아마 성도 쪽에서 짐작하고 대책을 세워두었을 테니, 우리는 우선 최선을 다해 직면한 일부터 해결을 하시지요.”

    곡 장로는 은광선자의 말에 크게 놀란 기색은 없었으나 일순 서늘한 빛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맞는 말씀입니다. 두 종족의 지혜로운 수사들이 모여 있는 성도라면 이번 마겁에 대비해 무언가 준비를 해두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만 물러나 의천성으로 떠날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은광선자가 걱정을 떨치고 인사를 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립도 그곳을 떠났다.

    그는 거처로 돌아가 기령자와 해대소를 불러 약간의 보물과 단약들을 주고 몇 마디 당부를 한 후, 꼭대기 층 밀실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이튿날 아침, 한립은 홀로 날아올라 천연성의 전송진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몇 시진 후 멀리 거대한 전송 대전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앞에 백의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자를 오래 기다리게 했습니다.”

    한립이 둔광을 거두고 그녀 옆에 나타나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저도 이제 막 도착했는걸요. 바로 출발하시죠!”

    은광 선자는 한립의 얼굴을 살피고 담담히 답했다. 전송 대전 안으로 들어가자 몇 명의 병사들이 공손히 그들을 맞이했다.

    “미리 전갈을 받아 준비해두었습니다. 의천성에서 대략 한 달 거리에 있는 곳으로 전송될 예정인데 마족들에게 발각될 것을 우려해 마겁이 도래한 후에는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은 전송진입니다. 반대쪽 전송진에 도착하시면 장소가 노출되지 않게 주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주변에 마족들이 있을 가능성도 있겠구나.”

    병사의 말에 은광선자가 눈썹을 끌어올렸다.

    “선배님께 아룁니다. 아주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어 적들이 발견할 가능성은 적지만 만일을 대비할 필요는 있습니다.”

    “전송진 자체에 문제가 있지는 않겠지?”

    한립이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전송진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제가 방금 전에 철저히 확인했습니다.”

    “전송진에만 문제가 없다면 그곳에 마족들이 매복해 있어도 상관없다. 바로 전송진을 발동하거라.”

    자신 있는 병사의 말에 한립이 주저 없이 명을 내렸다. 은광선자는 그 말을 듣고 눈에 이채가 어렸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

    병사들이 전송진을 발동하자 은광선자가 백의를 휘날리며 안으로 들어섰고 한립도 차분히 그 뒤를 따랐다.

    우웅!

    잠시 후 전송진에서 눈부신 우윳빛 빛이 퍼져 나왔다. 두 사람의 신형은 밝은 빛 속에서 흐릿하게 사라졌다.

    한립은 눈앞이 밝아지고 주변 풍경이 모호하게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수행에 이 정도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머리가 약간 묵직해지는 느낌을 제외하면 아무런 부작용도 없었다.

    그는 빛이 흩어지고 두 발이 땅에 닿은 순간 의식을 퍼트려 주변을 살폈다. 한립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고 눈빛이 서늘해졌다.

    휘휘휘휘휙!

    거의 동시에 사방에서 파공음과 함께 수백 줄기의 검은 빛이 날아들었다.

    한립은 거침없이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몸에 회색 광채를 일으켰다. 처음에는 겨우 그의 몸을 감쌀 정도이던 회색 광채가 몇 배로 불어나 검은 빛들을 잠식했다.

    웅!

    검은 기운들이 부르르 떨며 괴이한 힘에 의해 회색 기운 속에서 원형을 드러냈다. 새까만 화살들에는 화살촉마다 보랏빛 독이 발라져 있었다.

    그제야 한립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널따란 대청 안에 검은 갑옷을 입은 5, 60명의 마족병사들이 새까만 활을 들고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결단기 수행의 병사들 틈틈이 원영급 수사도 섞여 있었다. 그중 가장 수행이 높은 외뿔의 화신기 마족이 녹색 눈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이, 인족 합체기 노괴들이다. 달아나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신기 고계 마족은 펑! 하고 몸을 터트려 대청을 검은 기운으로 채웠다. 그 틈에 본체는 검은 빛으로 변해 대청 입구로 날아가고 있었다.

    마족 병사들도 놀라 허둥지둥 각종 둔술을 펼쳐 달아났다. 그러나 한립이 그들을 그냥 놔둘 리 없었다. 그는 흉흉한 빛이 어린 얼굴로 회색 기운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휘휘휘휘휙!

    회색 기운에 잡혀 있던 새까만 화살들이 방향을 바꾸어 반대편으로 쇄도했다. 그 엄청난 속도는 날아들 때의 열 배 이상이었다. 사방에서 마족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울리고 시체가 나뒹굴었다.

    이어 대청의 회색 기운이 꿈틀꿈틀 무수히 많은 회색 실로 변해 쓰러진 마족 병사들의 몸을 조각조각 갈랐다. 회색 실의 공격에 마족 병사들은 원영도 달아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한립은 냉랭한 눈빛으로 문 쪽으로 달아나고 있는 독각(獨角) 화신기 마족을 쳐다보고는 한 손을 뻗었다.

    파앗!

    거대한 푸른 손이 나타나 독각 마족의 머리를 내리쳤고,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독각 마족은 거대 손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으깨졌다.

    한립은 소매를 펄럭여 회색 실들과 푸른 거대 손을 흩어버리고는 이제 막 전송진을 빠져나온 은광선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은광 수사, 이곳은 이미 마족들에게 노출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겨우 저 정도 마족들을 보내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크게 중요시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그게 아니라, 인족이 각성 인근에 숨겨 놓은 비밀 전송진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전송진에 대량의 병력을 파견해 지키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화신기 마족까지 나타난 것을 보면 마족들이 이곳을 꽤 눈여겨보고 있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선자의 말씀이 일리가 있군요.”

    은광선자의 말에 한립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손가락에서 불덩이를 날려 마족 병사의 잔해를 전부 재로 만들었다. 남은 것은 크고 작은 저물법기들 뿐이었다.

    마족의 저물법기는 영계의 팔찌 모양과 달리 허리띠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저물요대(儲物腰帶)를 모아 의식으로 훑은 한립은 움찔했다.

    새까만 빛을 내는 수정돌과 몇몇 진법 법기들을 제외하면 안에는 들어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새까만 수정돌은 말로만 듣던 마계 특산의 마정석(魔晶石)이었다.

    한립은 저물요대들을 챙겨 성큼성큼 대청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의식으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방금 처리한 수십 명의 마족들을 제외하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은광선자가 평온하게 그 뒤를 쫓았다.

    대청을 나서자 구불구불하고 협소한 천연 동굴을 제외하면 어떠한 입구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꽁꽁 숨겨둔 전송진을 마족들은 어떻게 찾았는지 새삼 신기할 따름이었다.

    잠시 후, 두 개의 빛줄기가 산 지하에서 튀어나가 어딘가로 날아갔다. 푸른색 빛줄기는 점점 투명해져 나중에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고 하얀색 빛줄기는 펑! 하고 하얀 구름으로 변해 날아갔다.

    두 둔광은 극히 빠른 속도로 하늘 저 끝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전송진을 떠나고 반나절도 채 안되었을 때 다른 방향에서 마기가 구름처럼 뭉쳐 날아들었다. 마기 구름이 도착한 곳은 한립과 은광선자가 출발한 산봉우리 아래였다.

    마기가 응결해 하얀 갑옷을 입은 합체기 노인이 나타났다. 머리에 뿔이 하나 솟아 있는 것이 한립이 죽인 화신기 마족과 닮아 있었다.

    다급하게 하얀빛으로 변해 지하 동굴로 뛰어든 노인은 얼마 후 애통하게 울부짖었다.

    “감히 내 손자를 해치다니! 어떤 놈인지 본 존이 끝까지 추격해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말 것이다. 그래, 이쪽으로 갔다 이 말이지?”

    백색 갑옷 노인이 돌연 한립이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고 날카롭게 외쳤다.

    노인의 허리춤에서 울음소리가 들리고 마기가 뭉쳐 거대한 검은 학(鶴)으로 변했다. 검은 기운을 일으켜 다시 주위에 새까만 구름을 응결한 노인은 검은 학에 올라타 파리한 얼굴로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검은 학의 날개에 새까만 빛이 흐르고 네 개의 날개가 환영처럼 나타나 펄럭였다.

    휘잉!

    백색 갑옷 노인을 태운 검은 학은 화살처럼 날아올랐다. 이때 시커먼 거대 몽둥이가 새까만 구름 속에서 튀어나와 멀리서 작은 산을 내리쳤다.

    콰르릉!

    지하 동굴이 무너지고 거대 몽둥이 환영이 사라지자 산 하나가 완전히 허물어져 평지로 변하고 말았다.

    두 시진 후,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거산의 봉우리에서 또 다른 고계 마족 둘이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미 형, 역 노괴가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요? 손자에게 들려 방어용 보물만 챙겨주고 바로 돌아온다지 않았습니까. 설마 아직도 손자를 붙들고 눈물바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급히 처리해야할 임무를 맡고 어찌 이리 시간을 허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시간을 끌다 대사를 그르치면 혈광 대인께 무어라 한단 말입니까.”

    얼굴에 푸른 문신이 있는 고계 마족이 동료를 향해 투덜댔다.

    “조급해 마십시오, 남 존자. 역 노괴도 눈치가 있는 자이니 돌아오는 중일 겝니다. 인근에서 감시 임무를 맡고 있는 손자가 유일한 혈육이라지 않습니까. 그가 애지중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입가에 기다랗게 물개수염이 난 대머리 마족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무리 그래도 손자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돌아왔어야 말이 된단 말입니다. 설마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요?”

    남 존자가 손가락으로 남색 문신을 긁적였다.

    “그럴 리가요. 역 노괴의 신통에 인족 합체기 수사를 만나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대머리 마족은 입가를 꿈틀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인족 중에 신비한 보물을 지닌 자들은 수행이 높은 자들과도 비견할 만하고, 협공에 능한 연허 후기 수사들이 모이면 꽤 골치가 아프다고요.”

    “하하, 이미 이 지역은 우리들에게 겹겹이 포위되어 있습니다. 어찌 역 노마가 우연히 그런 존재들과 맞닥뜨리겠습니까.”

    대머리 마족이 대수롭지 않게 웃음을 흘린 순간 그의 몸에서 웅! 하고 낮은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새하얀 진법 원반을 꺼내 손끝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투명한 빛의 파동이 원반 표면에 일고 하얀빛이 노인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바로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던 역 노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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