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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85화 (842/2,000)

1085화. 대결 (2)

*

한립은 태연히 푸른 산을 밝고 서서 작은 산이 깜빡이며 수많은 검기를 거둬들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원자신광이 아니라 '태을청광'이었군요! 무형무색(無形無色)의 날카롭기 짝이 없는 검기라니 웬만한 보물로는 막을 수가 없겠습니다."

흑포 사내가 자신의 푸른 손을 검은 장포 자락에서 꺼내 들여다보았다. 피부에 미세하게 상처가 나 핏 자국이 묻어 있었다.

"맨몸으로 태을청광을 막아내신 휘 수사의 신통도 대단하십니다. 평범한 방어용 보물보다 더 튼튼한 몸을 지니셨어요."

"하하, 이쪽 손만 조금 특별한 정도입니다. 피도 본 김에 저도 아껴둔 신통이 어떠한지 한 형에게 가르침을 받아야겠습니다."

흑포 사내는 냉소하며 손에 난 상처를 곧바로 아물게 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검은 기운을 방출했다.

그러자 피부에 무수히 많은 검은 문양들이 떠올라 살아 움직이는 것 처럼 꿈틀거렸다. 멀리서 보면 인 족이 아니라 요마가 현신한 것처럼 보였다.

한립이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허공의 은색 자를 불러들이는데 보호막 밖에서 농가 노조가 입을 열었다.

"휘 장로, 그 신통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닐 텐데요! 한 수사의 실력이 남달라 쉽게 승기를 잡지 못하시니 노부가 직접 나서고자 합니다. 휘 장로께서는 내려와 휴식을 취하시지요."

농가 노조는 은색 뇌전으로 변해 제단 위로 올라갔다. 이에 흑포 사내가 험악한 표정을 짓다가 옆에 나타난 농가 노조를 보고 가슴이 서늘해져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정도 사리분별은 합니다. 이왕 농 형께서 올라오셨으니 저는 물러나겠습니다."

흑포 사내가 수결을 맺어온몸을 뒤덮은 검은 반점을 물리고 제단을 내려갔다. 물론 의미심장한 눈길로 한립을 쳐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농 수사께서 직접 올라오시다니 영광입니다."

한립은 농가 노조를 보고도 꺼리는 기색 없이 미소를 지었다.

"합체 후기에 이른 제가 한 수사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면 분명 말이 나오겠지요. 한 수사가 제 공격을 세 번만 막아낸다면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아, 세 번이라!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뒷짐을 진 농가 노조가 차갑게 선언했고, 한립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제단 아래 수사들이 소란스러워졌다. 한립이 합체 중기 수사에 맞먹는 실력을 보여준 것도 놀라운 일 인데 농가 노조의 제안까지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보통 다른 세가의 수사들은 농가와 대결하게 되면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구경을 할 기회가 흔치 않았다.

"하나."

농가 노조는 긴말하지 않고 뒷짐 지고 있던 한 손을 풀어 뻗었다.

휘릭.

주변 천지원기가 요동치며 동시에 한립 머리 위로 금색 거대 손이 나타났다. 거대 손에 오색 주술문자가 꿈틀거리고 어렴풋이 불경을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 손이 아직 닿지도 않았는데 그 압력만으로도 한립 주위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이에 한립은 머리 위로 새까만 산에서 회색 기운을 방출했다. 회색 기운으로 압력을 이겨낸 그는 새하얀 손으로 허공을 쳤다. 그러자 오색 화염이 뿜어져나가 오색 수정 거대 손으로 변해 금색 거대 손에 맞섰다.

쨍!

두 거대 손이 잠시 대치하다 금색 손이 오색 손을 붙들어깨트렸다. 그러나 한립은 당황하지 않고 오색 손의 잔해를 가리켰다.

파앗!

오색 손의 잔해들이 수정빛을 반짝이며 금색 손으로 몰려들어 꽁꽁 얼려버렸다. 그것을 본 농가 노조가 눈썹을 끌어 올렸다.

"둘!"

그가 손바닥으로 머리를 내려치자 용울음 소리가 울리고 금색 교룡 허상이 솟아올라 그의 몸속으로 뛰어들었다. 금빛을 발산한 농가 노조는 피부에 금색 비늘이 돋고 머리 위로 금색 뿔이 자라났다.

콰릉!

반룡이 된 그는 발밑에서 천둥소리를 남기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한립 머리 위로 나타난 농가 노조는 금색 비늘로 뒤덮인 손바닥을 내리쳤다.

거대 손에서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만령대를 뒤덮을 만큼 커진 거대 손을 보고 피할 수 없음을 깨달은 한립은 머리 위의 검은 산봉우리를 날리고 등 뒤로 삼두육비의 금빛 허상을 불러냈다.

콰쾅!

금색 손에 맞은 검은 산봉우리가 부르르 몸을 떨며 튕겨나가 거대 손은 그대로 한립에게 떨어져 내렸다.

한립은 안색을 굳히며 들고 있던 은색 자를 휘둘렀고, 등 뒤로 범성진마법상이 여섯 개의 팔을 미친 듯이 휘두르며 주먹을 날렸다.

퍼퍼퍼퍽!

금색 주먹 그림자들과 은색 자 그림자들이 허공을 뒤덮었다. 한립이 들고 있는 은색 자는 그 수가 끝없이 불어났다. 한 개가 열 개로, 다시 백 개로, 또 다시 천 개로…….

천 개가 넘은 은색 자 그림자가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보호막 밖의 수사들은 한립의 무시무시한 신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콰릉!

그러나 한립 머리 위로 농가 노조의 코웃음 소리가 들리고 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렸다. 금색 주먹들과 무수히 많은 은색 자 그림자가 막대한 힘에 밀려났고 금색 거대 손은 지체 없이 한립을 덮쳤다.

쾅!

한립이 거대 손에 당하기 직전 돌연 또 다른 푸른 주먹이 나타나 금색 거대 손을 강타했다.

그러자 무적처럼 보이던 금색 거대 손이 마지막 일격에 어이없이 튕겨나갔다. 그 틈을 타 한립은 자리를 떴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농가 노조는 손바닥을 거두고 허공에서 불쑥 나타난 푸른 팔뚝을 바라보았다.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사내는 한립과 굉장히 흡사한 생김새를 가졌지만 두 눈이 녹색이었다.

한립은 손짓으로 녹색 사내를 옆으로 불러들였다.

"제2화신! 과연 실력이 대단하십니다. 이제 세 번째 공격을 받아보시지요!"

농가 노조가 냉소하며 다시 한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두 번째 공격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 기세는 완전히 달랐다. 금색 팔뚝이 절 반밖에 움직이지 않았는데 주변 공기가 진동하고 무수히 많은 오색빛의 점들이 만령대상공을 떠다녔다.

천지원기가 변한 빛의 점들이 거세게 농가 노조의 팔뚝으로 모여 들었다. 금색 팔뚝은 눈부신 오색 광채를 내뿜기 시작했고 동시에 강력하면서도 낯선 영기의 압력이 팔 뚝에서 발산되었다.

마치 농가 노조와는 독립된 존재가 된 듯했다. 합체 후기를 대성한 농가 노조의 본체보다 팔뚝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더욱 위험해 보였다.

드디어 한립의 표정도 미미하게 달라졌다. 한립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상대가 술법을 완성하기 전에 포권을 하고 미소를 머금었다.

"수사의 엄청난 법력과 신통에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농가 노조가 팔을 거두기도 전에 푸른 빛줄기로 변해 제단 위의 보호막으로 날아갔다. 빛이 번득이자 두꺼운 보호결계가 그를 보내주었다.

한립은 곧바로 곡가 수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갔고 녹색 인영도 그림자처럼 그 뒤를 쫓았다.

주변에 있던 곡가 수사들은 분별 있게 뒤로 물러나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그의 제2화신을 바라보았다. 이에 한립이 차분히 수결을 맺자 보랏빛을 반짝이며 소매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효풍 선자와 소 장로가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막 합체 초기에 이른 수사가 중기 수사에 맞먹는 실력을 보여주었고 감히 후기 수사와 맞섰다. 그런데 또 마지막에는 쉽게 물러나 버렸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마음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을 초월하는 일이었지만 방금 보여준 한립의 놀라운 실력은 사실이었기에 아무도 이유를 묻거나 따지지 않았다.

효풍 선자와 소 장로는 쓴웃음을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눈앞의 한립은 엽가 태상장로인 천려 선자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고 오히려 숨겨 둔 한 수가 더 있을 거라는 판단도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곡 가가 이번 진령대전에서 5대 진령세가의 지위를 유지하는 일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하, 이거 재미있습니다."

보호막 속의 농가 노조가 바깥에 앉은 한립을 보고 화를 내기는 커녕 웃음을 흘렸다. 그의 팔을 타고 흐르던 오색 광채가 흩어지고 금색 비늘도 점차 가라앉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번 계획은 포기한다."

돌연봉 가의 청동가면 사내가 입을 열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상대가 평범한 합체 초기 수사는 아니라도 천려 할망구와 비슷한 수준 일 겁니다. 우리 둘이 협공하면 설마 저 자를 못 이기겠습니까."

풍채 좋은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흥, 천려와 비슷한 수준이라니 둘 째 네 눈에 문제가 있구나! 다른 건 몰라도 겨우 제2화신이 한 주먹으로 농가 노조의 일격을 막아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더냐?

게다가 농가 노조 앞에서 보인 태도로 보아 더 강력한 신통을 숨기고 있을 것이야. 우리 둘이 협공 한다고 쉽게 이길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괜히 헤아릴 수 없는 신통을 지닌 수사와 척을 져서 좋을 것도 없다."

"그럼 노 가에는 무어라 해명한단 말입니까? 이미 받을 것도 받았는데요."

"우리가 약조한 바는 최대한 천려 선자의 힘을 빼놓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곡 가의 할망구가 아니라 낯선 수사가 나섰으니 당연히 거래 조건도 달라져야겠지. 정 안 되겠으면 받은 것을 돌려주면 그만이다. 노 가에서 뭘 더 어쩌겠느냐?"

풍채 좋은 사내가 머뭇거리자 가면 사내의 음성이 싸늘해졌다.

"형님이 마음을 굳히셨으니 따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아쉽게 되었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곡 가를 5대 세가에서 축출하나 했더니,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어요!"

"얼마 후면 마겁이 도래한다. 다음 번 진령대전에 이 중 몇 개의 세가나 살아남을지도 모를 일인데 쓸데 없이 걱정도 많구나."

가면 사내의 대답에 풍채 좋은 사내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이때 머지않은 곳의 노가 수사들 도 합체 초기 수사 곁에 모여들어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금제 때문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다들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또한 노 가의 유일한 합체기 수사인 하얀 장포의 중년 유생도 인상을 찌푸렸다.

곡 가를 밀어내고 5대 세가에 진입하려던 노 가는 한립이 만령대에서 보여준 실력에 당황하고 있었다.

"이제 1차전에서 패배한 봉 가와 곡 가의 대결이 있겠습니다. 이번 대결로 4위와 5위가 갈리게 됩니다. 한 수사와 봉 수사는 올라와 실력을 겨뤄주시지요."

제단위의 농가 노조가 다음 대결을 선포했다. 그 말에 봉 가의 두 합체기 수사들이 홱! 하고 곡가 쪽을 돌아보았다. 효풍 선자와 소 장로도 한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번 대결은 제가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한립은 주저 없이 대결을 포기했다.

"한 선배님, 이번 대결은……."

효풍 선자가 얼른 이유를 물어보려는데 한립이 담담히 말을 끊었다.

"봉 가에는 두 명의 합체기 수사가 있고 협공에 능하다고 들었네. 승산이 크지 않다면 힘을 비축해 놓았다가 아래 순위 세가의 도전에 대비하는 것이 낫겠지. 곡 가가 5 대 세가의 지위만 유지하게 해주면 약조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던가?"

"맞습니다. 그저 5대 세가에서도 순위가 높을수록 가문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게 늘어제가 욕심을 부렸습니다."

눈빛이 흔들리던 효풍 선자가 결국에는 한립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 제단에서는 이미 농가 노조가 나머지 세 가문을 대상으로 제비뽑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농 가가 부전승에 해당하는 댓조각을 뽑아 엽 가와 임가가 비무를 진행하게 되었다. 엽 가에서는 깃털 옷 소녀가 나섰고 임가에서는 머리에 은색 고리를 얹은 산발사내가 나왔다.

안 그래도 사이가 좋지 않은 수사들은 무대에 오르자마자 공격을 개시해 요란하게 싸워댔다.

둘 다 합체 중기 존재였지만 깃털 옷 소녀의 실력이 산발사내보다 뛰어나 결국에는 산발사내가 강제로 보호막 밖으로 밀려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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