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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100화 (857/2,000)

1100화. 방문

*

“그런 사정이 있으셨다니 선배님을 탓할 수만은 없지요. 언제쯤이면 정확한 소식을 알 수 있을까요?”

한립이 청원자의 건실한 태도에 공손히 물었다.

“늙은이들을 만나러 가는데 제2원영을 보낼 수도 없고 직접 가야만 할 걸세. 짧으면 한 달, 길면 반년이면 출관할 수 있는데 기다릴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그 정도야 기다린다고 할 수도 없지요.”

“허허, 청원검결 수련은 어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군. 청죽봉운검 72자루는 새로 제련을 마쳤겠지?”

청원자가 미소를 머금고 화제를 돌렸다.

“선배님의 조언대로 제련을 마쳤습니다. 현재 청반검진을 수련하고 있는데 워낙 현묘한 공법이라 깨달음이 얕아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동안 노부가 지도를 좀 해주겠네. 검결에 대해 새롭게 얻은 깨달음도 있으니 도움이 될 것이야. 또한 합체 후기 고비를 넘길 날을 대비해 따로 조언도 해주겠네.”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선배님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면 큰 행운일 것입니다.”

한립은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청원자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가 말한 것보다 월등히 많은 재료를 모아왔기 때문이었다.

“다른 할 말이 없다면 그만 돌아가 쉬도록 하게. 오늘은 재료를 정리해야 하니 내일부터 밀실로 노부를 찾아오게. 요아와 연려는 나를 대신해 한 수사를 잘 모시거라.”

“예, 의부님!”

“존명!”

원요와 연려가 허리 숙여 명을 받들었다. 지금은 ‘강’씨 성을 쓰는 청원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밀실로 들어가고 대청 안에는 한립과 두 여인만 남았다.

“몇 백 년 사이에 합체 중기에 이르셨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한 형의 놀라운 수련 속도에 저 같은 사람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겠습니다.”

원요가 살짝 얼굴을 붉히고 망설이고 있을 때 연려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한립과 오랜 인연이 있고 대승기 수사인 청원자 곁에 머무른 탓인지 그를 편하게 대했다.

“연 선자께서도 강 선배님 곁에 머물며 화신기에서 연허기에 이른 것도 다른 수사들이 무척 부러워할 만한 일입니다. 게다가 두 분의 음기가 많이 옅어진 것이 원래의 몸을 되찾을 방법을 찾으신 것 같군요. 축하드립니다.”

“저와 사매의 변화를 바로 알아보시고 눈썰미가 대단하십니다! 강 선배님께서 반귀의 몸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 주셔서 차차 나아지는 중입니다. 완전히 사람의 몸을 회복하려면 못해도 2, 3천년은 걸리겠지만요.”

그가 웃음을 머금고 한 말에 연려의 얼굴이 밝아졌다.

“인계에서부터 인연이 있는 두 분이 강 선배님 곁에서 안온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제게는 영계에 몇 없는 벗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한 형, 괜찮으시면 이곳을 떠나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와 사저는 영계에 오자마자 줄곧 갇혀 지내는 신세라 바깥세상 일이 너무 궁금합니다.”

원요가 드디어 입을 뗐다.

“하하, 솔직히 그동안 꽤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다른 대륙에 다녀온 적도 있으니까요. 두 분이 듣고 싶으시다면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한립은 거절하지 않고 가볍게 미소 지었다.

“이곳을 떠나 원래 있던 섬으로 돌아간 저는…….”

그는 여인들을 앞에 두고 명하의 땅을 떠나 겪은 일들부터 이야기했다. 몇 가지 일을 빼놓고 말했음에도 이야기는 무척 흥미진진했다.

원요와 연려는 반짝이는 눈으로 수시로 감탄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이 지나 한립이 이야기를 마치고 원요와 연려의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갔다. 그에 비해서 두 여인의 삶은 단조롭기 짝이 없었다. 수련하다 가끔 청원자가 필요로 하는 재료를 구하러 명하의 땅을 돌아다닌 것 외에는 달리 할 일도 없었다고 한다.

한립은 한참동안 담소를 나누다 조용한 거처를 배정 받아 휴식을 취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세 달이 훌쩍 지나갔다.

청원자의 거처에서 금빛과 푸른 빛줄기가 빠져나와 번득이며 어딘가로 날아갔다. 각각 회색 장포 노인과 평범한 용모의 청년이었다.

드디어 출관한 청원자가 한립을 데리고 나선 것이다. 세달 동안 청원자의 원영에게 지도를 받은 한립은 적잖은 성취를 이루었다.

“이번에 선배님께서 찾아뵈려는 분은 어떤 분이신지요?”

“수사를 데리고 찾아갈 정도면 당연히 친분도 있고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인물이지 않겠는가. 아마 다른 이들보다는 명하신유를 얻기가 수월할 것일세. 다만 상대의 내력에 대해서는 노부도 잘 모른다네.

비령족이나 부유족은 절대 아니고 변이 요수가 수련해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알고 있네. 다만 성격이 조금 이상한 편이니 한 수사도 신중히 행동하는 것이 좋을 걸세.”

청원자가 진지하게 당부했다.

“선배님의 말씀대로 행동과 말을 조심하겠습니다.”

“허허, 예전에 내게 신세진 일이 있으니 막 대하지는 못할 게야. 열흘 정도 거리니까 서둘러 가세.”

긴장한 기색의 한립을 보고 청원자가 웃음을 흘렸다. 청원자는 금실처럼 변해 허공을 갈랐고 한립도 법력을 끌어올려 그 뒤를 바짝 쫓았다.

* * *

열흘 후, 회색 안개가 자욱한 푸른 호수 위에 청원자와 한립이 도착했다. 광활한 호수는 안개로 뒤덮인 것 외에도 물색이 비취색이라 독특한 정취가 있었다.

한립은 의식으로 호수 속을 살피고는 영기가 굉장히 농밀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수히 많은 대형 어종이 호수 안을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물고기들은 놀라운 기운을 풍겼고 법력을 지닌 요수들이었다.

청원자는 물고기 요수는 신경 쓰지 않고 호수 표면을 빠르게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더 날아가자 호수 위로 우뚝 솟은 섬이 눈에 들어왔다.

섬 자체가 금빛으로 반짝이는 데다 휘황찬란한 궁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궁전 밖에는 과실나무들과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해 마치 선경(仙境)을 보는 것 같았다.

또한 섬을 뒤덮은 하얀 안개에서는 강력한 금제 파동이 느껴졌다.

“바로 이곳이네. 한 수사, 노부를 잘 따라오게!”

섬을 발견한 청원자가 둔광을 멈추고 미소를 보였다.

“참 독특한 곳입니다!”

한립이 금빛의 섬을 보고 감탄했다.

“이곳의 주인이 괴상한 취미를 지녀서 그렇다네. 직접 보면 알게 될 것이야.”

청원자가 소매 속에서 금색 기운을 뿌렸다. 열댓 개의 금색 거검이 안개를 뚫고 섬을 두른 하얀 보호막을 갈랐다.

콰콰쾅!

하얀 보호막이 흔들거리자 섬에서 분노한 목소리가 여럿 들려왔다.

“누구냐! 감히 금염도(金焰島)를 공격하다니!”

“이곳이 금염 대인의 거처임을 모르느냐!”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보호막 안에서 둔광들이 날아올라 금색 갑옷을 입은 병사 넷이 씩씩거리며 나타났다.

“저 분은!”

“아, 청 대인님!”

금갑 병사들은 청원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 다급히 예를 올렸다. 한립이 대충 살피니 병사들은 연허기 수행을 지녔지만 흉포한 기운이 느껴져 평범한 수사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금염후, 강 모가 찾아왔으니 얼굴이나 봅시다!”

청원자가 병사들을 상대하지 않고 금색 궁전을 향해 까랑까랑하게 외쳤다.

“왔으면 그냥 들어올 것이지 내가 직접 마중까지 나가야 합니까?”

잠시 후 금색 궁전에서 담담한 사내의 목소리가 또렷이 울렸다.

“허허,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너희가 길을 안내 하거라.”

“예, 선배님! 저를 따라 오시면 됩니다.”

경직되어 있던 금갑 병사들이 궁전 안에서 들려온 전음을 듣고 명을 받들었다. 청원자와 한립은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결계를 지나 섬의 궁전 앞에 내려섰다.

청원자는 거침없이 날아가 기이할 정도로 넓은 대청에 자리를 잡았고 한립은 공손히 그 옆에 섰다. 궁전 주인은 용 모양의 금관을 쓴 금색 장포를 걸친 중년인으로 이미 상석에 앉아 있었다.

“강 수사, 이 합체 중기 수사는 제자입니까? 어린 나이에 이만한 경지에 올랐으면 확실히 의발(衣鉢)을 전수하기에 괜찮은 재목이긴 합니다.”

금관인은 백옥 같은 얼굴에 검은 수염을 기르고 문생 복장을 하고 있었다. ‘금염후’라 불린 그 역시 청원자와 같은 대승기 수사였다.

한립은 금염후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이 전부 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고 청원자가 아까 했던 이야기를 이해했다.

“아닙니다, 금 수사. 한 수사는 제자가 아니라 인연이 있는 후배입니다. 몇 백 년 전 누군가 수하들를 이끌고 명하의 땅을 침입해 부유족에서 파견한 병사들이 추살한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때 알게 되었지요. 제가 제자로 들인 아이는 이제 의녀(義女)로 맞은 지 오랩니다. 자질이 뛰어난 편이라 연허기에 이르렀고요.”

청원자가 담백하게 소개를 했다.

“몇 백 년 전이면 명뢰수를 유인하고 명하신유를 훔쳐가려던 녀석들 말입니까? 내 기억하기로는 부유족에서 전부 잡아 데려간 것으로 아는데 한 수사는 그 일에 관여하고도 아무 일도 없는 것을 보니 수사가 손을 쓰셨나 봅니다.”

“한 수사가 무사히 명하의 땅을 벗어난 것은 확실히 제 뜻이었습니다. 동족 후배이기도 하고 외부 세계에서 구해야할 물건이 있어 그런 것이니 오해는 마십시오.”

이상하다는 금관인의 눈빛에 청원자가 해명을 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습니다! 천 년간 발걸음이 뜸하던 강 수사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한립을 훑은 금관인이 무표정하게 물었다.

“허허, 맞습니다! 노부가 수사와 상의할 일이 있기는 합니다.”

“흥, 그럴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 비해 가깝게 지내기는 하지만 출관하자마자 안부 인사를 하러 올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일인지 들어나 보지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노부가 찾아온 것은 부탁을 하러온 것이 아니라 거래를 하나 제안하기 위해섭니다. 수사께서 싫으면 거절해도 상관없고요.”

딱딱한 금염후의 태도에 청원자도 안색을 굳히고 불만을 드러냈다.

“하하, 농담입니다! 강 수사와의 오랜 교분을 보아 너무 난처한 일만 아니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지난번에 금 형이 제가 지닌 ‘구안주(九眼珠)’에 관심을 보이시기에 챙겨 왔습니다. 이걸로 다른 물건을 교환하고자 하는데 어떠십니까?”

청원자가 소매 속에서 녹색 옥함을 꺼내 들었다.

“구안주!”

여태까지 느긋하던 금염후는 옥함을 뚫어져라 응시하다 간신히 시선을 돌렸다.

“이런 보물까지 들고 오시고 강 수사께서 원하는 물건이 무엇입니까? 아끼는 몇 가지 보물을 제외하면 무엇이든 내드리지요.”

옥함 속 물건이 꽤 중요한지 금염후가 오래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일이 잘 풀려가자 한립도 기분이 좋아졌다.

“명하신유 세 병과 식양토(息壤土) 약간이면 됩니다.”

“그건 안 될 말입니다! 명하신유야 그렇다 치고 식양토는 흙 속성 보물을 제련하기 위한 극상의 재료인데다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저도 천겁을 넘기기 위해 방어구를 만들려 아껴두고 있는 중이고요.”

금관인이 조건을 듣고 단호히 거절했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구안주에 여기 이것들을 더 하면 어떻습니까?”

청원자는 소매 속에서 각기둥 형태의 괴상한 물건을 꺼내 탁자 위에 두었다. 창촉처럼 생긴 물건은 주먹 크기에 금빛으로 반짝였다. 주술문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금색 물체를 보고 금염후가 당장 손을 뻗어 끌어왔다.

“이건 설마…….”

한립도 탁자에 남겨진 두 물체에서 익숙한 기운을 느끼고 의아해했다. 금색 물건을 들고 찬찬히 살피던 금염후의 표정이 점점 바뀌어갔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경전에서만 보았던 ‘금강멸마신뢰(金剛滅魔神雷)’가 아닌가 싶습니다!”

금염후가 고개를 들어 청원자를 보았다.

“훌륭한 안목입니다! 노부가 금뢰죽 이파리를 얻어 다른 뇌전 속성 재료와 함께 뇌전의 힘으로 제련한 것입니다. 수백 년을 제련해 겨우 예닐곱 개를 건졌지요. 그중 절반을 드린 것이니 저도 성의는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금 형의 대천겁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압니다. 금강멸마신뢰는 역외천마(域外天魔)들을 상대하기에 최상의 무기지요! 대천겁 때 나타나는 역외천마는 웬만한 보물로는 막을 수도 없는데 이것들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안심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충분한 수량을 제련해 내지 못했으면 내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청원자가 금강멸마신뢰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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