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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13화 (870/2,000)
  • 1113화. 인마전투(人魔戰鬪) (1)

    *

    미소를 머금고 합체기 수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립이 눈동자에 남색빛을 일렁이고 마기 쪽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마기가 아닌지 영목신통으로도 깊숙한 곳까지는 또렷이 볼 수 없었다. 그저 희미하게 전함과 마차처럼 생긴 비행 법기들이 많고 여러 종류의 갑옷을 걸친 병사들이 포진해 있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그가 법력을 더욱 끌어올려 영목신통을 극성으로 발휘한 순간 마기 깊은 곳의 음산한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흠칫 놀란 한립은 얼른 영목신통을 끊고 얼굴을 굳혔다.

    같은 시각, 마기 속 거대 마차 안에서 누군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녹색 장포를 걸친 누런 머리의 노인이 눈에서 새빨간 빛을 거두어들이는 중이었다.

    “허허, 왜 그러십니까? 뭐 재미난 물건이라도 발견하셨습니까?”

    보라색 갑옷을 입고 얼굴에 검은 반점이 가득한 거한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인족에도 영목신통을 지닌 고계 수사가 있는 모양이군요. 조금 겁을 주어 쫓아 보냈습니다.”

    “오, 그럼 우리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간 것은 아닙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석 존자. 성조대인의 하사품인 혼마기(混魔旗)가 뿜어낸 마기가 얼마나 현묘한데요. 상대의 영목신통이 아무리 대단해도 금제의 제약을 받아 뭔가를 발견하기는 힘들 겁니다. 물론 상대편도 비슷한 금제로 가려져 있어 저도 성 안을 감시할 수 없지만요.”

    자갑 거한의 물음에 녹포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쪽 상황만 노출되지 않으면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우리 임무는 성 안의 전력이 어떤지 염탐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도착한 곳에 이렇게 큰 사냥감이 있다니 운이 좋았습니다. 이곳을 약탈하면 수확이 대단하겠어요!”

    자갑 거한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하하, 그리 우습게 볼 성은 아닙니다. 인족 범인을 몇 명 잡아다 물어보니 인족과 요족의 정예들이 결집해 있는 거대한 성이라 하더군요. 전투에 승리하더라도 수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녹포 노인은 걱정스레 미간을 좁혔다.

    “성제에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됐습니다, 어차피 어떻게 이 성을 함락할지는 성조대인께서 결정할 문제니까요. 우리야 명받은 대로 움직이면 그뿐이지요. 슬슬 공격을 시작할까요? 이번 전투로 성을 함락할 순 없어도 최대한 상대의 전력을 끌어내야 할 겁니다.”

    “이번 임무는 석 존자가 책임자이니 뜻대로 하시지요.”

    자갑 마족은 노인이 반대하지 않자 조금 흥분한 기색으로 검은 깃발들을 꺼내 들었다. 작은 깃발에는 각기 다른 괴이한 도안들이 새겨져 있고 정순한 마기파동이 느껴졌다.

    쉭! 쉭!

    깃발 두 개가 허공으로 사라지더니 다음 순간 마수 대군 전방의 두 무리가 커다란 포효소리를 내고 천연성 방향으로 진격했다. 천연성 공중 궁전에서 그것을 본 곡 장로가 서둘러 명을 내렸다.

    “쌍두석(雙頭蜥)과 독액충(毒液蟲)이다. 전방의 방어를 맡은 이들은 조심하라 전하거라!”

    “예, 장로님!”

    뒤에서 대기하던 금갑 병사가 명을 받들고 빛줄기로 변해 명을 전달하러 내려갔다.

    “쌍두석이면 바람과 불 속성 공격에 모두 능한 도마뱀 마물이 아닙니까?”

    금월선사가 마수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맞습니다. 저계 마수라 연기기 수준 밖에는 안 되나 마계 본토에는 천 만 마리 이상이 서식한다더군요. 이번 침공에 전부가 넘어오지는 않았겠지만 상당한 수가 몰려왔을 겁니다. 또한 독액충이 내뿜는 독은 저계 수사들에게 치명적이고 성벽을 부식시킬 수 있어서 무척 성가신 마충입니다.”

    “그래도 저계 마수들이니 병사들이 알아서 잘 대처할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곡 형.”

    “그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금월선사의 말에도 곡 장로는 어두운 얼굴로 아래쪽 전황을 주시했다.

    천여 개에 달하는 천연성의 높은 거대 보루에는 백여 명의 인족 수사들이 방어를 맡고 있었다. 보루 사이사이에 금제의 파동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것이 무언가 현묘한 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 수많은 보루를 모두 돌파하지 않고는 천연성 성벽을 직접 공격할 수 없게 해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족도 처음에는 대량의 마수를 풀어 화살받이로 쓰면서 밀고 들어왔다. 이전의 경험상 인족 거대성의 방어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체득한 결과였다.

    멀리서 우르르 몰려오는 마수 무리의 수는 족히 3, 4만 마리는 되었고 그 중에 황소만한 쌍두석이 3분의 2를 차지했다.

    대신 거대 애벌레처럼 생긴 독액충은 쌍두석보다 몸집이 두 배는 컸기에 멀리서 보면 그 수가 그리 적어보이지 않았다. 두 마수 무리의 후방에 백 명의 검은 갑옷 고계 마족들이 뒤따르며 마수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수만 마리의 마수들이 인족의 보루에 도착하자 거센 바람이 불고 쌍두석들의 두 눈이 새빨갛게 변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독액충은 투명한 날개가 자라나 도마뱀 마물에 뒤지지 않는 속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허공의 고계 마족이 술법을 펼쳐 검은 기운으로 마수들을 뒤덮었다. 마기가 꿈틀거려 마수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가려졌다.

    쉬쉬쉬쉬쉬쉭!

    잠시 후, 마기 속에서 불구슬과 바람의 칼날 등이 빼곡하게 솟아올라 전방의 보루들을 공격하려 했다. 엄청난 공세를 그대로 맞으면 보루의 금제들도 멀쩡할 리 없었다.

    보루 안 인족 수사들의 안색이 급변했을 때 천연성 상공의 백옥 궁전에서 천상의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궁전 안에 박힌 금색 거울에서 금색 빛기둥이 뻗어 나가 금빛 장막이 퍼져 보루들을 보호했다.

    불구슬과 바람의 칼날 등이 피처럼 금빛 장막에 쏟아져 내렸다.

    콰르릉!

    붉은색과 하얀색 빛덩이가 불과 바람의 기운을 머금고 증폭되어 주변 천기원기가 요동칠 정도였다. 폭음이 가시고 드러난 금색 장막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에 적잖은 고계 마족들이 그것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반대로 금월선사 등 천연성 장로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고, 심지어 은광선자는 백포 노인을 향해 미소를 머금었다.

    “곡 형의 금욱보경(金旭寶鏡)이 나날이 강력해집니다. 천보신전(天寶神殿)의 힘을 끌어다 쓰는 것이라지만 겨우 빛기둥으로 수만 마수 대군의 공격을 막아내다니요. 천년 넘게 공들여 제련한 보람이 있으시겠습니다.”

    “금욱보경은 혼돈만령방 윗줄에 이름이 올라간 통천령보입니다. 제가 따로 제련하지 않았어도 저 정도 공격이야 가뿐하게 막을 보물이지요. 그나저나 마족들이 이 방어막을 어찌 뚫을지 궁금합니다.”

    곡 장로가 겸허히 답했다. 한립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힐끗 뒤쪽의 거대 거울을 살폈다. 눈부신 금빛으로 반짝이는 금욱보경은 여전히 사발 굵기의 금색 빛기둥을 분출해 금색 보호막을 유지하고 있었다.

    “공격!”

    한립이 잠시 다른 곳에 신경 쓰는 동안 궁궐 안에서도 명령이 떨어졌다.

    쉬쉬쉬쉬쉭!

    병사들이 동시에 같은 수결을 맺고 들고 있던 법기를 날렸다. 마수 무리들 머리 위로 수천 개의 법기들이 현란한 빛을 내며 떨어졌다. 마기 속에서 포효소리가 크게 들리고 또 한 번 불구슬과 바람의 칼날들이 생겨나 거대한 파도로 변했다.

    거대한 파도는 법기들이 더 이상 떨어지지 못하게 막아냈다. 고계 마족의 조종을 받는 마수들도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그러나 보루 속 병사들은 다시 한 번 수결과 주문을 강화해 법력을 쏟아 부었다.

    수천 개의 법기들이 아름다운 광채로 하나로 연결되어 버티려 했다. 그러나 파도가 조금씩 밀려 마수 무리 속에서 수천가닥의 녹색 실이 뻗어 나와 녹색 안개로 흩어졌다.

    이에 아름다운 광채는 참기 힘든 역한 냄새와 녹색 안개가 흘러드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법기는 녹색 안개에 휩싸인 순간 녹색으로 물들어 영기의 빛이 어두워졌다.

    허공에서 비틀거리며 버틴 2, 3백 법기를 제외하고는 전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럴 리가! 저건 보통의 독액충이 아닙니다. 독액충의 독은 원래 법기를 오염시키는 능력이 없어요!”

    높은 단 위에서 곡 장로가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때 마기 속의 거대 마차 속에서 자갑 거한이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다.

    “흐하하하! 녹 형, 인족들이 감쪽같이 속았습니다. 변이 마충을 평범한 독액충인줄 알았지 뭡니까!”

    “변이 마충의 수가 너무 적고 중저계 법기에만 통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안 그랬으면 아껴두었다가 중요한 전투에 써먹었을 텐데요.”

    녹포 노인이 미소를 머금고 아쉬워했다.

    “허허, 변이 마충 찾기가 어디 그리 쉽나요. 이 정도 길들여 데려온 것도 운이 좋았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마수나 마충들은 버리는 수이고 정말 이곳을 무너트리려면 우리가 나서야 할 겁니다.”

    “허나 변이 마충의 독이 진법금제에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인 것에 놀랐습니다.”

    “맞습니다. 그건 저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노인의 말에 자갑 거한이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보루 쪽을 살폈다.

    보루 속 병사들은 법기들과 의식 연계가 끊기고 더는 다른 보물로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병사들은 보물이 아까워 이가 갈렸지만 결단기 수사의 명에 어쩔 수 없이 보루 안에 미리 새겨둔 도안 위로 올라가 섰다.

    병사들이 품에서 깃발을 하나씩 꺼내고 결단기 수사의 지원 하에 주문을 외우며 법력을 불어넣었다.

    우웅!

    잠시 후 보루에 새겨놓은 진법이 밝게 빛을 머금고 중앙에서 오색 빛구슬이 떠올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콰르릉!

    이와 동시에 보루 밖에서는 쌍두석이 분출한 불과 바람의 기운이 금색 장막을 강타하고 있었다.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지만 수천 가닥의 녹색 실들이 조용히 금색 장막을 공격했다.

    금색 빛의 장막은 불과 바람이 부딪쳐 폭발해도 별 이상이 없었으나 녹색 안개에는 조금씩 침식되어 갔다. 아주 천천히 보호막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고 있었다.

    다행히 보루 속 진법이 공격 준비를 마쳤다. 은색 빛구슬이 번득이며 사라져 보루 위에 나타났다.

    치칙!

    빛구슬에서 은색 뇌전들이 튀어나와 뇌전 그물이 되어 날아갔다. 불바람이든 녹색 안개든 뇌전 그물 앞에서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뇌전 그물은 가느다란 은색 뇌전 뱀으로 흩어져 마기를 덮쳤다.

    콰르릉 콰쾅!

    마기와 은색 뇌전이 교전해 폭발했고 도마뱀과 애벌레 마물들은 펄쩍펄쩍 뛰며 뇌전을 피했지만 워낙 조밀하게 모여 있어 사상자가 꽤 많이 나왔다.

    적잖은 쌍두석과 독액충이 은색 뇌전을 맞아 재가 되어 흩날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마수들이 폭발의 잔해를 맞거나 뇌전에 스쳐 쓰러졌다.

    그럼에도 보루 위의 빛구슬은 여전히 왕성하게 은색 뇌전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순식간에 두 마수의 절반이 죽거나 부상을 당해 싸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자갑 마족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손을 저었다. 그러자 허공에 띄워두었던 깃발들 중 두 개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어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다른 작은 깃발들 중 절반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마수 대군 중간에 엎드려 있던 대형 달팽이 두 마리가 더듬이를 쫙 펴고 괴이한 소리를 내며 입에서 우윳빛 빛기둥을 발사했다.

    두 개의 우유빛 빛기둥에의해 금빛 보호막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며 얼마 버티지 못하고 뚫려 뒤쪽의 열댓 개의 보루가 박살나고 병사들이 죽임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후방에서 대기하던 마수 대군이 요란하게 울부짖으며 천연성을 향해 질주했고 고공에 떠있던 마인들도 검은빛을 두르고 서서히 전진했다.

    둥-둥-둥-둥-!

    마기 속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며 다양한 복색의 고계 마족을 태운 백여 대의 새까만 비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흉악한 표정으로 기다란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 뒤로 스산한 울음소리를 내는 거대 괴수 두 마리가 대형 비차를 끌고 나타났다. 보라색 코뿔소를 닮은 두 마리 괴수의 코에 솟은 뿔이 금빛으로 섬뜩하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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