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084화 (841/2,000)

1084화. 대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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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본 곡 가 수사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농 가와 곡 가가 붙게 된 것이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립을 보고는 농 가 노조가 다른 수사들을 향해 선포했다.

“제비뽑기를 마치고 순위전을 시작합니다. 구체적인 승부 방식은 대결할 당사자끼리 결정하면 됩니다. 임 가와 봉 가를 대표하는 수사는 나와서 1차전을 치르시기 바랍니다.”

“그럴 것 없습니다. 저희 형제가 임 형의 목신대법(木蜃大法)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봉 가는 패배를 인정합니다.”

봉 가의 풍채 좋은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 대결을 포기했다. 이에 산발 사내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봉 가는 1차전에서 패배한 다른 가문과 대결하게 됩니다. 승자는 나머지 세 가문 중 한 곳에 도전할 수 있고 그 기회를 포기하거나 패배하면 4위가 되겠지요. 이어서 우리 농 가와 곡 가의 대결입니다. 곡 가는 한 수사께서 나서실 것입니까? 우리 농 가엔 노부와 휘 장로가 있어 차례로 저희 둘을 이겨야 승리를 따낼 수 있습니다.”

농 가 노조는 담담한 어투와 달리 형형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한 선배님, 이번 대결은 포기하지요.”

듣고 있던 효풍 선자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녀는 곡 가의 태상장로가 친히 나섰어도 곡 가를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실력을 겨루는 자리인데 경험삼아 해보겠네. 합체기에 이른 후로 제대로 동급 수사와 대결해본 적이 없으니 말일세.”

한립은 턱을 쓸어내리며 효풍 선자와 수 장로가 깜짝 놀랄 말을 내뱉었다.

한립의 입장에서는 생사가 갈리는 싸움이 아니니 합체 후기 수사와 대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고의로 농동을 괴롭혀 농 가 노조를 도발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좋은 성과를 낸다면 진령세가 수사들의 입을 통해 인족에서의 명성을 높일 수도 있었다. 지금은 이종족 영역에 있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이전에는 아무리 수행이 높아도 이종족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몸을 낮췄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명성이 높을수록 감히 그를 건드리는 자가 없을 것이다.

“아, 그것이…….”

“내 기억대로라면 순위전을 치르는 방식에 대해서 곡 가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조건은 없었던 것 같은데?”

한립은 안색을 굳히고 말리려는 효풍 선자와 눈을 마주쳤다. 곡 가 가주는 그의 눈빛이 남색으로 빛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해 몸을 떨었다.

그리고 한립은 벌써 몸을 일으켜 사라진 후였다. 그는 만령대 위 농 가 노조 앞에 나타나 포권을 했다.

“막 합체기에 이렀지만 농 수사의 명성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정말 곡 가를 대표해 한 수사가 나서시는군요. 그런데 기령자라는 제자는 잘 지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농 가 노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뜬금없이 기령자 이야기를 꺼냈다.

“걱정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워낙 사고를 잘 치는 아이라 조용한 곳에서 폐관수련을 하라 일러두었습니다. 아마 몇 십년간은 밖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한립은 당황한 기색 없이 차분히 답했다.

“잘하셨습니다. 평범한 인물은 아니던데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요! 그나저나 수사께서 사람을 잘못 찾아오신 듯싶습니다. 이번에 농 가에서 나설 분은 휘 수사십니다.”

농 가 노조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서 공간 파동이 일고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저를 이겨야 농 수사와 실력을 겨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검은 장포를 입은 합체 중기 수사의 눈빛이 곱지 않은 것을 보고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먼저 휘 형께 한 수 배우겠습니다.”

그 말에 농 가 노조가 음산하게 웃고는 금빛을 일으켜 만령대 밖으로 나왔다.

“즉시 진법을 발동해 대결의 여파가 다른 가문의 제자들에게 미치지 않게 하라.”

농 가 노조의 말에 진법 발동을 맡은 곡 가 수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우웅!

제단 주위의 깃발들이 마구 휘날리고 거대한 보호막이 나타났다. 엄청난 두께의 빛의 장막에 갖가지 색깔의 주술문자가 떠다녔다.

오대세가는 물론이고 진령세가 자제들이 흥분한 기색으로 웅성거렸다. 직접 합체기 수사의 대결을 지켜볼 기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경지 차이가 나는 수사들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흑포 사내가 냉소하고는 먼저 소매 속에서 두 줄기의 검은빛을 불러냈다. 먹처럼 새까맣게 굽은 칼이었다. 새까만 칼날 표면에 희미하게 은색 꽃이 피어올라 보기만 해도 위력적인 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괴이한 검은 칼날은 한립을 공격하지 않고 맑게 울며 흑포 사내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곧 흑포 사내의 소매에서 하얀빛이 반짝이고 이번에는 새하얀 단검 한 쌍이 나타났다. 기이한 한기를 내뿜는 단검들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은색 비도 한 쌍도 뻗어 나왔다.

쌍쌍이 모습을 드러내는 괴이한 보물들을 보며 한립은 눈을 깜빡였다.

총 72개, 즉 36쌍의 각기 다른 보물들이 흑포 사내의 소매 속에서 날아올라 미친 듯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보물은 하나같이 예리한 빛을 번뜩였고 빠르게 날고 있으면서 파공음이 들리지 않아 꽤 내력이 있는 보물들 같았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보물들을 조종한다는 것은 흑포 사내의 의식이 평범한 동급 수사의 수준을 초월했다는 것을 뜻했다.

그는 광소를 터트리더니 곧바로 72개의 보물을 날렸다. 하늘을 뒤덮은 뿌연 기운으로 변한 보물들이 한립을 향해 밀려들었다.

그것을 본 한립의 소매 속에서 72개의 푸른 빛줄기가 튀어나갔다.

채채채채챙!

경쾌한 충돌음이 들리고 푸른 비검과 상대의 여러 보물들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72개의 보물들은 검은 기운, 뇌전, 불 등 다양한 빛을 발산했지만 푸른 기운을 반짝이는 비검들은 멀쩡했고 독사처럼 각각의 보물을 물고 늘어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흑포 사내는 조금 의외라는 얼굴로 보물들의 위력을 올렸으나 여전히 72개의 청죽봉운검들은 멀쩡했다. 사내는 표정이 어두워지며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손을 뻗었다.

쿠왕!

보호막 내의 천지원기가 요동치고 무수히 많은 검은 실들이 몰려가 괴이하게 한립 앞에 나타났다.

“좋은 한 수입니다.”

한립은 차분하게 새까맣게 변한 손을 펼쳐 회색 기운으로 벽을 만들었다.

퍼퍼펑!

검은 실들이 회색 기운의 벽에 막혀 멈추었고 얼마 못가서 터져 검은 연기로 사라졌다.

“원자신광!”

흑포 사내가 동공을 수축하고 소리를 높였다.

그는 더욱 신중한 얼굴로 두 어깨를 털어 대량의 검은 기운을 방출했다. 검은 기운들이 머리 위로 뭉쳐 거검을 형성했다. 칼끝은 실체가 있었으나 칼자루 부분은 흐릿한 것이 아주 묘했다.

“가라.”

흑포 거한은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거검을 가리켰다. 그러자 거검의 칼끝에서 검은 빛 구슬이 뭉쳐져 바위처럼 한립 위로 떨어져 내렸다.

빛 구슬이 지날 때마다 공간이 찢겨 무서운 공간신통의 위력을 드러냈다. 거검은 그런 빛구슬을 연달아 방출해 7개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중기 수사답게 신통이 비범하십니다.”

그것을 본 한립은 두려워하기는커녕 미소를 지으며 가슴 앞에서 새하얗게 변한 손과 새까만 손을 합창했다.

쩡!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검푸른 산이 떠올라 빙글빙글 돌았다. 각각 검은 기운과 푸른 고리로 변한 산봉우리가 빛을 반짝이며 합쳐져 검푸른 거대 고리로 변해 한립을 보호했다.

이때 첫 번째 검은 빛구슬이 거대 고리에 부딪쳤다.

쾅!

굉음이 울리고 푸른빛과 검은빛이 폭발했다. 빛구슬이 폭발한 자리에는 허공이 허물어진 것처럼 검은 구멍이 뚫렸다.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빛구슬이 차례로 터져 검은 구멍이 거대해졌고 한립과 그를 보호하던 거대 고리도 그 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만령대가 검은 동굴의 강력한 기운에 삐거덕거렸다.

구경하던 수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뜰만한 광경이었다. 뒷짐을 지고 있던 농가 노조는 아무 표정 변화 없이 눈을 빛냈고, 엽가 소녀는 노인네처럼 한숨을 쉬었다.

다른 진령세가 수사들의 표정도 제각각이었다.

효풍 선자와 소 장로는 난색을 표했지만 다행히 한립의 72개 비검이 아직도 보물들과 막상막하를 이루고 있었다. 그 말은 한립이 아직 무사하다는 뜻이었다.

흑포 사내는 두 눈이 조금 퀭하고 이마의 보라색 흉터가 이전보다 짙어진 것이 기력이 쇠해 보이기는 했지만 거검이 내뿜은 검은 빛구슬의 위력을 믿는지 긴장을 풀고 있었다.

사내가 입을 벌려 남색 거대 인장을 꺼내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는데 검은 구멍에서 한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휘 형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신통입니까? 흥미롭기는 하지만 이걸로는 저를 패배시킬 수 없을 듯합니다.”

콰르릉!

검은 동굴 안에서 귀청을 때리는 폭음이 울렸다. 엄청난 크기의 은색 자가 검은 빛을 가르고 푸른 빛줄기가 그 안을 빠져나왔다.

흑포 사내가 놀라 황금히 수결을 맺어 남색 거대 인장을 산만하게 키워 날려 보냈다. 이에 한립은 가볍게 웃었고 머리 위에서 검은 산과 푸른 산이 모호하게 사라졌다.

다음 순간 검은 산이 거대하게 불어나 은색 주술문자를 뿜어 남색 거대 인장을 막아섰다. 두 물체가 놀랍게도 아무 소리도 없이 격돌했고, 회색 기운이 거대한 파도처럼 주변으로 흘러넘쳤다.

흑포 사내는 소매를 휘둘러 가볍게 회색 기운을 치워내고 두 물체가 격돌한 곳을 주시했다.

“……!”

바로 그때, 휘휙 하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보호막을 뚫고 무언가가 그의 어깨를 스쳐지나갔다. 흑포 사내가 얼른 피하지 않았다면 어깨를 뚫렸을 것이다.

놀란 그가 서둘러 공격의 정체를 파악하려는데 휘휘휙 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리고 비처럼 공격이 쏟아졌다.

흑포 사내는 기겁하며 미처 피할 생각도 못하고 검은 방패와 금색 거울로 보호막을 쳐 몸을 보호하려 했다. 동시에 머리 위의 검은 거검도 폭발해 검은 안개로 변해 그를 뒤덮었다.

무형의 검기가 날카롭게 검은 기운을 파고들었다.

휘휘휘휙! 채채채챙!

파공음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앞 다투어 울리며 검은 안개 상공에서 산봉우리가 빙글빙글 돌며 모습을 드러냈다. 산봉우리에서 나온 푸른 기운이 무형의 검기로 변해 상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한립이 신형을 날려 푸른 산봉우리 정상에 섰다. 무수히 많은 검기에 공격당해 흩어진 검은 안개는 더 이상 흑포 사내를 보호하지 못할 것 같았다.

푸확!

그런데 예기치 못한 순간 검은 안개 속에서 금색 빛기둥이 솟아올라 푸른 산봉우리를 노렸다. 그것을 본 한립은 발끝으로 산봉우리를 지그시 밟았고 푸른 기운이 몰려들어 빛의 방패로 변해 산봉우리를 보호했다.

빛의 방패에 부딪힌 금색 빛기둥 중 절반은 흩어지고 나머지는 놀랍게도 튕겨나가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금빛이 번득이며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콰르릉!

폭음과 흑포 사내의 노호성이 들려왔다.

검은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흑포 사내는 언뜻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살피니 검은 장포 소매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이곳에 모인 수사들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그 모습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커져 제단까지 들려왔고 꽤 많은 수사들이 놀란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봉 가 합체기 형제는 시선을 마주치며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반대로 효풍 선자와 소 장로는 희색이 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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