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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56화 (813/2,000)

1056화. 3 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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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앗!

푸른 영기의 빛이 반짝이고 문인 복장을 한 미남자와 검은 목검을 멘 어린 도사 그리고 푸른 장포를 입은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은 한 손에 은색 부적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소녀의 몸을 붙들고 있었다. 바로 ‘백과아’였다.

구선산 인근에 도착한 한립 일행은 외진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날이 밝는 대로 주변 시장을 둘러보려 했다. 그런데 휴식을 취하기도 전, 석륜 등 수사들이 몰려와 강도짓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영계에서는 흔한 일이었지만 어린 딸을 인질로 삼고 거기다 보물을 빼앗고도 소녀를 죽이려는 석륜의 행동이 너무 비열했다. 이에 정의감에 불타오른 해대소와 기령자가 참지 못하고 몰래 손을 써 아이를 구하려 나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뛰어난 실력의 한 형을 믿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목숨을 잃을 걱정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이 분개하며 손을 쓰는 모습에 한립은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는 누구기에 우리 일에 참견하는 거지?”

석륜은 낯선 수사들 중 둘만 축기기 수사이고 나머지 한 명은 법력이 없는 범인인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기령자, 자네의 ‘도강리대부(桃僵李代符)’가 참으로 신기하구만. 낡은 꼭두각시로 아이를 대신하다니! 그런데 이전에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어찌 이런 술법을 부리지 않았는가? 설마 그 순간에도 마지막 한 수를 남겨 두고 있었단 말인가!”

해대소가 기령자를 흘겨보고는 두고 보자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헛소리인가! 나도 어렵사리 전 재산을 털어서 도강리대부를 제련해 놓고서도 법력이 부족해 제대로 부릴 수 없었다네. 이번에도 한 형이 부적을 대신 사용해 주지 않았다면 내가 무슨 수로 아이를 구했겠나?”

“그런 경우도 있는가?”

해대소가 처음 듣는 소리인지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이 흑의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자 석륜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나머지 두 흑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립은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그들을 지켜보았고, 죽다 살아난 백과아는 넋이 나간 얼굴로 한립 일행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쳐라! 저것들을 죽여!”

참다못한 석륜이 살기등등하게 외쳤다. 갑자기 등장한 세 사람 중 가장 주의해야할 인물은 소녀와 함께 서 있는 축기 후기 청년이었다.

흑의인들은 모두 축기 후기를 대성했으니 수행으로 보나 전투 경험으로 보나 상대를 제압할 수 있어야 했다.

게다가 두 동급 수사를 부리는 석륜은 당연히 강력한 신통을 지녀 결단기 수사와도 맞먹는 실력을 지녔다. 그들은 한두 번 강도짓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공격 명령을 내린 것이다.

석륜은 검은 진법 깃발을 휘둘러 열댓 개의 검은 빛을 쏘아 보냈다. 목표는 한립 일행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중년인이었다.

나머지 두 흑의인들도 은색 도끼와 가시가 달린 검은 방패를 날려 오로지 중년인만을 노렸다. 그들은 일단 중년인을 확실히 처리하고 천천히 한립 일행을 상대할 생각이었다.

그들의 공격에 중년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노란 비검으로 주위를 경계하게 하고 소매 속에서 노란 모래바람을 불러내 그 안으로 몸을 숨겼다.

콰콰쾅!

폭음이 터지고 비검은 세 종류의 공격에 손쉽게 뚫렸지만 노란 모래바람은 굳건하게 버텼다. 석륜 등 흑의인들은 조금 놀랐지만 바로 법기를 움직여 영기의 빛이 탁해진 노란 모래 바람을 다시 공격하려 했다.

이때 해대소가 기합을 넣으며 땅을 박찼다.

쿵!

땅이 흔들리고 화살처럼 튀어나간 해대소는 은색 도끼를 부리던 흑의인 위에서 나타났다. 그가 금빛 장갑을 낀 주먹을 휘두르자 금색 주먹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놀란 흑의인이 중년인을 놔두고 급히 다른 술법을 펼쳤다.

멀리서 은빛 두 줄기가 돌아와 은빛 보호막으로 변해 그를 보호했고, 은빛 보호막과 금빛 주먹들이 충돌해 영기의 빛이 자욱해지자 흑의인과 해대소를 가렸다.

곧 해대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밝은 빛을 머금은 금색 주먹 허상들이 은빛 보호막을 밀어내는 중이었다.

“영구(靈具), 연체사!”

또 다른 흑의인이 안색이 변해 검은 방패로 해대소를 막으려하자 기령자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쯧쯧, 둘이서 한 명을 치려하다니 양심도 없는 놈들! 관주의 신분으로 너희와 같은 조무래기들을 상대하기 조금 그랬는데, 해대소를 위해 한 번 나서 줘야겠군.”

어린 도사가 남색빛을 터트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방패를 부리는 흑의인 위에서 번득이며 나타났다. 전투 경험이 많은 흑의인은 이상한 느낌이 들자 다른 쪽으로 보내려던 방패를 남색빛이 머문 곳에 날려 보냈다.

퍼퍼퍼펑!

남색빛은 물방울처럼 터져 무수히 많은 알갱이로 흩어졌지만 그 안에 기령자는 없었다.

‘이런!’

흑의인의 불길한 직감이 적중했다.

쉬쉬쉭.

그의 뒤에서 옅은 남색 구름이 나타나 열댓 개의 남색 얼음송곳을 쏘아 보냈다. 너무 근접해 기령자보다 법력이 강한 흑의인도 어쩌지 못하고 남색 얼음송곳에 등을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검은빛이 반짝이고 검은 호랑이 머리 허상이 나타나 얼음송곳 대부분을 막아 정말 그의 등을 찌른 것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컥! 네 이놈,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

흑의인이 비틀거리며 입에서 울컥 피를 쏟고는 광분해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소매 속에서 새까만 악귀 얼굴들을 방출했다. 악귀들이 입에서 노란 화염을 뿜으며 어린 도사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기령자는 화들짝 놀라 다급히 등 뒤의 검은 목검을 들고 허공을 찔러댔고, 그때마다 남색빛이 검 끝에서 빠져나가 검은 악귀 얼굴들을 때렸다.

남색빛 자체는 큰 부상을 입히지는 못했으나 기령자는 무슨 둔술을 익힌 것인지 온몸에 남색빛을 반짝여 허공을 오가며 악귀 머리를 교묘히 피해 다녔다.

이에 석륜은 난색을 표했다. 아직 두 명밖에 나서지 않았는데도 만만치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는 승패가 어떻게 날지 알 수 없었다.

석륜은 마음을 굳히고 중년인을 공격하고 있는 열댓 개의 검은빛을 놔두고 핏빛 가죽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안에서 희미하게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그때 그의 뒤에서 누군가가 냉랭히 입을 열었다.

“호오, 영충인가 보군. 축기기 수사가 지니기에는 제법 쓸 만한 것 같은데?”

석륜이 깜짝 놀라 가죽 주머니를 뒤쪽으로 휘둘렀다.

펑!

허공에서 가죽 주머니가 폭발하고 핏빛 독봉(毒蜂)들이 날아올랐다.

위잉!

혈봉 떼가 핏빛 구름으로 변해 청년을 덮쳤다. 청년은 순간이동을 해 석륜 뒤에 나타난 한립이었다. 혈봉 떼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대도 한립은 피식 웃기만 했다.

3, 4백 마리쯤 되는 혈봉 떼는 결단기 수사라 해도 꺼리며 피할 수준이었지만 그에게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미물(微物)에 불과했다. 그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입을 벌려 오색 한염을 내뿜었다.

다음 순간, 혈봉 떼는 오색 한염 속에서 얼어붙어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변했다.

“이 놈!”

그것을 보고 화가 난 석륜이 푸른 고대 거울을 불러냈고, 거울이 분출한 푸른 빛기둥은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들어 한립의 코앞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한립은 여전히 도망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의 앞에 회색 기운이 어려 보호막이 만들어지고 푸른 빛기둥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종적을 감추었다.

“……!”

그 모습에 석륜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한립이 덤덤하게 팔을 들어 손끝을 튕기자 푸른 실 한 가닥이 소리 없이 사라져 석륜 앞에 나타났다.

석륜은 그대로 푸른 실에 미간이 뚫려 몸이 뻣뻣하게 굳었고, 푸른 실은 그대로 석륜의 몸을 휘감아 조각조각 잘라냈다.

한바탕 피와 살점이 흩날리고 석륜은 원신이 달아날 틈도 없이 사라졌다.

“헛!”

그 덕에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남은 중년 남자가 제일 먼저 그것을 발견하고 헛바람을 삼켰다. 해대소와 기령자를 상대하던 흑의인들도 그 모습을 보고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한립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냉랭히 훑자 죽은 석륜의 동료들은 싸움을 멈추고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한 명은 비도를 날리고 하얀 빛줄기로 변해 도망가려 했고, 다른 하나는 검은 부적을 꺼내 붙이고 검은 기운 속에 숨어들어 다른 방향으로 내뺐다.

이에 해대소와 기령자는 두 눈만 끔뻑거리며 그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닭 쫓던 개가 된 그들은 울적한 마음에 절로 욕이 나왔다.

그때 한립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딜 달아나려느냐.”

천둥소리가 일고 금색 뇌전 두 줄기가 튀어나가 달아나는 흑의인 두 명을 뒤쫓았다.

쾅! 쾅!

두 번의 폭음과 함께 흑의인들은 금색 뇌전 속에서 찍소리 한 번 못해보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어쩔 줄 몰라 날뛰던 해대소와 기령자는 동시에 얼이 빠져 할 말을 잃었다.

“기령자, 자네도 축기기 수사이고 한 형도 축기기 수사인데 무슨 실력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인가. 한 형은 대충 손끝만 튕기고도 없애는 놈을 자네는 한참 동안이나 어쩌지 못하고 말이야. 도무지 자네가 너무 허약한 것인지 한 형이 너무 강한 것인지 알 수가 없군.”

한참이 지난 후에야 해대소가 코웃음을 치며 기령자를 나무랐다. 그 소리에 기령자가 발끈해 변명을 해댔다.

“대소 자네도 중계 연체사가 아닌가! 축기기 수사와 맞먹는 자네도 못한 일을 나더러 어쩌란 것인가? 게다가 나는 형편이 어려워 수중에 흑전목검(黑蚕木劍) 말고는 아무것도 없단 말일세. 다른 강력한 신통을 쓰려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어찌 되었든 한 형이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자네 정도는 이길 수 있단 소리가 아닌가. 자네의 허풍에 속아 무해관에 입관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지!”

해대소의 양 손에서 금빛이 반짝이고 금색 장갑이 없어지자 부채가 나타났다. 그는 한가롭게 부채를 부치며 자신이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둥 기령자를 골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기령자는 무어라 따지고 싶었지만 딱히 반박한 말이 없어 콧방귀를 껴대고 입을 다물었다. 그때 한립이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저는 백화급이라 합니다. 세 분의 존성대명(尊姓大名)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세 분이 아니었다면 저는 물론이고 딸아이까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년 사내가 딸아이를 데리고 다가와 감격 어린 인사를 건넸다. 특히 한립을 보는 눈빛이 달랐다.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급 수사 셋을 죽였다는 것은 이미 결단기 수사와 다름없는 실력을 지녔다는 뜻이 아닌가!’

해대소와 기령자는 처음으로 동급 수사에게 깍듯한 예우를 받아보았다.

“별것 아닙니다.”

그들은 조금 우쭐해서 냉큼 대답하고, 자신들과 한립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한립은 그들을 지켜보다 소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에 소녀는 부끄러운 듯 아비 뒤에 숨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들을 살폈다.

그러다 한립과 눈이 딱 마주치자 아이가 두려운 듯 중년 사내 뒤로 몸을 감추었다.

“따님의 몸에 이상이 있는 듯합니다.”

잠시 후 한립은 의아하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아이의 몸에 있는 한독(寒毒)을 알아보신 것입니까?”

“차가운 기운이 이미 단전과 경맥에 침투해 그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3년 내로 목숨을 잃겠군요. 허나 평범한 한독과 달라 치유하는 것이 쉽지 않겠습니다.”

한립이 명청령안을 발동해 소녀를 살피고는 중년 사내가 깜짝 놀랄 만한 말을 했다.

“그 말씀은 한독을 치유할 수는 있다는 뜻인지요?”

백화급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무어라 답하려다 미간을 좁히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움찔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한 형, 왜 그러…….”

해대소가 부채를 접고 물어보려는데 하늘 끝에서 하얀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아, 외할머니세요!”

소녀가 그것을 보자마자 얼굴이 밟아져 손뼉을 쳤고 중년 사내도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단기 수사! 저분이 아까 들은 악화 선자일까요?”

기령자가 안색이 달라지며 한립을 향해 물었다.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얀 빛줄기를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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