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0화.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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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색이 파랗게 질린 해대소가 열 받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그 할망구가 제게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
“이 곤충은 부심사(附心絲)다. 희귀한 요충으로 부화했을 때는 젓가락 정도 굵기지만 수사가 정성을 다해 키우면 오히려 날이 갈수록 가늘어져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되지. 자정부터 정오 사이에 살아 있는 사람의 혈관에 심어 놓으면 정오가 되었을 때 소리 없이 상대가 죽어 흔적이 남지 않는다. 부심사를 성체로 키우려 수백 년간 공을 들였을 텐데 겨우 연체사에게 이것을 썼다고?”
“무슨 의도였을까요? 죽여 입막음을 하지 않고 굳이 이런 짓을 하다니요.”
푸른빛 속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곤충을 보고 해대소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가 손을 쓰기 전에 무슨 대화가 오갔느냐?”
“무슨 대화라 하시면……. 아! 당시 우리는 영선궁에 머무는 수사들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말 때문에 저를 바로 죽이지 않은 걸까요?”
“그럴게다. 네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부심사로 수를 쓴 것이지. 정오까지 아무도 부심사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너는 죽었을 테지만. 네가 정말 합체기 수사와 인연이 있다면 살아남을 것이 아니냐. 이걸로 상대는 합체기 수사가 배후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겠지. 또한 만보대회 집법수사들을 경계해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사적인 분쟁은 눈감아 주어도 만보대회에서 살인이 자행되는 것은 눈감아 주지는 않으니까.”
한립의 말에 해대소가 이제야 알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그때 푸른 빛 속에서 맹렬히 꿈틀거리던 검은 실이 놀랍게도 구속을 벗어나 달아나려 했다.
화륵.
한립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무형의 힘으로 검은 실을 끌어와 은색 화염을 일으켜 태워버렸다. 부심사는 그 속에서 회색 재가 되어 사라졌다.
검은 실 곤충이 죽임을 당하자 구선산 밖 깊은 산속에서 회백발 노부인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컥!”
안색이 창백해진 그녀는 입에서 핏덩이를 토해냈다.
“부인, 괜찮소?”
그 옆에 앉은 진한 눈썹의 노인이 깜짝 놀라 노부인을 살폈다.
“요란 떨지 마세요. 부심사가 죽어 그런 것이니 며칠 휴식을 취하면 별 탈 없을 겁니다.”
“그, 그렇다면 다행이오.”
노부인은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지만 노인은 천년 동안 키운 영충이 죽었는데 그녀가 멀쩡할 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부인이 눈을 흘기니 고양이 앞에 쥐처럼 몸을 사릴 뿐이었다.
“그 녀석의 말이 사실이었나 봅니다! 영선궁의 어느 노괴와 연관이 있는 듯해요.”
“그럼 잡아온 도사를 풀어 주는 것이 어떻겠소? 합체기 수사는 함부로 건드릴 상대가 아니오.”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이 나이에 겨우 얻은 귀한 독자를 죽일 셈입니까! 비술을 사용해 전승법기를 체내에 심어주지 않으면 명준이는 끝이에요. 거기다 도사의 몸을 확인해 보니 전승법기의 봉인이 현묘한 것이 전승될 공법도 남다를 것이 분명합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이런 전승법기를 지닌 수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단 말이에요.”
노부인이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래도 합체기 노괴를 연허기 수사인 우리가 어찌 막는단 말이오.”
짙은 눈썹 노인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이었다.
“평범한 영근 자질을 지닌 축기기 수사를 합체기 노괴가 아끼면 얼마나 아끼겠어요. 우리가 거대 세력의 비호를 받으면 겨우 축기기 수사를 위해 나서지는 않을 겁니다. 정 안되면 지니고 있는 것을 탈탈 털어 보상이라도 해주면 되겠지요.”
“부인의 뜻은 그럼…….”
“맞습니다. 나도 농 씨 성을 쓴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농 가 노조가 바로 내 부친이란 말이에요! 일단 농 가 수사들이 머무는 영선궁으로 가서 한동안 머물며 풍파를 피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농 가는 외부로 시집간 여인은 농 가 사람으로 인정해주지 않잖소. 장인어른께서 줄곧 우리 가문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고 말이오. 부인, 그러지 말고 우리 다른 방책을 생각해 봅시다.”
“농 가 여인은 진룡의 피를 깨울 수 없어 경시를 받지요. 하지만 우리 명준이도 농 가의 핏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옅기는 하지만 체내에 진룡의 피를 지닌 것을 확인했으니 큰 오라버니께 사정하면 우리를 모른 척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명준이가 진룡의 피를 타고난 것은 농가에 비밀로 하기로 하지 않았소?”
“부군이 명준이를 이 씨 가문의 후계자로 삼고 싶어 하는 것은 알지요. 하지만 상황이 이 지경인데 어쩌라는 말입니까! 설마 명준이가 겨우 몇 백 년을 살다 요절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노부인이 어두운 얼굴로 싸늘히 쏘아붙였다.
“그건…….”
입술만 달싹이던 노인이 결국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됐어요. 어찌 되었든 무조건 오라버니를 찾아가요. 합체기 노괴가 찾아오지 않으면 만보대회가 끝나는 대로 조용히 농 가를 떠나면 그만이니까요. 꼭 명준이를 떠나보낼 필요도 없을 거라고요.”
“부인, 그리 위로할 것 없소. 명준이가 진룡의 피를 타고났다는 것을 알면 어찌 농 가의 눈을 피해 살 수 있겠소. 그래도 부인 말대로 합시다! 명준이의 장래와 목숨이 걸린 일인데 무언들 못하겠소. 진룡의 피를 지녔으니 농 가에서 지내는 것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될 테고 말이오.”
노인이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맞는 말씀이에요. 듣기로 이번에 진룡의 피를 타고난 자제가 얼마 되지 않는다 하니, 명준이가 가면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은 이야기를 마치고 지체 없이 흩어졌고 노부인은 빠르게 통로를 지나 소박한 방으로 들어갔다. 안색이 누렇고 몸이 수척한 하얀 장포를 걸친 청년이 돌 탁자에 앉아 서책을 읽고 있었다.
“어머니, 어쩐 일이세요?”
급히 들어온 노부인을 보고 청년이 책을 내려놓았다.
“명준아, 짐을 챙기거라. 우리는 농 가가 있는 영선궁으로 갈 것이다.”
청년을 보는 노부인의 얼굴은 무척 온화하고 따뜻했다.
“농 가요? 잡아 온 수사에게 문제가 생겼군요.”
“너도 알고 있었더냐?”
“제가 수행은 낮아도 진룡의 피를 깨우면 귀가 밝지 않습니까. 방 안에서도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나누는 대화가 들리곤 했습니다.”
“너는 아무 걱정 말거라! 무슨 수를 쓰든 우리가 전승법기를 구해 네 몸에 심어 줄 것이야. 네 병도 고치고 전승영력으로 수련의 고비도 넘기면 결단기에 이를 가능성도 높아지겠지. 제아무리 도사 놈 뒤에 고계 수사가 있다 해도 농 가에 들어가면 감히 따지지 못할 것이다.”
“천경 선생께서 아직 봉인이 풀리지 않은 전승법기로 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신 뒤로 두 분이 오랫동안 고생하신 것을 압니다. 제가 만류한다고 해도 어머니께서는 이제와 포기하지 않으시겠지요.
“바보 같은 소리 말거라! 나와 네 부친은 다음 대천겁을 이겨내지 못할 것을 알고서 유일한 혈육인 너를 낳았다. 그런데 어찌 부모가 자식을 먼저 앞세울 수 있겠느냐. 상대가 삼황 칠요왕 중 한 명만 아니라면 네 외숙과 조부가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다. 진룡의 피를 발동한 농 가 제자도 제대로 비호하지 못한다면 농 가가 어찌 진령제일세가라 불릴 수 있겠느냐.”
노부인이 얼굴을 굳히고 희미하게 농 가에 대한 원망을 드러냈다.
“어머니께서 결심을 굳히셨으니 따르겠습니다. 어서 움직이시지요. 합체기 노괴라면 금방 이곳을 찾아낼 것입니다.”
“그럴 리가! 도사 녀석의 몸을 꼼꼼하게 점검했지만 어떤 표식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청년의 재촉에 노부인이 반신반의하는 눈빛을 보냈다.
“합체기 수사가 티 안 나게 심을 수 있는 표식이 서너 가지는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연허기 수사의 눈을 속이는 것은 더욱 간단하겠지요. 그간 법력 수련은 못 했지만 공법과 관련된 경전은 많이 읽어온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명준이 네 말이 일리가 있다. 그럼 짐을 챙기고 말고 할 것 없이 바로 떠나자꾸나! 네 아버지께서 도사 녀석을 데려오실 게다.”
노부인은 긴장된 기색으로 말했다. 또 다른 밀실에서 짙은 눈썹의 노인이 바닥에 누워있는 어린 도사를 복잡한 심경으로 내려다보았다.
“우리 부부를 너무 탓하지 말거라. 명준이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네 몸의 전승법기가 필요하니까. 전승법기를 강제로 뽑아내면 너는 폐인이 되겠지. 때가 되면 노부가 고통 없이 저승으로 보내주겠다.”
노인의 얼굴에 순간 살기가 번뜩였다. 바닥에 쓰려져 있는 도사는 당연히 기령자였다. 노부부가 무슨 수를 썼는지 인사불성이 되어 누워있었다. 노인이 손끝에서 검은 부적을 쏘아 보냈다.
파앗!
부적이 허공에서 회색 기운으로 흩어져 기령자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어 입에서 청동 방울을 꺼낸 노인이 댕! 하고 방울을 튕겼다.
괴이하게도 바닥에 꼼짝 않고 누워있던 기령자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꼭 감은 어린 도사는 꼭두각시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노인이 주술을 외며 청동 방울에 연달아 법결을 던져 넣자 기령자가 그 소리를 듣고 천천히 눈을 떴다. 멍한 눈빛이 그가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는 표시였다.
얼마 후 검은색과 회색 빛줄기가 작은 산을 떠나 구선산으로 날아갔다. 그들이 떠나고 한식경 후, 눈부신 푸른빛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어 작은 산 허공에서 멈추었다.
둔광 속에서 해대소와 한립이 모습을 드러냈다.
“벌써 사라지다니!”
한립은 작은 산을 빠르게 의식으로 훑었다.
“사제를 다른 곳으로 빼돌린 것입니까! 스승님, 사제를 찾을 수 있겠지요?”
“너와 기령자의 몸에 미약하지만 표식을 남겨 두었으니 걱정 말거라. 표식이 일정 시간마다 강하게 반응해 위치를 알려줄 것이다.”
긴장한 해대소를 보고 한립이 담담히 답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헌데 노부인의 담이 너무 큰 것 아닙니까? 만보대회에서 수사를 납치하다니요. 집법수사들이 무섭지도 않나봅니다.”
“평범한 수사들이 이런 일을 벌였다면 집법수사들이 당장 나설 것이다. 하지만 연허기 이상이라면 집법수사들도 끼어들기를 꺼리겠지. 합체기 수사 일이라면 더더욱 멀리 피해 갈 테고 말이야.”
“노부인이 합체기 수사일 거란 말씀이십니까?”
“얼굴도 비추지 않고 이렇게 조용히 달아난 것을 보면 합체기 수사는 아닐 것이다.”
“그렇군요.”
그들은 대화를 나누다 반 시진 정도 허공에서 무언가를 기다렸다.
“찾았다! 구선산으로 달아났을 줄이야.”
한립이 푸른 기운으로 해대소를 감싼 채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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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진 후, 한립과 해대소는 어느 휘황찬란한 궁전 건물 위에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10층으로 이루어진 궁전은 9개의 영선궁 중 하나였다.
미간을 좁힌 한립은 영선궁 각 층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기령자가 정말 여기로 끌려왔단 말입니까?”
“확실하다. 이렇게 근거리에서 겨우 금제의 힘으로 표식과의 감응을 막을 수는 없지.”
“상대가 합체기 수사였다면 어째서 구선산 밖으로 사제를 끌고 나간 걸까요?”
“그 이유는 간단하다. 노부인이 합체기 수사였다면 악행을 저지르기 위한 임시 거처를 마련한 것이겠고, 아니라면 합체기 수사와 인연이 있는 자일 게다.”
한립은 영선궁을 앞에 두고도 담담한 기색이었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스승님?”
“네가 내려가 이곳 9층에 사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 오거라.”
“예!”
“가까운 산봉우리에서 기다릴 테니 정보를 알아내거든 찾아오면 된다.”
한립은 해대소를 근처에 내려주고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구선산은 거대한 아홉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지만 중간중간 이름 없는 작은 산들도 꽤 많았다. 해대소는 영선궁 방향을 힐끗 보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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