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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58화 (815/2,000)

1058화. 고안대법과 망기술

*

“한 수사, 그 호백영주보다 낫다는 그 술은 직접 맛보신 것입니까?”

천원성황은 정말 애주가인지 한립이 자리에 앉자마자 지체 없이 물었다.

“성황의 호백영주도 영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진귀한 술이지만 만황세계에서 맛본 ‘구향영주(九香靈酒)’도 그 향과 효과가 호백영주에 못지않았습니다.”

“이종족의 술이라고요? 혹시 지니고 계신 것이 있다면 같이 맛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천원성황이 기대감 어린 눈빛을 보냈고 천선 대사와 황탕도 궁금하다는 얼굴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구향영주는 이종족 합체기 수사가 빚은 술이라, 당시 수행이 낮았던 제가 한 잔을 맛본 것만 해도 무척 운이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도 그렇습니다. 저만해도 호백영주를 아껴 평소 쉽게 대접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천원성황이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하, 그리 상심하실 일은 아닙니다. 제게 구향영주는 없지만 오래지 않아 또 다른 영주를 얻을 예정입니다. 때가 되면 성황께도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대체 어떤 술입니까? 설마 성황의 호백영주와 구향영주보다 더 좋은 술이란 말입니까?”

한립이 은근한 어조로 하는 말에 마른 노인이 끼어들어 물었다. 그도 애주가인 것이 틀림없었다. 보통 수도자들은 수련 이외에는 다른 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영차나 영주를 즐기는 이들은 많았다.

“만황을 유람하다 운 좋게도 홍라선주를 제련할 수 있는 홍라과 약간을 얻었습니다. 아직 보조 재료를 모으지 못해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언젠가는 홍라선주를 빚을 수 있을 겁니다.”

“홍라선주! 그건 진선계에서나 맛볼 수 있는 술이 아닙니까!”

천원성황은 놀란 기색이 가득했고 노인과 승려의 얼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선계의 영주를 어찌 영계에서 빚는단 말인가?

“농을 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홍라과는 분명 선계의 물건인데 어떻게 만황세계에서 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게다가 홍라선주를 빚을 수 있을 정도로 익으려면 수만 년은 걸릴 텐데요. 무언가 착각하시는 것은 아니신지요.”

천선 대사가 빙빙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제가 지닌 것은 홍라선주를 빚을 수 있는 홍라과가 확실합니다. 어떻게 만황세계에서 자라고 있었는지는 하늘만이 알 일이고요.”

“좋습니다! 정말 홍라선주를 빚으신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 황에게 두세 병은 꼭 내주셔야 합니다. 부족한 재료들은 저희 셋이 전부 구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천원성황이 들뜬 얼굴로 제안했다.

“성황, 남의 재물로 그리 생색을 내실 겁니까? 본인이 선계의 술을 맛보고 싶으신 거면서 왜 재료를 모으는 일은 우리에게 떠넘기십니까?”

승려가 얼굴을 찡그리고 울상을 짓는 척했다.

“허허, 눈앞에 홍라선주가 있으면 맛을 안 볼 자신이 있으십니까?”

“흠, 평소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확실히 선계의 영주라니 한 잔 마셔보고 싶기는 합니다.”

천원성황의 말에 승려가 솔직히 답했다.

“세 분이 도움을 주신다면 비술을 사용해서라도 만보대회 기간 동안 영주를 빚어 보겠습니다.”

“그게 가장 좋겠지요! 홍라선주가 등장하면 만보대회가 아주 떠들썩해질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패황도 저 못지않은 애주가이고, 칠요왕 중 몇몇도 술을 즐기니까요. 재료 목록을 넘겨주십시오. 이번 대회를 위해 보물 창고 속에서 꽤 많은 물건을 챙겨왔으니 바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천원성황은 거리낌 없이 한립에게 재료가 적힌 목록을 요구했다.

휙!

한립도 사양하지 않고 빈 옥간을 꺼내 몇몇 재료를 기록한 다음 던져주었다.

“2, 3일이면 전부 모을 수 있을 겁니다. 한 형께서 가지러 오시겠습니까 아니면 보내 가져다드릴까요?”

목록을 확인한 성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아직 거처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3일 후에 제가 수사가 계신 곳으로 가겠습니다.”

“좋습니다. 이화교왕(离火蛟王)과 흑봉요왕(黑鳳妖王)도 구선산에 와있다니 그때 한 형에게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흑봉왕!”

“흑봉 수사를 아십니까?”

“흑봉왕을 아는 것은 아니고 흑봉족 수사들과 약간의 왕래가 있었습니다.”

“요족 칠요왕들은 합체 중기 이상의 수행에 강력한 육신과 특수한 자질을 천부적으로 타고난 자들입니다. 그 들의 눈에 거슬리면 성가실 테니 조심하시지요.”

천원성황은 진지한 어조로 당부했다.

“하하, 조언 감사드립니다. 저도 칠요왕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건 그렇고 만황세계에서 기연을 얻어 이렇게 빨리 합체기에 이르셨다면 수련한 공법과 깨달음에 독특한 점이 많겠습니다.”

천원성황이 화제를 돌려 수련 상의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로 돌렸다.

“합체기에 이른지 얼마 되지 않아 깨달음의 깊이가 얕으니 세 분께서 많은 가르침을 주시지요.”

한립도 바라던 바였기에 수사들은 바로 깨달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  *  *

반나절 동안 수련과 공법에 대해 교류하며 많은 가르침을 얻은 한립은 인사를 하고 누각 마차를 나섰다.

한립이 변한 푸른 빛줄기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천원성황의 명을 받은 마차 대열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황 수사와 천선 대사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굉장히 젊군요.”

“썩 괜찮아 보입니다!”

시선을 마주친 마른 노인과 승려가 신중히 대답했다.

“황 수사께서는 ‘고안대법(枯眼大法)’으로 근골을 통해 수사의 실제 연령을 파악할 수 있지요. 젊다는 말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천선 대사의 말씀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망기술(望氣術)로 인족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분이니 기대가 큽니다.”

“상대는 기운을 완전히 숨기고 있었지만 원래 망기술은 의식으로 수행을 파악하는 술법은 아니지 않습니까. 빈승의 판단으로는 합체 초기의 경지는 맞되 법력은 동급 수사를 월등히 뛰어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초기 수사의 약 두 배의 법력을 지니고 있어 합체 중기인 저와 비슷한 수준이라 보면 됩니다.”

천선 대사가 곰곰이 생각해 자신의 의견을 들려주었다.

“특수한 공법을 수련하면 법력이 동급 수사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지만 보통 그런 경우 다른 신통은 비교적 약하기 마련이지요.”

“잘못 생각하고 계시는 군요, 성황. 빈승은 한 수사의 몸에서 강력한 법력 외에도 특수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주 수련 공법 외에 강력한 신통만 서너 가지는 될 것입니다. 각각이 빈승의 옥령비술(玉靈秘術)과 맞먹을 정도이고요.”

“그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승려의 말에 마른 노인이 소리를 높였다.

“한 수사의 실력이 예상을 뛰어넘기는 하지만 황 수사께서 그리 놀라시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듯합니다.”

천원성황이 힐끗 그를 보고 평온히 물었다.

“성황의 말씀대로 노부, 고안대법으로 상대의 육신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슨 특이한 점이라도 있던가요?”

천선 대사가 궁금한지 얼른 물어왔다.

“특이하다기보다는 이상할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강력하다라. 성황 대인의 육신보다 말입니까?”

“흠, 그 이상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어도 성황의 육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황탕이 머뭇거리다 승려가 깜짝 놀랄 만한 답을 내놓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천원성황도 눈빛이 흔들렸다.

“말도 아 되지요! 황 수사, 성황 대인이 겉보기에는 유가 공법을 위주로 수련한 것 같아도 최정상급 연체사 출신이라 요왕들과 비견될 만큼 강력한 육신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수사가 이전에 연체술을 익혔다고 해도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친선 대사가 경악해 고개를 내저었다.

“노부의 고안대법에 착오가 있다 하더라도, 한 수사의 육신은 제가 본 모든 인족 수사 중 성황 대인 다음으로 강력하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천선 대사, 그리 의심할 것 없습니다! 황 수사의 고안대법은 한 번도 착오가 없었으니까요. 허허, 법력은 동급 수사를 월등히 초월하고 강력한 신통들에 요왕급 육신을 지닌 젊은 수사의 등장이라니! 얼마 뒤에 도래할 마재(魔災)만 이겨낸다면 본 황에 맞먹는 존재가 되겠습니다.”

성황은 손을 저어 승려의 말을 끊고 생각에 잠겼다.

그 때 한립은 이미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 푸른 산맥에 가까워졌다. 하늘로 치솟은 아홉 개의 산봉우리들은 만보대회가 열리는 구선산이었다. 이 산맥 주변은 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특수한 신분의 거물급을 제외하면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대회에 참가하려는 인족과 요족은 대부분 구선산 인근의 다른 산줄기에 임시로 자리를 잡고 만보대회를 기다렸다. 악화 선자도 겨우 결단기 수준이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한립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구릉지대의 어느 산속으로 향했다.

그는 푸른 수풀로 가득한 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소매속에서 기운을 흘려보냈다. 풍경이 모호하게 일그러지더니 유리처럼 깨져 영기의 빛으로 흩날렸다.

그러자 원래 수풀이 있어야 할 자리에 황량한 암벽이 나타났고 그곳에 하얀 석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쉭!

한립의 손끝에서 붉은빛이 날아가 석문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얼마 되지 않아 석문이 영기의 빛을 발하고 천천히 열렸다.

안에서 악화 선자, 백화급 그리고 해대소와 기령자가 서둘러 걸어 나왔다. 그들 외에도 용머리 지팡이를 짚은 노부인이 있었는데 화신기 수사로 보였다.

노부인이 한립을 보고 앞으로 나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

“전청엽이 제자를 데리고 한 선배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뒤쪽의 악화 선자가 그녀를 따라 깊이 허리를 숙였다. 중년 사내와 해대소, 기령자도 정식으로 인사를 올렸지만 표정이 묘했다.

“모두 일어나게.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하지.”

“예, 안에 차를 준비해두었습니다!”

담담한 한립의 분부에 노부인이 몸을 일으키고 안내를 했다.

잠시 후 깔끔한 정자에 한립과 노부인이 자리를 잡고 악화 선자 등은 손을 모으고 그 옆에 대기했다.

해대소와 기령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형이라 불리던 수사가 한 선배가 되자 어색한지 수시로 한립을 힐끔거렸다. 그러나 한립은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노부인에게 차분히 하문했다.

몇 마디 들어보니 그녀는 현무경의 중급 종문인 금광종(金廣宗)의 장로 중 하나였고, 악화 선자는 그녀의 관문 제자로 자질이 뛰어나 노부인의 중용을 받는 듯싶었다.

그리고 백과아는 악화 선자의 외손녀로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맥이었다.

만보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노부인을 따라 온 백화급은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혈삼을 판매해 딸아이의 한독을 치료할 약을 구하려다 남산삼악의 함정에 걸려들었다.

한립 일행을 만나지 않았으면 아마 부녀는 벌써 죽은 목숨일 것이다. 노부인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악화 선자와 백화급이 서둘러 나서 한립을 향해 감사 인사를 올렸다.

“평소 종문을 잘 나서지 않는 편이지만 천원경에 새로이 합체기에 이른 인족 선배님이 계시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그분이 한 선배님이신지요?”

노부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한립이 합체기 수사라고 확신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하, 현무경 수사들도 나를 알고 있는 줄은 몰랐구만.”

“정말 한 선배님이셨습니다! 성황께서 친히 초청을 하셨으면 응당 동급의 합체기 선배님일 거라 예상했습니다.”

담담한 한립의 답변에 노부인의 얼굴에 희색이 가득했다.

겨우 화신기 수사인 그녀가 평소 어디서 합체기 수사를 만나 보겠는가.

이제 한립이라는 거물과 관계를 맺게 생겼으니 그녀는 물론이고 금광종에도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 한립이 주위를 둘러보고 의외의 명을 내렸다.

“과아라는 아이는 어째서 이곳에 없는 것인가? 아이를 살펴봐야겠으니 불러오게.”

그 말에 악화 선자가 떨리는 마음으로 답했다.

“한 선배님, 과아는 갑자기 한독이 발작해 쉬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아이를 데리고 선배님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랬군. 기다릴 것 없이 내 직접 가서 아이를 보겠네. 이번에 온 것은 그 아이 때문이니까.”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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