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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73화 (830/2,000)

1073화. 진 씨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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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원숭이는 멀리 떨어진 황산에 서서히 내려와 금빛을 발산하며 평범한 얼굴의 청년 한립으로 돌아갔다.

그는 천변환면으로 금비원의 모습을 하고 농 가 거처에 잠입했고 노조와 싸울 때는 경칩결을 발동해 산악거원의 화신이 되었다.

안 그래도 강한 육체에 경칩결의 위력이 더해져 농 가에게 밀리지 않았지만 내심 상대의 위력에 놀랐다. 자신도 5할 정도 힘을 비축해 놓은 상태였으나 농 가 가주도 전력을 다한 것 같지 않아서였다.

둘이 전력을 다해 맞붙었다면 영선궁 전체가 허물어지는 것도 순식간이었을 것이다.

파앗.

한립이 아직도 멍하니 늘어져 있는 기령자를 보고 짧게 탄식한 뒤 푸른 법결을 때려 넣었다. 기령자는 몸을 바르르 떨며 얼굴을 찡그리다가 고함을 지르며 깨어났다.

“으악! 스, 스승님이 어찌 이곳에. 저 어떤 노부인에게 납치가 되지 않았었나요?”

눈을 번쩍 뜬 기령자가 한립을 발견하고 반색했다.

“내가 찾으러 오지 않았으면 넌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미 끝난 일이니 가면서 천천히 이야기해 주마.”

한립은 푸른빛으로 기령자를 감싸 함께 날아올랐다. 가는 동안 모든 것을 전해들은 기령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인족 진령제일세가라는 농 가의 거물이 연루된 사건이라 기령자도 두려워하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퍼뜩 정신을 차린 기령자는 쌍욕을 하며 허공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침을 튀겨가며 욕을 하는 모습이 앞으로 농 가 수사라면 가만두지 않을 기세였다. 그 모습에 웃음을 흘리며 한립이 입을 열었다.

“그만하거라! 체통머리 없이 뭐하는 것이냐. 네가 농 가로 가서 따지겠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그만한 실력이 되어야겠지? 지금 너는 농 가의 눈에 파리만도 못한 목숨이다. 정말 농 가에게 분풀이를 하고 싶다면 합체기에는 이르러야 할 것이야.

또한 앞으로 너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 약간의 공법과 보물, 단약을 줄 것이니 돌아가는 대로 해대소와 이곳을 떠나 쉬지 않고 천연성으로 가거라. 그곳의 병사가 되어 몇 년간 실력을 쌓는 것이 좋겠지. 농 가가 아무리 세력이 대단해도 천연성에서 방자하게 굴지는 못할 것이다.”

“제자를 이리 보내시는 것입니까? 멀리서 고생하며 와서 만보대회를 얼마 구경하지도 못했습니다.”

어린 도사가 그 말에 울상을 지었다.

“만보대회가 네 목숨보다 중요하다면 떠나지 않아도 좋다. 내 곁에 있다고 밤낮 너를 신경써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 잡혀가면 나더러 또 농 가에 침입하기라도 하라는 말이더냐?”

한립이 코웃음을 치며 기령자를 나무랐다.

“……스승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한립이 정색을 하자 기령자가 마지못해 답했다. 한 시진이 훌쩍 지나 거처로 돌아오자 해대소가 반갑게 맞이했다.

“월천, 내가 찾으라는 인물은 지금 어디에 있더냐?”

한립은 자리에 앉자마자 해대소를 향해 물었다.

“미천루(迷天樓)라는 곳에서 스승님이 말씀하신 표식을 발견했고 스승님이 주신 신물을 가지고 요족 선배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그분이 내일 낮에 미천루에서 만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낮이라니 급하기도 하구나. 알았다! 너희는 며칠 동안 꼼짝 말고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합체급 수사도 얼마간 막아 낼 강력한 금제를 쳐둘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내일부터 저녁마다 내게 지도를 받다가 소란이 가시는 대로 출발하거라.”

“출발이요? 사제, 스승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가?”

“말하자면 기네. 내가 아주 농 가 때문에 큰일 날 뻔했다고!”

어린 도사가 드디어 말할 차례가 되자 울상을 하고 그간 있었던 일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튿날, 오전 내내 공을 들여 강력한 환진을 설치한 한립은 궁전을 떠나 미천루로 향했다. 해대소의 말에 따르면 미천루는 구선산 중심부의 소형 시장에 있다고 했다.

그곳은 인요족의 크고 작은 세력들이 임시로 건설한 시장이라 없는 것이 없었다. 어딜 가나 보이는 흔한 상점부터 전문적인 물건을 파는 특수 상점까지 크고 작은 건물들이 거리에 빼곡했다.

그 중 미천루는 미천석(迷天石)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곳이었는데 희귀한 재료는 아니지만 환진을 펼치는데 꼭 필요한 재료라 구입하려는 수사들이 많았다.

‘이곳이 미천루!’

한립은 단층으로 이루어진 여러 상점 가운데에 한 곳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왔으니 들어가야 했다.

작지만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상점 안에는 두 개의 탁자와 선반을 제외하면 다른 장식은 없었다. 선반 위의 크고 작은 광석들이 미천석일 것이다.

탁자 중 하나에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아이가 손장난을 치고 있다 한립을 발견했다.

“와, 손님 오셨다! 선배님 미천석을 찾으세요? 어떤 등급의 미천석을 얼마나 내드리면 될까요? 저희 미천루는 미천석에 관해서는 없는 게 없답니다!”

소녀가 한립을 발견하고 벌떡 일어나 상점을 소개했다. 그러나 한립은 소녀를 훑고는 조금 놀랐다. 희미하게 요기를 발산하는 이 요족 수사는 영기의 파동으로 보니 화신기 수사였던 것이다.

만일 누가 얼굴과 말투만 보고 불손한 행동을 취했다면 큰코를 다쳤을 것이다.

“물건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만날 사람이 있어 찾아왔네.”

“아, 한 선배님이시군요! 언니가 아침부터 쭉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녀가 얼른 그를 향해 예를 취했다.

“언니라고?”

“저는 소인 언니의 친동생 ‘진미인’이라 합니다. 제가 선배님을 안내해 드릴게요.”

한립은 조금 뜻밖이라 다시 소녀를 살폈고, 소녀는 눈을 깜빡이며 얌전하게 답했다. 소녀를 따라 쪽문으로 들어가니 지하로 이어지는 돌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놀랍게도 5, 6층 규모의 건물이 지하에 숨어 있었다. 각 층마다 분위기가 달랐고, 몇몇 남녀 수사들이 오가는 모습도 보였다. 누각이라 불릴 만한 규모였다.

한립은 소녀를 따라 아래층에 다다라 어느 대청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하얀 치마를 입은 절색의 여인이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완이! 어찌 당신이!”

“아니, 넌 그녀가 아니구나!”

한립은 남궁완의 이름을 외친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는 냉랭히 소리쳤다.

“한 수사께서 요즘 소문이 자자한 합체기 인족 선배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보아하니 제 환술은 선배님께는 통하지 않는 것 같군요.”

남궁완의 얼굴을 한 여인이 하얀 기운에 휩싸여 갸름한 얼굴의 낯선 미인으로 변하였다.

“자네가 진소인이겠군. 이게 무슨 짓이지?”

한립은 여전히 냉랭한 얼굴로 여인을 쏘아보았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얼마 전 이룬 심환대법(心幻大法)의 효과를 확인하고 싶어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백의 여인이 안색이 달라져 서둘러 해명했다.

“심환대법이라면 들어 보았네. 천호족의 천부적 신통으로 상대를 가장 친밀한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대적할 수 없게 한다지. 그렇다면 자네들은 천호왕족의 사람이겠군. 호왕(狐王)과 무슨 관계인지 알 수 있겠는가?”

“저희 자매는 천호족인이 맞습니다. 그러나 당대 호왕 대인과 그리 가까운 혈족은 아닙니다.”

한립이 겨우 안색을 풀자 진소인이 다시 예를 올리고 자리를 권했다.

“조금 전 심환대법에 내가 흔들린 것은 이곳의 금제와 관계가 있겠구만.”

한립은 대청을 둘러보고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알아보시는군요! 이곳은 천호족 상점이다 보니 특수한 진법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안에서 환술이나 미혼술을 펼치면 효과가 배가 되지요.”

진소인은 한립에게 설명하고 그에게 탄복했다. 강력한 심환대법을 한 눈에 꿰뚫어 본 것도 놀라운 일인데 대청 안에 설치된 진법의 효과를 파악했다는 것은 진법에 정통한 수사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만황세계에서 여러 기연을 만나 몇 백 년 만에 합체기 경지에 올랐다고 들었는데 언제 진법을 이리 익혔단 말인가!’

“제자에게 오늘 이곳에서 만나자고 말을 전한 것은 물건이 준비되어서겠지. 어디 한번 보세.”

한립은 천호족 여인의 사과를 듣고도 여전히 남궁완의 모습을 환술로 따라한 것에 화가 났지만 그 일로 상대를 난처하게 하지는 않았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선배님이 원하시는 재료 중 7, 8할을 모았습니다. 분명 선배님을 만족시켜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성가신 일들이 있어 만일에 대비해 재료들을 여동생에게 맡겨 두었고요. 미인아, 재료들을 꺼내 보거라.”

“예, 언니!”

진소인의 분부에 소녀가 입에서 노란색 구슬을 분출했다.

“이건…….”

갑작스런 일에 한립이 눈을 가늘게 떴다.

“요수 재료를 지니고 다니기가 꺼려져 저물탁에 넣어두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소미주(小彌珠)를 구해 보관해왔지요. 일족의 어느 선배님이 제련을 하다 실패한 수미보물이라 저물탁 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관할 수 있고 몸속에 넣고 다닐 수 있어 유용합니다.”

“흥미로운 물건일세.”

한립이 구슬을 끌어당겨 관찰하다가 의식 한 줄기를 넣었다. 그곳에는 각종 진귀한 요수의 유골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함이나 병 등에는 내단 등 귀한 재료가 보관되어 있었다.

강대한 의식으로 내용물을 확인한 그는 웃음을 머금었다.

“목록에 있던 재료 대부분을 구해오다니 진 수사의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군.”

“저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다른 종족의 친분이 있는 수사들에게 도움을 청해 겨우 구한 거랍니다.”

“어찌 구했든 원하던 재료를 구해다 주었으니 나도 약조를 지키겠네. 이 정도 만년영약이면 충분할지 살펴보시게.”

한립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붉은 저물탁 하나를 꺼내 던져주었다. 이에 진소인이 의식으로 저물탁 내부를 살폈고 그동안 한립은 거침없이 소미주라는 구슬에 담긴 재료를 검은 저물탁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소녀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입술을 비죽였지만 그를 말리지는 않았다. 거래를 마치지도 않고 먼저 재료를 챙겨가는 모습에 후배들을 상대로 횡포를 부린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진소인도 금방 만년영약의 수량을 확인했고 크게 기뻐하던 얼굴이 점점 의혹으로 가득 찼다.

“너무 값을 후하게 쳐주신 것이 아닌지요.”

“진 수사는 천 년 내로 닥쳐올 인요족의 재난에 대해 알고 있는가?”

“마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안색이 급변한 진소인이 조그맣게 물었다.

“수사라면 알고 있을 줄 알았네. 마겁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온갖 세력들이 천년 동안 필사적으로 자원을 끌어모으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웬만한 귀한 영약과 재료들은 동이 날 것이야.

나는 마겁 전까지 수사와 거래를 이어나가 필요할 때 충분한 재료를 얻고 싶을 뿐이네. 물론 다음번에는 요족 재료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저도 얼마 전에야 우연히 관련 소식을 접했습니다. 선배님이 거래를 지속하길 바라신다면 저야 영광이지요! 앞으로 무엇이든 필요한 게 있으시면 천연성의 천호족이 개설한 상점에 말씀을 남겨주십시오. 그리고 이 영약들은 사양하지 않고 챙겨가겠습니다.”

그녀가 남들보다 빨리 지금의 수행에 이른 것은 한립이 이전에 제공한 만년영약의 공로가 컸다. 상대가 계속 거래를 하자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거래를 마쳤으니 이만 가봐야겠군. 진 선자도 만보대회에서 풍성한 수확이 있기를 바라겠네.”

한립은 곧바로 미천루를 떠났다. 진 씨 자매는 직접 1층의 상점 밖까지 그를 배웅하고는 다시 대청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눴다.

“소인 언니, 그건 왜 안 꺼내 놓은 거예요. 공을 들여 구했는데 만년영약으로 거래하면 좋잖아요.”

“나도 며칠 전이었으면 저 사람과 거래했을 거야. 헌데 며칠 전 요족 선배님을 통해 흑역교역회 초청장을 얻었잖니? 일단 흑역교역회에서 더 좋은 물건으로 거래할 수 없나 살피고 안 되면 다시 거래를 시도하지 뭐. 저쪽도 어차피 계속 거래를 원하고 있잖아.”

진미인의 물음에 진소인이 자신의 계획을 들려주었다.

“언니 마음이 그렇다면 알겠어요. 하지만 요족 수사인 우리에게 별 필요도 없는 물건인데 갖고 있기에 너무 위험하잖아요. 소문이 새나가면 어떤 화를 입을지 모르는데 얼른 치워버렸으면 좋겠어요.”

“걱정 마, 다 생각이 있으니까. 나도 그래서 다른 교환회에 내놓지 않고 오직 흑역교역회에만 내놓는 거고.”

진소인은 걱정이 가득한 소녀를 안심시켰다.

한립은 진귀한 보물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줄도 모른 채 대량의 요수 재료들 덕분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이제 만보대회에서 두세 가지 재료만 더 구하면 제2극산을 제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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