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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57화 (814/2,000)
  • 1057화. 천원성황

    *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둔광이 가시고 허공에 나타난 것은 하얀 치마를 입은 젊은 부인이었다. 백의 부인의 용모가 단정하고 고왔다.

    “과아야 다친 데는 없느냐?”

    백의 부인은 걱정스런 얼굴로 여자아이와 사내를 훑었다.

    “과아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는 어찌 알고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아무 일도 없다니 다행이구만. 시장에서 만난 지인이 자네가 남산삼악(南山三惡)과 같이 떠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해 주었네. 평판이 최악인 자들에게 무슨 일을 당할까 걱정이 되어 바로 와본 것이지. 저들이 남산삼악인가?”

    백의 부인이 짧게 답하고 서늘한 시선으로 한립 일행을 훑었고 동시에 결단시 수사의 영기의 압력이 그들을 억눌렀다. 흠칫 놀란 해대소와 기령자는 속수무책으로 뒷걸음질 치며 당장이라도 바닥에 무릎을 꿇을 듯했다.

    한립은 안색을 굳히며 조용히 소매를 흔들자 무형의 힘이 퍼져나가 펑! 하고 영기의 압력을 격퇴시켰다.

    “너희는 남산삼악이 아니구나!”

    이에 백의 부인이 놀라며 한립 일행을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자, 잠시만요! 저분들은 남산삼악이 아닙니다. 남산삼악을 죽이고 저와 과아를 살려주신 분들입니다. 게다가 여기 한 수사께서 아무래도 과아 체내의 한독을 없애는 방법을 아시는 듯합니다.”

    중년 사내가 다급히 외치며 백의 부인을 말렸다.

    “뭐라, 과아를 치료할 방법을 안다고? 그게 정말인가!”

    “그건……. 이제 차차 이야기를 나눠보려는 와중에 어르신께서 오신 것이라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중년 남자가 멋쩍게 웃고 눈짓으로 백의 부인에게 셋 중 한립이 누구인지 알려 주었다.

    “자네가 한 수사인가?”

    백의 부인이 한립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의혹 어린 시선을 보냈다. 조금 전 그가 자신의 영기의 압력을 흩어버리는 것을 보았는데 백과아를 치료할 수 있다는 이가 동일인이란 사실에 놀란 것이다.

    백의 부인은 겨우 축기기 수사를 앞에 두고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만일 상대를 공격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이지?’

    가슴이 서늘해진 여인이 의식으로 한립을 샅샅이 살폈지만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의심이 깊어졌지만 백의 부인은 손녀를 위해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악화라 하네. 자네들이 고맙게도 내 사위와 손녀를 구해줬다지? 사례를 하고 싶은데 괜찮다면 내 임시 동부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아, 그것이…….”

    해대소와 기령자는 결단기 수사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불안해하며 한립만 쳐다보았다. 그런데 한립은 무슨 생각인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악 수사의 귀한 초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잠시 폐를 끼쳐야겠습니다.”

    “아닙니다. 수사께서 누추한 거처에 들러주신다면 제 영광이겠지요.”

    백의 부인은 한립이 동급 수사를 대하듯 말하자 분노하기는커녕 기뻐하며 눈치 있게 말을 바꾸었다. 무언가 짐작되는 바가 있는 듯했다.

    이에 곁의 중년사내가 입을 벌리고 놀란 눈빛으로 한립을 살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악화 선자가 얼마나 오만한 여인인지 잘 알고 있었다. 겨우 축기기 수사를 이렇게 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해대소와 기령자는 결단기 수사를 처음 만나보는 것이라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악화 선자가 사례한다는 말에 싱글벙글했다.

    한립이 비차를 방출해 모두를 태우고 이동하려는데 갑자기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 노랫소리에 3일 밤낮을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한 것처럼 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한립과 악화 선자 등은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 때, 멀리 하늘 저편에 오색 기운을 흩날리고 괴수를 탄 검은 갑옷 병사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표정한 얼굴의 병사들은 창이나 도끼 같은 법기를 들고 괴수를 부려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악화 선자가 의식으로 병사들을 훑고는 깜짝 놀랐다. 백여 명의 병사들이 전부 원영기 수행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줄줄이 날아드는 병사들 뒤로 새까만 전차(戰車)들이 나타났다. 똑같은 복장을 한 병사들이 흉악하게 생긴 조류 요수를 부려 전차를 끌고 있었다.

    서른여섯 대의 전차가 지난 후에는 다양한 복색의 수사들이 쌍쌍이 나타났다. 똑같은 복장을 한 병사들이 흉악하게 생긴 조류 요수를 부려 전차를 끌고 있었다.

    서른여섯 대의 전차가 지난 후에는 다양한 복색의 수사들이 쌍쌍이 나타났다. 노인과 아이 그리고 사내와 여인이 섞여 있었지만 전부 풍기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열댓 명의 수사들은 전부 연허 후기를 대성한 수사들이었다.

    콰르릉!

    그들 뒤로 천둥소리가 들리고 2층 높이의 누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히 말하면 누각을 닮은 거대 요수마차라고 해야 가장 정확할 것이다.

    거대한 마차는 웅장하면서도 화려했고 거대 공작 8마리가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차의 1층에 오색 빛깔의 궁장을 입은 여인이 품에 비파를 들고 연주하며 천상의 소리를 퍼트렸다.

    그러나 한립의 시선은 여인이 아니라 요수 마차 2층에 있는 세 수사에게 가 있었다. 그들은 과실과 술로 가득 차려진 탁자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건?’

    한립이 시선을 돌려 거대 마차의 꼭대기에서 거대한 은빛 깃발을 보았다. 용무늬를 새기고 봉황을 그려 놓은 깃발에서는 금제의 파동이 느껴졌고 커다랗게 ‘성(聖)’ 이란 고대문자가 적혀 있었다.

    “천원성황의 깃발입니다! 이곳에 성황께서 납시다니!”

    악화 선자가 거대 요수마차의 깃발을 확인하고 놀라 소리쳤다. 그 말에 한립은 안색이 달라지며 2층에 모인 세 명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들의 외양은 무척 독특했다.

    흰색 유생 복장을 한 사내는 우아한 생김새에 귀가 기이하게 길었고, 그 옆의 회색 장포의 노인은 나무처럼 누런 얼굴에 두 눈은 희미하게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라색 가사를 걸친 승려는 후덕한 인상이 꽤나 어진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합체급 수사들이었다.

    노인은 합체 초기이니 그렇다 치고 승려는 합체 중기의 존재였고, 유생은 영목 신통으로 안간힘을 쓰고 보아야 겨우 합체 후기의 수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생이 삼황 중의 천원성황인 듯했다.

    중년사내와 기령자, 해대소 등은 진작부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천원성황의 마차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합체기 수사는 인족 전체를 통틀어 열댓 명밖에 되지 않았고 더욱이 성황은 인족 중 최고의 지위를 누리는 존재들이었다.

    직접 삼황의 모습을 본 수사들은 얼마 되지 않을 테니 우연히 이곳에서 천원성황의 마차를 본 것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한립이 멀리서 유생을 훑자 상대편 승려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천원성황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2층 창가로 걸어가 눈동자에서 노란빛을 일으키고 한립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디 수사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이 되시면 올라와 술이나 한잔하시지요!”

    천원성황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아주 멀리 또렷하게 퍼졌다. 한립을 제외한 악화 선자와 해대소 등은 어안이 벙벙했다.

    “어……. 성황 선배님께서는 설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해대소가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럴 리가요! 성황 선배님의 칭호로 보아 근처에 동급 수사가 있나 봅니다.”

    백화급이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 주변에는 우리뿐인 것 같은데요?”

    기령자가 눈을 깜빡거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산삼악이 악행을 저지르려 일부러 백화급 부녀를 외진 곳으로 유인해 와 근처에 다른 수사는 없었다.

    다들 영문을 몰라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한립이 미간을 좁히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해대소와 기령자에게 말했다.

    “해 수사와 기 수사는 먼저 악화 수사의 동부로 가있게. 내 천원성황을 먼저 뵙고 알아서 따라갈 것이니.”

    그의 말에 해대소와 기령자는 물론이고 악화 선자와 중년사내가 놀라 눈을 부릅떴다.

    “한 형, 방금 뭐라고…….”

    해대소가 말을 더듬거리는데 한립이 곧바로 푸른 빛 줄기로 변해 날아올랐다. 빛이 몇 번 번쩍이자 그는 이미 멀리 날아간 후였다.

    그의 행동에 남은 이들은 할 말을 잃었고 어린 백과아만이 아리송한 얼굴을 했다.

    “무언가 이상하다 했더니 한 수사가 합체기 선배셨다니! 하긴 합체기 수사가 아니고서야 어찌 과아 체내의 한독을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겠는가.”

    백의 여인이 중얼거리며 얼굴이 밝아졌다.

    “해 수사와 기 수사께서도 그럼…….”

    백화급은 긴장된 기색으로 해대소와 기령자를 보며 차마 말을 잊지 못했다.

    “아뇨, 아닙니다. 우리는 진짜 평범한 수사입니다. 한 형과는, 아니 한 선배님과는 오는 길이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 분이 합체기 선배님인 것은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기령자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우리가 합체기 수사와 몇 달을 동행했다니! 게다가 같이 차를 마시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네. 기령자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해대소는 잠에서 깨지 못한 사람처럼 횡설수설했다.

    같은 시각, 한립의 둔광이 마차 가까이 도착했고 병사들은 천원성황의 명을 들어 그를 막지 않았다. 2층에 내려선 한립은 세 명의 합체기 수사들에게 미소를 머금고 포권을 했다.

    “저는 한립이라 합니다.”

    “오, 그렇다면 우리 천원경에서 새로 합체기에 올랐다는 한 수사가 아니십니까! 노부는 황탕이라 합니다.”

    “하하, 맞습니다. 합체기에 이른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한립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알고 보니 한 수사셨습니다! 당초 본 성의 요청을 거절하시지 않으셨다면 진작 거하게 술자리를 가졌을 텐데요.”

    천원성황이 한립을 훑고 웃으며 말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듣자니 한 수사께서는 겨우 수백 년만에 화신기에서 지금에 경지에 이르셨다지요? 그렇게 빠른 수행 속도는 처음 들어봅니다. 빈승, 그 뛰어난 자질이 정말 부럽습니다.”

    승려도 해죽 웃으며 한립을 향해 관심을 드러냈다.

    “과찬이십니다, 대사. 만황세계에서 몇 번이나 기연을 만난 덕이지요. 제 자질은 아주 평범한 편입니다.”

    한립은 굉장히 겸손하게 답했다.

    “천선 대사,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일단 한 수사께 술이나 한 잔 내어드리고 계속하시지요. 본 황(皇)이 다른 취미는 없는데 평소 술을 즐깁니다. 성황이라는 칭호가 대대로 전승되는 것이 아니었다면 주황(酒皇)이라고 불리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그 칭호가 저에게 더 잘 어울렸을 텐데 아쉽습니다!”

    백포 유생이 미소를 띠며 옥색 잔과 주황색 술병을 끌어와 두 손에 들었다. 천원성황은 은은한 노란빛을 띠는 술을 가득 따라 직접 한립에게 건넸다.

    한립은 잔을 받으며 찰나의 순간 의식으로 술잔을 훑고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파악했다. 술은 무엇으로 빚었는지 향기가 남다르고 놀라운 양의 영기를 머금고 있어 웬만한 영단묘약에 뒤지지 않았다.

    한립이 차분히 잔을 비워냈다.

    “과연 좋은 술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영주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겠군요.”

    술을 마신 한립의 얼굴에 희미하게 노란 영기의 빛이 스쳤다.

    “그 말은 이 호백영주(虎魄靈酒)보다 더 좋은 술도 알고 계시다는 뜻입니까?”

    뜻밖의 말을 들은 천원성황이 눈이 반짝였다. 한립이 미소를 머금고 대답하려는데 황탕이라는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성황, 그러지 말고 다 같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시지요. 이렇게 서계시게 하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합니다.”

    “아, 그렇습니다. 본 황이 한 수사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실례를 했습니다. 인족에서 근 천년 만에 나온 합체기 수사가 아닙니까.”

    천원성황은 자신의 이마를 탁 치더니 한립에게 자리를 권하고 자신도 의자에 앉았다. 천원성황에 대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성황이라는 칭호를 지니고도 성격이 시원시원해 유생 특유의 고지식한 느낌은 없었다.

    물론 겨우 첫인상만으로 상대를 완전히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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