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0화. 소년과 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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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가 녀석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없어 걱정이 됩니다. 괜히 마계 행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까봐서요.”
흑포 사내가 인상을 찡그리며 우려를 드러냈다.
“노부가 요청한 다른 늙은이들은 몇이나 속을 꿰고 있습니까. 이번 마계 행에서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이번 마겁은 본 족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지만 이번 일만 성사된다면 합체기 수사들에게는 다시없을 기회가 될 것입니다. 평생 합체기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면 이번 마계행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다만 그 전에 마족의 침공을 충분히 막아두고 가야할 텐데요.”
“노부는 13세가를 모아 만든 거점이 고계수사의 수량으로나 방어력으로나 삼대 황성에 비견할 만하다고 자신합니다. 이번 마겁이 이전에 비해 배로 흉흉해도 이곳이 뚫릴 일은 없을 겁니다.”
“저도 그걸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농 형과 합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한 가 녀석도 갔으니 돌아가서 하던 일이나 계속 처리하시지요! 마번이 번지는 속도로 보아 서너 달 후면 진마족들이 경계를 넘어 들이닥칠 것입니다.”
“그럽시다. 노부도 긴히 제련해야 하는 단약이 있습니다.”
농 가 노조가 고개를 끄덕이고 금빛 기운으로 변해 성으로 날아갔고 흑포 사내도 검은 바람으로 변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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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이 훌쩍 지나 한립이 다시 전송진을 통해 천연성으로 돌아왔을 때는 성의 경비가 더욱 삼엄해져 있었다. 성벽 주위의 금제도 반 이상이 작동을 시작했다. 그가 합체기 수사가 아니었다면 전송진을 사용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한립은 곧바로 해대소 등 제자들이 머무는 탑으로 가서 경천전주를 내어주고 얼른 보물에 익숙해지도록 수련에 힘쓰라고 말해두었다.
경천전주는 많은 수사가 숙련되게 움직여야 진정한 위력을 낼 수 있는 보물로, 한립이 문하의 제자들을 위해 위기의 순간 목숨을 부지할 최후의 수단으로 준비해둔 것이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천연성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어 갔다. 천연성 인근의 몇몇 마반들이 거의 만여 리를 퍼져나가 세상은 더욱 어둠속으로 물들어갔고 심지어 마기가 꿈틀거리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천연성 인근 마반들은 인족의 다른 지역에 비해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다. 듣기로 가장 큰 마반은 새로 부임한 영황이 있는 천령성에 나타났는데 이미 백만 리를 퍼져나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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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성에서 조금 떨어진 새까만 마반 근처.
금색 전함 두 척이 수풀에 숨어있었다. 딱 붙어 있는 두 척의 배 위에는 각각 금갑 천연위와 흑갑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진 형, 요 며칠 마음이 불안합니다. 눈꺼풀도 괜히 떨리는 것 같고요. 조만간 마겁이 발발할 것 같습니다.”
금갑 거한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게 어찌 금 수사뿐이겠습니까. 노부도 이곳에 마반을 감시하러 파견 나온 후로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허나 임무를 맡았으니 어쩔 수 있습니까? 마반이 뚫리자마자 바로 전송진법을 발동해 재빨리 성으로 돌아가야지요.”
왜소한 체격의 노인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 위험한 임무가 아닌데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습니다. 제비뽑기로 무작위로 뽑히는 것에 하필 우리가 걸리다니 지지리도 운이 없습니다.”
“허허, 성에 남아 있었으면 안전하기는 했겠지요. 하지만 순조롭게 이번 임무를 마치면 보상도 만만치 않찮습니까?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그렇습니다. 장로회가 내건 단약이 아주 귀한 것이기는……. 저, 저길 보십시오!”
거한이 표정을 좀 풀려다가 무언가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왜요? 마반에 변화라도 있습니까!”
노인도 가슴이 철렁해 서둘러 몸을 일으켜 거한과 같은 방향을 올려다보았다. 그들 곁의 흑철위들도 창백한 얼굴로 멀리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마반에서 강렬한 공간파동이 퍼지고 있었다.
쿠콰콰쾅!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지며 마반을 뚫고 거대 마물 박쥐와 마복(魔蝠)들이 나타났다. 시뻘건 털에 머리에는 시커먼 뿔이 솟은 박쥐들은 입을 벌려 괴이한 음파를 방출하고 있었다.
수많은 음파가 파도처럼 허공을 휩쓸어 연달아 폭음이 들려왔고, 음파는 하얀 흔적을 남기며 맹렬히 허공을 가격했다. 그러자 유리가 깨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새하얀 흔적들이 사방팔방으로 퍼져 하늘이 부서져 나갈 듯했다.
칠흑 같은 마기가 통제를 잃고 새어나와 주변을 검은 마기의 바다로 물들였고, 그 틈을 거대 마복들이 뚫고 나타나 날카롭게 울어댔다.
그 소리에 마반 깊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괴성이 들려왔고 이미 빠져나온 마복들은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족들이 영계를 침략했습니다. 당장 전송진을 이용해 돌아가야 합니다.”
금갑 거한이 마반이 깨지자 황급히 노인을 재촉했다. 들킬까봐 아주 조그맣게 억누른 목소리였다.
“바로 전송진을 발동해 돌아간다.”
그제야 노인은 번뜩 정신을 차리고 수결을 맺어 발밑의 소형 전송진에 법결을 던져 넣었다. 뒤쪽의 흑갑 병사들도 다급히 노인 곁으로 모여들어 술법을 펼쳤다.
웅!
금색 전함이 진동하며 수백 개의 주술문자들이 떠올라 하얀 빛의 진법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거한의 전함도 전송진을 발동하는 중이었다. 전함을 둘러싼 금빛이 눈부시게 터져 나와 당장이라도 전송이 이루어질 듯했다. 그제야 금갑 거한이 안심하고 있는데 돌연 수풀 위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이 좋은데? 영계에 진입하자마자 연허기 수사 두 명을 발견하고 말이야!”
괴상한 목소리에 거한과 노인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언제부터인지 전함 위에 박쥐 날개를 단 새까만 소년이 떠있었다.
추한 용모에 녹색 눈을 지닌 소년은 왜소한 체구에 비해 훨씬 큰 박쥐 날개를 지녔는데 허공의 다른 마복들에 비해 훨씬 강력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헉! 고계 마족!”
소년의 신분을 알아챈 거한과 노인은 기겁했다. 그러나 그들도 연허기 수사였기에 거한은 뒤통수를 세게 내리쳐 입에서 열댓 개의 은색 비검을 내뿜었고 노인은 손목의 오색 팔찌를 날려 두 전함을 보호했다.
말하지 않고도 공격과 방어를 분담하는 것이 한두 번 협공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들은 눈앞의 고계 마족을 격퇴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전송이 시작되기 전 약간이라도 시간을 끌고 상대의 공격을 막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박쥐 날개 소년은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은색 빛줄기들을 보고 입을 벌렸다. 금색 음파가 뻗어나가 은색 빛줄기들을 휩쓸었고, 놀랍게도 은색 비검들이 원형으로 돌아가 비틀비틀 떨어져 내렸다.
금색 거한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순식간에 수천 년 공들여 키워온 본명 법보 열댓 개와 연계가 끊겼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위쪽의 박쥐날개 소년이 날개를 흔들었다.
휘잉!
바람 소리가 크게 일고 소년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괴이하게 금색 전함 근처에서 나타났다. 소년은 주저 없이 두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퍽!
핏빛이 감도는 주먹에서 주먹 환영들이 튀어나가 오색 팔찌가 만들어낸 빛의 장막을 깼다.
소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날개를 펄럭여 거한의 등 뒤에서 나타나 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단단한 금색 갑옷이 종잇장처럼 뚫리고 곧 거한의 가슴도 뚫렸다.
“엇!”
그것을 본 전함 위 다른 흑갑 병사들이 혼비백산해 재빨리 흩어져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소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박쥐 날개를 휘둘러 거대한 검은빛의 칼날을 내뿜었다.
극히 빠른 속도로 날아간 칼날에 흑갑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피를 뿜었고, 원영조차 빠져나가지 못하고 단칼에 베여 사라졌다.
소년이 핏빛으로 변해 다른 금색 전함 위로 뛰어들었다.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왜소한 노인이 미처 반격도하지 못하고 파랗게 질려 있는데 바로 그 순간 전송진이 강렬한 하얀빛을 머금고 전함이 사라졌다.
허공을 덮친 핏빛에서 소년이 나타나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날개를 펄럭여 전송진법이 남긴 잔영을 흩어버렸다.
“하하, 복렬 존자(尊者)! 겨우 연허기 인족도 잡지 못할 줄은 몰랐습니다. 옆에서 참고 지켜보던 저만 좋은 구경을 했어요!”
굵은 목소리가 그를 비웃으며 인근 거목에서 들려왔다.
“몽만 존자가 여긴 어쩐 일입니까. 뇌우족(雷牛族)은 두 번째 무리에 속해 있을 텐데요?”
추한 소년이 화가 난 얼굴로 거목을 쏘아보았다. 평범해 보이던 거목이 일그러지더니 괴이하게도 보통 사람보다 네다섯 배는 큰 녹색 피부의 거한으로 변했다.
머리에 검은색 뿔이 달리고 얼굴에 노란 털이 숭숭 난 거한은 새까만 갑옷을 입고 등에는 한 쌍의 손도끼를 매고 있었다.
“우리 뇌우족은 얼마 전 성조 대인의 명을 받아 영계로 넘어 오는 첫 번째 무리에 합류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족인들이 경계를 넘어 오고 있는 중이고요.”
소머리 마인(魔人)이 말을 마치고 손을 뻗어 하늘을 가리켰다.
“그런 명이 내려왔다고요?”
박쥐 날개 소년이 놀라 서둘러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허공에 벌어진 틈으로 새까만 마기가 새어나왔고 핏빛 거대 박쥐 외에도 거대한 푸른 소들도 함께 넘어오고 있었다.
거대한 소들은 체형이 방대한 것 외에도 괴이한 은색 문양이 온몸을 덮고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성조대인의 명이라면 알겠습니다. 다만 본 존은 느려터진 소 떼와는 같이 못 다닙니다. 우리 혈복족(血蝠族)의 속도면 며칠 내로 성조대인을 위해 인근 인족 수사들을 쓸어버리고 마성(魔城)을 건립할 수 있을 테니까요.”
소년은 빈정이 상했는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건 저도 원하던 바입니다. 혈복족의 실력에 인족 저계 존재들이나 쓸어버릴 수 있지, 강적을 만나면 화살받이 밖에 더되겠습니까. 당연히 우리 뇌우족과는 비교할 수가 없지요.”
거한이 같잖다는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뭐라고요? 어디 한번 정말 그런지 확인해봅시다. 3일 후에 어느 일족이 더 많은 인족 수사들을 죽였는지 따져보자고요!”
“좋습니다, 그러죠. 지는 일족은 영계에서 획득한 수확의 3할을 이긴 일족에게 넘기는 것으로 합시다.”
분노한 소년을 보고 소머리 거한이 서늘하게 눈을 번뜩였다.
“격장맹세(擊掌盟誓)를 합시다.”
눈꼬리를 끌어올린 추한 소년이 등 뒤의 박쥐 날개를 펄럭인 순간 거한 옆에 핏빛 거대 손이 나타났다. 거한은 피식 실소하며 팔짱을 끼고 있던 커다란 손을 풀어 핏빛 거대 손과 손바닥을 마주쳤다.
펑! 펑! 펑!
크고 작은 손바닥이 세 번 부딪치고 떨어져 나갔다.
“오복(五蝠)들은 있느냐!”
“통령을 뵙습니다.”
소년이 사납게 소리치자마자 주변 허공이 떨리고 다섯 명의 초대형 핏빛 박쥐 다섯 마리가 나타났다. 날개를 쫙 펼치면 작은 언덕 만해지는 실로 커다란 박쥐들이었다.
“가서 인족 범인들을 잡아 오거라!”
“예, 대인!”
거대 박쥐들이 힘차게 대답하고 바람 속에 사라졌다.
그것을 본 소머리 거한이 금색 뿔로 만든 호각(號角)을 꺼내 힘껏 불었다. 광활한 하늘을 가득 채운 장엄한 호각 소리는 만황의 거친 기운을 품고 있었다.
호각 소리에 핏빛 박쥐들과 섞여 있던 푸른 거대 소들은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이에서 하얀 기운을 내뿜고 거한이 있는 방향으로 집결하려 했다.
그때 호각 소리가 달라져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를 냈고 거한은 은색 빛줄기로 변해 어딘가로 날아올랐다. 그 뒤를 만여 마리 뇌우족들이 푸른 물결처럼 쫓아갔다.
추한 소년도 입 꼬리를 비틀며 입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핏빛 박쥐들이 요동치며 열댓 개의 핏빛 구름으로 뭉쳐져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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