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화. 마족 대군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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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복의 수가 뇌우의 열배 이상이었기에 열댓 무리로 나뉘었는데도 각각이 만 마리가 넘었다. 게다가 뇌우들이 향한 방향으로도 두 무리의 혈복들이 당당하게 따라붙었다.
들킬까 걱정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추한 소년도 핏빛으로 변해 핏빛 구름에 합류했다. 아직도 고공에는 마기가 가득했지만 두 무리의 마수들이 자리를 떠나 일대가 고요해졌다.
일다경이 지나고 마기가 다시금 꿈틀거리고 안에서 휘휘힉!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새까만 빛을 반짝이는 거대 구렁이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구렁이는 거목 같았고 큰 것은 작은 산처럼 거대했다.
게다가 구렁이의 이마에 새빨간 눈이 하나씩 더 있었는데 바로 희귀하기 짝이 없는 세눈박이 구렁이 마수 무리였다. 그 수는 뇌우와 혈복들에 비해 턱없이 적어 5, 6천 마리 정도였지만 발산하는 기운은 앞선 마수들을 훨씬 능가했다.
거대 구렁이 위에 새까만 가면을 쓰고 푸른 갑옷을 입은 고계 마족이 서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주위를 살피고는 다른 두 종족이 벌써 보이지 않자 조금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콰릉!
청갑 마족이 발을 구르자 거대 구렁이가 머리를 치켜들고 입에서 천둥소리를 냈다. 구렁이의 머리에서 두 개의 괴이한 핏빛 뿔이 솟아오르고 등에는 푸른 날개가 자라났다.
다른 세눈박이 구렁이들이 그것을 보고 마치 왕을 맞이하듯 마기를 발산하고 울부짖었다.
“겨우 만 년 사이에 위 형의 본명영수가 또 진화를 하였습니다. 이제 성계 초기 수사와도 맞먹을 것 같군요.”
구렁이 무리들이 마기를 빠져나오고 거센 바람과 함께 커다란 괴충 한 마리가 그 뒤를 쫓았다. 연두색 피부에 머리에는 더듬이가 달린 곤충은 날카로운 송곳니가 길게 자라고 앞다리가 칼처럼 날카로운 거대 사마귀였다.
그리고 그 사마귀 위에 소인(小人)이 서있었다. 일고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소인은 머리를 땋고 양쪽 어깨에 각각 금색 단검 세 자루씩을 꽂고 있었다.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다.
“누군가 했더니 혼주 형이셨습니다. 몇 해 전에 진귀한 영약을 구해 먹였더니 갑자기 경지가 높아졌지 뭡니까. 그나저나 수사야말로 못 본 사이에 법력이 더욱 정순해지셨습니다.”
청갑 마족은 서늘하게 아이를 훑었다.
“하하, 이번 영계행을 위해 본 왕도 오래 준비하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귀 수사 일족까지 도착했으니 바로 움직이시지요. 주변에 어떤 골칫거리가 버티고 있더라도 우리 두 일족이 힘을 합치면 상대가 되겠습니까.”
“본 왕 생각도 같습니다. 얘들아, 나오거라!”
아이가 활짝 웃으며 마기 속으로 고개를 돌리고 소리쳤다. 그 소리에 검은 기운이 요동치고 붕붕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마충(魔蟲)들이 빼곡하게 쏟아져 나왔다.
크기가 훨씬 작은 것을 제외하면 전부 아이 발밑의 거대 사마귀와 똑같았다. 사마귀 마충들은 수량이 엄청나서 하늘을 뒤덮고도 한식경이 더 지나서야 모두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6, 70만 마리의 사마귀 마충 떼를 마주치면 합체기 수사라 해도 두려움에 떨 것이다.
청갑 마족은 그것을 무심하게 지켜보다 낮게 소리치자 세눈박이 구렁이들이 지면으로 추락해 괴이하게 땅 속으로 사라졌다. 곧 그도 발밑의 거대 구렁이를 지그시 밟고 푸른빛으로 변해 그 뒤를 따랐다.
아이가 하하 웃음을 흘리고 휘파람을 길게 불어 마충 머리와 함께 어딘가로 날아갔다.
엄청난 수의 곤충 떼가 하늘을 뒤덮고 날아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 후로 간격을 두고 마수 무리들이 둘 혹은 셋 씩 마기를 뚫고 넘어와 고계 마족의 명을 받아 어딘가로 이동했다.
다들 아무렇게나 방향을 정해 진격하는 것으로 보아 정해진 목표가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이 13번 정도 반복되고 한동안 잠잠했다.
콰르릉!
마기 속에서 은색 뇌전들이 번득이고 강렬한 공간파동이 새어나왔다. 마기가 더욱 광활하게 퍼지고 그 안에서 백여 개의 거대한 물체들이 나타났다. 은색 주술문자들이 반짝이는 새까만 삼각뿔 모양의 거대 탑이었다.
강렬한 공간파동 속에서 서서히 경계를 넘어 오는 모습이 마치 작은 성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탑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은빛 뇌전이 계속해서 내리치고 공간이 왜곡되어 그것을 찢어발기려 들었다.
거대 탑의 은색 주술문자가 강한 빛을 머금어 그것을 이겨내고서야 겨우 지면에 떨어질 수 있었다.
콰쾅! 쾅! 쾅!
삼각형 탑이 떨어지는 곳은 언덕이든 호수든 모두 엄청난 압력에 균일하게 평지로 변하고 말았다. 거의 반 시진 만에 마지막 탑이 떨어진 후에는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릉!
삼각뿔 탑의 은색 주술문자가 반짝이자 거대 문이 나타나 활짝 열리더니 그 안에서 북소리와 함께 새까만 통나무배들이 날아올랐다.
새까만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통나무배들은 흉악하기 짝이 없는 마신(魔神)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고 선체에 열댓 개의 날카로운 칼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검은빛의 장막 안에 대여섯 명의 흑청색 갑옷을 입은 마족들이 병장기를 들고 서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탑마다 백여 개의 새까만 통나무배들이 빠져나왔고 그 뒤로 빨간 갑옷을 입은 마족 병사들이 은색 문을 걸어 나왔다.
기다란 창 혹은 활을 든 병사들은 문을 빠져나온 순간 날개를 펼쳐 허공에 떠올라 사방을 경계했고, 각양각색의 빛줄기들이 탑 안에서 날아올랐다.
둔광이 가시고 나타난 것은 인족과 똑같이 생긴 이들이었다. 그들은 각각 다양한 복색을 입었는데 평범한 장포나 갑옷을 걸친 이부터 심지어 웃통을 벗고 있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검은 기운이 몸을 감싸자 그들은 바로 뼈가 뒤틀리는 소리를 내며 머리 둘에 팔이 넷인 마인(魔人)으로 변했다. 새로 생긴 머리는 원래 있던 것과 생김새는 똑같았지만 무척 흉측했다.
변신한 마인들은 모두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쳐들고 낮게 울부짖으며 전신에서 피비린내를 풍겼다.
그밖에 변신하지 않은 이들은 그것을 보고 뜻밖에도 멸시하는 시선을 보냈고, 담담한 얼굴로 사방을 살폈는데 숨길 수 없는 감정의 동요가 느껴졌다.
그 중 새빨간 머리카락을 지닌 매부리코 노인이 멀리 푸르른 녹음을 보고 낮게 중얼거렸다.
“노부가 이번 생에 이 풍경을 다시 보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이번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여한이 없구나!”
“허허, 사 형! 그렇게 울적한 소리 마십시오. 성조대인께서 진작 명을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이번 성제(聖祭)는 이전과는 다르다고요. 성족이 영계의 일부라도 점령해 큰 공을 세우는 자는 영계에 남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같이 마계로 비승한 이들에게는 다시없을 기회이지요.”
홍발(紅髮) 노인이 아주 작게 중얼거렸지만 곁에 서있던 검은 삼베옷을 입은 노인이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흘렸다.
“삼양 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진마계로 비승해 우리가 이미 성족의 일원이 되었지만 영계에 남을 수 있다면 큰 복일 겁니다.”
홍발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거대한 탑에서 쿵쿵거리는 육중한 발소리가 울려 퍼지며 생전 처음 보는 마물들이 은색 문을 통해 걸어 나왔다.
마물들의 회백색 피부는 건조해 갈라져 있었고 암석처럼 단단해 보였다. 대충 보면 사람과 비슷했지만 어깨에 네 개의 굵은 팔뚝이 자라나 있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땅이 크게 울리는 것이 무게가 상당한 듯했다.
이런 석마들이 탑마다 천여 마리씩 걸어 나와 고분고분하게 줄을 맞춰 섰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마물이 낮게 울부짖자 석마들의 몸이 회색으로 빛나고 단단해 보이는 육체는 진흙처럼 허물어져 흙속으로 스며들었다.
쿠르릉.
잠시 후 석마들이 사라진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지가 진동하며 땅 속에서 노란빛과 함께 흙담이 치솟았다. 겨우 일다경 만에 거대한 성벽이 완성된 것이다.
거산처럼 우뚝 솟은 성벽은 대충 모양만 잡혀 있을 뿐 아주 투박하고 먼지가 흩날려 무척 아슬아슬해 보였다. 바로 그때 성벽 앞 지면에 회백색 석마들이 불쑥 솟아올라 네 개의 팔로 흙벽을 마구 두들겼다.
치지직!
놀랍게도 석마의 팔에서 뻗어나간 빛기둥들이 서로 연결되어 회백색 빛으로 성벽을 둘러쌌다. 허술해 보이던 흙담이 순식간에 회백색 암석으로 변했다.
석마들은 흙을 단단한 암석으로 바꾸는 신통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곳곳에서 수많은 석마들이 팔을 휘둘러 성벽을 꼼꼼하게 완성해 나갔다.
성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을 때 삼각뿔 거대 탑 안에서 검은 기운에 둘러싸인 모호한 그림자들이 무리지어 나타났다.
귀물 그림자들은 형체가 없는 것처럼 이동해 성벽으로 날아들었다. 그때마다 성벽에는 크고 작은 진법들이 나타났다.
일을 마친 귀물 그림자들은 성벽을 빠져나와 다른 마족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시 탑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새까만 마기의 바다 아래 단단하게 쌓아올린 거대한 성이 늘어갔다.
백여 개의 거탑을 중심으로 석마들은 지치지도 않고 같은 작업을 반복했고 고계 마족이 나타나 각 성 주변에 현묘한 금제들을 설치했다.
쿠르릉!
돌연 삼각뿔 거탑 중 하나의 지붕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핏빛의 거대 제단이 솟아올랐다. 사면에 상고 문자가 적혀 있는 제단은 농염한 피비린내를 풍겼다.
그리고 제단 중심에 핏빛으로 둘러싸인 거대 인영이 서 있었다. 그의 등장에 마족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혈광성조를 뵙습니다.”
수많은 마족들이 동시에 외치는 소리가 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나 제단 위 핏빛 인영은 담담히 그들을 둘러보고 고개를 들어 마기의 바다로 눈을 돌렸다.
외로이 하늘에 떠있는 달처럼 쉽게 잊을 수 없는 형형한 눈빛이었다. 그가 갑자기 팔을 들어 허공을 갈랐다.
콰르릉!
고공의 마기가 무형의 공격에 요동치다 귀물의 머리에 교룡의 몸을 한 검은 지팡이로 변해 제단으로 떨어져 내렸다.
핏빛 인영은 광채 나는 다섯 손가락을 펼쳐 검은 지팡이를 축소시켜 손에 쥐었다. 검은 지팡이를 횡으로 휘두르며 핏빛 인영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신비롭게 퍼져나갔다.
지팡이 끝에 달린 악귀 머리가 눈을 번쩍 뜨고 입에서 검은 주술문자를 분출했다. 주술문자들은 검은색의 거대 꽃송이로 변해 성으로 표표히 흩날렸다.
이때 혈광성조가 주문을 멈추고 두 팔을 교차했다. 새까만 영력 파동이 무형의 고리를 이루어 검은 꽃송이들을 터트렸다.
퍼퍼퍼펑!
검은 꽃송이들이 터져나간 자리에 새까만 마기가 번져 거성을 둘러싸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마족들은 마기가 몸에 닿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을 건립하느라 소모한 법력이 기이한 속도로 차오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흘 내로 성성(聖城) 세 곳을 더 완성하고, 이레 후 인근에서 가장 많은 수사들이 모여 있는 거점으로 출발한다.”
혈광성조가 뒷짐을 지고 엄숙히 명을 내렸다.
“명 받들겠습니다.”
거대 성 안에서 무수히 많은 고계 마족들이 소리쳤다. 그곳뿐만 아니라 인요족 영토 내의 마반에서 비슷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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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마반 인근, 하늘로 치솟은 거목에 기대 세워진 인족의 거대 성에서 합체기 수사들이 요동치는 마기의 바다를 어두운 얼굴로 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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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두 명의 수사가 구리거울과 사발을 발동해 뱀 머리에 말의 몸을 한 마물들을 살육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분노에 찬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마기로 가득한 바람이 불가사의한 속도로 몰려들었다.
“고계 마족이 옵니다. 갑시다.”
도사가 그것을 보고 소리쳤고 승려와 함께 둔광을 일으켜 천원성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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