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화. 서금충 대 서금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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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에서 번지기 시작한 천지원기의 힘이 무형의 압력으로 변해 대청을 가득 채웠다.
자리에서 일어나있던 한립은 어마어마한 힘에 신형이 흔들렸고 의자에 앉은 청원자와 금염후도 안색이 달라졌다.
“만황세계를 돌아다니다 상고 시대 전쟁터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나중에 꽤 공을 들여 이보(異寶)로 제련했는데 본 위력의 10분의 1밖에는 내지 못하게 되었어요. 멀쩡했으면 혼돈만령방 10위 안에는 들 물건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향로를 회수한 노인이 나른하게 설명했다.
“심하게 훼손된 보물이 이 정도 위력을 발휘한다면 진정한 현천의 보물은 얼마나 더 대단할지 모르겠습니다. 허령 형께서는 운도 좋으십니다. 이런 보물을 지니고 있으면 도겁 비승할 때도 도움이 될 테지요.”
“하하, 그럼 얼마나 좋겠습니까! 허나 영계에서 이름 깨나 날리던 수사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도겁을 시도했지만 그 중 성공한 것은 손에 꼽혔지 않았습니까. 다음번 대천겁을 무사히 넘길 자신이 없어서 무리해서 비승을 준비하려는 것뿐입니다. 진정한 현천의 보물이 있었으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텐데요! 성충 대인이 지닌 보물은 이미 그 분과 한 몸이나 마찬가지여서 빌릴 수도 없습니다.”
청원자의 찬사에 침묵하던 허령 노인이 안타깝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 들으니 몇 백 년 전에 영계에 새로운 현천의 보물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눈을 빛낸 청원자가 한립이 화들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입니까? 무슨 착오가 있으신 것 아닙니까, 강 형.”
금염후가 금시초문이라는 듯 반문했다.
“본 족 화 장로에게서 들은 소식이겠지요. 사실이긴 합니다. 나도 출관해서 다른 장로들에게서 혼돈만령방에 갑자기 새로운 현천의 보물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풍원대륙에 보물이 나타나서 각치족 등이 다른 대륙에서 건너와 혈제를 치렀는데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완전히 소식이 끊긴 것을 보면 보물이 스스로 지능을 가져 꽁꽁 숨었거나 아니면 누군가 손에 넣고 철저히 숨기고 있는 것이겠지요. 점술에 능한 장로들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점도 쳐보았지만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찾을 수 없을 겁니다.”
허령 노인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런 일이 다 있었습니까! 하지만 현천의 보물이 어찌 점술의 힘까지 피해간단 말입니까. 설마 진령급 존재의 수중에 떨어진 걸까요?”
금염후가 놀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가능성은 상당히 낮습니다. 영계에서도 진령이 탄생할 수 있지만 성체가 되면 선계나 다른 공간으로 떠나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나는 이번에 나타난 현천의 보물이 아예 영계에서 탄생한 물건이 아니라고 봅니다. 본 계(界)의 현천의 보물이 아니면 점술의 힘을 한두 번 거부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능을 지니게 된 보물이 경계심을 가지고 이계의 천지의 힘에 대항한 것이지요.”
허령 노인이 거의 진실에 가까운 추측을 늘어놓았다.
“허령 형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족들도 잠자코 있는 거군요! 혈제도 통하지 않고 점술로도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면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수사께서는 참으로 예리하십니다.”
금염후가 감탄했고 청원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일족의 장로들이 머리를 맞대고 내린 추론이지 노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한 수사 이리 오래 시간을 주었으니 마땅한 보물을 골라 두었겠지?”
허령 노인이 문뜩 한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세 수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립이 그 소리에 어렵사리 입을 뗐다.
“선배님의 보물들은 전부 대단한 것들이지만 명하신유와 바꾸고 싶은 것은 없습니다.”
“눈에 차는 것이 없다고? 설마 만령방에 오른 통천령보라도 갖고 있다는 소리냐! 좋다, 정말 그런 보물이 있다면 거래를 강요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노부에게 불경한 죄로 가만 두지 않을 것이야.”
예상과 달리 노인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 않고 음산하게 경고했다.
이에 한립은 곧바로 은빛 찬란한 자를 허공에 띄웠다. 자를 잡아 살짝 휘두르자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고 무수히 많은 은색 자 허상들이 허공을 빼곡하게 채웠다.
“이런, 정말 통천만령방에 오른 통천령보입니다. 만령방 끝에 겨우 이름을 올릴 만한 보물이기는 해도 확실합니다.”
금염후가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노인이 난처해하는 것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청원자도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허령 노인은 연달아 거래를 실패하자 한립을 한참 노려보았다.
“수행도 그리 높지 않은 녀석이 가진 것도 많구나. 단약도 법보도 필요 없다니 이번에야 말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마.”
‘거절할 수 없는 제안?’
그 말에 한립은 내심 긴장이 되었다. 청원자와 금염후가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그들은 무언가를 짐작하는 눈치였다.
“우리가 떠드는 소리를 한참 듣고 있었으니 내가 부유족의 태상장로라는 것은 알 것이다. 세력으로 각치족, 해왕족 등 초대형 종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어도 어떤 방면에서는 영계의 어느 종족도 우릴 따를 수는 없지.”
노인은 한립에게 무엇으로 교환할 것인지 내보이지 않고 수수께끼 같은 소릴 했다. 이어서 그는 허공에 띄워둔 수많은 보물들을 남김없이 회수했다.
“구충술(驅蟲術)! 영충을 부리는 술법을 말씀하시는 군요.”
“허허, 그래! 본 족은 영충을 기르고 조종하는데 있어서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했다. 내가 거래에 내놓을 것은 정성을 다해 기른 두 가지 영충인데 이것들이 있으면 동급 수사는 우습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겨 엄지손가락만한 보라색과 녹색과 영충을 불러냈다. 표면에 뇌전이 번뜩이는 영충과 교룡을 닮은 영충이었다.
“자전충(紫電蟲)과 지교충(地蛟蟲)! 허령 형 어찌 이것들을 다 내놓는단 말입니까.”
금염후가 영충들의 정체를 확인하고 의아해했고 청원자의 안색도 달라졌다.
“흥, 예전이었으면 나도 명하신유를 위해 이만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꼭 필요한 것을 어쩌겠습니까? 녀석아, 이 영충들은 수만 년을 공들여 키워 각각이 합체 초기 수사와 맞먹는 실력을 지녔다. 명하신유만 내주면 영충 체내의 표식을 지우고 네가 이것들을 길들일 수 있게 도와주겠다. 크큭, 이렇게까지 해줄 수 있는 것은 부유족 내에서도 노부뿐이다.”
“합체 초기와 맞먹는 영충…….”
두 영충을 앞에 두고 한립도 욕심이 일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는 이미 영수환에 수만 마리의 서금충이 있었다. 아직 전부 부릴 수 없다 뿐이지 그 중 수백 수천 마리만 방출해도 두 영충을 모조리 갉아먹어버릴 것이다.
“선배님의 영충이 대단히 귀한 것은 맞습니다만, 저는 따로 부릴 영충이 있습니다.”
한립은 노인의 칼날 같은 눈빛을 받으며 말끝을 흐렸다.
“뭐라고? 네 녀석의 영충 따위가 노부가 내놓은 영충과 비교나 된단 말이더냐. 노부의 인내심도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괜한 거짓말로 명을 단축하지 말거라!”
허령 노인의 눈빛이 험악해져 당장이라도 무슨 짓을 벌일 것 같았다. 한립이 가슴이 철렁해 무어라 변명하려는데 옆에서 청원자가 거들었다.
“허령 형, 일단 화를 가라앉히시지요. 저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한 수사는 대단한 내력을 지닌 영충을 지니고 있는데 유명세로 보나 그 가치로 보나 두 영충보다 위입니다.”
“강 수사, 저 녀석 편을 들어주려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는 겁니까? 합체 중기 밖에 안 된 녀석이 노부의 영충보다 더 귀한 것을 어찌 부린단 말입니까. 게다가 노부가 기르는 영충들은 직접 본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희귀한 것들입니다. 제대로 알아보고나 하는 말인지 모르겠군요.”
노인이 청원자를 보고 냉랭히 반박했다.
“허허, 허령 형이 진심으로 아끼는 강력한 영충이라면 이런 거래에 내놓지도 않았겠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까? 노부는 72가지 영충을 성체로 키워냈고 그 중에서 본명 영충으로 삼은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명하신유와 바꿀 수 있습니다. 어디 이번 기회에 견문을 넓힐 기회를 드리지요!”
노인은 검은 기운에 휩싸여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주술을 외웠다.
다양한 벌레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백 종류는 되어 보이는 영충들이 날아올랐다. 콩알만 한 것부터 사람 머리통만한 것까지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흉악한 모습에 난폭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노란 반점이 있는 이 놈은 ‘금강충(金剛蟲)’입니다. 영보와 비교해도 될 만큼 몸이 단단한 녀석이지요. 오색빛에 둘러싸인 저 ‘살잠(煞蠶)’은 생명력이 왕성해 거의 불사체에 가깝습니다. 두 동강이 나도 잠시 후면 회복되니까요. 저기 핏빛 사마귀처럼 생긴 영충은 그 유명한 ‘귀랑(鬼螂)’입니다. 보기에는 그리 기운이 세 보이지 않아도 떼를 지어 공격하면 교룡도 거뜬히 뜯어먹을 정도로 성질이 포악하고…….”
허령 노인이 영충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소개를 했다. 전부 영계에서 보기 힘든 귀한 품종들이었고 몇 가지는 한립이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도 있었다.
더욱 대단한 것은 영충들 모두 성체라는 것이었다.
“노부가 파격적으로 이 중에서 마음껏 하나를 골라 명하신유와 바꿀 기회를 주겠다. 이제는 거래를 할 수 있겠지? 이번에도 거절하고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나도 참지 않을 것이다.”
한립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영충들을 눈여겨보고 있을 때, 허령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한립은 저절로 시선이 청원자에게로 갔다.
“한 수사, 그 영충을 꺼내 허령 형에게 보이는 것이 좋겠네. 직접 보면 이해를 하실 게야.”
침음하던 청원자가 진지하게 조언했다.
“예, 선배님!”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한립이 소매 속에서 열댓 개의 금빛 꽃잎을 흩날렸다. 꽃잎들은 영기의 빛을 반짝이며 주먹 크기로 커져 황금 딱정벌레의 모습을 갖추었다.
“서금충! 그것도 성체!”
금염후가 먼저 놀라 소리치고 열댓 마리 금빛 딱정벌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허령 노인도 부르르 몸을 떨며 표정이 괴이해졌다.
청원자가 그것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그가 예상한 반응과 어딘가 달라서였다.
“허령 형이라면 서금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실 겁니다. 한 수사가 거래를 통해 따로 영충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인정하시겠지요. 물론 허령 형께서 서금충 보다 훨씬 강력한 영충을 내놓을 수 있다면 저도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서금충 보다 훨씬 강력한 영충? 성체 서금충이라, 하하하!”
뜻밖에도 허령 노인은 서금충을 보고 미친 듯이 웃어댔다. 기쁨으로 가득 차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웃음 소리였다.
한립이 눈을 가늘게 떴다. 청원자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이마의 주름이 깊어졌고 금염후는 복잡한 표정으로 한립을 응시하고 있었다.
“허령 형, 왜 그러십…….”
“강 수사,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노부가 이제껏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던 영충을 공개하지요.”
허령 노인은 소매를 펄럭여 백여 마리의 영충들을 검은 기운 속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입을 벌려 은빛 찬란한 호리병박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웽!
익숙한 소리와 함께 곤충 떼가 날아올라 금빛으로 대청을 뒤덮었다.
“말도 안 돼!”
“이건?”
금영후와 청원자가 금빛 곤충 떼의 실체를 알아보고 탄성을 터트렸다. 한립도 대청 허공의 금빛들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금빛이 휩싸인 금색 딱정벌레들은 한립의 서금충과 똑같이 흉악한 모습으로 웽웽거리며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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