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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96화 (853/2,000)
  • 1096화. 오색공작 전투

    *

    하얀 안개로 가득한 공간.

    한립은 허공에 떠서 전송진에 딸려온 사내를 보며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바로 지연에서 광석을 훔쳐간 사람이었군요.”

    전송되는 순간 누군가 뛰어든 것을 알았지만 전송에 악영향을 끼칠까 억지로 참고 명하의 땅으로 함께 이동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노부를 아는 눈치입니다!”

    마른 중년 사내가 남색 장포를 걸치고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어 수사의 뇌수는 요즘도 잘 지내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빨리 성계에 이른 것은 뇌수와 연관이 있겠지요.”

    “넌 누구기에 뇌수를 알고 있느냐!”

    한립의 말에 히죽거리던 마른 사내의 표정이 달라졌다. 동시에 합체 초기의 강력한 기운이 한립을 덮쳐왔다. 마른 사내는 한립이 천붕족 성성에서 만난 적이 있는 어 씨 성의 장궤였다.

    뇌수를 굴복시켜 달라는 명목으로 청라과 등을 내세워 수사들을 끌어들인 다음 한립과 다른 연허기 수사들을 죽이려 했던 흉한(兇漢)이었다.

    한립은 동급을 월등히 초월하는 신통으로 상대를 위협해 청라과 씨앗을 얻어냈었다. 평범한 천붕인이 아닌 것은 알았지만 몇 백 년 만에 성계 초기가 되어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한립은 현재 비술을 써서 얼굴도 달랐고 기운도 연허 중기로 억제해 놓아 그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흉흉하게 밀려드는 영기의 압력을 대수롭지 않게 쳐다보다 성계의 강대한 기운을 뿜어냈다.

    펑!

    두 영기의 압력이 허공에서 충돌해 폭음과 함께 사라졌다.

    “성계 초기!”

    그것을 본 어 장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멀리서 한립 일행을 따라가다 지연을 벗어나려는 한립을 따라 빛의 진법에 뛰어든 것은 상대가 연허기 수사였기 때문이다.

    한립의 진정한 수행을 알았다면 그런 모험을 안했을 지도 모른다. 한립은 피식 웃고는 엄청난 영기의 압력을 드러냈다.

    “합체 중기 수사! 어느 종족 수사십니까? 비령족 성계 중기 수사 중에 제가 모르는 분은 없을 텐데요.”

    어 장궤가 어두운 얼굴로 신중하게 물었다. 의외이기는 했지만 그리 겁을 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수사께서 저를 몰라보니 인사는 생략합시다. 듣기로 지연 광석을 전부 훔쳤다고 하던데 그것들을 내놓으면 그냥 보내드리겠습니다. 어 형께서 제 전송진의 힘을 빌려 지연을 탈출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실 겁니다.”

    한립은 정체를 노출할 생각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것들을 원하는 것이었군요. 수사 덕에 추격을 따돌렸는데 그 정도 대가는 치러야겠지요. 자, 받으십시오!”

    어 장궤는 불편한 기색 없이 활짝 웃으며 남색 고리를 던졌다. 한립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움찔했지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의 소매 속에서 금빛이 번뜩이며 날아가 남색 고리를 갈랐다. 그러자 괴이하게도 저물탁으로 보이던 고리에서 광석 대신 뇌전 그물이 쏟아져 그를 덮치려 들었다.

    한립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날개를 펄럭였고 은색 뇌전 그물이 솟구쳤다. 남색 그물과 충돌한 은색 그물이 빙글빙글 돌아 놀랍게도 뇌전 진법을 형성했다.

    남색 뇌전 그물은 소리 없이 뇌전 진법 속으로 빨려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어 장궤가 놀라 눈을 번득였다.

    뇌전 진법은 한립의 손짓에 천둥소리를 남기고 사라졌다.

    “여기까지는 용서해 주겠습니다. 다시 기회를 줄 테니 광석들을 내놓고 가시지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어찌 나올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립이 살기를 드러내고 서늘하게 웃었다.

    과거 수사들의 목숨을 빼앗았던 전력으로 보아 그리 좋은 의도로 전송진에 뛰어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도 사정을 봐줄 이유가 없었다.

    만일 눈치 있게 물건을 놓고 달아나면 명하의 땅에서 알아서 살든 죽든 관여하지 않을 테지만 광석을 고집한다면 죽일 생각이었다.

    “정말 노부를 어느 정도 아는 분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저도 어쩔 수 없이…….”

    마치 그의 제안을 따를 것처럼 어 점주의 말투가 누그러졌을 때, 한립의 등 뒤로 열댓 개의 투명한 바늘이 나타나 심장을 노렸다.

    콰릉!

    동시에 한립 머리 위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금색, 은색, 남색의 삼색 뇌전들이 번득이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반인반조(半人半鳥)의 괴수가 나타나 입을 벌려 삼색 뇌전을 뿜었다.

    한립은 신형이 모호해지며 열댓 개의 은색 바늘을 피했고, 그 머리 위로 금빛 삼두육비의 허상이 떠올라 여섯 개의 손에서 각각 금색 빛기둥을 분출했다.

    콰르릉!

    막강해 보이던 삼색 뇌전이 빛기둥 여섯 개를 연달아 맞고 소멸되었다. 뇌전 속에서 괴수가 공격을 재개하려 할 때 한립이 날개를 펄럭여 사라졌다.

    다음 순간 천둥소리와 함께 그가 다른 곳에서 나타나 얼굴을 굳혔다.

    “싸우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제가 저승길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부로 서로간의 은원에 끝을 맺읍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성법상이 찬란한 금빛 속에서 실체화되었다. 한립의 머리 위로 새까만 원영이 날아올라 법상금신 안으로 쇄도했다.

    그러자 금신은 여섯 개의 눈을 번쩍 뜨고는 금색 칼날을 불러내 여섯 개의 팔을 동시에 휘둘렀다.

    휘휘휘휙!

    금색 검기들이 파공음을 내며 날아갔고, 이어서 금신이 금빛으로 변해 허공의 괴수를 향해 날아올랐다.

    이에 괴수가 으르렁거리며 무수히 많은 은색 뇌전 구슬을 방출하고 날갯짓을 했다. 남색 깃털들이 은색 뇌전구슬과 얽혀 날아갔지만 대부분은 금색 검기에 처참히 베이고 말았다.

    뒤이어 괴수 근처에 나타난 금신은 여섯 개의 칼날을 휘둘러 거대한 금색 빛덩이를 쏘아 보냈다. 괴수는 뇌전이 효과가 없자 두 주먹을 각각 망치와 송곳처럼 뾰족하게 변화시켜 휘둘렀다.

    뇌전을 타고 흐르는 두 팔로 두려움 없이 금색 빛덩이에 맞섰다. 찰나의 순간 검기와 뇌전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어 장궤는 뇌수가 한립을 어쩌지 못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뇌수의 위력을 잘 아는 터라 더욱 놀라웠다. 요수가 내뿜는 내전 한 줄기 한 줄기는 평범한 연허기 수사를 일격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지연 3층에서 운 좋게 그를 발견한 집법대 대원들도 뇌수의 일격에 살해당했던 것이다.

    파아앗.

    그가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오색 광채를 발산해 거대 공작새로 변했다!

    “오광족 수사?”

    “흐흐, 그런지 아닌지는 이제부터 알아서 판단하시지요.”

    거대 공작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화려한 오색빛의 바다로 밀려들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듯 굉장한 기세였다. 동시에 허공에 떠있던 투명한 바늘이 바르르 몸을 떨고 허공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에 한립은 안색을 굳히며 두 눈에 남색빛을 번득이고 몸에서 보라색 빛을 반짝였다. 놀랍게도 녹색 인영이 그의 몸에서 분리되어 뒤쪽을 막았다.

    푸푸푹!

    바늘이 변한 열댓 개의 은색 실들이 녹색 인영을 파고드는데 마른 나무토막을 찌른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났다. 녹색 인영은 보라색 문양으로 뒤덮인 청록색 피부를 지닌 ‘한립’이었다.

    그는 한립이 지선의 육체로 제련한 ‘영체(靈體)’였다.

    틈틈이 신비한 영액을 부어 합체 초기의 수행에 이른 영체는 중기 경지를 앞두고 있었다. 영체는 지선의 육체를 근본으로 했기에 합체기에 이르렀고 불가사의한 신통들을 발휘했으며 한립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되었다.

    한립이 의식 한 줄기로 영체를 조종해 방출한 것은 실전 경험을 쌓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영체의 가슴에 열댓 개의 은색 바늘이 박혀 피부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은색 바늘에 극독이 묻어 있었고 아직도 부들부들 떨며 더욱 깊이 파고들려 하고 있었다.

    녹색 피부의 한립은 코웃음을 치며 입에서 비취색 기운을 뿜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비취색 기운이 닿은 자리에 검은 기운이 사라지고 은색 바늘이 뽑혀 나와 녹색 피부 한립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 장궤가 그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잠시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으나 이를 악물고 두 손으로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이에 안 그래도 기세등등하던 오색 기운에 주술문자들이 떠올라 현묘한 금제를 형성해 한립을 덮치려 했다.

    그 모습에 한립은 조금 감탄했다. 오색공작 진혈을 지닌 그도 경칩결로 오광족의 오색신광과 비슷한 신통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위력에서는 상대의 오색신광이 훨씬 앞섰다.

    그가 더 높은 한립을 상대로 대담하게 싸움을 시작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오색신광의 위력만으로도 평범한 합체 중기 수사는 위축될 것이다.

    한립은 지척에 이른 오색빛의 바다를 바라보고 냉소했다. 영체는 허상처럼 둘로 갈라져 사라졌고, 한립은 돌연 공중제비를 돌아 오색 광채 속에서 커다란 오색공작으로 변했다.

    콰르릉.

    오색빛의 바다가 한립이 변한 오색공작을 뒤덮었다. 그러나 오색공작이 날개를 펼치자 오색빛을 함유한 금제의 힘이 전혀 공격하지 못했다. 상대보다 더 위력적인 오색신광을 내뿜지는 못해도 그 안에서 무사히 버텨낼 수는 있었다.

    “오색공작 변신술! 오광족이란 말인가? 아니지, 오광족 성계 수사 중에 내가 모르는 자가 있을 리가……. 설마! 만일 그 늙은이가 보낸 자라면 백년 법력을 소모해서라도 죽이고 말겠다!”

    어 장궤가 혼자 중얼거리더니 표정이 험악해져 증오의 눈길을 보내왔다. 그리고는 멀리 오색빛의 바다를 가리키자 오색빛이 한곳에서 동그랗게 뭉쳐져 엄청난 크기의 오색공작 허상으로 바뀌었다.

    한립이 변한 오색공작 보다 훨씬 거대한 크기였다. 거대 오색공작은 바로 한립을 공격하지 않고 두 날개를 펄럭여 사라졌다.

    잠시 후, 어 장궤 밑에서 나타난 오색공작은 열댓 줄기의 법결을 맞고 물처럼 마른 사내를 흡수했다. 이에 허상에 불과하던 오색공작이 길게 울부짖고 천천히 실체화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합체 후기의 무시무시한 영기의 압력이 느껴졌고, 주변의 천지원기가 꿈틀꿈틀 빛의 실들로 변해 공작의 방대한 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합체 후기 최고봉까지 기운이 차오른 공작의 날갯짓에 주변 공기가 왜곡되었다.

    ‘이게 무슨!’

    처음 겪는 일에 한립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어 장궤는 공작법상과 합체해 별안간 수행이 두 단계나 치솟았다. 상당히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아주 좋습니다! 그럼 저도 제대로 한 번 싸워보겠습니다.”

    한립이 냉랭히 소리치고는 느닷없이 금빛에 휩싸여 방대한 몸을 지닌 금색 거대 원숭이로 변했다. 한립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경칩결 중 가장 힘이 센 산악거원을 선택했다.

    산악거원의 몸집은 오색공작과 엇비슷했다. 거대 원숭이가 주저 없이 오색공작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퍼퍽!

    엄청난 압력이 날아들었다. 어 장궤가 소스라치게 놀라 오색신광을 뭉쳐 오색 보호막을 펼쳤다. 오색신광은 평범한 완력은 막고도 남았으나 산악거원의 괴력은 어 장궤의 상상을 초월했다.

    쿵! 쿵!

    두 번의 굉음이 울리고 오색 보호막이 움푹 패여 갈라졌다. 어 장궤가 변한 거대 공작은 제자리에서 공격이 날아들기를 기다리지 않고 날개를 펄럭여 사라졌다.

    이에 남색빛을 번득인 거대 원숭이 역시 두 발로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멀리서 공간 파동이 일고 오색공작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그 위로 거대 원숭이가 나타나 두 주먹으로 오색공작을 내리쳤다. 주먹 허상이 허공을 메우고 거세게 떨어져 내렸다.

    그 여파에 허공이 찢겨져 나갈 것처럼 부들부들 떨려왔다. 거대한 육체를 지닌 오색공작은 재빨리 오색신광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오색 방패를 만들어내 겹겹이 몸을 보호했다.

    그러나 금색 주먹 허상들은 수많은 방패들의 등장에 그중 절반을 부수고 허물어졌다. 오색공작이 길게 울부짖자 남은 방패들이 오색 비검으로 변해 바람처럼 날아갔다.

    휘휘휘휘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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