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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043화 (800/2,000)

1043화. 합체기 진입 (2)

*

밀실 꼭대기에서 대량의 주술문자가 떨어져 내려 원영과 한립의 육신에 닿고 사라졌다.

키에엑!

그리고 밀실 구석에서는 검은 기운이 꿈틀거리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불안해지고 한바탕 살육을 벌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기이한 소리였다.

원영의 얼굴은 한쪽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지만 나머지 한쪽은 그 소리에 자극을 받은 듯 눈동자의 색이 점점 핏빛으로 진해졌다. 광기가 번뜩이는 얼굴은 당장이라도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듯했다. 이에 차분한 얼굴이 한 손으로 들고 있는 향로를 가리켰다.

쉭!

은색 화염이 손끝에서 뻗어 나와 향로에 남은 향초로 날아갔다. 향초에 불이 붙고, 신비한 단향목의 기운이 밀실 안을 가득 채웠다.

이에 원영이 깊게 향기를 들이마시자 통제를 벗어나려던 얼굴 반쪽이 안정을 되찾고 눈동자의 핏빛도 옅어졌다.

키엑!

밀실 구석에 숨어 있던 검은 기운은 단향목 향기가 몰려들자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즉시 괴이한 울음소리를 멈추었다. 검은 기운이 향에 씻겨 옅어지고 그 안에서 겁에 질린 악귀 얼굴이 나타나 괴로워했다.

검은 기운의 실체를 확인한 원영은 주저 없이 입에서 금색 뇌전을 분출했고 금색 뇌전은 정확하게 악귀 얼굴에 떨어졌다.

이에 악귀가 분한 얼굴로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그제야 눈을 감고 있던 원영이 천천히 다시 눈을 떴고 양쪽 모두 맑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겨우 천외마두(天外魔頭)의 분혼 따위가 심마를 틈타 의식을 어지럽히려 하다니!”

원영이 냉소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어 안고 있던 칼날 조각을 위로 던지고는 두 손으로 빠르게 수결을 맺고 다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오색 주술문자가 떨어지는 속도가 갑자기 배로 빨라져 밀실이 온통 다채로운 영기의 빛으로 가득 찼다. 동시에 또 다른 기이한 향기가 그의 몸에서 퍼져나갔는데 원영은 신경 쓰지 않고 필사적으로 허공의 오색 주술문자를 흡수하는 데만 집중했다.

천지원기가 가득한 주술문자를 흡수한 원영은 눈에 보이는 속도로 몸집이 커지더니 반각 후에는 몇 척 크기로 불어나 있었다.

이때 산봉우리 상공의 거대 원숭이 허상은 빛기둥으로 변해 산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육신이 투명한 수정처럼 변해가더니 기이한 향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졌고, 원영은 그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고통을 참아냈다.

원영의 온몸이 용암처럼 끌어 올라 속이 타고 피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바로 그때 아래쪽에서 강력한 흡인력이 생겨났다!

훽!

원영은 반항 한 번 못하고 작아져 육신의 머리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뜨겁게 원영을 달구던 힘이 미친 듯이 육신으로 흘러 들어가 안 그래도 투명해지던 한립의 피부를 완전히 반투명한 수정으로 만들어 놓았다.

피와 살은 물론 연한 금빛의 골격까지 선명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지금 그의 골격은 무수히 많은 가느다란 빛의 실에 둘러싸여 은은하게 오색 빛을 발산했다.

다행히 단전에서 소량의 힘이 경맥을 따라 온몸으로 퍼져 뜨거운 기운을 해소하고 바로 한립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잠시 후 모든 힘이 한곳에 모여 스스로 머리 쪽으로 향했다.

‘아!’

한립은 의식의 망망대해 속을 떠다니던 커다란 자물쇠가 강력한 힘에의해 풀린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흐아악!”

무언가 혼백을 꿰뚫은 것처럼 저릿저릿한 감각이 의식을 잠식했고, 주체할 수 없는 힘에 휩싸여 포효했다.

거대 원숭이 허상이 사라진 순간 인족 수사들의 몸과 의식을 억누르고 있던 압력이 사라졌다. 그들은 뒤숭숭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는데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머뭇거리며 제 자리에서 멀리 운해를 살피는 자들도 있었고,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려는 자들도 있었다.

하얀 수염의 노인 역시 법력이 회복되자마자 동부로 돌아가 족인들을 데리고 대피하려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립의 포효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고, 그로 인해 운해가 커다란 파도를 일으켜 주변을 덮쳤다.

“헉!”

“저, 저게 뭐야!”

운해 주변의 수사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전부 날아올랐다. 그러나 포효소리를 들은 수사들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머리가 아파와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그나마 범인들에 비해 월등한 몸을 지녔기에 추락하고서도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포효소리가 그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수사들은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데굴데굴 땅을 굴러다녔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극통을 줄여보고자 몸부림쳤지만 포효소리는 직접 의식에 영향을 미쳐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때 거대한 운해의 물결들이 밀려들었다. 몇몇 수사들은 간신히 고개를 들고는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그저 하얀 안개가 만들어낸 물결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기세등등하게 달려드니 두려움이 일었다.

보물을 발동하거나 법력을 끌어올릴 수 없는 이들에게는 미지의 물결이 더욱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하얀 운해의 물결이 막 인족 수사들을 뒤덮으려는데, 운해 중심에서 울려 퍼지던 포효소리가 뚝 그치고 서늘한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퍼퍼펑!

운해의 물결이 폭발해 사라지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일다경이 지나서야 일부 수사들은 초췌한 몰골로 땅을 짚고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수사들은 재빨리 둔광을 일으켜 자신들의 동부로 날아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산봉우리들에서 날아오르는 수사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쉼 없이 날아가고 나서야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하얀 수염 노인 역시 부족 수사들을 데리고 멀리 벗어나 작은 산골짜기에 임시거처를 마련했고, 그중 수행이 높은 거한에게 옥간을 주고 곡 씨 가문 본가로 날아가라 명했다.

이날 이후, 욱일봉에 막 합체기에 이른 수사가 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수사들이 떠난 욱일봉은 짙은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 * *

3일 후, 밀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한립이 천천히 눈을 떴다.

며칠 전 합체기에 이른 그는 경지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정좌를 하고 시간을 보냈다. 이제 경지가 높아지며 생긴 불균형을 어느 정도 억눌렀으니 다른 일을 할 때였다.

그가 차분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의식을 방출하지도 않았는데 텅 빈 밀실 내부의 천지원기의 힘을 감응할 수 있었다.

한립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간단한 주문을 외웠다.

웅!

놀랍게도 허공이 진동하고 하얀빛의 점들이 모여들어 손바닥 크기의 바람의 칼날들을 형성했다. 반투명한 바람의 칼날들은 미세하게 몸을 떨며 밀실 안을 가득 채웠다.

“경전에 적힌 그대로구나! 합체기 경지에 이르면 천지원기를 감응하고 움직이는 수준이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다더니 거짓이 아니었어. 법력을 소모할 것도 없이 직접 천지원기를 조종해 공격할 수도 있겠어.”

그는 유쾌한 얼굴로 바람의 칼날을 하얀빛으로 흩어버리고 의식으로 몸을 훑었다. 합체기에 이르고 몸이나 의식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한립은 한식경 후 밝은 표정으로 눈을 떴다. 육체의 강도와 법력이 예상 밖으로 크게 늘어 합체기를 대성한 수사와 싸워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궁리했다. 합체기에 오른 그는 앞으로 인족과 요족 내에서는 대승기 수사를 제외하면 두려워할 이가 없었다. 몇 년 간은 경지를 다지는데 전력을 다해야겠지만 해야 할 일들이 가득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남궁완이 영계로 왔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가 했던 대로 공간접점을 이용해 비승했다면 천연성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천연성 외의 다른 인족 지역은 물론 인접한 요족 지역에 있을 확률도 높았다.

‘인족과 요족 영역은 맞붙어 있으니까.’

천연성에서 그녀의 소식을 찾을 수 없다면 직접 인족과 요족 지역을 샅샅이 돌아봐야 했다. 만일 남궁완이 수행이 부족해 아직 인계에 있다면 파계(破界)의 술법을 익혀서라도 그녀에게 도움을 주어야 했다.

그가 지닌 몇 종류의 단약들과 보물만 경계를 넘어 남궁완에게 전해 줄 수 있어도 영계로 비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녀를 떠올리자 한참 동안 감정에 젖어 들었다.

그러나 출관하고 바로 처리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빙백 선자의 후인인 허 선자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청원자가 모아달라고 한 재료도 전달해야 했다.

뇌명대륙에서 풍원대륙으로 돌아왔을 때 도착한 지점은 인족과 비령족 지역에서 모두 먼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인족으로 먼저 돌아가 경지를 높인 다음 움직이는 것을 택했다.

상대가 천년 내로만 가져다 달라고 했으니 기한이 6, 7백년은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 세월이면 합체 후기를 달성하고 청원자를 찾아가 재료들과 명하신유(冥河神乳)를 거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합체기 수련을 위해서 보조 재료들을 모아 식독초를 주원료로 하는 합체급 단약 몇 가지를 제련할 계획이었다. 식독초에 비하면 구하기 수월하지만 보조 재료들도 영계에서 희귀한 것들이라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한 3천 년에 한 번 있는 대천겁을 대비하기 위해 광한계에서 얻은 태을청산을 극산(極山) 중에 하나로 제련해야 했다. 원합오극산 보다는 위력이 떨어지겠지만 원자극산과 함께 천겁을 이겨내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손에 넣은 허령단도 어떻게든 용도를 알아내야 적시에 복용을 할 수 있다. 또한 연신술을 익히고 합체기에 이르러 의식의 힘이 크게 늘어나 한 번에 부릴 수 있는 서금충의 양이 천 마리나 되었다.

그렇다면 비홍어의 내단을 이용해 전설 속의 ‘칠채단’을 제련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했다. 상고 단약인 칠채단과 금뢰죽 이파리를 이용하면 이미 성체가 된 서금충을 한 번 더 진화시키거나 변이시킬 수 있었다.

예전에 이상한 주춧돌로 서금충 일부가 변이를 일으켰지만 체중이 크게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별 특별한 효과가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앞으로 빠르게 경지를 높이려면 연신술 제2성을 익히는 것도 꼭 필요했다. 현재 의식의 힘은 충분하지만 육신의 강도가 부족해 합체 후기에 이르러 범성진마공을 대성한 후에야 간신히 조건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다른 방법으로 육신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홍라선주를 장기 복용해 천천히 체질을 개선해 보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었다.

‘물론 선계 부적과 성공도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연구해봐야겠고!’

이렇게 한립은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후 1년간 그는 욱일봉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서지 않고 합체기 법력과 의식을 공고히 하는 데만 주력했다.

바깥은 그가 합체기에 진입한 일로 한 바탕 소란이 일었지만 다들 막 고비를 넘긴 수사는 1년 정도 폐관 수련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성가시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금색 눈썹을 지닌 노인이 운해 바깥에 나타났다. 푸른 장포를 걸치고 허리춤에 청록색 옥 여의를 단 노인은 어느 산봉우리 위에 서서 운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슬쩍 고개를 돌려 하늘 저 끝에서 날아오는 기다란 빛줄기를 바라보았다. 굉장한 속도로 날아든 빛줄기들은 그대로 운해 속으로 진입하려는 듯했다.

“흠?”

바로 그때 맑은 목소리가 노인의 귓가에 울렸고, 은색 빛줄기가 방향을 틀어 그가 있는 산봉우리로 다가왔다.

거리를 두고 둔광을 거둔 호리호리한 인영은 남색 궁장 차림의 수려한 미모를 지닌 젊은 여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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